나는 빈말을 잘한다. 빈말이라고 해서 알맹이가 전혀 없는 텅 빈, 공허한 말을 남발하는 건 아니고 상대방의 외모나 기분, 컨디션 변화를 놓치지 않는 편이다.
직장 동료가 머리를 염색해서 새치가 사라졌거나 피부에 윤기가 돈다거나 하면 지나가는 말로,
“오늘 더 건강해 보이십니다.”라고 말하고는 엄지를 치켜든다. 물론 오랜 시간 상대방과 내적 친밀감이 쌓여야 할 수 있는 말이다.
요즘엔 칭찬일지라도 타인의 외모에 관심을 표하는 것 자체가 듣는 사람에 따라 평가로 받아들일 수 있으니 외모보다는 상대방의 취미라든가 태도, 그에게 새로이 발견한 재능과 같은 주제에 ‘빈말’을 얹곤 한다.
“마음이 어떻게 그렇게 고와요?”
“러닝을 어떻게 3년이나 꾸준히 할 수 있어요? 부지런하시고 의지도 대단하시네요.”
“손끝이 야무지다. 요즘 이렇게 꽃자수를 손수건에 놓는 사람이 어디 있어? 금손이 내 옆에 있었네.”
완전히 빈말은 아니다. 알맹이가 반쯤은 찬 말인데 그 안엔 ‘나는 당신이 좋아요.‘, ’ 나는 당신에게 호감이 있어요.’라는 진짜 마음이 숨어져 있다.
빈말을 하고 나면 나도 기분이 좋아진다. 상대에게 대가를 바라지 않는 좋은 말, 동글동글하고 예쁜 말은 내 마음의 결도 곱게 쓸어주는 느낌이 든다.
작년 늦가을, 회사에서 연수를 다녀왔다. 이번 연수에는 정년퇴직한 임직원들이 초대되었다. 각 지역에서 수십 년간 근속하고 퇴직한 직원들과 작별 인사를 나눌 기회가 없어 내심 섭섭했는데 조직 내에서 인간사 ‘정‘까지 마음을 쓴 사측에 무척 고마운 마음이 들었다.
숙소에 도착해 2인 1실로 배정된 방에 들어가니 사람은 없고, 창가 옆 책상 위에 커다란 산악용 배낭과 옆가방, 벙거지 모자가 놓여있었다.
의자 등받이에 걸쳐진 짙은 붉은색 코오롱 윈드브레이커, 검은 뜨개 꽃이 옆면에 달린 보랏빛 울 니트 벙거지 모자, 옆가방 지퍼가 열린 틈으로 보이는 종합비타민과 둥근 플라스틱 약병들.
나는 룸메이트가 퇴직한 직원이라는 걸 직감했다.
때마침 문을 열고 나를 향해 함박웃음을 보이는 얼굴, 춘심 씨!
나는 그녀와 손을 깊숙이 맞잡고 요란스럽게 악수를 했다.
“선생님, 잘 지내셨어요?”
“나야 잘 지내지. 자기 오랜만에 보네. 잘 지냈어?”
“저도 잘 지냈죠. 선생님 퇴직하셨다는 소식 듣고 섭섭했는데 이렇게 뵈니까 너무 좋아요. 오늘 잘 오셨어요.”
“나이 든 사람이 끼면 분위기만 흐리는 거 아닌가 해서 올까 말까 고민했는데 잘 온 건가?”
“무슨 말씀이세요. 다들 선생님 보고 싶다고 생난리였어요. 정말 잘 오셨어요.”
춘심 씨는 어색하게 웃으며 내 손등을 가볍게 두드렸다.
나는 3일간의 연수 일정 내내 춘심 씨와 붙어 다녔다. 그녀가 젊고 새로운 직원들의 활력에 위축되지 않길 바랐고, 어느 순간에라도 발생할 수 있는 어색한 분위기나 경직된 시간을 본인의 탓이 아닐까 검열하거나 판별하지 않길 바랐다.
일정에 따라 대절된 버스를 타야 할 때도 나는 그녀 옆자리에 앉았다. 나는 자연스럽게 그녀에게 퇴직 후 어떻게 지내는지, 보통 일과는 어떠한지 물었다.
“자기야. 노니까 더 바빠. 새벽에는 산에 갔다가 집에 와서 아점 먹고, 약속 있으면 나가고, 약속 없으면 도서관 가서 책 보고, 집에 들어와서 빨래 돌리고 청소기 돌리면 금방 저녁 먹을 때야. 그럼 하루가 뚝딱 간다고. “
춘심 씨는 노는 시간이 더 빨리 간다는 말을 바쁘다고 표현한 걸까? 여러 해 전 손녀까지 본, 퇴직한 양반이 밥벌이 없이 더 바쁘다고 하는 말을 나는 솔직히 깊이 이해하지 못했다.
나는 그녀와의 이야기 새에 틈을 두고 싶지 않아서 등산에 대해 이어 물었다. 그러자 춘심 씨는 기다렸다는 듯이 점퍼 앞주머니에서 핸드폰을 꺼내 사진첩을 열었다. 그녀는 좀 신이 나 보였다.
춘심 씨가 기민한 손동작으로 사진첩을 뒤지자 산의 정상에 오른 인물사진이 끝도 없이 이어졌다. 오대산, 설악산, 북한산, 대둔산, 예봉산, 월악산, 소요산… 그녀는 전국에 있는 산을 다니며 정상에 오른 사진을 내게 보여주었다.
산의 꼭대기마다 세워진 정상석에 몸을 비스듬히 기대고 찍은 사진들은 언뜻 보면 연사촬영된 것 같았다.
같은 사람, 비슷한 복장(선글라스, 등산스틱, 색만 다른 아웃도어 옷과 벙거지 모자), 같은 직사각형 모양의, 글자만 다른 정상석과 같은 포즈.
그녀는 화면을 검지손가락으로 꾹꾹 눌러 넘기며 여기는 어디 산이고 코스가 어떻고 끝까지 오르는 데 얼마나 시간이 소요됐는지 내게 품을 들여 설명했다.
처음에는 춘심 씨의 어깨에 닿을 듯이 몸을 기울여 그녀의 등산 이야기에 집중했다.
그러다가 조금 지겨워져서 그녀가 열 몇 번째의 어느 산 이야기를 시작할 즈음에는 딴생각을 하기 시작했다.
나의 성의 없는 호응에도 불구하고 춘심 씨는 조금도 지치지 않았다.
나는 화제를 돌려야겠다고 생각하고 약간의 빈말을 그녀의 말끝에 서둘러 얹었다.
“선생님, 근데 사진을 참 잘 찍으세요. 사진 구도가 너무 좋은데요? 인물도 배경도 버릴 게 없어요. “
“그래? 나 그런 말 처음 들어봐. 어머, 그래? “
“아니에요. 선생님, 사진 찍는 데 감각 있으세요.”
맙소사.
나는 춘심 씨를 더 신이 나게 했다. 전날 잠자리가 뜬 탓에 서너 시간밖에 못 자 눈이 뻑뻑해서 버스에서라도 눈을 좀 붙여야겠다 생각했는데 나는 기착지에 내릴 때까지 그녀의 들뜬 말들과 사진첩에 집중해야만 했다.
나는 그때 나이 듦과 눈치, 인간관계에 대해 생각했고 오늘의 춘심 씨를 내일의 나는 결코 잊지 말자고 마음에 깊이 담아두었다.
지난해 연말을 앞두고 아침 출근길에 라디오를 듣다가 나는 잠시 멍해졌다.
“여러분 빈말도 다 때가 있는 거예요. 나이 들잖아요? 그럼 주위에서 빈말해 주는 사람도 없어요. 빈말이 뭡니까. 나는 당신에게 호감이 있어요. 계속 관계를 유지하고 싶어요.라는 말 뜻 아닙니까? 늙으면 빈말 듣고 싶어도 못 들으니까 빈말 잘하는 후배를 너무 안 좋게 생각할 필요는 없다, 저는 그렇게 생각하고요…”
나는 불현듯 춘심 씨가 떠올랐다.
조직생활이 추억이 된 그녀 앞에 한없이 늘어진 시간 앞에서 허둥대는 그녀와
아침 10시 반 구멍가게 앞에서 춘천역행 마을버스를 기다리는 그녀와
한때 남편과 마주 보고 앉았던 4인용 식탁에 이제는 혼자 앉아 tv를 보며 밥을 먹는 그녀와
그녀가 내게 말한 ’더‘ 바쁜 시간에 대하여
나는 곰곰이 생각했다.
12월 25일, 춘심 씨한테 카톡이 왔다.
‘메리 크리스마스! 성탄 축하해. 가족 모두 건강하고 평화가 가득하길.‘
나는 그녀에게 어떤 말로 답장을 해야 할지 핸드폰을 손에 쥔 채 오랜 시간 고민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