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살아남는 외식업은 무엇이 다를까?

지속가능성과 선도성에 대한 생각

by 김대영

“경기가 안 좋아서요.”

누구나 한 번쯤 들어봤을 말이다.

많은 말들이 그렇듯, 이 말도 사실이다.

하지만 그 말로는 다 설명되지 않는다. 지금 우리가 마주한 현실은 단순한 경기침체가 아니다.

외식업이 가진 구조, 그리고 그 구조에 기댄 생존 방식의 오래된 한계가 지금에 와서야 드러난 것이다.


그렇다면 질문은 이렇게 바뀌어야 한다.

이 구조 속에서도 살아남는 곳은, 도대체 무엇이 다른가? 누구보다 열심히 했고, 맛도 있었고, 친절도 지켰던 수많은 식당들이 사라지고 있는 가운데 유독 어떤 식당은 여전히 줄을 세운다.


그 차이는 어디서 오는 걸까.


가격이 아닌 ‘값어치’의 시대


요즘 외식업계를 둘러보면,

‘프리미엄 가성비’라는 말이 유난히 자주 들린다.

말만 보면 모순처럼 보인다. 프리미엄인데 가성비?

비싸면서 싸다고? 하지만 지금의 소비자들은 숫자보다 느낌으로 판단한다.


“비싸지만, 이 정도면 괜찮지.”


그 말속에 담긴 건 가격이 아니라, 가치의 납득이다. 최근 애슐리에 들렀을 때, 나는 잠시 멈칫했다.

사람이 많은 건 익히 알고 있었지만, 그 안에 앉아 있는 얼굴들이 예상 밖이었다. 20대 커플도 있었고, 아이 손을 잡은 가족도 있었지만 그만큼이나 50~60대 어르신들이 삼삼오오 식사를 하고 있었다.


뷔페는 젊은 층의 전유물이라는 나의 인식이,

그 순간 단숨에 깨졌다.


가치는 세대를 가리지 않는다. 만족스러운 경험이라면, 사람은 나이를 불문하고 기꺼이 지갑을 연다.



그와는 또 다른 결의 사례도 있다. ‘모던샤브하우스’라는 샤브샤브 매장. 한 사람 기준, 7만 원에서 8만 원 사이. 적지 않은 가격이다. 누군가에겐 망설임의 기준이 될 수도 있는 금액.


하지만 그곳은 고기와 채소, 그리고 토핑까지 전부 무한으로 제공한다. 그 말만 들으면 흔한 ‘양 많은 집’ 같지만, 실상은 다르다. 이 집의 무기는 양이 아니라 질이다. 고기의 상태가 다르고, 채소의 싱그러움이 다르고,

그걸 내는 사람들의 태도도 조금은 다르다. 설명하지 않아도 알 수 있다. 이 집은, 손님이 낸 돈보다 먼저 마음을 낸 집이다.


비싸지만, 비싼 이유가 명확하다. 그리고 그 이유는, 식사하는 내내 꾸준히 납득된다. ‘이 가격이면 충분하지’라는 생각이 자연스럽게 든다. 누군가 강요한 게 아니라, 식사 자체가 그렇게 느끼게 만들었기 때문이다.


이 시대의 ‘프리미엄 가성비’란 결국 이런 거다.

싼 게 아니라, 후회 없는 한 끼. 한 번쯤 사치해도 괜찮다고 느껴지는, 그런 감정적인 납득. 계산서를 보고도 마음이 깔끔할 수 있다면, 그게 진짜 가성비 아닐까. 판단은 숫자가 아니라, 경험이 만든다.


클래식의 귀환 – 오래된 것이 견디는 이유


유행은 늘 새롭다. 그리고 새롭다는 이유만으로 사람들을 잠깐은 끌어당긴다. 하지만 오래 가진 유행은 드물다. 반짝이다 사라지고, 그 자리에 또 다른 유행이 들어선다.


그런데,

그런 와중에도 묵묵히 오래 살아남는 브랜드들이 있다. 그리고 그중에서도 아웃백(이웃백스테이크하우스) 를 떠올린다. 한때는 위기라고 생각하기도 했다. 매장 수가 줄고, ‘이젠 끝났다’는 말까지 나왔던 브랜드. 하지만 지금, 아웃백은 다시 웨이팅이 생기는 브랜드가 됐다.


그 이유는 뭘까. 나는 메뉴라고 생각한다. 투움바 파스타, 부시맨 브레드, 백립… 어떤 날엔 저 중 하나가 갑자기 떠올라 아웃백을 가게 된다. 이 브랜드는 맛집이기 전에 기억의 집합이다. ‘요즘 브랜드’보다 강한, ‘예전부터 그 자리에 있었던 브랜드’가 가진 안정감. 그게 지금의 아웃백을 다시 끌어올린 힘 아닐까.


비슷한 흐름은 지금 ‘노포’에서도 발견된다. 인스타그램에서 ‘노포맛집’이라는 해시태그를 검색하면 6만 개가 넘는다. 실제로 노포를 찾아가 보면 의외로 젊은 사람들로 가득하다. 20대, 30대. 그들은 왜 오래된 가게를 찾아가는 걸까?


콘텐츠의 영향도 크다. 성시경의 ‘먹을 텐데’, 유튜버 풍자의 ‘또간집’ 같은 채널들. 거기서 소개된 집들은 방송 다음 날부터 줄이 길어진다.


하지만 단지 유명인이 소개해서만은 아니다. 그들은 실패하지 않는 한 끼를 찾는다. 불황일수록, 돈을 아낄수록 “적어도 이 돈이면 괜찮은 식사였어야 해”라는 마음이 커진다.


그런 기준을 만족시켜 주는 집. 그게 노포다.



오래된 음식점이라고 다 좋은 건 아니다. 하지만 건물주도 아닌 개인이, 치열한 외식업에서 10년, 20년, 30년을 버틴다는 건 그 자체가 이미 하나의 증거다.


오래 살아남은 가게엔, 반드시 이유가 있다. 그리고 그 이유는, 브랜딩이 아니라 태도와 완성도에 있을 가능성이 높다. 최근 몇 년 동안, 외식업의 유행은 너무 빠르게 바뀌었다. 그리고 너무 비슷하게 쏠렸다.


그 결과, 사람들은 지쳤다. 너무 새로워서 피곤한, 그런 시대. 그런 흐름 속에서 등장한 반작용. 우리는 그것을 ‘역트렌드’라고 부른다. 불편해도 괜찮은, 다듬어지지 않아 더 정감 가는 공간. 그 안에서의 식사가 지금은 더 특별하게 느껴지기도 한다.


산업의 성숙은 다양성이다. 새로운 것이 무조건 좋지도, 오래된 것이 무조건 낫지도 않다. 하지만 중요한 건 이 둘이 공존해야 한다는 사실이다. 새로움은 새로움대로, 오래된 것은 오래된 대로 각자의 자리를 가질 수 있는 외식 시장. 나는 그게 우리가 가야 할 방향이라고 생각한다.



공간의 힘 – 감각이 아니라, 접점의 설계


한때는 외식업계에 이런 말이 유행처럼 퍼졌다.

“요즘은 맛보다 공간이지.”

어느 정도는 맞는 말이었다. 실제로 그 시기, 많은 식당들이 음식보다는 인테리어, 맛보다는 사진이 잘 나오는 구성으로 손님을 모았다. ‘인스타그래머블’이라는 단어가 맛집의 조건이 되던 시절이었다. 화려한 인테리어, 넓은 공간, 이쁘고 색다른 분위기 말이다.


하지만 자극은 오래가지 않는다. 그 화려한 비주얼이 사람들의 피로가 되기까지 오래 걸리지 않았다. 실제로 맛집을 운영하는 사장님들 말에 따르면 비주얼 위주의 모객력은 보통 2~3년이 한계라고 한다. 비슷한 구조와 콘셉트를 가진 곳들이 금세 따라 생겨나고, 결국엔 차별성도, 지속성도 잃는다. 공간만으로 버티기는 어렵다.


그럼에도 여전히 사람들은 공간을 찾는다.

그건 왜일까? 공간이 경쟁력이기 때문이 아니다. 공간은 고객과 브랜드가 만나는 접점이기 때문이다. 외식업은 결국 사람을 만나는 산업이다. 맛도, 가격도, 서비스도 모두 그 ‘만남’의 순간에서 결정된다. 지금은 그 접점의 일부로 공간이 있는 것뿐이다. 그 공간이 어떤 감각을 주는가, 그 감각이 브랜드를 어떻게 느끼게 만드는가, 그 경험이 한 끼 식사를 어떻게 기억하게 만드는가,


결국 공간은 가치를 전달하는 수단이다.

커피 맛이 특별하다기보다는 그 공간 안에서 커피를 마시는 장면이 특별하다. 디저트가 유난히 독창적이라기보다는 그 디저트를 놓고 있는 테이블의 질감과 온기가 기억에 남는다.


요즘 사람들은 그런 장면을 산다. ‘이 브랜드, 이런 결이구나.’ 그건 입으로 먹는 게 아니라, 공간 안에서 느끼는 감각이다. 그래서 이제는 공간을 꾸미는 게 아니라, 경험을 기획해야 한다. 그리고 그 경험은, 고객과 만나는 ‘접점’이라는 개념으로 생각해야 한다.



과거에는 타깃을 세대별로 나눴다. “이건 20대 여성 취향”, “이건 40대 직장인 타깃.” 하지만 지금은 그 기준이 흐려졌다. 20대도 조용한 클래식 카페를 좋아하고,

60대도 글로우서울 같은 공간을 편하게 즐긴다.


지금의 기준은 세대가 아니라 취향이다. 라이프스타일, 감도, 정서. 취향의 무늬에 닿는 경험을 제공할 수 있는가. 그게 지금의 외식 공간이 가진 진짜 경쟁력이다.


결국 공간은 고객의 인식 위에 브랜드의 무늬를 새기는 도구다. 예뻐서가 아니라, 이유가 있어서 기억되는 공간. 우리가 고민해야 할 건 ‘어떤 공간을 만들까’가 아니라, ‘어떤 접점을 어떻게 설계할까’다.



선도와 유행 – 따라 하기의 함정, 무늬를 읽는 힘


외식업은 늘 빠르다. 트렌드가 생기면 곧장 반응한다. 어디서 줄이 선다 하면, 며칠 안에 그 유사 브랜드가 생기고, 어디선가 누군가 똑같은 레시피를 따라 하고,

다음 주면 프랜차이즈 설명회가 열린다.


문제는, 그렇게 생겨난 가게들 대부분이 그다지 오래가지 않는다는 것이다.


왜 그럴까?


‘따라 하기’는 빠르다. 하지만 그만큼 얕다. 표면을 베끼기 쉬운 만큼, 그 안에 담긴 이유와 맥락은 따라오기 어렵기 때문이다. 탕후루, 소금빵, 마카롱, 흑임자 디저트… 한때는 모두가 줄을 섰고, 지금은 어디 갔는지 모르게 사라졌다.


그 흐름엔 일정한 공식이 있다.

1. 미디어와 SNS에 ‘노출’된다

2. 소비가 갑자기 ‘폭증’한다

3. 모두가 ‘따라 만든다’

4. 경쟁이 심해진다

5. 광고비, 마케팅 비용이 늘어난다

6. 수익이 줄고, 결국 구조가 무너진다


이게 유행의 구조다. 빠르게 뜨고, 빠르게 소모된다. 그리고 브랜드는 남지 않는다.


그에 반해 선도는 다르다. 시작이 느리다. 하지만 흐름은 단단하다.


1. 사람들의 욕망을 ‘관찰’한다

2. 그에 맞는 경험을 ‘기획’한다

3. 작게 시작하지만 ‘반응이 생긴다’

4. 입소문이 생기고, 콘텐츠가 따라온다

5. 브랜드가 ‘기억’된다

6. 경쟁이 생겨도, 쉽게 따라 할 수 없다


유행은 결과를 따라가지만, 선도는 과정을 설계한다.


나는 이 대목에서 철학자 최진석의 말을 떠올린다.

“인문이란, 인간이 남긴 무늬를 읽는 일이다.”

무늬란, 반복되는 선택의 흐름이다. 사람들이 요즘 뭘 먹고, 어디에 줄을 서고, 무엇을 피하고, 어떤 걸 끝까지 고집하는지를 관찰하는 것. 그게 무늬를 읽는 일이다.


그리고 그 무늬를 읽은 사람만이, 선도할 수 있다.



외식업도 마찬가지다. 잘 되는 브랜드는 그저 ‘잘 만든’ 브랜드가 아니다. 그들은 지금 사람들의 무늬를 읽은 사람들이다. 그래서 나는 이렇게 정리하고 싶다. 유행은 따라 하다 지치지만, 선도는 꾸준한 관찰의 결과라고.


유행은 잊히지만, 선도는 결국 기억에 남는다.



우리는 무엇을 경험시키고 싶은가



외식업은 결국, 한 끼를 설계하는 일이다. 그 한 끼를 통해 사람에게 무엇을 남길 것인가. 그 질문이, 지금 이 업을 ‘직업’으로 대하는 사람에게는 가장 중요한 고민이 아닐까 생각한다.


지금까지 우리는, 프리미엄 가성비라는 이름으로 클래식이라는 기억의 언어로 공간이라는 접점의 전략으로

그리고 욕망의 무늬를 읽는 관찰의 태도로 ‘살아남는 외식업의 조건’을 이야기했다.


하지만 결국, 이 모든 요소들이 지향하는 건 단 하나다.

한 사람의 마음에 닿는 경험.

그 사람이 “여긴 또 오고 싶다”라고 느끼는 감정,

그 순간 “이 브랜드, 괜찮은데” 하고 마음을 여는 감각,

혹은 “내가 아끼는 사람과 여기 다시 오고 싶다”라고 생각하는 장면.


우리가 설계하는 건 맛뿐 아니라 기억이고, 공간뿐 아니라 감정이고, 비즈니스뿐 아니라 관계다.


외식업은, 단지 식탁을 차리는 일이 아니다. 사람과 사람 사이에 놓이는 경험을 만드는 일이다. 그렇다면,

이 질문으로 마무리하고 싶다.


우리는 지금, 어떤 경험을 설계하고 있는가? 그 경험은 누구에게, 어떤 가치를 남길 수 있을까?


불황은 반복될 것이고, 유행은 또 바뀔 것이다. 하지만 이 질문에 대답할 수 있는 브랜드라면, 그 안에 있는 사람이라면, 외식업이라는 직업을 오래 걸어갈 수 있으리라 믿는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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