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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Daniel Jan 22. 2020

Purgatorio, 연옥의 의미 (신곡)

La Divina Commedia,  Purgatorio

단테가 기록한 연옥의 모습은 이러하다. 지구 북반구 지상에 있는 지옥문을 통해 지옥으로 들어가면 1옥에서 9옥을 거쳐 지구 중심으로 깊숙이 내려간다. 9옥의 지구 중심에서 지옥 반대방향, 즉 남반구 방향으로 계속 올라가면 지상에 연옥산이 있다. 그러니까 연옥은 북반구에 있는 지옥문의 정반대 쪽 남반구 지구면에 우뚝 솟아 있는 산이며 정상에는 지상낙원 즉 에덴동산이 있다. 연옥산은 일곱 가지 죄의 층, 즉 7원으로 나뉘어 있다. 제1원은 오만의 죄, 제2원은 시기와 질투의 죄, 제3원은 분노의 죄, 제4원은 나태의 죄, 제5원은 탐욕의 죄, 제6원은 탐식의 죄, 제7원은 사음의 죄이다.


성주간  금요일 어두운 황혼녁에 베르길리우스를 따라 지옥으로 내려간 단테는 부활 성야에 지옥을 나와 부활 대축일 새벽녘에 연옥산 기슭에 다다른다. 그곳에서 단테는 지옥에서는   없었던 별을 보며 ‘사랑에로 충동하는 아름다운 라고 노래한다. 샛별  금성을 가리킨다. 그리고 ‘아득한 조망 펼쳐지는 ‘바다의 일렁임 보게 된다.


별빛도 없이 어둡고 시계가 가로막혀 있는 닫힌 공간 그래서 영원한 고통 속에 머물러야 하는 출구 없는 세계인 지옥과는 다르게, 연옥은 별과 바다가 있어 조망하며 전망할 수 있는 공간이다. 물론 연옥도 죽은 자들의 세계이며 그 자체로 큰 기쁨이 없는 곳이지만, 아득히 멀리 상공이 보이고 연옥산을 오르며 혼을 정화해 하늘에 오를 수 있는 가능성이 열려 있는 곳, 적어도 구원의 가능성이 있다는 희망이 있는 곳이다. 연옥은 ‘인간의 영혼이 깨끗하게 씻겨, 하늘로 오르게 하는 곳’이다.


연옥에는 가야 할 길이 있다. 그리고 연옥에는 두 부류의 인간이 있으니 하나는 의인이었으나 그리스도 이전에 태어나 그리스도의 길을 몰라서 아직 천국에 가지 못하는 사람들, 그리고 다른 하나는 그리스도의 길을 알면서도 그 길을 열심히 따르지 않은 사람들이다.


이제 단테는 진짜 연옥이 시작되는 연옥문의 세 계단을 올라간다. 잘 닦인 대리석으로 만들어져 내 모습이 그대로 비치는 첫 번째 계단은 반성을 의미한다. 반면 어둡고 짙은 색의 거친 자연석으로 만들어진 두 번째 계단은 속죄의 고행을 뜻한다. 불길이 타오르듯 벌겋게 이글거리는 세 번째 계단은 사랑으로 고양된 마음의 표현이며 동시에 희망이기도 하다.


연옥문의 세 계단을 올라간 단테는 연옥의 문지기 천사 앞에 무릎을 꿇고 자신의 가슴을 세 번 친 후 자비로써 연옥문을 열어 주기를 청한다. 단테가 자신의 가슴을 세 번 친 것은 ‘생각(cogitatio)과 말(verbum)과 행위(opus)로 죄를 많이 지었으며 자주 의무를 소홀히 하였나이다’라는 고백기도이다. 그러자 천사는 칼끝으로 일곱 개의 ‘P’를 단테의 이마에 긋고 이들 상처를 씻어 내라고 말씀하신다. P는 라틴어 peccatum의 첫 글자이며 연옥산의 일곱 개의 죄의 층, 즉 7원을 의미한다.  


연옥문을 지키는 천사는 중요한 메시지를 전한다. 베드로 성인에게서 연옥문의 열쇠를 받았다는 천사는 ‘그가 내게 이르기를, 사람들이 내 발치에 엎드리거든 실수로 열어 줄지언정 실수로 잠가 두지 말라 했느니라’라고 말한다. 신은 모든 죄인에게 연옥의 문을 열어 주어 그들이 죄를 정화하기를 원한다는 의미이다. 천사는 한 가지 경고를 더한다. “뒤돌아보는 자는 모두 밖으로 되돌아가리라.” 회개의 본질은 ‘새롭게 시작하는 것’에 가깝다. 회개는 희랍어로 ‘메타노니아’, 즉 잘못된 길로 가던 삶을 올바른 길로 다시 돌려놓음이며 이는 과거에 얽매여 집착하는 것이 아니라 새로운 세계로 나아가기 위해 과거를 끊어 내는 것이다. 이마미치 교수는 <신곡 강의>에서 ‘신이 앞길을 보여줄 때는 과거에 현혹되지 말아야 한다’며 ‘종교는 과거로부터 해방되는 미래의 행복, 현재에 대한 미래의 승리’라고 강조한다.


단테는 연옥산을 오르며 일곱 개의 죄의 층을 순례한다. 그리고 연옥산 돌계단 정상에 도달하자 지금까지 앞에서 인도하던 베르길리우스가 단테에게 ‘너는 가파른 길에서 벗어났고 좁은 길에서 멀어졌으니’ 이제부터는 앞서서 걸으라고 말한다. 이제 연옥산 맨 위 계단을 지나면 ‘신의 숲(la divina foresta)’으로 들어간다. 지상낙원 즉 에덴동산이다. 그곳에서 단테는 천국에 가기 위해 정화된 영혼들이 마셔야 한다는 두 개의 강, ‘레테’와 ‘에우노에’를 만난다. 이마미치 교수의 설명에 의하면 죄를 지은 사람을 얽매려는 죄의 유혹을 끊기 위해 죄의 흔적을 기억에도 남기지 않도록 ‘망각의 강, 레테의 강물’을 마셔야 한다. 그리고 지금까지 가지고 있던, 죄로 기울 수 있는 지식을 망각하고 좋은 지식을 가지기 위해 ‘지혜의 강, 에우노에의 강물’을 마셔야 한다.

       

한편 얼마 후 베르길우스가 말없이 사라지고 베아트리체가 단테 앞에 나타난다. 베아트리체는 하얀 베일 위에 올리브를 두르고 초록빛 웃옷 안에 불꽃같은 빨간 옷을 입고 있었다. 흰색은 신앙, 초록색은 희망, 붉은색은 사랑을 의미한다. ‘이 세상의 지혜’ 즉 학문과 법을 상징하는 베르길리우스는 단테를 연옥까지 인도할 수 있을 뿐이다. 천국은 베아트리체가 상징하는 ‘신앙’이 이끌어 줄 것이다.


연옥은 하얗게 빛나는 천사가 자주 나타나고 멀리 펼쳐진 전망이 보이고 밤에는 별도 보이는 곳, 연옥산 정상에 오르면 하늘의 별과 이어지는 공간이 열리는 곳이다. 연옥은 벌을 받는 곳이 아니라 신의 선하심과 사랑을 깨닫고 느끼는 곳으로 피난처이며 죄의 원인을 자기 안에서 찾으며 진심으로 통회하는 장소이다. 그리고 지상에서 몰랐거나 소홀히 했던 그리스도의 길을 열심히 따르는 곳이다. 어느 사제의 강론에 의하면 연옥의 사람들은 완고하지 않아 신의 사랑이 크다는 것을 깨닫는 만큼 영혼의 고통도 크다고 한다. 깊숙한 땅속으로 내려가 슬픔과 절망 속에서 영원히 머물러야 하는 지옥과는 달리 연옥의 삶은 별이 반짝이는 하늘을 우러러보며 동경하며 연옥산을 오르는 것이다.


부활 대축일 새벽녘에 연옥산 기슭에 도착한 후 신들의 숲에서 레테와 에우노에의 두 개의 강물을 마실 때까지 사흘 간의 연옥순례를 마친 단테는 이제 베아트리체와 함께 천국 안으로 들어간다.


Purgatorio, Canto 1 ~ Canto 33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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