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두 여자의 여름 집밥

by ondo

나보다 60년 먼저 세상에 나온 나의 조모, 이정선 씨는 여름이 오면 입이 소태같이 써서 입맛이 없으니 뭐든 먹기 싫다, 그러나 코오-피를 마시기 위해 뭐든 입에 넣어야 한다며 찬밥 위에 물을 부었다.


나는 할머니가 물 만 밥 숟가락 위에 오이지무침이나 고추장멸치볶음을 올리는 걸 보고 아, 또 여름이 왔구나, 깨달았다. 나는 당시 뼈와 살이 자라느라 무섭도록 섭식에 열중하던 때라 도대체 입맛 없다의 감각은 무슨 형태인가, 쓴맛 나는 걸 먹지 않았는데 입안이 소태 같이 쓰다면 미뢰의 기능마저 늙어버린 것이 아닌가 생각했다.

한마디로 할머니를 조금도 이해하지 못했다.


그러나 젊은이가 가진 체력의 방점을 찍고 내려온 지금의 나는 우리 노인의 고유한 ‘여름 환영사‘를 완전히 이해한다. 여름의 광포한 활기는 노동과 생활 권역에서 고군분투하는 나의 기운을 쉽게 꺾고 부러뜨린다.

여름의 해와 습기는 나의 의지와 끈기를 너무나 아무렇지도 않게 무너뜨린다.

그래서 노인의 소태같이 쓴 입맛의 정체와 모래알을 입안에 가득 넣고 와드득 씹는 느낌을 나는 어느 지나온 여름날부터 알게 되었다.


나의 시모는 여름 반찬을 만드는 데 유독 탁월한 솜씨를 보인다. 한두 시간 만에 반찬 네댓 가지를 뚝딱 만들어 유리 밀폐통에 담아놓고는 나는 음식 솜씨가 없어서,라고 수줍게 웃는 그녀 앞에서 나는 그만 버르장머리 없게 피식 웃고 만다.


그녀의 겸양을 받기에는 음식이 너무나 맛있기 때문이다.

시모가 만드는 고춧가루와 밀가루를 묻힌 맵싸한 고추찜과 집간장의 짭조름한 맛을 수분 속에 가득 담은 가지찜, 다진 청양고추를 띄운 오이지 냉국, 호박잎찜과 양배추찜, 멸치를 손으로 막 부서 넣은 깡장.

나는 시모가 만든 이 음식들이 식탁 앞에 놓이면, 앞에 앉은 시부모의 손만 바라본다.


얼른 한 수저 뜨세요. 빨리요.


어서 저 눈앞에 있는 음식들을 내 입속에 넣고 싶어서 참을 수 없는 시간이 온 것이다. 파블로프의 개처럼 침을 흘리기 직전인 나와는 달리 나의 남편과 시부는 반찬 앞에서 시들한 표정이다.


젓가락질에도 목표 지점을 향한 열의이라든가 탐구성이 빠져있다.

수십 년간 같은 반찬의 같은 맛을 느껴온 탓이다.


시모는 요리를 대하는 태도에도 강한 보수성을 지닌다. 맛의 공고한 영역을 지키는 것에 분투하고, 새로운 레시피를 개발하거나 재료를 더하거나 빼서 퓨전식의 새로운 요리를 한다든가 하는 모험은 하지 않는다. 그래서 당신은 요리를 할 줄 모른다고 한다.


나는 내가 그녀의 핏줄이 아닌, 새로운 가족이 되어 만난 것이 얼마나 다행인가 생각한다. 그녀의 환상적인 요리에 마음껏 감탄할 수 있으니!


시모의 요리는 시골식이다. 거기에 더해 시모는 음식 재료를 대충 다듬는 법이 없고 여러 번 씻는 데 번거로워하지 않는다. 그릇도 통에 넣고 주기적으로 삶아야 속이 시원한 성격이라 시모의 요리는 먹어도 먹어도 탈이 날 일이 없다.


화학조미료는 물론이고 설탕도 거의 쓰지 않고 재료 본연의 맛을 내는 데 힘을 쓰기 때문에 그녀의 요리는 내 몸의 기운을 새롭게 한다. 볶는 것보다 데치거나 삶는 것, 설탕보다 매실액을 택하고, 들기름, 들깻가루 같은 조미료는 듬뿍 넣어 맛을 살린다. 이는 건강을 위한 선택이기도 하지만 그녀의 혀의 선택이기도 하다. 오랜 시간 그런 음식을 엄마의 엄마의 엄마 때부터 먹어왔기에 그런 음식만이 입에 맞는 것이다.


그 음식을 수십 년 먹고 자란 나의 남편은 골밀도도 정상수치의 몇 배 이상 높고, 심장, 혈관, 주요 기관들이 매우 튼튼하다. 아픈 날이 화이트 크리스마스처럼 찾아온다. 그가 여전히 떡볶이나 튀김, 비빔국수 같은 자극적인 맛의 분식을 즐겨하지 않는 이유가 여기에 있다.


엄마의 요리는 조금 다르다. 엄마의 밥과 반찬은 정말 아름답다. 엄마가 차린 식탁은 무지개 빛깔이라 눈 부시다. 그리고 밸런스가 있다.

각각의 반찬이 최대한 어여쁘게 꾸밈을 하고 나온 듯이 각자의 역할에 최선을 다한 모양이다.


파김치는 같은 키로, 파의 몸통이 리본처럼 묶인 채 오차 없이 가지런히 놓여있다. 버무려진 고춧가루의 양도 적당해서 난삽하지 않다.

그리고 볶음 요리엔 빨강, 노랑, 주황, 초록, 흰 빛깔의 재료가 골고루 같은 크기로 들어가고, 밥 위에는 본연의 초록빛을 잃지 않은 완두콩이 적당히 놓여있다.


플레이팅 센스도 훌륭해서 엄마의 식탁은 매일 사진으로 남기고 싶다. 엄마가 차린 아름다운 밥상은 너를 사랑한다는 말과 같아서 젓가락질을 하기 전에 절로 감사히 잘 먹겠습니다,라는 말이 나온다.

나는 나의 아이를 이토록 지치지 않고 사랑할 수 있는 건 엄마의 밥을 오랜 시간 먹어서 가능한 것이 아닌가 매일 생각한다.


엄마는 내가 아는 사람들 중 가장 지혜로운 사람인데 매일 무언가를 배운다. 오늘 처음 만난 사람에게서도 어린아이에게서도 배울 거리를 찾아낸다.


요리도 마찬가지라서 그녀는 이미 훌륭한 요리사인데도 유튜브나 블로그를 찾아 더 새로운 레시피를 찾고, 응용하는 걸 즐거워한다.


그래서 내 본가의 식탁엔 국적이 없다. 그녀는 그리스식으로 해산물과 요거트, 채소를 하나의 요리에 쓰기를 주저하지 않고, 10분 만에 스위스식 치즈 감자채전을 뚝딱 해내고, 지난번보다 맛이 더 조화로운 두부면 요리를 식탁에 올린다.


엄마의 요리는 빠르고, 예쁘고, 맛있다. 그녀의 손맛과 손의 센스가 유전자처럼 내 피에도 도장처럼 찍혀 있기를 바란다.


두 여자의 요리는 참으로 다르지만 어느 식탁에 앉든 기대가 되는 맛이다.

시모의 요리는 내 몸을 살리고 엄마의 요리는 내게 사랑을 말한다.

얼마나 나는 럭키 걸인가! 오늘 시모가 뚝딱 차려낸 가지찜과 오이지무침과 호박잎쌈에 강된장을 앞에 두고 여름이 와서 너무 좋다, 이것들을 먹고 여름을 잘 나야지, 생각하며 젓가락을 든다.


오늘도 감사히 잘 먹겠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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