AI의 시대, 직업인의 자리는 어디에 남아 있을까?
“굳이 카메라를 왜 들고 다녀요? 요즘 스마트폰이면 충분한데.”
식당에 들고 가기엔 조금 부담스러운 크기의 카메라를 늘 메고 다니는 나를 보고, 사람들은 종종 묻곤 한다. 요즘 스마트폰 카메라도 충분한데 굳이 카메라를 가지고 다니느냐는 것이다. 생각해 보면 맞는 말이다. 요즘 스마트폰 카메라는 단순히 카메라의 대체품이라기엔 훨씬 훌륭하다. 기능적으로도 그렇고, 효율성에서도 그렇다. 그럴 때 나는 이렇게 대답하곤 한다. “맞아요. 그런데 스마트폰은 기록을 위한 사진이라면, 카메라는 찍는 재미가 있고, 제가 사진에 의미를 부여할 수 있는 것 같아요.”
기술은 언제나 더 빠르고, 더 효율적인 방향으로 발전해 왔다. 그림은 사진으로, 흑백은 컬러로, 사진은 영상으로 이어졌고 지금은 3D와 VR까지 등장했다. 그러나 그렇다고 그림이 사라졌을까. 흑백사진이 쓸모없어졌을까. 아니다. 기술은 진보했지만 본질은 여전히 남아 있었고, 오히려 그것을 즐기는 방식은 더 고도화되었다. 그림은 예술로서의 자리를 지켰고, 흑백사진은 감성과 상징성을 품었으며, 사진과 영상은 각기 다른 차원에서 우리의 시간을 붙잡았다.
외식업도 크게 다르지 않다. 서빙 로봇은 누구보다 빠르고 정확하게 음식을 나르고, 자동 발주 프로그램은 오차 없이 원가를 계산하며, 신메뉴 홍보에 쓰이는 문구조차 이제는 AI가 대신 작성한다. 예전에는 ‘언젠가는’이라고 여겼던 장면들이 이제는 ‘이미 와버린 현실’이 되어 있다. 그러나 중요한 것은 따로 있다. AI는 원가율을 빠르게 계산해도 이 동네 손님들에게 어떤 메뉴가 진짜 기쁨을 줄지는 알려주지 못한다. 로봇은 정확하게 서빙할 수 있지만 “맛있게 드셨어요?”라는 질문 뒤에 건네는 웃음은 흉내 낼 수 없다.
AI는 메뉴의 재료와 칼로리를 설명할 수는 있어도 “오늘은 시장에서 제일 싱싱한 채소로 준비했습니다”라는 생동감 있는 말은 대신하지 못한다. 주문을 정확히 기록할 수는 있어도 “이건 조금 짤 수 있는데 괜찮으세요?” 하고 미리 조율하진 못한다. 결제를 똑똑하게 끝낼 수는 있어도 단골손님이 지난번에 누구와 함께 왔는지를 기억하고 대화를 이어가지는 못한다. 기술이 일을 줄여줄 수는 있지만, 그 일에 의미를 불어넣지는 못한다. 의미는 이런 작은 순간들에서 피어나고, 그것이 바로 외식업 직업인의 자리다.
언젠가 한 외식기업이 30년 동안 쌓아온 VOC (고객의 피드백) 데이터를 분석한 결과를 본 적이 있다. 메뉴의 퀄리티와 음식의 맛이 유명한 브랜드였기에 대부분의 피드백이 음식이나 신메뉴에 관한 것일 것이라 예상했지만, 불만의 90%는 음식의 맛이나 가격 때문이 아니었다. 대부분은 직원들의 태도, 불친절한 말투, 작은 무심함에서 비롯되었다. 더 놀라운 것은 긍정적인 VOC 역시 90% 이상이 직원들의 친절함, 세심한 배려, 진심 어린 태도에서 비롯되었다는 사실이다.
이 데이터는 외식업에 진짜 만족은 어디에서 비롯되는가, 그리고 그것이 외식업의 본질과 의미를 다시 묻게 한다. 외식업의 만족은 어디에서 오는가? 맛있는 메뉴를 만드는 것이 전부일까, 아니면 공간에 머무는 손님들에게 직원들이 건네는 태도나 센스에서 비롯되는 걸까. 결국 외식업의 만족과 불만족은 사람에게 달려 있다. 기술이 아무리 빠르게 도입되어도 고객이 끝내 기억하는 것은 직원의 태도와 인간다움이다. 외식업의 본질적인 의미는 언제나 ‘사람이 사람에게 주는 경험’에 있다.
그렇다고 해서 이 글이 외식업을 직업으로 택한 이들에게 ‘대체되지 않는다’는 막연한 안전을 약속하려는 것은 아니다. 오히려 그 반대다. 기술은 앞으로 더 빠르게 발전할 것이고, 언젠가는 우리가 익숙하게 해 오던 일마저 낯설게 보일 것이다. 그러나 여전히 남는 질문이 있다. 나는 어떤 순간에 이 일을 하며 가장 의미를 느끼는가. 우리는 어떻게 일하는 사람에게 좋은 감정을 느끼는가. 그것은 기계처럼 형식적으로 일하는 사람에게 서가 아니라, 스스로 하는 일에 의미를 불어넣는 사람에게서 비롯된다. 그렇기에 오늘 내가 하는 일에 의미를 만드는 것이 중요하다. 그것이야말로 대체되지 않는 힘이기 때문이다.
외식업을 직업으로 삼은 우리가 끝내 붙잡아야 할 것은 기술이 아니라 의미일 것이다. 그리고 바로 그 의미가 외식업의 다음 혁신을 만들 것이다. 효율과 자동화가 아니라, 직업인 한 사람 한 사람이 느끼는 의미에서 새로운 방식과 서비스, 그리고 지속가능한 외식업의 미래가 비롯된다. 직업인의 안정성 또한 이제는 달라졌다. 더 이상 오래 다닐 수 있는 직장에서 나오지 않는다. 자동화와 기술의 속도가 그 전제를 흔들어버렸기 때문이다. 이제 안정성의 기준은 이렇게 바뀌었다. 내가 하는 일이 어떤 의미를 갖는가. 그 의미를 어떻게 새롭게 만들어갈 수 있는가.
기술은 일자리를 줄일 수는 있지만, 의미를 가진 직업인을 대체할 수는 없다. 오히려 의미를 붙잡은 사람들이 이 변화의 시대에 새로운 기준을 만들고, 외식업의 혁신을 이끌어갈 것이다.
직업으로서 외식업은 결국
‘무슨 일을 하느냐’가 아니라
‘어떤 의미로 일하느냐’의 문제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