지난여름엔 소돌해변으로 휴가를 다녀왔습니다. 그곳에 서식하는 어종은 다양하진 않았는데 생전 제 눈으로는 처음 보는 것들이라 그저 바라만 보고 있어도 재미가 있더라고요.
잘생긴 사람을 두고 보기만 해도 유잼이라는 말이 있듯, 아름다운 물살이들을 보니 그 자체로 대유잼! 이더군요.
남편이 제게 히키코모리 같다고 놀리면서 멀찍이서 사진을 찍었는데 나중에 그 사진을 보니 한 정신 나간 여자가 홀로 바닷물에 몸을 담근 채로 물 아래를 들여다보고 있었어요. 마치 돈이나 다이아몬드 반지라도 찾는 사람처럼 뚫어지게 바닷속을 들여다보고 있는 모습이었습니다.
다음에 여름휴가를 바다로 가신다면 주위 사람들을 한번 관찰해 보세요. 저와 같은 유형의 인간들이 분명히 있습니다. 가족들, 친구들, 연인과 함께 온 사람들 대부분 함께 물놀이를 즐기고 있지만 개중에 한둘은 무리에서 빠져나와 그야말로 외톨이처럼 생물을 찾는 데 몰두하고 있을 겁니다.
혼자 뜰채를 쥐고 파도를 온몸으로 부딪치며 뭐라도 건져보려고 바닷속으로 저벅저벅 들어가는 아기 엄마와 가족들을 멀리한 채 물안경을 쓰고 바다생물들을 찾아보려고 채집에 몰두하는 중년 남성을 저는 분명히 보았습니다. (동족을 만나니 외롭지 않았어요.)
학꽁치, 복어를 바다에서 본 적이 있으신가요?
학꽁치는 몸빛이 투명한 에메랄드 색입니다. 떼를 지어 다니는 학꽁치들이 지나갈 땐 바닷물이 순식간에 초록빛 물감으로 번지듯 반짝여요. 헤엄치는 속도도 방향 전환도 어찌나 빠른지 잡기는커녕 눈으로도 놓치기 일쑤더라고요.
새끼복어는 수영엔 재능이 없어 보였습니다. 물살이가 헤엄치는 재주가 없다는 건 인간이 걷는 데 재주가 없다는 것과 일맥상통하는 말이 아닐까 생각하니 웃음이 나더군요.
멀리 갈 것도 없이 서있는 자리에서 커피컵으로 물을 퍼올려도 몇 마리씩 들어오더라고요. 최상위 포식자인 인간 앞에서도 잡을 테면 잡아봐라, 하는 오만한 여유가 느껴진달까.
바다생물에 대한 지식이 전혀 없어도 복어가 수영엔 재능이 없겠구나, 하는 생각이 들 수밖에 없습니다. 물살을 헤치고 나가야 하는 머리 부분이 일단 뭉뚝하거든요. 옆에서 보면 역삼각형으로 생겼어요. 날렵함과는 거리가 있어 보입니다. 역시 독이 있으니 그렇게 진화한 거겠죠. 헤엄치는 속도도 느리고 유영하는 몸짓도 잔망스럽습니다. 지느러미 사이즈도 귀여운 수준이에요. 아기 손톱만 한 녀석인데 자기도 복어라고 오목한 손바닥에 들어 올리니 몸을 공처럼 부풀려 제가 약이 바짝 올랐으니 조심하라고 경고합니다.
겨울 코트와 트렌치코트를 두고 옷장 앞에서 오늘은 무얼 입을까 고민하는 입동 초입에 저는 왜 여름을 다시 기억하는 걸까요.
시간을 따라가는 게 점점 버겁게 느껴져서 그런 것 같아요. 나이가 들수록 시간의 냉정한 얼굴을 봅니다. 저는 누구의 인생의 성쇠에도 아랑곳하지 않고 제 갈길을 가는 시간이 제일 무섭다고 느껴집니다. 오죽하면 시간을 돈으로 사는 영화가 만들어질까요? 유한한 삶 앞에서 시간만큼 의미 있는 것도, 무서운 것도 없다는 걸 많은 이들이 이미 알고 있는 거겠죠.
시간은 누군가 부주의하게 팔꿈치로 쳐서 식탁 아래로 뚝뚝 흘러내리는 컵에 든 우유 같기도 하고, 손 쓸 새 없이 신발 속에서 구멍이 난 양말 같기도 합니다. 황당하리만큼 빠르고 정신이 없어서 지금 타자를 치는 저도 현실의 저인지 꿈속인지 헷갈릴 판이에요.
내가 지금 숨 쉬고 글을 쓰는 이 시간이 진짜 현재일까? 시간은 선형적으로 흐르는 것이 맞는가? 시간에 대한 의문이 이어집니다. 그래서인지 영화에서 평행이론을 보면 조금 위로가 되기도 합니다. 어딘가 다른 우주에서 또 다른 수많은 내가 각기 다른 모습으로 살고 있을지 모른다는 이야기가 때론 부활의 믿음보다 더 달콤하게 들리기도 합니다.
글은 기록이 되지요. 저는 예전에 쓴 글을 다시 보는 일이 많진 않습니다. 글은 볼수록 아쉬운 부분이 보이니까 서랍에 넣어두는 게 마음이 편해요. 그래도 과거의 제가 했던 일과 생각, 마음들이 글로 남아있다는 건 살아가는 데 적잖은 위안이 돼요. 이미 지금의 나는 과거의 나와는 다른 사람이 되었지만 어딘가 조각으로라도 나의 흔적이 남아있다는 건 제 유한한 삶에 위안이 됩니다.
글은 그런 매력이 있는 것 같아요. 저는 미래의 저를 위해 글을 다시 씁니다. 새로운 계절을 건너며 그때
그때 쓰고 싶은 것들을 쓰려고 합니다.
저와 글로 만나는 모든 분들의 시간에도 작은 위안이 되기를 바라며.