이렇게 평범한 토요일에

by ondo

재수를 하기 전에 잠시 적을 두었던 대학의 입학동기에게 전화가 왔다. 근무 중이기도 했고 말이 많은 애라 여유 있을 때 통화하고 싶어서 그 애 이름을 확인하자마자 핸드폰을 뒤집어 놓았다. 진동이 몇 번 더 울리더니 끊겼다. 몇 초 뒤 짧은 진동이 규칙적으로 핸드폰을 흔들었다. 핸드폰을 들어 창을 들여다보니 막 도착한 카톡의 수가 빠르게 위로 올라갔다. 나는 카톡을 열어 메시지를 확인했다.


‘영이 언니 남편이 죽었대.‘


나는 동기에게 전화를 걸었다.


“무슨 소리하는 거야? 언니 남편이 죽었다니. 지난달에 연락했을 때만 해도 별일 없었는데.”

“모르겠어. 지난주에 상 치렀대.”

동기의 목소리가 떨렸다.

“너 보이스피싱 당한 거 아냐? 언니하고 통화한 거 맞아?”

“맞아. 언니한테 아침에 전화가 왔어. 나 좀 살려달라고. 무서워서 죽겠다고. 며칠째 잠을 못 자고 있대.”

“무슨 소리하는지 모르겠다. 일단 끊어봐.”


나는 영이언니에게 전화를 걸었다. 통화연결음이 길어지다가 전화가 끊겼다. 한 번 더 전화를 걸었지만 언니는 받지 않았다. 받지 못하는 것인지, 안 받는 것인지 알 수 없는 상황에서 내가 알 수 있는 건 하나도 없었다. 나는 언니와 통화하기 전까지는 아무것도 믿을 수가 없었다.


멀쩡한 남편이 하루아침에 죽었다니. 왜?

지난달까지만 해도 동기인 양의 생일을 축하한다며 먼저 단톡방을 울리던 그녀의 메시지가 눈에 아직 선한데 그런 엄청난 일이 불과 한 달 만에 벌어졌다는 게 너무나 이상해서 믿을 수 없었다. 결국 난 당사자와 통화하지 못했고, 메시지를 확인하면 전화 달라는 카톡만 보내놓았다.

나는 동기와 다시 통화했다. 동기의 두서없는 말을 조합해 보면, 언니 남편이 지난주에 죽었는데 그것이 본인이 선택한 죽음이고, 원인은 과도한 채무로 예상되나 확실하진 않다는 것, 그동안 남편의 소득으로 가정을 꾸리고 어린 두 아이들을 키워온 언니 입장에서 앞으로 살아갈 날이 막막하다는 것이다. 아이들의 나이는 여섯 살, 여덟 살. 이제 막 혼자 양치연습을 시작한 아이를 두고, 책가방을 매고 학교에 다니기 시작한 아이를 두고 죽다니. 죽었다니.


나는 언니의 남편을 몇 해 전 충주터미널에서 본 적이 있다. 우리 넷 중에 둘이 충주에서 살고 있어서 우리의 모임 거점은 주로 충주였는데 모임이 파할 시점에 그가 언니를 데리러 왔었다. 우리가 다가서자 반 발자국 물러서서 뒷머리를 긁적이며 작게 미소 짓는 그의 순진한 얼굴이 기억 속에 남아있다. 앞으로 톡 튀어나온 이마를 아이 둘이 똑 닮았구나, 마음속으로 생각하며 웃었었다.

언니는 그가 지나치게 가정적인 사람이라 때론 답답하다고 말한 적이 있다. 그가 집에서 엉덩이 붙일 틈 없이 수선을 떤다는 것이다. 설거지며 집안 청소, 아이들 케어까지 워낙 알아서 잘하기 때문에 언니가 할 일이 없다는 말을 나는 자랑 반, 투정 반쯤으로 치부했다. 그런 모범적인 남편이랑 살아서 얼마나 좋겠냐며 자랑 좀 그만하라고 눈을 흘겼었다. 그런 그가 죽었다니.


그다음 날 영이 언니와 연락이 닿았다. 나의 걱정과 믿을 수 없는 이야기의 출처를 되묻는 내 카톡에 그녀는 별다른 설명 없이 집으로 와달라고 했다.


토요일 저녁 나는 아이를 남편에게 맡기고 지하철을 탔다. 언니가 사는 아파트는 고층빌딩 사이, 대로가에 있었다. 언니네 애들이 좋아한다는 귤을 사가려고 마트를 찾았는데 주변에는 편의점뿐이었다. 가장 커 보이는 편의점에 들어가 장바구니 안에 바로 먹을 수 있는 것들을 담았다. 설렁탕, 미역국, 계란, 3분 짜장과 카레, 햇반과 바나나, 감기몸살약, 소화제.


“왜 이 동네에는 마트가 하나도 없어요? 여기 다 아파트 촌인데 이런 덴 처음 봤어요.”

눈 밑이 까만 초로의 편의점 주인이 내 얼굴을 보지도 않고 바코드를 찍는 데 열중하며 말했다.

“이 근방에 다섯 개 있었는데 다 망했어요. 하루에 손님 같은 분 다섯 명만 와도 나도 먹고살 만할 텐데 여기도 다들 천 원짜리만 사가요.”

“귤은 없어요?”

“아이 그런 거 안 팔려요. 어른들도 천 원짜리만 사간다니까.”


내가 알기로 이 동네 아파트값은 평균 15억이다. 그런데 귤이 안 팔린다니. 여기 사는 사람들은 집을 업고 이고 사는 빈털터리라는 건가? 가뜩이나 비극적인 일로 오게 된 이 동네의 얼굴이 너무나 차갑고 메말라서 불쾌해졌다. 귤을 살 수 없는 동네도 있다니.


불안감인지 불쾌함인지 알 수 없지만 디스토피아로 그려낸 미래의 서울에 갑자기 당도한 느낌이라 진땀이 났다.


언니 집엔 동생이 와있었다. 해사하게 웃으면서 날 맞이하는 동생의 얼굴을 보자 이 집에서 누가 죽었다는 게 더욱 믿어지지 않았다. 언니는 현관 옆에 붙어있는 작은방에 불도 켜지 않은 채 누워있었다. 나는 잔뜩 봐온 장을 식탁 위에 아무렇게나 부려놓고 언니가 누워있는 방에 들어가 옆에 누웠다.


“언니… 언니…”

나는 아무것도 믿을 수 없고 어떤 것도 알 수 없어서 언니 집에 왔지만 어두컴컴한 골방에 누워 눈을 감고 있는 언니를 보자마자 그의 죽음을 느낄 수 있었다.


언니의 몸은 차가웠다. 나무토막처럼 딱딱한 언니의 몸을 꽉 끌어안자 뜨거운 눈물이 내 깊은 어딘가에서부터 터져 흘러나왔다.


“지금 기도 좀 해줘. 나 너무 무서워. 내 손 좀 잡아줘. 나 좀 안아줘.”


언니의 떨리는 손바닥을 내 손안에 넣고 나는 기도했다. 밖으로 소리 내어 언니가 들을 수 있도록 기도할 수 있었다면 좋을 텐데 그건 내 능력 밖의 일이었다. 나는 성호를 긋고, 눈을 감고 나의 신이 알아듣지 못할까 봐, 내 말을 흘려들을까 봐 또박또박 안으로 크게 그녀의 이름과 아이들의 이름을 불렀다. 지금 이 순간 이 가정을 특별히 지켜달라고 그녀가 잠들 때 무섭지 않게 제발 함께 머물러 달라고 신에게 매달렸다.


거실에는 아이들이 투닥거리며 색종이로 무얼 접고 있었다. 들어올 땐 경황이 없어 보지 못했던 집을 찬찬히 둘러보았다.

현관에는 뉴발란스 남자 운동화가 흐트러진 채 서로 다른 방향으로 아무렇게나 놓여있었고, 언니가 누워있는 방 한 구석 데스크엔 주식과 투자, 회계원리에 관한 책들이 쌓여있었다.

그리고 화장실 거울에 붙어있는 곰 모양 칫솔 네 개. 엄마곰, 아빠곰, 아이곰 1, 아이곰 2.

면도날이 아직 반짝이는 면도기도 화장실 거울 옆 정리대 위에 비뚜름하게 놓여있었다. 그의 흔적이 너무도 많이 집안 구석구석 남아있었다. 없어진 건 사람뿐. 만화처럼 하얗게 삭제된 채로 사람만 없어졌다.


나는 기운이 없어서 일어나기 어렵다는 언니에게 이불을 덮어주고는 다시 거실로 나왔다. 빨래통에 쌓인 옷들과 개수대에 널린 그릇들, 방 안에 다 개켜지지 않은 채 널브러진 옷들이 눈에 들어왔다. 아이들이 간간히 웃는 웃음소리, 서로를 가볍게 통박 주는 소리가 서글프게 들렸다.


나는 애들과 종이접기를 하고, 아이들의 어설픈 마술쇼를 보고, 같이 유튜브를 보다가 언니의 부름에 방으로 다시 들어갔다. 언니는 자기를 안아달라고만 했다.


“언니 지금 제일 필요한 게 뭐야? 당장 끼니 걱정을 해야 하는 거야?”

나는 미루고 있던 말들 중에 제일 묻고 싶은 말을 골라 물었다.

“모르겠어... 장례 치르고 돈이 좀 남았어.”


아, 죽었구나. 그가 죽었구나. 언니가 장례를 말했다. 처음으로 그의 죽음이 언니의 입을 통해 말해졌다.


“언니 일단 밥을 먹을 때가 되면 밥을 먹고 잠을 자야 할 땐 잠을 자. 그게 지금 언니가 할 일이야. 조금만, 조금만 있다가 다른 건 생각하자.”


나는 언니를 안고 그 말만 했다. 아직 어른 손이 필요한 어린아이들을 두고, 밀린 설거지와 쌓인 빨랫감을 내버려 두고 어떻게 애도의 시간을 고요히 보낼 수 있겠는가. 나는 불가능하다는 건 알지만 그것만이 그녀에게 지금 필요하다고 말했다. 그렇게 말을 해야 해서 말했다. 언니는 대답이 없었다.


“오늘 자고 갈 거지?” 하는 언니 말이 뒤통수에서 울렸지만 나도 엄마였다. 집에 나를 기다리는 어린아이가 있었다. 들어가야만 했다.


언니의 떨리는 몸을 붙잡고, 텅 비어버린 눈을 감겨주고 함께 잠들면 좋을 텐데. 이 무정하게 까만 밤을 언니는 어떻게 또 지새울까 걱정이 되었다.


어떻게 해야 할까.

어떻게 살아야 할까.

언니는 무얼 의지하고 앞으로 나아가야 할까.

불빛 하나 없는 깜깜한 어둠에 순응하며 조금씩 드러나는 삶의 윤곽을 따라서 더듬더듬 살아가야겠지.


“다녀올게.”

“아빠 다녀오세요.”

“여보 잘 갔다 와.”

“아빠 안녕.”


안녕…(영원히). 오늘 영원히 안녕일 줄 모르고 그의 뒤통수에 대고 어제와 오늘이 다르지 않게 무심히 인사했을 언니의 모습이 눈앞에 그려졌다.


’ 오늘도’ 다녀오겠다는 말을 하고 현관문을 열고 나간 남편이 그날은 들어오지 않는다는 것, 이제는 영영 그 문으로 들어오지 않는다는 것을 어떻게 그녀가 받아들일 수 있을까. 나는 그런 것들을 생각하자 정신이 아득해져서 눈이 흐려졌다.


남편의 체취와 손때 묻은 것들이 도처에 널린 이 집안에서 어떻게 1분 1초를 보낼 수 있을까. 언젠가 그의 짐을 그녀의 손으로 정리해야 할 시간이 올 것이다.


커다란 박스를 구해서 그 안에 그의 낡은 운동화를 넣고, 그가 러닝할 때 입었던 츄리닝과 목이 늘어난 티셔츠들을 넣고, 닳아빠진 칫솔과 전동 면도기를 넣고. 박스가 가득 차도록 담고 또 담아내다 버려도 그 집에서 살다 보면 그와의 추억이 담긴 물건은 팝업창처럼 언제고 다시 나올 것이다. 내 남편과 영 관련 없는 물건이랄 게 집에 있을까 싶기도 하다. 그녀는 이런 시간을 통과해야만 한다.


나는 그녀 곁에서 며칠간 머물며 남편의 죽음을 애도할 시간을 주고 싶었다. 아이들을 돌보고 집안일을 하고 집안이 돌아가기 위해 반드시 해야만 하는 것들을 곁에서 해주면서 언니가 오롯이 홀로 통과해야만 하는 시간들을 지켜주고 싶었다.


생명은 언젠가 필멸이라지만 우리는 죽음을 염두에 두고 살지 않기에 언니가 남편의 죽음을 받아들이는 데는 오랜 시간이 걸릴 것이다. 어쩌면 애도의 시간은 한참 후에 가져야 할지 모른다. 입에 뭐라도 넣어주기를 바라며 허리춤에 매달리는 아이들을 두고서 어떻게 애도의 시간을 갖겠는가. 당장 어떤 일을 해야 할지, 갚아야 할 빚은 얼마인지, 집을 처분하고 그가 남긴 채무를 정리하면 얼마나 손에 쥘 수 있을지 생각하고 결정해야 하는 일들이 숨 막히도록 눈앞에 당도해있는데 어떻게 내 슬픔에 짓눌려 생활을 방치할 수 있을까.


나는 창자가 끊어질 듯한 고통과 슬픔에도 몸을 일으켜 어른으로서 해야 하는 일은 해야 하기에 동사무소를 가고 은행을 가야 하는 현실이 이상하고 비정하게 느껴졌다.


아이들이 씻고 양치하는 것을 도와주고, 잠자리를 봐준 뒤에 10시 반쯤 언니 집에서 나왔다. 바깥에는 술 취한 사람들이 느슨한 토요일의 밤을 붙잡고 있었다. 이렇게 평범한 날에, 그날이 그날인 어느 토요일에 불빛이 작게 비치는 저 작은 창 안에 사는 사람 중 누군가는 가족의 황망한 죽음 앞에 애도의 시간도 제대로 치르지 못한 채 텅 비어버린 눈으로 천장을 바라보며 내일 뜰 아침 해를 벌벌 떨며 기다리고 있다는 것, 나는 그것을 이해해야 한다는 게 몹시 어려웠다. 어른이라서 슬프고 어렵고 고통스러운 날이다. 이렇게 평범한 날인데. 너무나 평범한 토요일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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