아랫집에 허리가 기역자로 굽은, 빼빼 마른 노인이 산다.
그녀는 대문니가 하나도 없어서 입을 벌리면 이빨의 배열이 양쪽 송곳니부터 시작된다. 노인의 허리는 너무 굽어서 차라리 사족보행이 더 편할 것 같다.
나는 이 노인을 쓰레기 분리수거를 하거나 음식물 쓰레기를 내다 버릴 때 종종 만나곤 하는데 그녀의 허리가 저토록 굽기 전에 어떠한 삶을 살았을까 궁금해진다.
그녀에게도 너 참 예쁘구나, 하고 수작 거는 이들이 있었을 테고, 그러면 햇복숭아처럼 얼굴이 분홍빛으로 물들었던 시절이 있었을 텐데.
‘살민 살아지는’ 큰 축이 무너진 삶이 아니라 성실히 살면 손에 넣을 수 있을 거라 믿었던 꿈이 그녀에게도 있었을 텐데.
노인의 허리엔 어떤 하루가, 어떤 시간이 쌓여온 것일까.
노인은 막내아들과 둘이 산다.
내가 본 아들들은 둘이다. 큰아들은 정장을 입고 크로스백을 맨 차림으로 저녁때 한 번씩 노인의 집에 들러 장거리를 놓고 간다.
막내아들은 낮에도 집에서 게임을 하고 술을 마신다. 그는 종종 아파트 화단 앞에 쭈그려 앉아서 누군가와 통화를 하는데 게임용어와 씨발 씨발 소리를 섞어가며 화를 내기 때문에 나는 겁이 나서 그가 집에 들어가기 전까지 동네를 배회하기도 했다.
얼핏 보기에 막내는 40대, 큰 아들은 50대인 것 같다. 그렇다면 그녀의 나이는 통상 6-70대여야 할 텐데 그렇게 보기엔 너무 나이가 많이 들어 보인다.
그녀는 몸을 가꾸는 것은 차치하고, 최소한의 건강 관리조차 엄두낼 수 없었던 시간을 아주 오랫동안 보낸 것 같다.
그녀의 이빨이, 허리가, 몸의 이곳저곳이 점차 무너지고 쓸모없어지는 줄도 모르고 살았던 인생은 어떤 시간이었을까.
우리가 처음 이사 왔을 때 과일이었는지 푸성귀였는지 먹을거리를 싸들고 편지를 써서 아래층에 내려갔었다.
아들이 아직 어려서 미숙하지만 최대한 조용히 다니도록 교육을 잘 시키겠다고 인사를 하고 싶어서 갔는데 아무리 벨을 누르고 노크를 해도 문을 열어주지 않았다.
처음엔 안에 사람이 없는 줄 알았다. 그런데 밖에서 보니 거실에 불이 켜있고 tv소리가 웅성웅성 밖으로 새어 나왔다.
나는 들고 내려온 것들을 현관 앞에 놓고 올라갔다. 몇 시간 후 내려가보니 우리가 놓고 온 것들이 없어졌다. 안으로 들여갔구나, 다행이라고 생각하고 잊었는데 다음 날 노인이 제 몸만 한 두루마리 휴지 묶음과 딸기 한 팩을 사들고 올라왔다.
“고마워요. 그런데 다음엔 이런 거 사 오지 마세요. 부담스러워서.”
나는 우리가 드린 것보다 더 많이 받아서 조금 무안한 마음이 들었다.
노인의 말이, 나는 이제 받은 만큼 돌려줬으니 더 이상 너희와 교류하고 싶지 않다는 식으로 들렸다.
노인은 말을 잘 들었고, 하고 싶은 말을 스스럼없이 했다.
노인은 벨을 누르는 사람이 내가 피하고 싶은 바로 그 사람일까 봐 두려워서 꽁꽁 안에 숨어있었던 걸까.
분명 무슨 사연이 있는 노인일 거라 짐작했다.
말이 없고, 문을 열어주지 않는 사람에겐 비밀이 있다.
한 달에 한두 번 밤 12시에서 1시 사이에 우리 집과 아주 가까운 곳에서 무게가 나가는 무언가가 바닥에 내동댕이 쳐지는 소리가 났다.
이런 상황은 언제나 무언가를 부러 넘어뜨리거나 있는 힘껏 던지는 소리로 시작되었다.
남자가 악다구니를 치면서 닫힌 방문을 있는 힘껏 발로 걷어차고, 무언가를 내리치고 깨고 부수다가 곧 그만두었다.
15분 내의 짧은 소란과 긴 침묵.
가해자와 피해자가 명확히 존재할 것 같은 그런 상황이 우리 집과 아주 가까운 데서 벌어졌다.
그런 일이 자주는 아니지만 주기적으로 반복되었다. 그러다가 한 번은 도어록이 해제되는 소리가 나더니 여자의 비명 소리가 들렸고, 남자의 거친 욕이 이어지더니 현관문이 성급히 닫혔다.
깊게 잠든 아이가 잠에서 깼다. 내 목을 끌어안은 아이의 몸이 떨렸다.
경광등을 켠 경찰차가 곧 도착했다. 경찰 둘이 우리 아파트 동의 여러 집을 돌아다니며 비명이 누구의 입에서 들렸는지 수소문했지만 결국 찾지 못한 채 돌아갔다.
나는 그 짧은 비명을 구조 신호로 인식했다. 당장 구하지 않으면 끔찍한 일이 벌어질 것 같은 예감이 들었다.
그 후에도 경찰에게 연락이 몇 번 왔다. 그새 무슨 일이 없었는지 물었지만 아무 일도 일어나지 않았다.
나는 오랜 시간 아무 일도 일어나지 않아서 불안했다. 무슨 일이 급기야 벌어졌기 때문에 아무 일도 일어나지 않는 것일까, 하는 생각에 두려웠기 때문이다.
여름이 오기 전, 경찰들이 ‘들어갑니다 ‘하고는 신발을 신은채 노인의 집안으로 들어갔다.
노인은 이미 집에 없었다.
경찰은 현관을 강제 개방하고 들어가 안방과 작은방, 화장실을 샅샅이 뒤졌다. 그리고 몸을 숨긴 남자를 찾아냈다.
‘경찰입니다.’ 쿵쿵쿵 문을 두드리고, 안에서 열어주지 않는 문을 강제로 열고, 구둣발로 집안에 들어가 숨어있던 남자를 바깥으로 끄집어내 경찰차에 태우는 일이 아주 짧은 시간 안에 이루어졌다.
나는 그 일이 있고 나서 며칠 뒤에 노인을 아파트 계단에서 만났다. 잘 지내셨냐고 건강하시냐고 물었다.
노인은 앞이 보이지 않는 사람처럼 나를 그냥 지나쳤다.
그녀의 왼쪽 뺨, 광대뼈 위에 검은 멍이 번져있었다.
나는 그녀에게 삶과 죽음이 어떤 의미일까 생각한다. 매일 아침에 눈이 떠지면 아직 살아있구나, 살아있으니 또 살아야겠구나.
언제까지 살아야 할까. 질기다. 길다.
언제가 끝일까.
어디까지 닿아야 나는 비로소 사라질 수 있을까.
그런 생각들이 마음에 가득 차서 보이는 것도 보이지 않고 들리는 것도 들리지 않는 시간들이 이어지는 것이겠지.
오늘도 살아있으니 별 수 없이 칼날이 무딘 부엌칼을 손에 쥐고 파를 썰고, 물얼룩이 남은 냄비를 꺼내 콩나물을 데치고, 개수대에 쌓인 그릇들을 수세미로 문지르고, 젖은 빨래를 널고, 저들끼리 떠들고 웃느라 정신없는 tv소리로 침묵의 어두운 공간을 채우겠지.
한숨과 절망.
포기와 소진.
그녀가 감당해야 할 시간의 무게가 지나치다. 이제 내려놓고 싶을 때, 여기서 그만 내리고 싶을 때도 마음대로 끊을 수 없는 끝이 요원한... 지겨운 일상의 연속과 무한한 시간들.
이틀 전에 아들과 아이스크림을 사러 나갔다가 노인을 길에서 만났다. 내가 멈춰 서서 안녕하세요? 하니, 아들도 큰 목소리로 안녕하세요?라고 했다.
노인은 우리를 지나쳐갔다.
나는,
이번 여름이 그녀에게 너무 가혹하지 않기를.
숨 막히고 지긋지긋한 여름만은 아니기를.
곁에 잠시 멈춰 서서 얼굴을 마주 보고 다정한 인사를 하고 싶은 사람 한 명쯤은 곁에 있는 여름이기를.
노인의 기역자로 굽은 허리를 내려다보며 빌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