미성숙했던 나의 백혈구
2024년 4월 17일, 회사와 연계된 병원에서 건강검진을 했다. 위내시경 검사를 하기 전 현재 혈소판이 6만 대 정도 된다고 미리 말씀드렸다. 검진센터 직원들은 내 혈소판 수치를 듣고 당황해하셨다. 그 수치로는 위내시경을 할 때 출혈이 있을 수 있다며 위내시경을 진행해야 할지 말아야 할지 고민한다. 나는 그래도 정기적으로 검진을 받고 있으니 괜찮을 것이라고 말했고 문제없이 내시경을 마쳤다. 건강검진이 끝난 후 담당자가 건강검진 결과가 나오려면 보통 일주일 걸린다고 했다. 결과는 어떻게 받아보시겠냐는 물음에 이메일로 달라고 했다.
2024년 4월 19일 오전 검진센터에서 문자가 왔다.
[24.04.17 종합검진상 Hb 14.2 / PLT 79 / Meta/Myelo/ProM. 2% / Imm/Blast 2% nRBC 0.5개. 결과 관련 문의 사항 있으시면 평일 08:00-16:00 사이에 연락 주시기 바랍니다.]
분명 검진 결과는 1주일이 걸린다고 했는데… 이틀 만에 연락이 와서 당황했다. 뭔가 문제가 생긴 것 같은 느낌이 들어서 바로 검진센터에 전화를 했다. 담당자는 혈액에서 미성숙 백혈구 수치가 나왔다며 지금 다니는 대학병원에 수치를 전달하고 빠른 시일 내에 진료를 봐야 할 것 같다고 한다.
“미성숙 백혈구 수치가 뭔가요…?”
담당자는 말을 아꼈고 그렇게 통화를 끊었다.
인터넷을 검색해 보니 문자로 받은 수치들은 백혈병인 환자들에게서 나타나는 수치들이었다. 그 순간 나는 직감적으로 느낄 수 있었다. 내가 혈액암에 걸렸다는 것을.
다니고 있는 대학병원에 전화를 걸어 수치들을 말씀드리니 전화를 받은 간호사선생님께서 교수님께 일단 전달해 드리겠지만 연락은 다음 주에나 가능할 것이라고 했다. 알겠다고 했다. 그리고 1시간 후, 아까 통화한 간호사선생님께 전화가 왔다. 교수님께서 당장 다음 주 월요일에 외래 진료를 예약해 두라고 하셨고 반드시 꼭 오셔야 한다고 했으니 월요일 오전 채혈을 하라고 하셨다.
외래가 이렇게 빠르게 잡힌다는 것은 교수님이 매우 급박한 상황이라고 생각하셨기 때문일 것이다. 남편은 암일리가 없다며 부정했지만 나는 이미 마음의 준비를 끝냈다.
다음 주 월요일 외래 날, 진료실에 들어가자마자 혈액암이 거의 확실한 것 같으니 골수검사를 바로 진행하자는 말씀에 그동안 참았던 불안과 슬픔이 터졌다. 그러나 지금 슬픔에 잠기면 안 된다는 생각으로 정신을 차렸다. 우리나라에서 혈액암으로 가장 유명하다는 대학병원으로 전원을 하려고 하였지만 2024년 4월 당시에는 의료파업으로 인해 대학병원 외래 예약조차 쉽지 않았다. 가족들과 상의 끝에 다니던 대학병원에서 골수검사와 치료를 진행하기로 했다. 갑작스러운 입원과 골수검사, 한 치 앞을 알 수 없는 시간들이었다.
당시 말초혈액(팔에서 뽑는 혈액)에서 Blast 수치가 1~2% 정도 나왔었다. blast(블라스트)는 미성숙한 혈액세포(조혈모세포 단계의 세포)를 뜻하는데 정상적인 말초혈액에는 blast가 거의 0%가 나와야 한다. 보통 골수 안에서만 발견되는 세포이기 때문이다. Blast를 아세포라고 하기도 한다.
골수검사 결과 내 골수에서 아세포가 10% 정도 나왔다. 골수 내 아세포가 20% 이상일 경우에는 급성백혈병으로 분류되고 20% 이하일 경우에는 골수형성이상증후군(MDS)으로 분류된다고 하여 내 진단명은 골수형성이상증후군이 되었다.
골수형성이상증후군은 저강도 항암제인 다코젠과 비다자를 주로 사용한다고 하셨다. 그리고 현재까지 유일하게 이 병을 근본적으로 완치할 수 있는 방법은 조혈모세포이식(골수이식)뿐이라고 하셨다. 교수님께서는 내 상태가 골수형성이상증후군이지만 언제든 급성백혈병으로 변할 가능성이 크다고 보셔서 많은 고민 끝에 저강도 항암 없이 바로 강력한 전처치 항암 후 조혈모세포 이식을 진행하는 방향으로 결정 내리셨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