저 여자는 어제도, 지난주 금요일에도 봤던 여자다.
역시 오늘도 노브라.
노메이크업에 유선 이어폰을 끼고 커다란 에코백을 어깨에 걸치고 크롭티를 입은 여자.
그녀가 가는 곳도 우리 회사 근처인지 요즘 길에서 자주 본다.
그녀는 볼 때마다 노브라다. 취향인지 소신인지 모르겠지만 상체에 살집이 있어서 가슴이 크고 젖꼭지가 불뚝한데 브라를 하지 않았다.
그녀는 신호등이 파란불로 바뀌자 머리를 15도 각도 정도 위로 치켜들고, 뒤에서 누가 등을 밀듯 횡단보도를 건넜다. 내가 그녀를 보고 있는 것처럼 지나가는 사람들도 그녀를 본다.
대부분 힐끔거리지만 허리가 굽은 어떤 할아버지는 몸을 돌려 여자가 길을 다 건널 때까지 아예 멈춰 서서 그녀를 본다. 나는 그녀가 사람의 시선을 의식하는 건지, 전혀 개의치 않는 건지 모르겠다.
그녀는 사람들의 시선이 괜찮은 걸까, 아니면 아무래도 상관없는 걸까?
어떤 대답이든 난 저항하고 싶지 않다. 대답과는 무관하게 부러운 마음이 든다.
여름에 브라를 하는 건 무척 괴로운 일이니까.
요즘엔 노브라로 다니는 사람들이 많다. 그런데 어떤 사람이 노브라로 다닌다는 걸 알리는 순간 혹은 개인의 의사와는 상관없이 알려지면 그녀를 연상하는 이미지엔 어김없이 젖꼭지가 있다. 나는 그게 싫다.
연예인의 노브라가 (무려) 기사가 되거나 품행이나 몸가짐이 이렇고 저렇고 뒷말로 이어지거나 그 여자는 아마도 페미니스트일 거라고 쑥덕거리는 게 싫다.
그러는 사람들에게 나는...
헤이, 그냥 브라자를 안 한 것뿐이잖아, 안 그래?라고 미국식으로 반문해서 조금 무안하게 하고 싶다.
어차피 세상의 반은 생물학적으로 여성이고, 여성은 상대적으로 이성보단 동그스름하게 가슴이 앞으로 더 나왔다. 그게 뭐? 여자니까 가슴이 나오고 젖꼭지가 조금 더 큰 건데. 그게 뭐? 종족의 보존이나 번식에 유리한 방향으로 진화가 되었겠지, 가슴이 대체 뭐가 문제인지 모르겠다.
나는 여름마다 가슴 아래에 솟은 땀띠 때문에 울고 싶다. 가려울 때마다 가슴을 들어 올려서 벅벅 시원하게 긁을 수도 없고.
여름용으로 나온 인견 소재 브라나 통기성이 뛰어난 브라를 한다고 한들 어쨌든 하나 더 입는 거니까 근본적으로 덥고 답답한 건 해결이 안 된다.
초등학교 여름방학 때 동네 친구 집에 놀러 갔는데 친구 엄마가 ‘어휴 답답해 죽겠네’, 하면서 등 뒤로 손을 넣어 훅을 톡 풀고는 까만색 브라를 소매 안쪽에서 쭉 빼서 빨래통에 냅다 던졌던 게 기억난다.
그녀는 화가 많이 나 보였다.
당시엔 어떻게 옷을 벗지 않고도 브라를 겨드랑이에서 빼낼 수 있는지 신기하다는 생각뿐이었지만 지금 그녀의 나이쯤 되어 생각해 보니 그땐 에어컨도 없고, 스틸 와이어를 넣은 브라가 보편적이었으니 브라를 내팽개칠만했겠다 싶은 생각이 드는 거다. 그녀는 브라에 화가 났던 게 틀림없다.
지난겨울엔 회식을 몇 시간 앞두고 옆 부서 동료가 내게 우는 소리를 했다.
“브라 때문에 숨이 안 쉬어져요. 팬티스타킹까지 신었더니 너무 답답한데 이따 회식 어떻게 가지?”
나는 별 고민 없이 대답했다.
“벗으면 안 돼? 어차피 니트 입어서 티 안 날 거 같은데?”
“티 날 것 같은데. 불안해서.”
나는 그녀에게 사무실에 두고 다니는 조끼를 빌려주었다. 그녀는 기쁜 얼굴로 브라를 벗고 조끼를 입고는 내게 귓속말로 말했다.
“사실 스타킹도 배 있는 델 조금 가위로 잘랐어요. 크크.”
그녀는 브라를 벗는 대신 겉옷 위에 조끼를 걸치고 스타킹을 조금 잘라내어 배와 가슴에 숨통을 조금 트이게 한 뒤에 삼겹살을 맛있게 먹었다. 그리고 직장동료들과 상사들 사이에서 편안하게 웃고 떠들었다.
그녀는 집에서 브라를 하지 않는다고 했다. 나도 그렇다. 집에 가자마자 손을 씻은 다음에 하는 일이 브라를 벗는 거다. 그러고는 숨을 크게 들이마셨다가 후우우 내뱉어본다.
그럼 자유롭다. 참, 숨은 이렇게 쉬는 거였지, 하고는 새삼스럽게 숨 쉬는 법을 다시 인식하게 된다.
함께 있을 때 내가 브라를 벗을 수 있는가가 그들과 나의 사이, 거리를 말해준다. 친한 친구들, 매우 가까운 동료들 사이에서 난 언제나 노브라의 기회를 엿본다.
결혼 전에 남동생과 아빠가 집에 있어도 종종 노브라로 있었다. 애를 낳고 친정에서 몸을 푸는데 브라를 안 한 나를 보고 남편이 속삭였다.
“여보, 티 나. “
“있으니까 티 나지. 뭐 어때?”
어머니가 유일한 여성인 집에서 살아온 남편이 보기에는 무척 신경 쓰이는 일이었나 보다.
나는 집에서만큼은 내가 가슴이 어디 달렸는지 있는지 없는지 의식을 안 하고 싶다.
나는 지금도 아침에 옷을 입을 때 고민한다. 이 정도 두께면 노브라도 티가 안 날 거 같은데 오늘 입지 말아 볼까? 하다가 어김없이 브라를 한다.
보수적인 성향의 상사들과 직원이 많은 회사에서 노브라인 채로 출근하는 건 상상하기 어려운 일이다. 나는 누구에게나 다 있는 젖꼭지로 주목받고 싶지 않다.
생각해 보니 남편도 흰색 티셔츠를 안 입는다. 젖꼭지가 두드러져 보여서 싫다고 한다.
내 권유로 (그는 오프화이트색이 잘 받음) 과감히 얇은 흰색 티를 입는 날엔 꼭 내게 묻는다.
”티 나? “
남편과 같은 생각을 하는 남자가 많은지 요새는 남성용 니플패치도 많이 보인다.
사람은 다른 사람과의 관계 속에서 사는 존재니까 남에게 수치심이나 혐오감을 주는 옷차림을 해서는 안 된다고 생각하지만 언제부터 가슴이 그런 쪽으로 문제가 되었는지 조상들에게 묻고 싶은 심정이다.
첫 번째 브라를 한 브라의 선조, 브라를 최초로 고안한 사람을 찾아가 따져 묻고 싶다. 그대들 때문에 나는 여름에 이렇게 고통받고 있노라고.
브라를 하면 체형 교정이 되고, 브라에 몸을 맞추면 선이 더 아름다워진다고 어쩌고 저쩌고 떠들어댄 그대들 때문에 나는 한여름에 땀띠를 안고 산다고.
네가 안 하면 그만이지 뭘 이렇게 떠들어?
하지 마라 하지 마. 안 하면 되잖니?
...라고들 하겠지만 난 안 할 수가 없다.
나는 직장인이다. 우리 회사는 절대 … 절대 노브라는 안 된다. 상상만 해도 공개처형대에 오르는 기분이다.
다 내게도 그럴 만한 사정이 있다.
안티 브라!
안티 니플패치!
내 몸에 자유를! 그대의 몸에 자유를!
공허한 말을 공연히 또 하게 된다.
다시 여름이니까.
두루두루 참아내고 견뎌내는 여름이니까.
*배경사진: 언스플래쉬 무료 이미지