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여름밤, 그 많은 나의 힐링은

by ondo

아들 윤이의 이마와 겨드랑이가 뜨거워지면 또 한 계절을 건너왔구나, 생각한다.

봄에서 겨울로, 다시 겨울에서 봄으로 시간이 둥글게 둥글게 돌 때 계절의 거친 마디마다 윤이는 목이 붓고 열이 난다.


지난 주말 아이의 눈이 쑥 들어가고 피부가 꺼칠해 보이더니 오늘은 자꾸만 바닥에 등을 대고 누웠다.

어린아이는 잘 눕지 않는다. 어린이는 몸을 부지런히 움직이는 일이 몹시 중요한 일이라서 집에서도 숨차게 바쁘다. 바닥에 등을 붙이고 잠잠해지면 잠이 오거나 아픈 것이다.

잘 시간은 아직 안 돼서 아이의 이마를 짚어보니 따끈했다.


3월에 소아과를 다녀왔으니 딱 4개월 만이다. 봄에서 여름으로 건너왔으니 아플 때가 되었다.

지구가 기울어진 채 쉼 없이 구르면, 내가 발 붙인 곳에 가닿는 태양빛이 매일매일 달라진다는 걸 어린 몸은 아프면서 배우는 걸까.

나의 지혜로는 알지 못하지만 몸이 앞서 아는 것들이 있다. 자연의 섭리나 이치가 그런 것이 아닐까 생각했다.


상비약함에 넣어 둔 해열제를 찾아보니 유효기간이 지나있었다. 약은 몇 개월 지난 걸 먹어도 약효가 조금 떨어질 뿐이지 탈이 날 일은 없다고 어디선가 본 적이 있는데 막상 아픈 아이에게 주려니 내키지 않아서 밖으로 나왔다.

요즘은 편의점에도 해열제 정도는 구비해 놓으니까 약국 문이 열릴 때까지 밤새 동동 거리지 않아도 된다. 어린아이가 있으니 다행인 것들이 많다.


밤 9시 15분. 아파트 단지에서 나와 작은 길을 걸으며 오가는 사람들의 수런거림을 들었다. 여름밤만이 간직한 묵직하고 축축한 공기를 힘껏 들이켜니 콧속이 생기로 가득 채워지는 느낌이 들었다.


여름은 밤의 무드가 특별하다. 여름밤의 공기엔 비밀스러운 무언가가 있다. 젊은이의 엉덩이를 들썩이는 특유의 공기가 있다. 여름밤은 마음껏 늘어지고 조금은 미쳐도 될 것 같다.


신발을 벗어 들고 걷거나 난데없이 일어서서 춤을 추거나 노래를 불러도, 조금 야한 옷을 입어도 여름이니까, 여름이라서 괜찮을 것만 같다. 해의 시간이 길어서 흥분이 채 가라앉지 않는 게 당연하다고 믿어서일까.


지금보다 더 젊을 때, 누가 봐도 젊을 때를 떠올리면 나는 여름날의 나를 본다. 겨드랑이 아래로 동그랗게 젖은 다홍빛 블라우스라든가 싸구려 아이라이너가 눈 밑에 번진 거무죽죽한 여름만의 얼굴, 반창고를 붙인 새끼발가락을 억지로 꿰어 넣은 굽 높은 하얀 샌들 그리고 커다란 선풍기의 뜨거운 바람이 머리 아래로 쏟아지는 시청역 플랫폼과.

여름의 단상은 푸를 청이고, 푸르러서 젊은이의 시간인 건지.


집 밖에는 많은 사람들이 거리에 있었다.

스마트워치의 창을 터치하며 가볍게 러닝 하는 남자와 서로의 손끝을 잡고 천천히 걷는 노부부와 한 손에 줄넘기를 들고, 앞서 가는 엄마 아빠를 시큰둥한 얼굴로 뒤쫓아가는 남자아이와 앞머리에 매단 굵은 헤어롤을 붙잡고 뛰어가는 여자 아이.


보통 나의 9시는 아이에게 치카를 할 시간이라고 알리고 설득하다가 결국 내가 화를 내고야 마는 시간이다. 치카를 하면 자야 한다. 그것이 우리 집의 수면 의식이다.

아이는 오늘로써 자기의 놀이동산이 폐장하는 시간이 되는 그 통과의례를 기어코 건너고 싶지 않아서 못 들은 척하고 사소한 저지레를 치다가 못내 칫솔을 손에 쥔다.

그래서 9시는 내가 가진 그날의 에너지를 탈탈 털어 소진하는 시간이라 산처럼 느껴지는 시간이다. 아이와 나, 둘만의 공수의 시간이라고 할까. 나는 그 기싸움의 시간이 오늘 내가 마지막 넘어야 할 깔딱 고개처럼 느껴진다.


현관 밖 9시는 딴 세상이다.


편의점 앞에 놓인 파라솔 아래 테이블에 빈자리가 없다. 삼삼오오 모인 사람들이 봉지과자를 펼쳐놓고 소주를 마시고, 오징어다리를 어금니에 밀어놓고 급히 캔맥주를 딴다. 탁-폭- 캔맥주 따는 소리가 폭죽소리처럼 들렸다.

나는 맥주의 지린 냄새와 젖은 풀 냄새, 고소한 흙냄새 같은 여름의 냄새를 조금 더 맡고 싶어서 편의점에서 산 타이레놀시럽을 손에 꼭 쥐고 천천히 그들의 곁을 지났다. 그때 소주를 따르던 여자가 벌떡 일어났다.


“너 내가 술을 왜 먹는지 알아?”

“……“

“술은 나의 힐링이야. 나의 힐링 타임. 나의 힐링이므로 먹을 수밖에 없다, 이 말이야.”


술이 힐링이라 먹을 수밖에 없다는 여자 앞에 앉은 여자는 말없이 플라스틱 소주잔에 소주를 따라 마셨다.


여자의 힐링이 무엇인지 진작에 알고 있는 다른 여자는 술을 마시는 것 외에는 달리 응대할 말이 없는 걸까.

술이 힐링인 여자는 지치지도 않고 힐링을 부르짖고, 그녀의 주정에 전혀 힐링되지 않는 다른 여자는 연거푸 술을 마신다.


곁눈질을 해서 보니 일어선 힐링의 연사는 맨발이다. 삼색 슬리퍼가 가지런히 테이블 의자 아래에 놓여있다. 역시 여름이군. 그래, 여름이 왔구나. 다들 조금씩 미치는 시간.


그러다 나의 여름을 생각한다. 나의 그 많은 힐링은 어디로 갔을까.

편의점 파라솔 아래에 앉아서 캔맥주를 따놓고 무수한 인생론과 연애사를 펼쳐놓았던 그 시간은 어디로 흘러갔을까.

손가락 사이로 사르륵 빠져나가고 마는 잘고 고운 모래처럼 다 사라졌다. 개똥, 말똥 같은 이야기를 수없이 주고받은 그 시간들은 다 어디로.


나는 아이의 해열제를 손에 꼭 쥐고 걸어가며 나의 힐링은 다 어디로 가버렸는지 도통 이해할 수 없어서 어리둥절해졌다.


제자리 뛰기로 딱 한 번 빗물 웅덩이를 건너뛴 것 같은데 지금 나의 여름은 완전히 딴 세상이 되었다.


나의 힐링, 나의 그 많은 여름밤의 힐링은 어디로 간 것일까. 정말 모르겠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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