가격보다 오래 남는 외식의 품질에 대하여
가격은 잊히지만, 품질은 남는다.
책장을 넘기다 문득 마주친 이 문장은 오랫동안 머릿속을 맴돌았다. 정확히 어떤 품질을 말하는 걸까. 오래가는 맛? 고급 식자재? 눈에 보이는 정성? 하지만 곧 그 질문은 바뀌었다. “사람들이 가격을 통해 진짜 기억하는 건 뭘까?”라는 질문으로 말이다.
얼마 전 누군가와 나눈 대화가 떠올랐다.
“그 식당, 비싸지 않았어?”
“응, 그런데 또 가고 싶더라. 그냥... 기분이 좋았어.”
그 한마디가 많은 것을 설명했다. 어떤 경험은, 그 안에 담긴 정서나 만족감이 가격을 잊게 만든다는 것을, 사람은 결국 마음이 동했을 때, 흔쾌히 값을 지불한다.
가격은 숫자가 아니라 감정이라는 생각. 그 시작이, 바로 외식업에서의 가치 설정에 대한 본질적인 갈증이다. 음식은 태생적으로 접근성이 높다. 일상 속에서 매일 접하는 영역이고, 그만큼 익숙하며, 비교 대상도 많다. 비슷한 메뉴, 비슷한 구조, 비슷한 입지. 이런 특성은 소비자에게 ‘이 정도면 이 가격이어야지’라는 감각을 자연스럽게 만들고, 그 감각은 흔히 말하는 ‘원가 중심의 사고방식’에서 비롯된다. 여전히 많은 소비자들이 가격이 원자재, 생산, 배송 같은 눈에 보이는 요소를 기준으로 정해진다고 느낀다. 하지만 외식업처럼 음식 너머의 경험, 공간, 시간, 태도까지 포괄하는 영역에서는 그 공식이 항상 들어맞지는 않는 것 같다.
흥미로운 건, 가격을 정당화하는 데 있어 실제 원가보다 훨씬 더 크게 작용하는 것이 ‘감정’이라는 점이다. 예컨대 장례식장에서 사용하는 물품이나 수의 같은 것들은 ‘좋은 걸로 해드려야 할 것 같아서’라는 이유로 고가가 선택된다. 누구도 마지막을 싸게 보내고 싶지 않다는 마음, 거기에서 비롯된 선택. 결혼식과 같은 큰 이벤트도 마찬가지다. 이처럼 기능보다 마음이 앞서는 지점에서 가격은 감정의 설계로 작동한다.
외식업 역시 다르지 않다. 음식이라는 실물만으로는 설명되지 않는 많은 요소들이, 가격이라는 하나의 숫자 안에 녹아든다. 조도, 직원의 말투, 매장에 흐르는 음악, 예약의 편의성, 메뉴판의 질감까지. 이 모든 것이 고객의 인식 안에서는 ‘지불 의사’를 형성하는 요인이다. 그러므로 가격은 숫자나 공식의 결과값 이라기보다 브랜드가 고객의 뇌리에 새기는 감정의 합이 된다.
그런데 우리는 종종 그 감정을 ‘싸다’ 혹은 ‘비싸다’라는 말로만 환원해 버린다. 한국에서는 외식 가격에 대한 사회적 감도가 유독 높다. 뉴스에서는 가격을 기준으로 ‘착한 업소’를 선전하고, 음식 값이 오르면 곧장 비판 여론이 따라붙는다. 외식업이 다른 업종보다 더 높은 윤리 기준을 요구받는 듯한 장면들이 반복된다. '먹는 것'이라는 부분에서는 일부 이해하지만, 놀이공원에서는 유료 패스를, 항공에서는 좌석 업그레이드를 이미 선택하면서도 외식에서는 줄을 서지 않고 들어가는 시스템에 거부감을 느끼는 사람들도 있다. 공정함, 그리고 평등에 대한 기대가 유독 강하게 작동하는 영역이다.
이처럼 외식업은 단순한 상품 판매의 영역을 넘어, 사회적 인식, 감정적 정당성, 가격의 설계 방식까지 훨씬 더 복합적인 질문을 던져야 하는 분야다. 그렇기에, 우리는 음식값을 단지 원가나 마진으로 계산해서는 안 된다. 사람들이 진짜 지불하는 건 ‘기분’이고, ‘충분히 납득되는 이유’이기 때문이다. 카페 한 잔의 커피가 5-6천 원을 넘어가는 시대다. 소비자는 더 이상 커피의 원두 품질만을 따지지 않는다. 그들은 공간, 분위기, 시간, 조용한 여유, 배려받는 경험까지 포함해서 지불할 ‘가치’를 스스로 재단하고 있는 것이다.
외식업에서 가격은 결국 경험의 언어가 되어야 한다. 조금 더 고급스러운 포장, 깔끔한 설명문, 명확한 맥락. 같은 품질의 음식도 어떻게 보여주느냐에 따라 전혀 다르게 받아들여진다. 이건 과장이 아니라 기획이다. ‘속이는 일’이 아니라, ‘제대로 설명하는 일’이다.
나는 외식업에서 결국 남는 품질이란 ‘좋은 기분’이라고 믿는다. 맛있다, 친절하다, 분위기 좋다 같은 요소들이 하나로 엮여 마지막에 남는 ‘깔끔한 만족감’. 그리고 “또 와야겠다”, “누구 소개해주고 싶다”는 마음. 그 감정을 남기는 브랜드가 결국 살아남는다.
외식업은 단기적 레버리지가 아닌, 관계 기반의 성장 산업이다. 팬을 만들고, 다시 오게 하고, 한 사람을 통해 열 명을 불러들이는 구조다. 나는 그래서 외식업이 복리의 구조를 닮았다고 생각한다.
얼마를 남겼는가 보다, 얼마나 만족시켰는가. 그 기준으로 가격을 다시 생각해야 한다.
“외식업의 가격은 계산이 아니라 기획이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