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헤엄치고 싶은 그녀들의 품

by ondo

버스 정류장에서 아이와 함께 버스를 기다리고 있었다. 오랜만에 연차를 내고 책방에 들러 책을 몇 권 사서 집으로 돌아가는 길이었다.

나이 든 여성 셋이 정류장 의자에 앉아서 큰 목소리로 이야기를 하고 있었다. 나는 눈으로는 아이를 보고 있었지만 자꾸만 그녀들이 하는 이야기에 집중하게 되었다.


“날도 뒤지게 더운데 왜 저렇게 빵빵대고 지랄이여. 양보 좀 하지. “

“그러게나 말여. 그나저나 나는 오늘 저녁때 교회 갈라고 고사리 담가놓고 왔는데. 아휴 버스는 왜 이렇게 안 와. 쪄 죽겠네. 오늘 오지게 덥네.”

“담주부턴 비 온대요. 또 빙아리 오줌만큼 오믄 가물어서 어쩐대. “

“근데 이 바지 어디서 샀어요? 엄청 시원해 보이네. 아사야 뭐야? 응?”

“이거? 딸내미가 홈쇼핑에서 사줬는데 음청 시원해. 만져봐 봐. 봐봐. 안 입은 거 같어. “

“우리 아들놈의 시끼는 지 애미가 빨가벗고 다니는지 비닐봉지를 들고 다니는지 관심도 없을 거여.”

“아휴 형님, 지랄 맞을 땐 딸년이 더 햐. “

“독이 깊은…? 교회 이름 한번 요상하네. 저기 교회 간판 봐봐. 독이 깊대. 독이 무슨 독이여? 항아리 독이여?”

“모르지. 뭐든 요샌 개성 시대니까. 이름도 튀어야 산다 그 말이지. “


변화무쌍한 주제의 변주. 나이 든 여성들 셋이 각자의 말을 하면서도 서로의 말을 놓치지 않고 열심히 리액션을 해주었다.


나는 남 얘기에 잘 끼어드는 재주도 없고, 성미가 좀 깍쟁이 같은 데가 있어서 모른 체하고 있으려고 했는데 내적 통제에 실패한 웃음소리가 입술 사이로 삐져나왔다.

아주머니들의 원색적이고 노골적인 말들은 듣는 재미가 있다. 나는 가끔 체면을 차리느라 무진 애를 쓰는 내가 싫기 때문에 이런 말들을 들으면 너무 재미있고 속 시원한 데가 있어서 그들 옆에 슬쩍 앉아서 안 듣는 척하면서 계속 듣고 싶다.


내 손을 잡고 있던 아들이 엄마, 왜 웃어?라고 묻자 그때까지 자기들끼리 대화에 열중하고 있던 여자들이 일제히 우리 모자를 쳐다봤다.


“아이고 아그야, 더운데 이리로 와. 그늘로 와.”

아들은 다리를 베베 꼬면서 내 등 뒤로 숨어버렸다.

“아이고 아그야, 바지 멋진 거 입었네. 션해 보이네. 엄마가 사줬냐? 이리 와. 거기 땡볕이여.”

나는 아이의 손을 끌고 아주머니 옆, 그늘 진 곳으로 들어갔다.

아주머니는 자기 쪽으로 부채를 부치는 것 같으면서 슬쩍슬쩍 아이에게 바람을 부쳐주었다.

낯을 타는 아이니까 너무 관심을 두면 그늘에서 벗어나기라도 할까 봐 은근슬쩍 바람을 부쳐주었다.

다행히 아이는 알아채지 못하고 그늘 아래서 부채 바람에 땀을 식혔다.




나는 가끔 어떤 이유로든 나이 든 여성들이 세상에서 모두 사라진 때를 상상한다. 그들이 사라진 세상은 얼마나 삭막하고 차가울까.

아무 일에나 불쑥 참견하고 종종 주제넘게 걱정하고 훈계하는 이들이 사라진다면, 지금도 외로운 사람들이 얼마나 더 외로워질까.


나는 아이를 낳고 나이 든 여성들을 바라보는 시선이 완전히 바뀌었다. 그전까지는 그들의 ‘교양 없음’과 부끄러움을 모르고 염치없음에 경계선을 긋고 나와 얼마나 다른 유형의 사람들인지 비교했었다. 그리고 미래의 나에게 절대 저런 아줌마는 되지 말자고 다짐했었다.


아침 출근길에 지하철 문이 열리기도 전에 백팩 끈에 손을 야무지게 쥐고 전투태세에 들어가는 아줌마와 백화점 매장에서 무작정 10프로만 깎아달라거나 사은품으로 양말을 몇 개 더 달라고 조르는 아줌마와 식당에서 무지막지하게 큰소리로 통화하는 아줌마와 화장실 입구에 들어서기도 전에 지퍼를 내리는 아줌마를 너무나 싫어해서 종종 그들을 향한 모욕적인 말과 조롱하는 말들을 주위 사람들에게 끝도 없이 늘어놓았었다


그런데 내가 임신했을 때

나와 태아를 위해 자리를 기꺼이 양보해 주는 사람, 내 짐을 빼앗다시피 나눠 들어주는 사람, 배에 손을 얹고 눈을 감은 채 간절히 기도해 주는 사람, 나의 고통에 울어주는 사람들 모두 나이 든 여성들이었다.




작년 여름 퇴근길에 버스 정류장에서 버스를 기다리고 있었다.

사람들이 속닥거리며 어느 여자의 뒤를 흘깃흘깃 보기에 나도 그 시선을 따라갔는데 하늘색 롱원피스를 입은 젊은 여자의 등과 엉덩이에 러브버그가 득실득실 붙어있었다.

저걸 누가 떼어주든지, 뒤에 벌레가 붙었다고 알려주기라도 해야 할 텐데,라고 생각했지만 나는 남의 몸의 일이라서 쉽사리 끼어들지 못하고 근심스럽게 그걸 보고만 있었다.

그때 선캡을 쓰고 선글라스 낀 나이 든 아주머니가 등장해서 어멋, 아가씨! 가만있어봐, 하면서 들고 있던 부채로 여자의 몸 뒤판을 몇 차례 내려치다시피 해서 몽땅 벌레들을 쫓아 주었다.

젊은 여성은 난데없는 부채 스매싱에 놀라서인지 아파서인지 웅얼웅얼하다가 울 것 같은 표정이 되어 먼저 온 버스를 타고 가버렸다.

나는 나랑 같은 버스를 탄 그 아주머니의 뒤통수를 바라보며, 아주머니들은 이 세계에 반드시 존재해야만 한다고, 그래야만 우리가 덜 외롭고 덜 고통스럽게 살아갈 수 있다고 생각했었다.


나도 10년, 20년 뒤에 그들과 같은 나이가 될 것이고 나이 든 여성이 될 것이다. 그때의 내가 여름날 버스정류장에서 만난 그녀들처럼 다양한 주제로 원색적인 말들을 쏟아부을지는 잘 모르겠다. 그런데 그보다는 조금만 덜 무례한 선에서 남의 고통에, 불편함에, 슬픔에 불쑥 끼어드는 그런 사람으로 늙고 싶다.

나이 든 여성들의 품은, 작은 내가 풍덩 뛰어들어 헤엄치고 싶을 만큼 정말이지... 너무나 크다.




*배경화면: 언스플래쉬 무료 이미지 다운로드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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