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복수]
2024년 2월, 폭풍 같았던 유산의 슬픔은 시간의 흐름에 따라 옅어져 갔다.
그로부터 두 달 후, 우리는 다시 한번 임신을 시도했다. 그런데 진료실에서 혈액암이 맞는 것 같으니 골수검사를 해보자는 교수님의 말을 듣게 된 것이다. 정말 정신이 아찔했다. 외래담당 간호사선생님에게 며칠 전 임신시도를 했다고 말씀드리니 아직 임신이 확정된 것이 아니면 일단 입원하고 교수님께 상황을 말씀드리는 것이 좋겠다고 하신다.
정신없이 입원하여 다음 날 골수검사를 진행했다. 17년전 진행했던 골수검사의 악몽으로 인해 마음의 준비를 단단히 했는데, 이번 골수검사는 그때에 비하면 정말 수월하게 지나갔다.
골수검사 이후 교수님께서는 나에게 난자동결을 하겠냐고 물으셨다.
고등학생때부터 나를 봐주셨던 교수님이기에 내가 어떤 결정을 내리든 내 뜻이 맞춰 모든 치료를 진행하겠다는 따뜻한 말도 건네주셨다.
여기서 왜 갑자기 난자동결이 나오는지 궁금해할지도 모르겠다. 나 같은 경우에는 동종조혈모세포이식이 이 병의 근원적인 치료법이었는데, 이식을 위해서는 반드시 전처치 항암을 진행해야 한다. 다른 병원에서 치료받는 혈액암 환우의 담당교수님께서는 전처치 항암에 대해 ‘지금까지의 항암이 따발총이었다면 전처치 항암은 핵폭탄이다’라고 말하셨다고 한다. 그만큼 강하고 독한 항암방법이기에 전처치 항암을 하면 폐경이 확실시된다.
1년전만 해도 보건소 난소나이검사에서 AMH 농도 6.05ng/ml으로 실제 나이보다 10살이나 어리게 나왔는데, 폐경이라니!
'신혼 1년을 즐기기보다는 빨리 아이를 가졌어야했나?'
'아니야, 신생아가 있는데 내가 암환자면 케어하기 힘들었을거야..'
여러 생각과 감정이 들었다. 지금은 이렇게 생각한다. 당시 내 혈액상태가 좋지 않아 아기가 찾아오기도, 건강하게 자라기도 힘들었을거라고. 이제 건강을 되찾았으니 앞으로는 건강한 몸에 건강한 아기가 꼭 찾아올거라고.
아이에 대한 마음이 컸던 나와 남편은 난자채취를 진행하겠다고 했다.
입원한지 3일째 되던 날부터 난포주사인 고날에프를 맞기 시작했다. 이것이 바로 시험관을 하는 분들이라면 모두가 하는 자기배에 주사찌르기다. 입원기간 동안에는 간호사 선생님이 배에 주사를 놔주셨는데, 퇴원 전에는 직접해보겠다고 하고 내가 주사를 놓았다. 처음 주사를 놓을 때 너무 무서워서 손에 땀이 줄줄 났다. 10분 동안 손을 떨면서 긴장하다가 눈 딱 감고 겨우 주사를 놓았다. 처음이 어렵지 그 다음부터는 수월하게 찔렀다.
난자 채취 전 주사를 맞아야 하는 기간은 2주정도이다. 2주간 매일 주사를 놓는 것도, 멍든 배를 보는 것도 힘들었다. 퇴원 후 인근 펜션에 놀러간 적이 있었는데 그때도 주사를 절대 빼먹으면 안돼서 보냉백에 얼음팩과 주사기를 소중히 담아가기도 했다.
그러다 암판정 바로 전에 임신 시도를 했던 것이 계속 마음에 쓰여 얼리임테기를 한번 해봤는데 아주 연한 두줄이 떠버렸다. 그날은 정말 가슴이 쿵 하는 느낌이 들었다. 그렇게 원했던 두 줄인데, 타이밍이 아니었던 것이다. 별의별 생각이 다 드는 날이었다.
그러나 다음 날 두 줄은 옅어져갔고 시간이 지날수록 자연스럽게 한 줄로 변했다. 아마 자연유산이지 않았을까 싶다. 다음에 진짜 건강해졌을 때 오려고…
그렇게 고날에프 주사를 놓은지 6일째 되는 날 산부인과에서 난포가 잘 자라고 있는지 확인하고 가니레버라는 조기배란 억제주사도 처방받았다. 이후 시술 일정이 정해졌고 드디어 난자를 채취하는 날이 다가왔다. 친언니도 시험관을 통해 아이를 낳은 케이스라서 난자채취 할 때 아프지 않았냐고 물어보니 채취 후 바로 일상생활을 했다기에 나도 별 걱정 하지 않고 수술실에 들어 갔다.
난자채취 시술은 1시간도 채 걸리지 않았다. 마취를 해서 아픈 느낌도 없었다. 시술 후 침대에 누운 채로 휴식을 취하다가 물을 마셨는데 갑자기 속이 울렁거려 먹은 물을 다 토해버렸다. 그리고 다시 누웠는데 또 토를 했다. 결국 나는 퇴원을 못하고 바로 입원을 하게 되었다.
여기서부터 나의 고생길이 시작됐다. 그날 저녁부터 배가 부풀어보르기 시작한 것이다. 인터넷을 찾아보니 난자를 많이 채취한 경우 복수가 찰 수 있다고 나와 속으로 망했다고 생각했다. 입원이 길어지리라고는 생각도 못한터라 남편을 통해 입원용품을 챙겨오게 했다.
이온음료를 많이 마셔야 한다는 이야기를 들어서 수시로 이온음료를 마셔댔다. 복수로 몸무게가 늘어갔다. 나는 결국 복수를 빼내는 복수천자를 하게 되었다. 배에 바늘을 꽂아 복수를 빼내는 시술이었는데, 영상의학과 교수님께서 복수를 확인하고 직접 복수를 빼주셨다. 옆구리를 뚫고 약 1리터의 복수를 빼냈다.
1리터의 물이 내 배에 있었다니! 이제 좀 괜찮아지려나 싶었지만 복수는 더더더 차오르기 시작했고 1주일만에 몸무게가 4.5kg이나 늘었다. 이대로는 못견디겠다 싶어서 산부인과 교수님과 상의를 했고 복수에 관을 꼽기로 했다. 관에 밸브가 있어서 몸 상태에 맞춰 복수를 뺄 때에는 밸브를 열고, 너무 많이 뺐으면 다시 밸브를 잠그는 식이라고 하셨다. 일단 뭐든 해야할 것 같아서 관을 꽂았는데 진짜 극강의 고통이었다. 조금만 움직여도 관을 꽂은 부위가 너무 아팠다. 설상가상으로 옆침대에 계셨던 할머니에게서 감기까지 옮아버려 기침할 때마다 고통은 배가 되었다.
그렇게 시간이 지난 후 복수는 서서히 줄어들기 시작했고, 퇴원을 하게 되었다. 퇴원하는 날에는 언니의 유전자가 100% 일치한다는 기쁜 소식을 전해들었다.
유산과 혈액암 판정, 그리고 난자채취까지. 그 해 상반기는 세상이 나에게 원한이라도 있는 듯이 나를 사정없이 때리고 갔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