엄마, 디자인해서 미안해

by 오서리

엄마, 나예요. 막내딸.


왜 ‘엄마’라는 단어만 불러도 이리 마음이 저리고 괜스레 눈물이 나는지, 나 같이 고집스럽게 평생 엄마 속만 썩이는 딸은 전부 엄마한테 미안한 마음뿐인가 봐.


대학교 내내 무섭도록 엄한 아빠 몰래 맨날 친구들이랑 놀다가 늦게 들어오고, 그런 나를 어떻게든 감싸주려고 했던 엄마는 나 때문에 평생 마음 졸이며 살았었지? 대학교 4학년 때 잘 다니던 학과와 전혀 상관없는 인테리어 디자인하겠다는 나의 말에 아빠는 집안이 떠나갈 정도로 반대를 하셨고, 엄마도 계집애가 그냥 시집이나 가지, 지금 와서 무슨 디자인 공부를 다시 하겠다는 거냐며 마음 졸이며 반대하셨죠.


피는 못 속이나 봐. 외할머니가 유명하셨던 지금 말로는 패션 디자이너였고 그때는 명동에서 의상실을 운영하셨고, 엄마를 비롯한 이모 9명과 삼촌 2명 중 6명이 미대나 디자인 전공을 하셨으니, 디자인 DNA는 분명 내 몸속에 있었을 거야.


대학 졸업하고 바로 들어간 인테리어 디자인 회사에 나는 디자인실에 합격을 했었지. 그런데 무슨 오기였는지, 나는 디자인 전공을 하지 않았으니, 다른 전공자들에 비해 더 빨리 많은 실무적 지식을 배우고 싶어서 시공현장기사로 지원을 했었어. 그때도 엄마는 많이 속상했었지. 그냥 디자인실 들어가서 얌전히 앉아서 예쁘게 도면 그리고 아름답게 디자인하는 거인 줄 알았는데, 계집아이가 무슨 그런 험한 현장을 가서 시공기사를 하냐고.


첫 회사 5년 동안 양평, 제주도 등 지방 현장 가면 거의 1년을 있다가 올라오곤 했었지. 올라올 때마다 점점 외모도 변해가고 말도 거칠어지고, 투박 해지는 나를 바라보며 엄마는 어떤 생각을 했을까? 내가 1년을 있었던 제주도 호텔 현장이 끝나고, 나는 엄마 아빠를 그 호텔 게스트로 초대해서 2박 3일을 머무르며, 내가 만든 현장에서 마음 편하게 즐기시길 바랐었어. 내가 해줄 수 있는 엄마 아빠에게의 최고의 선물이라 생각했지. 그런데 엄마는 호텔에서 한 발자국도 안 나가시고 밖에 싼 음식들만 드셨지. 혹시라도 그 모든 돈을 내가 지불할까 봐. 내 딸이 호텔을 시공하느라 1년 내내 얼마나 힘들고 고되었을까를 생각하며 엄마 혼자 눈물짓는 모습을 보면서, 다시는 내가 만든 공간에 엄마를 모시지 않기로 그때 스스로 결정을 했었어.


31살 순진했던 나는 동료들과 함께 작은 인테리어 디자인 회사를 시작했지. 참 겁도 없었어. 돈도, 영업능력도 아무것도 없는 나와 내 친구들은 대체 무슨 배짱으로 그리 가상한 용기를 내었는지 옆에서 지켜보는 엄마는 또 얼마나 마음을 졸이셨을까. 사업이라는 게 좋기만 한 건 아니더라고. 한참을 재밌게 일할 때도 있었지만, 동업자들과 사이가 안 좋을 때도 있었고, 고객과 마찰이 있어서 결국은 법정 소송까지 가서 우리 집으로 송장이 날아오던 날 엄마의 표정을 잊을 수가 없었어. 평생을 법 없이도 살아오시던 분이 막내딸 앞으로 날아온 법원 송장을 엄마는 감당할 수가 없었을 거야. 1년에 걸친 법정 싸움으로 결국 우리가 승소를 했지만, 1년 내내 엄마는 이제 그만 소송 그만하고 그 돈 엄마가 주겠다고 했었지. 나는 아무 잘못 없다고 했었고, 엄마도 그걸 안다고 하셨지만 엄마는 얼마나 두렵고 무서웠을까 생각하면 내가 뭘 그리 부하가 치미는 소송을 주변 사람들에게 상처를 주면서 했었는지 나도 잘 모르겠어.


마흔이 되는 나이에 결혼은 안 하고 느닷없이 다니던 회사도 때려치우고 미국 가서 다시 공부하겠다는 말을 듣고 엄마는 또다시 몇 날 며칠을 밤새며 속상해하고 눈물 흘렸던 거 알고 있어요. 아마 그때 엄마는 나의 막내딸이 한국이 너무 싫어서 미국으로 가서는 다시는 안 오리라는 확신 때문에 더욱 마음이 무너졌을 거라 생각해요.


고생 많이 했어요, 엄마. 아니, 우리 참 고생 많이 했다. 내가 디자인을 시작할 때는 ‘디자인’이 이렇게 거칠고 어렵고 마음을 졸이는 직업인 줄 몰랐어. 내 몸과 마음이 망가질 때 엄마도 옆에서 함께 무너지고 있었던 거 알고 있어요. 그렇다고 수억 원 돈이라도 벌었으면 억울하지나 않았겠지만, 돈이라는 게 참 웃기는 거라서 아무리 열심히 일을 해도 비례적으로 내 옆에 달라붙어서 따라오는 게 아니더라고. 모든 프로젝트를 할 때 그 일이 크건 작건 상관없이 ‘디자인’하는 사람들은 늘 밤을 새지. 멋있으려고 밤새는 건 아니었어요. 정말 정말 정말 할 일이 많았어. 그 어느 회사를 가건, 갑 회사를 가건 을 회사에서 일을 받아서 하건, 디자이너의 삶은 늘 월화수목금금금 하루 24시간 모자라게 일에만 파묻혀서 사는 삶이었어요.


내가 결혼을 늦게 한 것도 사실은 ‘디자인’이라는 직종 때문이었다고 나는 생각해요. 너무 바빠서 밥 먹을 시간도 잠잘 시간도 없는데, 대체 남자를 어떻게 만나서 언제 결혼을 했겠어요. 늦은 결혼 때문에 아이가 안 생기는 나를 바라보며, 엄마는 그러셨죠. ‘네가 아이가 없는 게 내 잘못이다. 디자인 그만 시키고 일찍 결혼시켰으면 아이도 낳고 행복하게 살았을 텐데..’라고요.


엄마! 내가 24살부터 디자인을 시작했으니, 올해까지 나는 26년째 디자인에 몸을 담고 있네요. 일도 탈도 많았었죠.


미안해요, 엄마. 디자인해서…


지금은 조금은 휴식을 하고 있지만, 그래도 엄마! 나는 디자인할 때가 가장 재미있고, 내가 살아있는 걸 느껴요. 그래서 더욱 미안해요. 내가 디자인해서 돈을 수억 원을 벌고 유명인사가 되어서 세계적인 거장이 되지는 못할 거 같아요. 그래도 그냥 내 길을 꿋꿋이 걸어갈게요. 그냥 이젠 엄마는 마음 내려놓으시고, 내 옆에 계속 계셔주세요.


사랑해요, 엄마.