오늘 아이의 이가 빠졌다.
분홍빛 도랑에 오종종하게 떠 있는 옥수수 알갱이 같은 아랫니들 중 이이-하고 입을 벌리면 제일 먼저 보이는 이가 며칠 흔들거리더니 마침내 오늘 아이의 손에 뽑혔다.
“엄마, 이빨이 흔들려.”
아이가 내게 말할 땐 이미 이의 뿌리가 어느 정도 뽑혀나간 상태였는지 아들이 흔드는 방향대로 별 저항 없이 흔들렸다. 나는 “얼마 안 가 뽑히겠네, 그 이빨. “이라고 말했는데 아이의 할아버지는 이 방 저 방을 드나들며 “실을 어디에 뒀더라.”하고 수선을 부렸다.
“할아버지가 이빨에 실을 묶어서 이마를 탁 때리면 금방 빠지지. 가만있자. 실이 어디에 있더라.”
아이는 할아버지의 이야기에 진저리를 치며 내 가슴팍에 파고들었다.
”히잉, 싫은데. “
“아니야. 하나도 안 아파. 그거 빠지면 지붕 위에 던져서 튼튼한 새 이빨 달라고 빌어보자.”
ai와 인간의 평화로운 공존 방법을 논하는 무려 2025년에 이토록 전근대적인 발치 방법도 받아들이기 벅찬데, 27층 아파트에 지붕이라니, 어디서 던져야 27층까지 이빨이 닿는단 말인가. 그건 오타니가 와도 안 될 말인데. 그리고 새 이빨이 나려면 누구에게 꼭 빌어야 한단 말인가, 이게 뭔 아이폰 보상 판매도 아니고.
나는 이런저런 생각을 하며, “아버님, 거의 뽑힌 것 같아요. 금방 빠질 것 같으니 그냥 두셔도 돼요.”
시아버지는 흔들리는 이를 걸리적거리게 두고 보냐며 금방 끝나니 당신이 손수 해주겠다고 하셔서 식구들 사이에서 몇 차례 옥신각신 말이 오갔지만 결국 아이가 눈물을 보이자 뒤로 물러서셨다.
나는 초등학교에 들어가서야 이가 빠지기 시작했다. 이가 흔들리는 건 성장 과정의 하나인데 그때는 내가 마치 아픈 것처럼, 어디가 몹시 불편한 환자처럼 느껴졌었다.
흔들리는 이를 기어코 뽑고 말겠다는 마음으로 화장실 거울 앞에서 입을 벌린 채 그 이를 앞뒤로 마구 흔들었다. 가족 중에 누가 화장실에 가야 한다고 소리치는 소리를 듣고서야 밖으로 나올 정도로 다소 집요하게 이를 흔들었던 기억이 난다.
팔이 아프도록, 턱이 얼얼하도록 한 자세로 거울 앞에 붙어 서서 불완전한 이를 사정없이 흔들었다. 그 이에 벌을 주듯 매정하고 사정없이 흔들어댔다. 내게 이빨이란 건 내 뼈처럼, 손가락, 발가락처럼 원래 붙어있는, 붙어있어야만 하는 것인데 흔들리다니!
이가 흔들린다는 건 내 세계의 일부가 흔들리는 일이었다. 신체가 없다가 생기는 건 불안하지 않으나 있다가 없어지는 것, 특히 없어지는 과정을 생생히 겪는다는 건 여덟 살이 된 내게 매우 괴상한 일이었다.
나는 이틀을 이 흔들기에 매진하여 마침내 이를 뽑아 들고 밖으로 나와 당시 우리 가족이 살던 빌라 지방 위로 힘껏 던졌다.
“이거 갖고 예쁘고 튼튼한 새 이빨 줘.”
나는 빌라 4층 위를 덮은 지붕을 향해 힘껏 이빨을 던졌지만 무게도 거의 나가지 않는 작은 이가 거기까지 닿았을 리 없다. 아마 내가 서있던 자리에서 멀지 않은 어딘가에 도로 떨어졌을 것이다.
그래도 나는 그 이를 다시 찾지 않았다. 그 절차는 새 이빨을 갖기 위해 꼭 해야 하는 절차이지만 어느 정도 요식 행위에 불과하다는 걸 그 나이 때에도 알았으니까. 이만하면 정성스러운 ‘청원’이었다고 판단하고 안심했던 것 같다.
그때는, 그 나잇대에 이가 빠진다는 게 어떤 의미가 있는지 잘 몰랐다. 어른들이 그저 빠질 때가 되어 빠진 거고, 새 이가 날 거라고 이야기하니 그런가 보다 했었다. 그런데 내가 아이를 낳아 키우고 보니 이가 그맘때, 또래의 이가 빠질 때 내 이도 빠진다는 건 큰 의미라는 걸 알게 됐다.
이가 빠진다는 건 성장의 커다란 치레인 것이다. 이가 빠지면 학교에 갈 준비가 된다는 것이고, 의자에 앉아서 책을 보고 공부를 할 준비가 된다는 것이고, 손이 더 야물고, 엉덩이에 힘이 생기고, 발끝의 기운도 세진다는 것이다.
“우리 아기, 이제 아기의 시간이 끝나고 있네.”
나는 아이의 빠진 이를 손바닥에 놓고 내려다보며 아이에게 말했다. 아이는 내 말에 시무룩해졌다.
“왜? 섭섭해?”
아이는 고개를 작게 끄덕이며, “계속 아기이고 싶은데.”라고 말했다.
나는 아이의 등을 쓸어내리고 머리를 쓰다듬으며, 형님이 되면 훨씬 더 깊고 넓은 세계가 보이는데 거기서 네가 할 수 있는 일들이 많아져서 정말 재미있을 거라고. 이가 빠지면 모험의 세계가 시작되는 거라고 말했다.
아이는 계란프라이 모양의 동전지갑 속에 들어있던 두세 개의 보석돌을 바닥에 털어내고, 한때 자기와 한 몸이었던 그 이빨을 조심스럽게 들어 지갑 안에 넣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