외식업의 지속가능성을 위한 기획의 조건
"요즘 장사가 어떠세요?"
얼마 전 한 사장님과 나눈 대화가 떠올랐다. "글쎄, 예전처럼은 안 되네. 똑같이 하는데도 말이야." 그 한마디가 많은 것을 설명했다. '똑같이 하는데도' 안 된다는 것. 예전의 성공 공식이 더 이상 작동하지 않는다는 것.
과거 외식업의 문제는 비교적 명확했다. 얼마나 더 싸게, 얼마나 더 빠르게, 얼마나 더 맛있게. 좋은 입지에 안정적인 맛, 그리고 저렴한 가격. 이 공식을 충실히 따르는 것이 곧 성공이었다. 그때는 '효율'이 모든 문제의 답이었다.
하지만 지금은 다르다. 같은 메뉴, 같은 가격, 같은 서비스를 해도 고객의 반응이 제각각이다. 어떤 이는 만족하고, 어떤 이는 아쉬워한다. 소비자마다 서로 다른 '문제'를 갖고 있고, 그 문제에 대한 정답도 하나가 아니다. 그래서 지금 '기획'이 중요해진 것이다. 기획은 결국 문제를 정의하고 해결하는 방법이다. 문제 자체가 달라졌다는 말은, 해결하는 방식도 달라져야 한다는 뜻이다.
가끔 이런 생각이 든다. "한국 외식업이 산처럼 아주 높이 성장했는데, 그만큼 골짜기의 깊이도 만들어졌을까?" 지금 외식업계는 '높이'에만 집중되어 있는 것 같다. 새로운 메뉴, 화려한 인테리어, SNS에서 화제가 되는 컨셉. 벤치마킹이라는 이름으로 따라하기가 반복되고, 결국 자본과 마케팅력이 많은 브랜드가 유리한 구조가 되어가고 있다.
하지만 '깊이'는 다르다. 깊이는 구조적 안정성에 있다. 왜 이 메뉴를 만들었는지, 왜 이 공간을 이렇게 꾸몄는지, 왜 이 가격을 책정했는지에 대한 명확한 이유가 있는 것. 그리고 그 이유가 고객에게도, 직원에게도, 사장 본인에게도 납득되는 것. 외식업의 인력난, 젊은 인재들의 이탈, 낮은 수익성, 프랜차이즈 갈등. 이 모든 문제의 뿌리에는 '깊이의 부재'가 자리하고 있다. 왜 이 일을 해야 하는지, 어떤 가치를 만들어가는지에 대한 명확한 답이 없을 때, 사람들은 떠난다.
얼마 전 두 매장을 비교하며 든 생각이 있다. 같은 업종이지만 접근 방식이 완전히 달랐던 두 브랜드였다.
A매장의 사장은 흥미로운 말을 했다. "우리가 개발해야 하는 건 맛이 아니에요. 맛보다 중요한 게 서비스와 좋은 기분으로 그 공간을 꾸리는 것이죠." 맛이 중요하지 않다는 게 아니라, 외식업의 본질은 오는 손님들의 '기분'을 좋게 하는 것이라고 보는 관점이었다. 그들에게는 문제를 다시 정의하는 것이 자연스럽고 익숙해 보였다.
반면 B매장은 달랐다. 돈도 많이 투자했고, 좋은 경력의 직원들도 많았지만 결국 문을 닫아야 했다. 어떤 손님이 "짜다"라고 하면 싱겁게 간을 낮추고, 어떤 손님이 "싱겁다"라고 하면 간을 더했다. 어떤 이가 "분위기가 너무 차분하다"라고 하면 조금 더 힘을 주고. 본인들이 접점으로 할 타깃을 설정하지 않고, 그저 지적하는 사람들의 말에 따라 코어 없이 흔들리기만 했다. 나중엔 결국 "여기는 뭐 하는 곳일까?" 물음표만 가득한 공간이 되었다.
기획을 하는 이유는 더 많은 자원을 쓰자는 게 아니다. 가뜩이나 외식업은 자본이 많이 필요한 업종이다. 한정된 자원에서 우리의 목표를 더 수월하게 달성하자는 것, 그것이 외식업에 기획이 필요한 이유다.
'기획'이라는 단어가 '계획'이라는 의미가 강하다 보니, 자칫 아이디어까지만 내고 끝나는 역할로 오해받기 쉽다. 하지만 진짜 기획은 '완결'에 있다. 얼마 전 한 교육 과정을 기획하면서 느낀 것이다. 처음엔 '어떤 주제가 좋을까', '어떤 강사님이 적합할까'만 생각했다. 하지만 정작 중요한 건 그다음이었다. 교육을 받은 사람들이 실제로 어떤 인사이트를 얻었는지, 그것이 현장에서 어떻게 적용되고 있는지 확인하는 것.
외식 매장을 기획하는 것도 마찬가지다. 멋진 컨셉을 만들고, 화려한 메뉴를 개발하는 것까지는 시작일 뿐이다. 정작 중요한 건 그것이 실제로 고객에게 어떻게 받아들여지는지, 운영하는 사람들이 그 의도를 제대로 이해하고 실행할 수 있는지 지켜보고 조정하는 것이다. "내 역할은 계획이니까 여기까지만"이라는 태도가 아니라, 마지막까지 책임지는 자세. 특이하고 재미있는 컨셉으로 잠깐 반짝이고 끝나는 기획이 아니라, 완결을 내는 기획. 그것이 진짜 기획자의 태도다.
외식업은 접점산업이다. 기획은 이 접점을 통해 어떤 사람들과 관계를 맺어 가치를 전달할 것인가에 대한 고민이다. 제일 중요한 것은 질문을 바꾸는 것이다. "우리 공간에 어떤 걸 표현해야 할까?"가 아니라 "우리 공간에 오는 사람들은 어떤 공간에 머무르고 싶어 할까?" "우리는 어떤 메뉴를 개발해야 할까?"가 아니라 "우리 매장에 오는 고객들은 이 매장에서 어떤 메뉴를 경험해보고 싶어 할까?"
모든 생각의 시작을 우리가 아니라 고객이어야 한다. 하지만 이것이 생각보다 쉽지 않다. 고객 관점에서 시작한 기획과 공급자 관점의 기획은 시작이 같아도 전혀 다른 결과가 나온다. 우리는 흔히 고객 관점에서의 기획을 당연하고 쉽게 생각하지만, 실제로는 현장을 관찰하고 경험하고 이해하는 일정한 시간과 기간이 필요하다.
그렇기 때문에 훌륭한 기획은 결국 경험과 고민의 양이 많을 수밖에 없다.
좋은 기획은 결국 고객들이 원하는 바를 얼마나 이해하고 있는지에 대한 이해에서 나온다. 우리를 중심으로 꾸며낸 브랜딩은 화려하지만 매력이 없다. 하지만 고객의 니즈를 고민하고 고객 관점에서 생각한 결과물들은 화려하지 않아도 그 매력이 충분하다.
자극의 시대, 소비자들이 새로운 자극을 찾아 돌아다니는 것 같아 보이지만, 오랜 시간 비즈니스를 하는 사람들은 안다. 소비자는 결국 '나'를 향해 고민한 흔적이 있는 브랜드로 발걸음을 옮긴다는 것을.
좋은 기획은 '무엇을 할까'가 아니라 '왜 이걸 해야 하지?'라는 질문에서 출발한다. 그렇기에 맥락을 읽을 수 있는 사람이 오래간다. 요즘 교육 주제를 선정할 때 나만의 기준이 있다. 첫 번째는 지금 외식업의 환경을 읽는 것이다. 요즘 어떤 변화가 일어나고 있는지, 사장님들은 왜 힘들어하고 있고 소비자는 어떤 걸 원하고 있는지를 현장과 데이터를 통해 파악한다.
두 번째는 이 주제가 정말 필요한 것인가를 생각한다. "그냥 흥미롭다" 수준으론 부족하다. "왜 이걸 지금 다뤄야 하는가?"에 대한 명분이 분명해야 한다.
세 번째는 이것이 정말 누군가의 생각이나 행동을 바꿀 수 있을까를 가늠해 보는 것이다. 단순한 문제 해결보다는 스스로 다시 한번 시작할 수 있는 동기, 좋은 사례를 통해 인사이트를 얻는 시간이 될 수 있는지 말이다.
외식업은 환경 변화에 정말 예민한 산업이다. 그래서 지금처럼 불확실성이 큰 시대에는 기술을 잘 쓰는 사람보다 '지금 어떤 맥락 안에 있는가'를 읽을 줄 아는 사람이 가장 유연하고, 가장 오래간다.
결국 맥락을 읽는 사람이 오래간다. 그리고 그 맥락을 브랜드 안으로 끌어들여 고객과의 접점에서 의미 있는 경험으로 만들어내는 것. 그것이 지금 시대가 요구하는 기획이다.
진짜 중요한 건 사람들의 욕망을 읽어내는 감각이다. 그것을 브랜드로, 메뉴로, 경험으로 풀어낼 수 있는 기획자와 사장님들이 이 시장에 더 많아지는 것. 그것이 깊이를 만드는 일이다. 지금, 나는 어떤 기획을 하고 있는가?
나는 사실 늘 "왜 이 일을 하고 있을까?"를 스스로에게 묻는 편이다. 확실한 건, 지금 이 F&B 산업 안에서 누군가에게 도움이 되는 역할을 하고 있다는 점이다. 전에 한 강연에서 들었던 문장이 있다. "일을 하는 이유와 태도는 볼펜으로 쓰고, 목표는 연필로 써라." 그 말이 지금 내 마음을 잘 설명해 주는 것 같다. 목표는 언제든 바뀔 수 있어야 하고, 그래야 내가 지금 이 일을 왜 하고 있는지를 더 오래 지킬 수 있다.
기획은 깊이를 만드는 일이다. 그 깊이는 누군가의 삶을 조금이라도 바꿀 수 있을 때 비로소 의미를 갖는다. 화려한 아이디어가 아니라 지속가능한 가치를, 단기적 성과가 아니라 장기적 관계를 만들어가는 것. 외식업에서 기획이 중요해진 이유는 이제 정답이 없는 문제에 정답을 만들어야 하기 때문이다. 그리고 그 정답은 고객의 마음에서 시작되어야 한다.
"외식업의 기획은 계산이 아니라 관계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