김동률 콘서트- 故서동욱을 기억하며
오랜만에 김동률 콘서트를 다녀왔다. 몇 년만인가. <동행> 앨범이 나왔을 즈음 간 게 마지막이니까 아마 10년이 넘은 것 같다. 나는 그를 무척 좋아해서 고등학교 때부터 그의 콘서트를 다녔다. 그를 향한 내 팬심이 정점에 이르렀을 땐 그가 초대 가수로 나온다는 소문만 듣고 패닉 콘서트를 예매할 정도였다. 그를 단 10분, 20분 보기 위해 경기 외곽에 살던 고등학생이 교복을 입고 혼자 두 시간여를 지하철을 타고 서울에 가는 건 다소 무모한 용기가 필요한 일이었다. 그땐 어떤 열정이 나를 그토록 용기 있는 사람으로 만들었을까.
아마 나는 동률 군을 추앙했던 것 같다.
공연이 시작되고 거대한 장막 뒤에서 다시 사랑한다 말할까를 부르는 그의 목소리를 듣고 가슴이 뭉클해졌다. 그는 변하지 않았구나 역시 그대로구나 싶어서.
막이 열리기 전까진 그랬다.
장막이 걷히고 흰 셔츠에 단정한 슈트를 입은 그가 등장하자 나는 눈밑이 뜨거워져서 마냥 환호할 수 없었다. 그는 머리숱이 (아주) 조금 줄었고 팔다리 근육도 조금 빠진 것 같았다. 나의 동률 군도 늙는구나. 나도 늙고 그도 늙고 함께 늙어가는 거구나, 생각하니 마음이 울렁거렸다. 그의 나이 듦에서 나의 30년이, 그의 30년이 스쳤다. 우린 왜 지나간 시간 앞에서 가끔 이렇게 아득해지는 걸까. 노래는 끝났지만 나는 박수를 쳐야 하는 타이밍도, 환호할 타이밍도 놓친 채 망연히 그를 바라보았다. 무슨 마음인지 설명하기 어렵다. 조금 더 시간이 지나고 나이가 들면 알게 되는 마음일까.
그의 말대로 콘서트를 한두 번 더 하면 그도 환갑이다. 윤상이, 신해철이 다정히도 부르던 동률 군이 동률 옹이 될 날이 오고 있다. 그 세월은 누가 야금야금 다 먹어버린 건지.
나는 그를 초등학교 때 mbc 대학가요제에서 처음 보았다. 전람회라는 이름도 어려운 팀명으로 등장한 그가 피아노 앞에 앉아서 가사도 시적인 노래를 열창할 때 나는 그의 영원한 팬이 되리라 생각했다. 당시 나의 꿈은 품위 있고 세련된 어른이 되는 거였다. 교양 있는 어른이 되고 싶은 내게 김동률은 교양인의 표본처럼 보였다. 재즈풍의 피아노를 치고 마니악한 영화광에 만화책도 즐겨보는 책벌레이자 여행자. 내겐 그런 이상한 사람이 이상형이었으니 <꿈속에서>를 부르는 그를 보자마자 빙고를 외쳤다.
김동률은 언젠가 故서동욱은 잘하는 많은 것들 중 하나가 음악이고, 본인은 잘하는 것이 음악뿐이라 가수가 되었다고 했지만 나는 동의하지 않는다. 그가 글쓰기를 업으로 하는 사람이 되었대도 분명 좋은 글을 썼을 것이다.
내가 그를 좋아하지 않았다면 밥 딜런이 어떻게 노벨문학상을 받을 수 있는지 좀처럼 이해하지 못했을 것 같다.
나는 당시 기억의 습작이 무얼 뜻하는지도 모르면서 그의 노래를 흥얼거렸다. 나는 그런 사람을 좋아하는 나 자신이 흡족했고 스스로 도취되었던 것 같다. 단지 교양 있는 어른을 흉내 내고 있는 것뿐이라고 해도.
클래시컬하고 어쿠스틱한 연주와 아름다운 가사, 낮고 풍성한 그의 음성. 장인이 오랜 시간을 들여 아주 정성스럽게 만든 홈메이드, 핸드메이드 작품 같은 그의 노래들.
아들이 가끔 길 위에서, 해변가에서 제 눈에 띄는 가장 예쁘고 아름다운 돌만을 신중히 주워 내게 건넨다. 그의 노래는 내게 그런 어여쁜 보석돌 같다. 귀한 마음으로 준 것을 알기에 소중하게 받을 수밖에 없는 그런 마음이 든다.
앙코르 타이밍에 故서동욱의 흑백 사진과 함께 소중한 벗을 멀리 보낸 그의 메모가 화면 하단에 비쳤다. 그때 김동률이 피아노를 치며 불렀던 그 노래는 전람회의 무슨 노래였던가. 그의 노래가 처음으로 배경음악이 되었다. 서동욱은 세상사와 아주 관계없는 무구한 얼굴로 우릴 바라보며 미소 짓고 있었다.
아, 이 콘서트는 서동욱 헌정이구나.
나는 불현듯 그런 생각이 들었다. 4년 만에, 5년 만에 한 번 콘서트를 여는 동률 군이 단 2년 만에 이 콘서트를 급히 준비한 이유가 그의 오랜 벗 때문이 아닌가 그런 생각이 스쳤다.
그가 사람들에게 성급히 잊히기 전에, 그를 보내는 그의 마음이 희미해지기 전에 그에게 헌정하고 싶은 마음이 그를 이 무대에 서도록 이끈 것이 아닌지.
김동률의 음악은 내게 만남이고, 이별이고, 시작이고 또 끝이다. 나의 모든 것이 그의 음악과 함께였다.
조금 더 늙어서 다시 보자는, 오랜만에 만난 친구처럼 그렇게 다시 반갑게 만나자고 하는 그의 마지막 인사에 나는 고개를 작게 끄덕이며 장막 뒤로 사라지는 그를 오랫동안 바라보았다.
좀처럼 여운이 가시지 않는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