빛덩어리 그리고 숭고함
"이러다가 우리 얼어 죽는 거 아냐?"
렌터카 없이 유럽 건축기행을 하는 것은 결코 만만한 일이 아니었다.
'대체 왜 의미 있고 철학이 담긴 건축물은 이렇게 가기 어려운 장소에 있는 걸까?'
라는 질문을 수십 년 해왔어도 차 없이 롱샹성당을 가는 것만큼 어려운 기행은 없었다.
기차에서 내려 걷기 시작했을 때부터 매서운 프랑스 남동부의 바람을 맞으며 신랑은 콧등과 볼이 발개졌다.
낯선 도시에 정차하는 기차는 하루에 몇 대 없었다. 오후에 도착하는 기차는 돌아올 방법이 없었으므로, 우리는 새벽에 떠나는 기차를 타야 했다. 기차 2번을 갈아타고, 내린 역에서부터 롱샹까지 시골길, 오솔길, 논밭길, 동네길을 지나 언덕을 오르고 올라있던 롱샹을 마주한 순간을 잊을 수 없었다.
29세 여름에 건축대학원 다닐 때 한번 와보았고, 20년 후 겨울에는 신랑과 함께였다.
사실 스위스에서 넘어가는 것이 더 가까운 작은 마을 롱샹. 언덕 위에 자리 잡은 르 코르뷔지에의 롱샹 성당은 멀리서 보면 그저 독특한 형태의 콘크리트 덩어리로 보인다. 그러나 언덕을 한 걸음 한 걸음 올라갈수록, 그 형태가 차츰 내 눈앞에 실체를 드러낸다. 이 건물은 마치 자연과 어우러진 하나의 거대한 조각처럼, 그 자리에서 오랜 세월 자라난 것 같은 생명력이 느껴진다. 마치 성당 자체가 이곳의 일부분으로서 존재해야 한다는 듯한 필연성을 띠고 있다.
"와! 이게 뭐꼬? 콘크리트 덩어리네!"
건축의 'ㄱ'자도 모르는 신랑도 콘크리트 덩어리라는 의미는 알고 있었나 보다. 두툼한 콘크리트 벽과 비대칭적인 지붕은 우리를 압도했다. 코르뷔지에는 이 성당을 설계하면서 기능성에서 벗어나 종교적 상징성과 순수한 감각에 몰두한 듯했다. 두꺼운 벽은 마치 요새 같았고, 그 안에 담긴 어둠과 빛의 대비는 발걸음을 잠시 멈추게 했다. 다른 건축물에서는 쉽게 찾아볼 수 없는 무언가, 그 경건함과 압도적인 느낌이었다.
내부로 들어서는 순간, 콘크리트 벽 너머로 들어오는 빛들은 두꺼운 콘크리트 벽과 마주치며 빛덩어리로 보였다. 그 빛은 성당의 벽에 뚫린 작은 창들을 통해 들어와 성당 전체를 고요하게 비추었고, 이 빛은 공간을 가득 채우며, 롱샹 성당의 진정한 아름다움을 드러냈다. 코르뷔지에는 이 빛의 배치를 통해 공간에 살아 숨 쉬는 신성함을 구현하려 했던 것이다. 단순한 조명이나 장식이 아닌, 빛 자체가 하나의 건축 요소로 존재하며 공간을 변화시키고, 감동을 이끌어냈다.
성당 내부에는 가구나 장식물은 거의 없지만, 그 공간은 빈틈없이 채워져 있다. 공간을 최소한의 요소로 채우면서도 그 어떤 장소보다도 가득 차 있는 감각을 주었다. 벤치에 앉아 고개를 들어 높은 천장을 바라보면, 묵직한 고요와 평화가 존재했으며 이곳은 누구나 자신의 내면을 깊이 들여다볼 수 있는 장소로서 마치 시간이 멈춘 듯한 느낌을 주었다.
외부의 자연과 내부의 빛, 그리고 건축 그 자체가 끊임없이 대화하는 이 공간에서 나는 그저 관객이 아닌 참여자로서 존재했다. 인생 2회째 방문의 이유는 있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