바젤에서 기차로 30분. 스위스, 독일, 프랑스의 삼국 접경지대에 자리 잡은 바일 암 라인에 도착했다. 20세기 가구 디자인의 혁신을 이끈 비트라가, 세계적 건축가들과 협업하여 만들어낸 캠퍼스를 찾아서였다.
캠퍼스에 들어서자마자 보이는 프랭크 게리의 비트라 디자인 뮤지엄은 1989년 완공된 게리의 유럽 첫 작품이다. 기하학적 매스들이 해체되고 재조합되는 과정이 그대로 드러나는 입면은, 게리의 건축 언어가 완성되기 전 실험적 과도기를 보여주는 듯했다. 내부에는 찰스와 레이 임스, 장 프루베, 알바 알토 등 20세기 모더니즘을 대표하는 디자이너들의 작품이 전시되어 있었다. 특히 임스 부부가 1956년 디자인한 라운지체어의 프로토타입 시리즈는, 현대 가구 디자인의 진화 과정을 한눈에 보여주는 자료이다.
20년 전 건축기행으로 찾아갔던 자하 하디드의 소방서는 건축이 건축가의 포트폴리오도 아닌, 사용자를 위한 기능적인 공간도 아닌, 사용자를 필요로 하는 요청자를 위한 건물이라는 것을 새삼 알게 되었다. 갑자스러운 소방 출동을 위해 기울어진 벽체들은 약간의 불안감과 긴장감을 만들어내었다. 24시간 출동대기 상태를 유지 하기 위한, 문 없는 룸들, 2층부터 1층까지 내려오는 폴대, 샤워실 역시 언제든 출동 가능한 상태로의 공간 디자인이었다. 하디드의 역동적인 공간 속에서 가구들은 마치 조각품처럼 보였다. 특히 공간의 기울어진 벽체와 대비되는 수평적인 가구 라인은 독특한 시각적 경험을 제공했다.
안도 타다오의 콘퍼런스 파빌리온은 노출 콘크리트와 자연광의 조화이다. 15cm 두께의 콘크리트 벽체가 만들어내는 기하학적 공간에서, 비트라의 클래식 라인 의자들은 더욱 잘 어울렸다.
헤르조그 & 드 뫼롱의 비트라 하우스는 전형적인 박공지붕 형태의 매스들을 수직으로 쌓아 올린 독특한 구성이 특징이다. 각 층의 공간은 실제 주거 공간처럼 꾸며져 있어, 비트라의 가구들을 생활 속에서 경험할 수 있다. 조지 넬슨의 선버스트 클락이 걸린 벽 아래 놓인 찰스 임스의 알루미늄 그룹 체어는, 시대를 초월한 디자인의 가치를 보여주는 듯했다.
비트라하우스(2010년)에 이어, 쇼데포는 비트라 캠퍼스에 헤어조그 & 드 뫼롱이 설계한 두 번째 건물이다. 간결한 형태, 강렬한 색채, 단순한 동선은 방문객에게 가장 심플한 비트라 역사가 담긴 의자 보관 창고를 돌아다니게 하였다. 외부에서 보면, 쇼데포는 손으로 깨진 벽돌로 만들어진 단일체 형태를 띠고, 창이 전혀 없는 파사드와 단순한 박공지붕이 특징이다. 쇼데포는 간결하고 품위 있는 외관으로 내부에 보관된 오브제들 보호한다.
비트라 캠퍼스는 현대건축의 실험장이자 동시에 가구 디자인의 살아있는 박물관이다. 각기 다른 건축 언어를 구사하는 건축가들의 공간 속에서, 비트라의 가구들은 시대와 장소를 초월한 보편적 아름다움을 보여주고 있다. 산업시설을 넘어 하나의 문화적 장소로 진화한 비트라 캠퍼스는, 디자인이 어떻게 우리 삶의 가치를 높일 수 있는지를 증명하고 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