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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양문규 Mar 03. 2024

슈바르츠발트, 프라이부르크의 숲

고등학교 때 지리 시간에 독일 서남부는 ‘슈바르츠발트’라고 부르는 산림 지역으로 이뤄져 있다고 배웠다. 슈바르츠발트! 교과서에는 ‘흑림(黑林) 지구대’라고도 병기돼 있었는데, 그곳 산림이 얼마나 울창하기에 시꺼먼 산림지대라고 부를까 싶은 생각을 했다.  


독일은, 이웃나라 프랑스가 초원으로 이뤄진 것과 달리, 산림이 우거진 산림부국이다. 지질학적, 기후학적 조건이 맞아서도 그렇거니와, 베를린 같은 도시조차 시내 중심의 티어가르텐 공원(축구장 717개 크기란다.)을 가보면 삼림 속에 도시가 들어앉아 있다는 느낌을 준다.  


슈바르츠발트 지역이야 더 말할 나위가 없다. 검은 숲의 풍광을 안고 있는 티티제 호수를 둘러, 그곳의 관광 상품 ‘슈바르츠발트의 뻐꾸기시계’를 구경한 후 노점상에서 싱싱한 체리와 딸기를 사들고 프라이부르크로 이동했다.  


우리가 묵은 프라이부르크 시내의 호텔 창밖으로 후니쿨라가 오르는 산(Schlossberg) 정경이 눈에 들어왔다. 슈바르츠발트의 도시 아니랄까 봐 산은 울울창창한 숲으로 빼곡히 차 있었다. 프라이부르크는 환경 선진국인 독일 내에서도 손꼽히는 환경도시로 알려져 있다. 


호텔 객실에서 바라본 프라이부르크의 숲


이 도시에는 시내 곳곳에 수로가 있다. 더러는 아가씨들이 수로에 발을 담그고 대화를 나눈다. 이 수로는 애초 중세 때 화재에 약한 목조건물을 조기진화하기 위한 것으로 조성된 것이라지만, 현재는 도심 기온을 낮추고 탄소 에너지 배출을 줄이는 기능을 한다고 한다. 


우연의 일치인지는 모르겠으나 당시 6월 하순 유럽 대륙이 이상고온으로 펄펄 끓고 있었음에도, 이곳은 저녁 해가 떨어지자 수로와 도시를 둘러싼 삼림 탓인지 날씨가 서늘할 정도로 시원해졌다. 


길 가운데 작은 수로


아침엔 프라이부르크 대성당 광장에 장이 섰다. 수국과 장미, 아티초크 등을 파는 노점상과, 역시 나무로 된 공예품이 즐비한 노점상들을 보면서, 국토의 1/3 내지 1/4이 삼림지역인 독일은 작은 일상에서도 나무들이 얼마나 예술적으로 활용되는지를 새삼 확인할 수 있었다.  


독일은, 울창한 삼림으로 어떻게 보면 자연의 축복을 받은 나라다. 문제는 과거 독일이 이러한 자연의 힘과 신비에 빠져들어 자연을 신격화하고 이것을 배타적 민족주의와 연결시켰다는 점이다. 독일 그림형제의 동화 이야기 대부분은 숲을 무대로 한다. 


프라이부르크 성당 광장의 장터(위), 장터의 아티초크(가운데)와 목공예품


<헨젤과 그레텔>이 그렇다. 그림동화가 처음 출간된 것은 독일이 프랑스의 나폴레옹과 전쟁을 한창 벌이고 있을 때였다. 독일 민담과 전설의 보고인 울창한 숲을 무대로 ‘독일적인 ’것을 그린 그림동화는 근세 독일의 민족주의가 고취되는 시점에 맞춰 탄생한 문학이다.  


이후 나치즘의 산림환경에 대한 배타적 믿음은 게르만족의 피가 흐르는 사람들과 그들이 사는 지역의 땅 사이에 신비로운 관련이 있다는 개념에 토대를 둔다. 산림과 숲은 독일민족의 부모이고 고향이자 진정한 조국으로 독일 민족의 우월함과 신성함을 상징한다.  


소위 ‘에코파시즘’인데 이러한 환경주의는 외국 혐오의 민족주의와 관련성을 맺는다. 히틀러는 엄격한 채식주의이자 동물애호가였고, 자연신비주의에 매료된 자였다. 아우슈비츠 대량학살의 장본인이었던 히틀러가 엉뚱하게 녹색 이상주의자처럼 비치기도 하는 것이다.


독일의 울창한 숲의 이면에는 이러한 역사들이 있다. 일본의 벚꽃은 일본문화 속에서 아름다운 꽃으로 여겨져 왔다. 그런데 일본 파시즘은 떨어지는 아름다운 벚꽃을 가미가제 특공대의 전사(戰死)와 결부시켜 미화했다. 


얘기 하나 더 덧붙이자면, 슈바르츠발트 등의 삼림이 20세기 들어와서도 온전히 보전될 수 있었던 이유 중 하나에는, 북반구의 목재 수요를 충족시키기 위해 남반구의 열대산 목재가 도입됐기 때문이기도 하다. 지구의 허파인 열대우림의 파괴가 시작되는 것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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