작은 나의 일상
저는 사무직에 종사하는 노동자입니다.
한 회사에서 10년이 넘는 시간 동안 같은 일을 하고 있어요.
혼자 일하는 사무실에서 초면인 사람들을 약속된 시간에 만나고, 서류 하단에 서명을 하고, 전화를 하고, 컴퓨터 모니터 앞에서 엄격하고 진지한 단어들을 나열하면서 하루를 보냅니다.
그 대가로 회사는 매달 25일 저에게 깜찍한 돈을 줍니다.
점심을 먹기도 전에 가진 에너지가 화르륵 타버려 아이스크림산이 무너지듯이 책상 앞에서 무너지는 날이 10년 전이나 지금이나 비슷해서 과연 이 일과 월급의 가치가 등가를 이루는가 굉장히 미심쩍은 마음을 가지고 있지만 용기 없고 게으른 저는 여전히 아침 8시 50분이면 회사 책상에 앉아서 전날과 비슷한 하루를 시작하고 있습니다.
저는 제 일이 대부분 지겹고 힘들고 부담스러워요. 연중에 한두 번은 사무실 냉장고문을 열고 머리를 처박습니다. 식히지 않으면 당장 사무실 천장을 뚫고 날아갈 것 같아서요.
때로는 감사하고 아주 아주 가끔은 보람찹니다.
크리스마스 선물처럼 받는 희소한 좋은 일이 저를 근속할 수 있도록 이끌어 준 것 같네요.
그 외의 시간은 아들 윤이의 수많은 질문에 답하고, 요구에 응하거나 일관성 없이 거절하며 지내고 있고요. 동네 산책을 하든가 약수터에 가서 작은 생물들을 구경하고 채집하는 단조로운 일상을 보내요.
드물게 저만의 시간이 생기면 급하게 읽고 꾸물꾸물 씁니다.
아침엔 산문이나 시를 읽고 자기 전엔 소설을 읽습니다.
허겁지겁 밥을 먹듯이 책을 읽고 싶지 않은데 아기를 키우는 엄마는 뭘 하든 조급증이 생기네요. 책을 읽는 습관마저도 가난한 것 같아서 때로 슬픈 마음이 듭니다.
얼마 전부터는 저도 모닝 루틴이란 걸 만들었어요. 아침 출근할 때(만) 사무실까지 계단을 이용해서 가는 겁니다.
제 사무실은 사옥 4층에 있는데요. 환경 운동을 하는 부서에서 계단마다 붙여놓은 게 있습니다. 여기까지 오르면 수명이 몇 분 늘고, 에너지가 몇 kcal 소모된다는 일종의 계단이용 장려 캠페인인데요. 저는 그걸 보면 조금 약이 올라요. 왜냐하면 잔뜩 숨을 몰아쉬며 4층 끝계단에 오르면 이렇게 쓰여있거든요.
여기까지 61 계단. 수명 4분 4초 up, 9.15kcal down.
더럽게 힘든데! 공복에 땀까지 나는데! 숫자가 너무 귀엽잖아.
그래도 전기 사용을 하지 않은 거에 의미를 두고 매일 계단을 오릅니다.
매일 제 수명은 4분 4초씩 늘어나고 있으려나요.
그리고 뜨거운 물, 차가운 물을 반반 섞어 300ml 정도의 미지근한 물을 꿀꺽꿀꺽 마시고, 집에서 가져온 삶은 계란을 한 개 까먹고, 커피를 내려 단단한 얼음을 수북이 넣고 우유를 섞어 아이스라테를 만들어요. 여름이니까 아이스커피.
이게 저의 요즘 아침 루틴입니다. 몇 주째 하고 있네요. 별 거 아닌데 잘 자고, 잘 먹고, 평상심을 유지하는 데 작게나마 도움이 되는 것 같아서 만족하고 있습니다.
저는 it 신기술 하이테크 부적응자입니다.
대학 친구들이 너는 왜 스레드 안 해?, 왜?, 그러니까 왜?,라고 자꾸 묻기에 그곳의 세상이 궁금하기도 하고 제가 할 수 있는 것이 있을 것 같아서 용기를 내어 인스타에 가입했어요.
그리고 텍스트힙에 매료된 mz 식으로 스레드를 해보... 려고 했는데 난생처음 서울역에 당도한 촌사람처럼 새로운 피드에 정신이 혼란해지더라고요.
저는 총알택시처럼 오가는 핸드폰 창의 글들을 그냥 바라보기만 하고 있습니다. 그곳의 글들은 허무한 연기처럼 사라지더군요. 눈 깜짝하는 사이에 사라지는 글들 사이에서 저는 어떻게, 뭘 써야 하는 건지 모르겠어요. 새로운 허들 앞에서 망설이느라 허송세월하는 제가 요즘엔 참 싫어집니다.
유! 와이 쏘오 씨뤼어쓰?
아, 올해도 기쁘고 건강하게 지내고 싶다고 딸기 케이크 위에 긴 촛불을 하나 꽂고 아들과 입바람을 후우 불었었는데 그 초가 꺼지면서 피어오른 그을음 냄새가 채 가시지도 않은 것 같은데 여름이 조용히 현관 앞에 도착했네요.
더위보다 습기에 취약한 저는 올여름은 또 내게 얼마나 난폭하게 굴까 싶어서 가슴이 선득하다가도 여름만이 보여주는 다채로운 색과 날것의 또렷한 냄새와 생명력이 절정에 이른 여러 생명체들이 내는 소리에 다시 창밖의 여름으로 마음이 향합니다.
그래서 올여름의 분위기는 지나치고 싶지 않아서, 기억하기 위해서 기록을 해두기로 했습니다.
연재를 시작하기 전에 글을 여러 개 비축해 놓고 연재 당일 안달복달하지 않고 글을 올릴 수 있도록 노력해 보겠습니다.
가벼운 글로 찾아뵐 테니 독자 여러분도 부디 가벼운 마음으로 읽어주시기를 바랍니다.
건강과 평화를 빕니다. 모두.