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나의 수련

by ondo

요즘은 나를 관통하는 에너지에 대한 생각을 한다. 나와 타인, 나와 세상에 흐르는 에너지와 주고받는 기운이라든가 밸런스가 잘 잡힌 삶에 대하여.


어렸을 땐 순도 100%의 행운을 기다렸다. 이를테면 이런 거다. 공부를 조금밖에 안 했는데 운 좋게 공부한 부분만 시험에 나와 1등을 한다든가, 매일 가던 길을 걷다가 괜히 들러본 복권방에서 산 복권이 1등에 당첨된다든가, 나는 회사에서 성실히 복사를 하고 윗사람의 심부름을 했을 뿐인데 마침 우리 부서를 지나가던 사장님이 나를 잘 봐서 좋은 자리에 앉힌다든가 그런 만화 같은 일이 일어나기를 바랐던 것 같다.


나조차도 알지 못하는 내 안의 좋은 씨앗을 발견해 물을 주고 잘 가꿔 꽃을 피워줄 누군가를, 타이밍과 기회를 기다리며 잠 못 드는 날들이 분명 있었다. 나의 어떤 노력 없이 투자 없이 문득 찾아올 행운을 말이다. 내게도 언젠가 좋은 기회가 올 것이고, 행운이 따를 것이라는 믿도 끝도 없는 희망에 헛배 부르듯 마음이 부풀 때가 있었다.


그런데 살면 살수록 기회라는 건 내가 알아볼 수 있어야 잡을 수 있다는 걸 알아가는 중이다. 또 이미 오랜 시간 갈고닦고 수련하여 그 기회를 탈 수 있을 만한 실력도 있어야 한다는 것을. 수련하는 시간이 길고 지루할수록 기회가 왔을 때 잡을 수 있는 확률이 커지고, 폭발력도 커진다는 것도.


나를 포함해 많은 사람들이 이 부분을 간과하고 중도 포기하는 것 같다. 본인이 포기하는 것이 무엇인지도 잘 모를 수도 있다. 왜냐하면 수련의 기간은 지루하고 길 뿐더러 고통스럽기 때문이다. 앞이 보이지 않으니까.


만일 절대자가 꿈에 나타나 네가 3년만 고생하면 내가 너의 소원을 다 들어주마, 하고 약속을 한다면, 아무리 힘들어도 그 시간을 버틸 수 있겠지만 어떤 확신도 없이 그 깜깜한 길을 매일 걷는다는 건 매우 불안한 일이다.


같은 일을, 같은 시간에, 매일 지치지 않고, 꺾이지 않고 한다는 것은 쉬운 일이 아니다.

공부도, 체력관리도, 다이어트도, 각종 금융 투자도, 독서도, 글쓰기도, 식이도, 기도도... 숨을 쉬듯, 내가 하는지도 모르게 매일 하는 것, 그리고 그 마음을 꾸준히 유지한다는 것은 어렵다. 그래서 목표를 이루고, 그것을 삶 내내 부침을 겪더라도 유지하는 사람은 매우 소수일 수밖에 없는 것 같다.


나에게도 인생의 항로를 틀 만한 기회가 몇 번 있었다. 대학생활 내내 준비했던 방송기자가 될 뻔한 기회가 2번이나 있었고, 주식 투자로 큰돈을 벌 기회가 있었고, 독일계 자동차회사에 좋은 조건으로 입사할 기회가 있었다.


손을 뻗으면 닿을 만한 아주 근접한 기회였다. 그런데 나는 그 기회들을 모두 놓쳤다. 당시에는 운이 없어서, 세상이 나를 알아보지 못해서 기회를 잡을 수 없었다고 온 동네방네 떠들고 다녔다. 그런데 그때 나는 정말 단지 운이 없어서, 사람 볼 줄 모르는 ‘덜 떨어진’ 인간들 때문에 기회를 빼앗긴 걸까?


결코 아니다.


내가 몰입하는 대상에 투입한 에너지가 적어서 기회가 나를 지나친 것이다. 목표에 닿기 위해 썼던 에너지의 총합이 모자랐던 것이다. 목표 지점으로 향하는 첫 관문은 어쩌면 운이 좋아 통과할 수 있지만 두 번째, 세 번째 문이 좁아질수록 내가 가진 밑천은 드러나기 마련이다.


그간 수련의 시간이 부족하고 수련의 질이 떨어졌기 때문에 나의 가난한 밑천이 드러날 수밖에 없고, 내게 온 기회를 결국 놓쳐버린 것이다. 스무 살도, 서른 살도 마흔의 눈으로 세상을 볼 수 있다면 얼마나 좋을까? 왜 스무 살은 꼭 스무 살이 겪는 것을 다 겪어야 서른이 되고 마흔이 되는 것일까. 나의 이야기다.


나는 가진 에너지가 작은 사람인 것 같다. 움직임도 작고, 목소리도 작고, 분노나 기쁨, 슬픔이나 고통도 밖으로 출력되는 힘이 크지 않아서 안팎이 잔잔한 타입이다.

어떤 일을 할 때 차분하게 해 나갈 수 있지만 장시간 집중해야 하거나 가진 에너지를 쏟아부어야 하는 타이밍이 매우 버겁게 느껴진다.


그래서 목표지향적이고 전투적인 자세로 인생을 살아가는 사람들을 보면 부럽고 닮고 싶어서 좀 따라 해 보다가 몸살이 나서 포기하고 만다. ‘나는 원래 이런 인간이라 뭘 이루기 쉽지 않겠구나.’라고 생각했던 시간도 있었다.


그런데 이번에 작가 김영하의 <단 한 번의 삶>을 읽고 위로를 받았달까, 다시 무언가를 시작하는 힘을 얻었달까, 아무튼 좋은 에너지를 받았다. 어느 페이지에 이런 내용이 나온다.


작가는 작가가 되기 전까지 단 한 번도 ‘너 작가해야 되겠다.‘라는 말을 누구에게도 들어본 적이 없다고 한다. 그리고 지금도 본인이 글을 잘 쓴다고 생각하지도 않는다고 한다. 그냥 쓰다 보니, 계속 쓰다 보니 어떤 우연한 기회에 작가가 되었다고 하는 내용이 내가 주목한 부분이다.

작가가 된 계기가 쓰는 게 좋아서 그냥 매일 쓰다 보니, 어쩌다 보니 쓰는 게 일이 되었다고 하는 것이 놀라웠다. 그렇다고 글쓰기에 재능이 전혀 없는 사람이 뭐라도 쓴다고 작가가 되는 것은 아니겠지만 김영하 작가 같은 스타 작가도 그저 매일 무언가를 계속 반복하는 것이 중요하다고 하니까 그것이 수련의 다른 이름 아닌가 생각이 든 것이다. 그도 자신도 모르는 사이에 오랜 시간 갈고닦은 것이 세상에 드러날 기회를 만난 것이다.


나는 직장에서 최소한의 것만 한지 오래되었다. 내 일은 1년의 루틴이 있는 일이고, 급여도 많지 않고, 성과를 내는 일이 아니기에 내 몸을 사리되 빵꾸나지 않는 선에서 욕먹지 않는 정도의 최소한의 일만 하고 있다.


문득 이런 생각이 든다. 직장에서, 아니면 다른 회사에서 어떤 기회가 운 좋게 내게 왔을 때 또다시 놓쳐도 억울해하지 않을 것 같다고. 왜냐하면 나는 최소한의 일만 해왔으니까. 미니멈의 에너지로 맥시멈의 아웃풋을 바란다는 건 도둑놈의 심보일뿐더러 여차저차 그렇게 되더라도 언젠가 어디에선가 탈이 나게 되어있다는 것을 지금은 안다. 세상사 인간사 돌도 도는 에너지가 그런 것 같다.


나는 직장에 바라는 것이 없다. 지금처럼 매월 25일에 월급이 나오면 되고, 좋은 동료들과 막간을 이용해 한 번씩 떡볶이 같은 간식을 먹으며 상사 흉을 보고 수다를 떠는 것, 매우 루즈하게 직장생활을 하는 것이 내게는 나쁘지 않은 선택이라고 생각한다.


살아있는 것의 에너지라는 것은 총합이 있고, 어떻게든 밸런스가 맞춰진다는 걸 아니까. 내가 돈을 벌기 위해 시간과 에너지를 무리해서 투자하면 건강에 문제가 생길 수 있고 가족과 보내는 시간이 줄어들고 읽고 쓰는 시간이 줄 것이다.

그런데 지금처럼 설렁설렁 밥벌이를 하면 몸과 마음의 평안은 지킬 수 있고, 가족들과도 저녁 있는 삶을 가질 수 있다. 하지만 드라마틱한 미래는 영영 없는 것이다. 이건 나쁜 선택만은 아니다. 어쩌면 게으른 자의 괜찮은 타협 아닌가!


미래에 내가 잡고 싶은 기회는 대중 앞에 나의 글을, 구체적으로는 소설을 내놓는 일이다. 내가 요즘 매일 하는 일은 읽고 쓰는 일이니 언젠가는 좋은 기회가 올 수도 있고, 아닐 수도 있다. 꼭 작가가 되기 위해 쓴다기보다 나는 오래전부터 책을 좋아해 왔고, 글을 끄적이는 걸 해왔으니까 그저 매일 그 일들이 쌓이다 보면 어느 우연한 기회를 만나지 않을까, 하고 꿈꾸는 것이다.

벌써 브런치에도 100개가 넘는 글을 썼으니 에너지가 한 곳에 고이고 있다고 나는 믿는다.

나처럼 게으르고 저급 체력을 가진 자가 읽고 쓰는 일이 지치지 않는 일이라 다행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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목, 금 연재