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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Daniel May 28. 2020

오만 가지 이야기들과 마음에서 감지되는 선한 움직임

영화<미스 리틀 선샤인> 후기 (2006)

2006년 미국에서 개봉된 이 영화는, 여섯 명 대가족이 낡은 소형버스를 타고 어린이 미인대회 <Little Miss Sunshine> 참석을 위해 뉴멕시코를 출발해 아리조나 사막을 거쳐 캘리포니아까지 여행하는 1박2일 로드무비이다.


영화의 구성과 전개는 매우 간단하다. 여섯 명의 다소 특이한 가족 구성원들을 소개하는 도입부, 아주 오래된 노란색 폭스바겐 마이크로버스를 타고 1,300 킬로미터가 넘는 장거리를 여행하면서 겪게 되는 에피소드들을 보여주는 중반부, 그리고 어린이 미인대회에서 벌어지는 한바탕 소동과 결말이라는 단순한 구성이다. 스토리의 전개도 단순하다. 각자의 문제를 안고 있고 또 서로 잘 어울리지 못하는 가족 구성원들, 그들이 무언가를 함께 하면서 겪게 되는 고난과 갈등 그리고 조금씩 바뀌는 가족 구성원들의 관계, 마지막으로 결정적인 사건 – 이 영화에서는 어린이 미인대회 – 을 통해 모든 갈등이 비록 해결되지는 않더라도 마침내 해소된다는 전형적인 전개이다.


그런데 매우 특별하다. 비록 2006년말 한국 개봉 당시 누적관객수는 26,748명에 불과했지만, 이 영화는 2006년 선댄스 영화제 초연 당시 관객들의 기립박수를 받은 후 누구도 예상치 못한 상업적 흥행기록을 보였다고 한다. 저예산으로 촬영기간이 30일에 불과한 이 영화는 – 영화를 보면 알게 된다. 어떻게 30일만에 촬영이 가능했는지 –오로지 영화 자체의 힘으로 놀라운 관객반응을 이끌어 내고 있다.


이 영화의 힘은 무엇일까? 그것은 무엇보다 가족 구성원 개개인의 캐릭터와 그들 사이의 관계다. 영화는 도입부에서 6명의 가족 구성원을 차례로 소개하는데 편안하거나 사랑스럽거나 좋아 보이지 않는다. 사실 살짝 불편하다.


영화가 소개하는 순서대로 보면 먼저 올리브, 통통해 보이는 여섯 살 소녀이며 가족의 둘째 아이다. 그리고 어린이 미인대회에 매우 열렬히 나가고 싶어한다. 두 번째는 올리브의 아빠 리처드, 성공학 강사다. 입만 열면 세상은 승자와 패자로 나뉜다면서 긍정마인드를 강조하고 자신이 개발한 9단계 성공학을 설파하지만, 그는 경제적으로 무능하며 살짝 겉돈다. 세 번째는 셰릴과 프랭크, 셰릴은 올리브의 엄마이며 가족을 힘겹게 끌어안고 있다. 프랭크는 셰릴의 남동생, 그러니까 올리브의 외삼촌이다. 프루스트 대가이며 동성애자, 학문적 자존심 추락과 실연으로 자살을 기도했고 갈 곳이 없어 누나의 집에 얹혀 살게 되었다. 네 번째는 올리브의 할아버지 에드윈, 마약 중독으로 요양원에서 쫓겨났고 입이 거칠다. 가족들과 대화할 때도 ‘F’를 스스럼 없이 사용한다. 셰릴에 의하면 특별하게 사셨지만 - 정확한 표현은 ‘a long eventful life’ 이다 - 손주들을 아주 많이 사랑한다. 어린이 미인대회에 출전하려는 올리브의 안무를 담당하고 있다. 마지막으로 올리브의 오빠 드웨인, 아직 열여덟 살이 되지 않았고 니체를 읽고 있으며 전투기 조종사가 될 때까지 묵언수행 혹은 반항하는 중이다. 사실 드웨인은 가족을 포함해서 ‘모든 사람을 증오한다’는 의사를 메모로 표시한 바 있다.


다소 장황한 가족소개를 들으며 눈치챘겠지만 사실  가족의 중심은 예쁘고 통통한 올리브이다. 비록 엄마 셰릴이 가족을 챙기고 아빠 리처드도 의욕적인 태도로 가족들을 대하지만 가족들을 연결하는 중심 캐릭터는 올리브이다.


올리브는 괴팍한 할아버지 에드윈과 함께 미인대회를 준비 중이며, 자살을 기도한   가족과 처음으로 함께 식탁에 앉게  외삼촌 프랭크에게  그랬는지 ‘사심 없이물어 본다. 그리고 천국에 대한 대화도 나눈다. 어린이 미인대회 출전자격을 얻어 엄마 셰릴을 기쁘게  이도 올리브이며 슬퍼하는 엄마와 오빠를 안아  이도 올리브이다.


가족들은 이런저런  일을 겪으면서도, 영화 전체를 관통하여 올리브가 이끌어 가는 작은 이야기들에 관여하며 1,300 킬로미터의 대장정에 기꺼이 그리고 무사히 참여하고 있는 것이다. 사실  영화 자체가 올리브의 미인대회 출전을 위한 6 가족 여행기이다.


이 영화에 몰입하게 하는 또 하나의 덕목은 화보와도 같은 장면들과 이를 통해 보여주는 상징 혹은 은유이다. 내가 꼽는 이 영화의 명장면은 세 개이다.


첫 번째는 노란색 폭스바겐 마이크로버스이다. 구형 수동기어의 이 소형버스는 여행 도중에 하필 변속기 고장이 나고 부품조달이 되지 않아 수리가 불가능한 상황이다. 가족들은 시동을 걸 때마다 모두 내려서 차를 밀어야 한다. 한참 밀다가 운전을 하는 아빠가 먼저 올라타서 변속을 하면, 할아버지 에드윈, 올리브, 엄마 셰릴, 외삼촌 프랭크, 오빠 드웨인의 순서로 힘껏 달려서 차에 올라타야 한다. 가족은 새로운 출발을 할 때 마다 힘을 합쳐야 한다. 그리고 가족들은 매번 출발 퍼포먼스를 할 때마다 무사히 해냈다는 안도감으로 웃고 떠들며 서로의 등을 두드린다. 그런데 그 장면이 처음에는 안쓰럽다가 나중에는 유쾌해지고 살짝 동질감 마저 느끼게 된다.


두 번째는 황무지에서 벌어진 장면이다. 사실 올리브의 오빠 드웨인은 전투기 조종사가 되어 가족을 떠나고 싶어 한다. 그런데 여행 중에 우연히 자신이 색맹이며 그래서 전투기 조종사가 될 수 없다는 것을 알게 된다. 분노와 좌절로 폭발한 드웨인은 버스에서 내려 도로에서 벗어나 황무지로 달려간다. 카메라는 황무지에 주저앉아 울고 있는 드웨인을 올려보는 장면을 근경(近景)으로 보여 주고, 저 멀리 둔덕 위 도로에 서있는 노란색 버스와 일렬의 가족들을 원경(遠景)으로 보여 준다. 그리고 그 위로 푸른 하늘과 구름이 광활하게 펼쳐져 있다. 개인적으로 이 영화에서 가장 아름다운 장면이라고 생각한다.


지금 드웨인은 가족과 가장 멀리 떨어져 있고, 어쩌면 가족은 아들 드웨인을 잃을 수도 있다. 올리브의 미인대회 도착시간도 촉박하고 누구도 그를 위로하거나 설득할 수 없는 상황이다. 어떻게 해야 하나? 그때 올리브가 둔덕에서 내려와 오빠 드웨인에게 다가온다. 그러고는 옆에 쪼그리고 앉아 오빠 어깨에 머리를 기댄다. 아주 짧은 시간이 흐르고, 조금 전까지 가족에게 폭언을 하며 격렬하게 울부짖던 드웨인은 코를 훌쩍이며 동생에게 이렇게 말한다. “그만 가자...” 나는 이 장면을 잊을 수 없다. 사랑하는 가족이 절망에 빠져 몸부림칠 때 무엇을 어떻게 해야 하는지 이보다 더 잘 보여줄 수 있을까?


세 번째는 외삼촌 프랭크와 조카 드웨인의 대화장면이다. 우여곡절을 거쳐 미인대회에 참석한 후 프랭크와 드웨인은 함께 해변가 전망대로 나온다. 드웨인은 외삼촌에게 “열여덟 살이 될 때까지 잠만 자면서 이 시기를 생략했으면 좋겠다”고 말한다. 그러자 프랭크는 조카에게 마르셀 프루스트의 이야기를 해준다. “프루스트는 삶의 끝에서 지난날을 돌아보며, 가장 힘들었던 시절이 현재의 자신을 만들었으며 바로 그 시절이 인생에서 가장 좋았던 시절이라고 했다. 그는 힘든 시절에 생각할 수 있었고 성장했고 매우 깊이 느낄 수 있었다는 것이다. 그리고 마냥 행복하기만 했던 시절에는 아무 것도 배울 수 없었다고 한다.” 그리고 이런 말을 보탠다. “Your prime suffering years.”


프랭크와 드웨인의 대화를 들으면서, 나는 영화 <두 교황>의 한 장면을 떠올렸다. 호르헤 마리오 베르고글리오가 사제의 길을 걸으라는 신의 계시를 받은 뒤, 하늘과 땅이 갈리는 스카이라인에 걸터앉아 고뇌하는 장면이다. 그때 프란치스코 교황은, 지상이 끝나고 하늘이 시작되는 경계선에서 어떤 삶을 선택할 것인가를 깊이 생각했을 것이다.


프랭크와 드웨인은 하늘과 바다가 갈리는 수평선 높이의, 바다로 돌출되어 있는 전망대에 서있다. 바람은 심하게 불고 수평선은 흐릿하다. 자살을 기도했던 프랭크와 스스로를 외부와 차단했던 드웨인은, 삶과 죽음이 갈리는 경계선에서 삶을 선택하는 대화를 나눈 것이다.


개인적인 감상을 지나치게 많이 늘어 놓은 듯하다. 두서 없는 글을 마무리해야겠다. 이 영화는 단순한 구성과 전형적인 전개의 틀 위에서 ‘오만 가지 에피소드들’을 보여 주고 있다. 그리고 그 ‘오만 가지’의 크고 작은 에피소드들을 여섯 명의 가족이 함께 겪고 헤쳐 나가면서, 그들 각자의 마음에 선한 일이 조금씩 일어나고 가족이 다시 복원되고 있음을 관객이 느끼게 된다. 또한 관객의 마음에도 자연스러운 선한 움직임이 조금씩 감지된다. 이 영화가 매력적인 이유이다.  


그 오만 가지 에피소드들 중에서 나는 단지 몇 가지만 언급했을 뿐이다. 기절초풍할 만큼 엄청난 일, 개인의 삶을 무너뜨릴 만큼 심각한 일, 너무 사소해서 기억조차 나지 않은 일도 벌어진다. 그리고 그 모든 것들이 사람들의 마음과 관계에 의미있는 흔적을 남긴다.


이 영화를 꼭 보시라. 필설로 다할 수 없는 ‘그대 안의 감흥’을 느끼리니...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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