brunch

You can make anything
by writing

C.S.Lewis

by 오서리 Oct 27. 2024

르꼬르뷔지에 롱샹성당

빛덩어리 그리고 숭고함

"이러다가 우리 얼어 죽는 거 아냐?"


 렌터카 없이 유럽 건축기행을 하는 것은 결코 만만한 일이 아니었다. 


'대체 왜 의미 있고 철학이 담긴 건축물은 이렇게 가기 어려운 장소에 있는 걸까?'


라는 질문을 수십 년 해왔어도  차 없이 롱샹성당을 가는 것만큼 어려운 기행은 없었다. 

기차에서 내려 걷기 시작했을 때부터 매서운 프랑스 남동부의 바람을 맞으며 신랑은 콧등과 볼이 발개졌다. 


낯선 도시에 정차하는 기차는 하루에 몇 대 없었다. 오후에 도착하는 기차는 돌아올 방법이 없었으므로, 우리는 새벽에 떠나는 기차를 타야 했다. 기차 2번을 갈아타고, 내린 역에서부터 롱샹까지 시골길, 오솔길, 논밭길, 동네길을 지나 언덕을 오르고 올라있던 롱샹을 마주한 순간을 잊을 수 없었다. 

29세 여름에 건축대학원 다닐 때 한번 와보았고, 20년 후 겨울에는 신랑과 함께였다. 


사실 스위스에서 넘어가는 것이 더 가까운 작은 마을 롱샹. 언덕 위에 자리 잡은 르 코르뷔지에의 롱샹 성당은 멀리서 보면 그저 독특한 형태의 콘크리트 덩어리로 보인다. 그러나 언덕을 한 걸음 한 걸음 올라갈수록, 그 형태가 차츰 내 눈앞에 실체를 드러낸다. 이 건물은 마치 자연과 어우러진 하나의 거대한 조각처럼, 그 자리에서 오랜 세월 자라난 것 같은 생명력이 느껴진다. 마치 성당 자체가 이곳의 일부분으로서 존재해야 한다는 듯한 필연성을 띠고 있다.


롱샹성당 가는 길

"와! 이게 뭐꼬? 콘크리트 덩어리네!"

건축의 'ㄱ'자도 모르는 신랑도 콘크리트 덩어리라는 의미는 알고 있었나 보다. 두툼한 콘크리트 벽과 비대칭적인 지붕은 우리를 압도했다.  코르뷔지에는 이 성당을 설계하면서 기능성에서 벗어나 종교적 상징성과 순수한 감각에 몰두한 듯했다. 두꺼운 벽은 마치 요새 같았고, 그 안에 담긴 어둠과 빛의 대비는 발걸음을 잠시 멈추게 했다. 다른 건축물에서는 쉽게 찾아볼 수 없는 무언가, 그 경건함과 압도적인 느낌이었다.


무엇을 저렇게 열심히 빌고 있었을까?
빛덩어리와 숭고함

내부로 들어서는 순간, 콘크리트 벽 너머로 들어오는 빛들은 두꺼운 콘크리트 벽과 마주치며 빛덩어리로 보였다. 그 빛은 성당의 벽에 뚫린 작은 창들을 통해 들어와 성당 전체를 고요하게 비추었고, 이 빛은 공간을 가득 채우며, 롱샹 성당의 진정한 아름다움을 드러냈다. 코르뷔지에는 이 빛의 배치를 통해 공간에 살아 숨 쉬는 신성함을 구현하려 했던 것이다. 단순한 조명이나 장식이 아닌, 빛 자체가 하나의 건축 요소로 존재하며 공간을 변화시키고, 감동을 이끌어냈다.


성당 내부에는 가구나 장식물은 거의 없지만, 그 공간은 빈틈없이 채워져 있다. 공간을 최소한의 요소로 채우면서도 그 어떤 장소보다도 가득 차 있는 감각을 주었다. 벤치에 앉아 고개를 들어 높은 천장을 바라보면, 묵직한 고요와 평화가 존재했으며 이곳은 누구나 자신의 내면을 깊이 들여다볼 수 있는 장소로서 마치 시간이 멈춘 듯한 느낌을 주었다.


외부의 자연과 내부의 빛, 그리고 건축 그 자체가 끊임없이 대화하는 이 공간에서 나는 그저 관객이 아닌 참여자로서 존재했다. 인생 2회째 방문의 이유는 있었다. 


이전 08화 알바 알토의 집과 사무실: 삶과 건축이 만나는 공간
브런치는 최신 브라우저에 최적화 되어있습니다. IE chrome safari