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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주초달 Jan 12. 2021

일본 미대 면접 당일 빵 터짐

한국사람인데 한국말 잘 못해?

모든 엄마들이 그렇듯이, 나 역시 첫째 아이의 교육에 너무 많은 힘을 쏟다 보니 

둘째의 교육에 신경 쓸 여력이 없어, 둘째 아이에게는 공부에 대해 많은 부분의 자유를 주었다.

대신에 본인이 다니고 싶다는 태권도, 검도 등의 학원을 보내 운동을 시켰는데,

비록 둘째의 성적은 늘 바닥이었지만, 아이는 즐거워 보였다.

하지만 너무나도 성적이 바닥 인터라, 나는 둘째가 가장 잘하는 게 무엇일까를 나름대로 고민했었고,

검도를 그렇게 좋아해 1단을 따던 날, 나는 둘째에게는 운동의 길이 맞는 건가 라는 생각을 했었다.

이런 내 기대와는 달리, 둘째는 검도 1단을 끝으로 학원을 그만두고,

중학교 2학년이 되던 어느 날, 미술학원을 보내달라고 했다.

잘하고 좋아하던 검을 내려놓으면서, 그림을 그리겠다고 하니, 속으로 한숨이 나왔다.

미술은 어릴 때부터 재능이 있다던데...

우리 아이가 미술에 대한 재능이 있었나?

아빠 엄마 모두 엔지니어링 쪽의 터프한 일을 하는 사람들인데, 미술이라...?


둘째는 동네 근처에 입시로 유명한 미술학원에 등록해서 석 달을 다니더니,

미술대회에서는 유명하다는 선화예고 대회에서 대상을 받았다.

우리 가족은 모두 그게 얼마나 큰 상인지 몰라서 그런가 보다 했는데,

도리어 학원에서 둘째의 반 아이들에게 수상 기념이라고 전체 햄버거를 돌리고

둘째의 수상과 얼굴이 나온 홍보물 제작과 길거리에 플랭카드를 걸어 학원 홍보에 열을 올렸다.

(그 학원은 2008년 오픈한 이래, 지금까지도 선화예고 대상은 배출하지 못했다)

그리고 둘째는 그렇게 미술학원을 한 몇 달을 더 다니더니, 그 해에만 교내 및 전국대회에서 

3개의 대상 및 우수상 등을 받아왔다!!!

#선화예고 대상

상황이 이렇게 되자, 나는 둘째가 미술에 무슨 천부적인 소질이 있다는 생각이 들기 시작했고,

둘째의 길은 미술이라는 생각과, 미술 하려면 돈이 많이 들기 때문에 학원비등의

지원과 그에 맞는 예고와 미대 등의 로드맵을 짜기 시작했었다.


미술학원을 다닌 지 한 6~7개월 되었을까... 둘째가 다시 미술학원을 관두겠다고 했다.

학교 성적도 바닥권인데, 그나마 그림에 소질 있다는 것을 알아 그 길이라도 있다고 

생각했었는데, 그 길을 안 간다니까.. 애가 지금은 힘들어서 그러는 것일지도 모르니

조금만 더 설득해 보자 하면서, 둘째를 혼내기도 하고 구슬리기도 하고 

미술학원에 계속 다닐 것을 종용했었다.

부끄럽게도 엄마였던 나는 둘째의 길이 이 길 외에는 없다는 생각을 그때 당시에는 했었다.

나의 갖은 협박과 종용에도 불구하고, 둘째는 계속 그만두기를 고집했는데

난 둘째의 말을 듣고 며칠을 고민하다가 결국 동의하고 말았다.


"엄마, 학원에서 매일 4~5시간씩 제가 뭘 그리는지 아세요?

자대고 선을 그려요. 한 가지를 계속 그린다고요.

4~5시간 아니 8시간씩 계속 같은 그림만 그리던가

아니면 자대고 선 그리는 연습만 하면서

잘 그렸다 못 그렸다 하는 게 도대체 무슨 의미가 있나요?

저는 정말 모르겠어요. 저는 이제 그림 그리는 것에는 흥미가 없어졌어요.

저는 OO예고를 가고 싶은데, 그 학교는 공부도 잘해야 해요.

저는 이렇게 그림 그리는 것도 싫지만, 그것보다도 공부를 못하니

제가 원하는 OO예고 들어갈 실력이 아예 안되는 거죠, 

왜 미술학원을 다녀야 하는지 모르겠어요.

이제 그만 할래요."


미술학원을 그만두자, 학원 원장께서 우리 집으로 찾아와 둘째는 그림을 계속

그려야 한다며 정말 안타깝다며 엄마인 내가 둘째를 설득해 주기를 바랐지만,

나는 이 분야를 너무 모르는 데다가 둘째의 말에 반박할 마땅한 말도 생각나지 않아서 설득을 포기했다.

그림만 잘 그리면 되지... 공부까지 잘해야 한다니... 여기에서 탁 막혀버린 것이다.


어렵사리 들어간 인문계 여고에서는, 담임선생님들께서 둘째의 성적을 보고 고맙게도 나를 부르지 않고

둘째에게 개인 상담을 많이 해주셨지만, 이 상태로라면 둘째는 한국 어디에서도 

들어갈 만한 대학이 없어 보였다.

나의 이런 마음과는 아랑곳없이, 둘째는 학교에서 일찍 돌아와 집에서 여유롭게 TV를 보면서

키득거리면서 재미있어했고, 학업 성적이 나쁜 거에 대한 부담이 전혀 없었다.

도리어 둘째가 성적표를 가져오는 날이면, 우리 부부는 이번에는 또 얼마나? 하는 걱정에

마음속으로 성적표를 보는 게 두려울 정도였지만, 둘째는 늘 당당했다

성적표를 받은 날 밤이면, 어김없이 부모님을 잠시 거실로 나와달라 부탁하고는

당당하게 성적표를 내밀며 말했다.


일단 제 성적표 보고 너무 놀라지 마세요!

괜찮아요! 제가 마음을 제대로 안 먹어서 그렇지 제가 마음만 먹으면 성적은

얼마든지 올라갈 수 있으니까, 너무 속상해하지 마세요!

저는 잘할 수 있어요!


진짜!! 솔직히!!! 둘째의 말은 우리 부부에게 큰 위로를 주었다. 

본인의 성적을 보고 실망이나 좌절하지 않은 것만도 고맙다는 생각이 들었다.

둘째를 보고 있으면, 왠지 성적 결과는 참담하지만 앞으론 잘 될 거란 생각이 들었고,

우리는 모두 안심하고 행복한 마음으로 성적표 확인의 자리를 마무리하곤 했었다.


고1 가을쯤 되자, 어느 날 둘째가 자기랑 같이 전시회를 가자고 했다.

자신의 진로를 찾아보겠다고 하길래, 그냥 뭐 있나 하면서 전시회장을 갔는데, 

가서 보니 일본유학박랍회였다.

난 그날 전시장 가서 놀랐다. 생전 유학 가고 싶다고 말도 안 하더니 갑자기 유학박람회라니!

멀뚱멀뚱 뭐할지 모르는 엄마 손을 잡고, 둘째는 이 부스 저 부스를 기웃거리며 자료를 수집하면서

대학 담당자들로부터 입학설명을 듣는데, 옆에서 듣던 내 마음에 희망이 생겼다.

일본어 하고 그림만 잘 그리면 합격할 수 있다는 것이 아닌가!!!!

중학교 2학년 때 그림 그리는 걸 포기하고, 그 뒤로는 그림을 전혀 안 그려서 아예 흥미를 잃은 줄 알았더니,

일본 미대에 진학하고 싶다고 말하는 둘째가 너무나도 놀랍고 기특했다.

(사실... 어찌 보면 엄마가 자녀와 소통을 잘 안 한 것으로 보일 수도 있다. 

그것도 맞긴 하지만, 중2병이 무언지 아시는 부모님들은 내 마음을 이해하실 수 있으리라 믿는다.

아이들은 중2가 되면 부모를 보는 눈빛부터가 달라지고, 그 뒤로는 자기 방에 박혀

청소년기를 마무리할 때까지 나오지를 않는다)


유학박람회 사건 이후, 나는 또 아이의 유학에 관한 로드맵을 짜기 시작했지만,

둘째는 내 로드맵 제안을 다 피곤하다 힘들다 등의 이유로 거절하고

본인이 원래 하던 대로 변함없이 행동했다.

(아니, 유학 가고 싶으면 더 열심히 해야 하는 거 아닌가???!!!

말이 안 통하는 외국에서 사는 게 얼마나 힘든데?)

결국 유학 전문 미술학원도 안 다니고, 둘째는 그냥 일본어 공부만 집에서 혼자 했다.

그렇게 고1 고2를 지내면서 둘째는 일본어 능력시험 1급까지 모두 따고

일본어 회화나 글쓰기 등까지 자유자재로 할 수 있을 정도로 공부를 해두었다.

고3이 되자, 둘째는 유학 전문 미술학원을 스스로 알아보더니, 나한테 보내달라 하고는 

다니기 시작했는데, 무슨 기준으로 학원을 골랐나 나중에 확인을 해보니,

유명한 학원이 3군데가 있는데, 그중에서 학원비가 가장 낮은 곳을 선택했다는

정말 까무러치게 놀라운 대답을 하는 것이 아닌가!!!

실제로 나머지 학원 2군데는 월평균 200만 원이 들었지만, 둘째가 고른 학원비는 월평균 100만 원이 들었다.

나는 그 100만 원도 비싸다고 생각했는데, 둘째가 학원을 다닌 기간은 겨우 10개월 정도밖에 안되었으니

진짜 저렴하게 미술학원을 보낸 셈이었다. 

게다가 그 학원 친구들은 미술과 일본어 능력시험, 대화, 논술 등을 준비했지만, 둘째는 이미 고2 때까지

일본어를 공부해두었기에, 온전히 미술에 집중할  여유가 있어

과도한 스트레스를 받지 않고도 즐거운 마음으로 학원에 다녔었다.


사실 한국에서 미대를 보낸다고 하면, 거의 중학교 때부터 진정한 로드맵이 시작되는 것 같다.

중학교 때부터 월 60만 원 이상의 학원을 다니면서, 방학 때마다 특강 수업 및 여러 가지 대회 등에서

수상 경력이 있어야 하고, 게다가 학교 성적도 어느 정도 중상위권에 위치해야 예고에 들어갈 수 있다.

예고를 들어가서도 더 센 강도의 미술학원을 다니고 학업을 병행하고 각고의 노력을 해야 

그나마 겸손하지 않은 예대를 들어갈 수 있기 때문에,

미대 입시를 준비하기 시작하면 학생 본인도 힘들지만 또 부모들에게는 

학원비와 기타 재료비등 들어가야 할 돈이 많다.

그런데 둘째가 간 이 길을 보면, 우리는 얼마나 저렴하고 즐겁게 여기까지 왔던가!


내가 간단하게 대충 들어가는 돈만 계산해봐도 이렇게 차이가 난다.

#미대 준비에 들어가는 예상 금액


한국에서는 바닥에 머무르던 성적이, 둘째 일본 미대 면접 시에 얼마나 유리한 작용을 했는지

그 일화는 지금도 생각하면 우리 가족 모두의 배꼽을 잡게 만든다.


일본 미대 면접 당일, 각 사람에게 약 15분간의 시간이 주어졌고, 

둘째는 최대한 자신을 어필했다고 한다.

본인이 만든 원숭이를 의인화한 캐릭터를 지점토로 만들고 스토리보드까지 만들어서 갖고 갔는데,

교수님들께서는 둘째의 학업성적에 관심이 더 많으셨고,

마지막에 교수님께서 질문을 해도 되나? 하시더니 물어보셨다.


- 당신이 그림을 잘 그리는 것은 알겠어요, 그런데 이렇게 일본어를 잘하고

 글도 잘 읽는데, 왜 한국에서 일본어 평가가 이렇게 낮은 가요? 글은 못쓰는 건가요?


사실 둘째가 국어 영어 수학 과학 기타 과목들은 다 바닥이었지만, 일본어 하나만큼은 1급이었는데

교수님이 그런 말씀을 하시니 퍼뜩 생각난 게 일본은 한국과는 달리 1급이 제일 못하는 거고

등급이 낮을수록 잘하는 거란 사실이었다.

그래서 둘째는 차근차근 한국과 일본의 다른 점을 설명을 드렸는데,

갑자기 정. 부교수님 두 분께서 서로의 얼굴을 쳐다보시더니, 엄청 크게 웃으셨다.


- 아니, 그러면 다른 과목들은 모두 7 ~ 8등급인데, 국어 수학 영어, 이 점수는?

한국사람인데 한국말 잘 못 해요?

(부끄럽지만, 둘째는 이 글을 안 본다는 가정하에.... 국어가 7등급이었다)


당황한 둘째는, 특유의 긍정적인 태도로 아주 크게 소리를 질렀다고 한다.


- 제가 사실 학교 때 공부를 잘 못한 거는 사실이지만, 앞으로 제가 하려고 마음만 먹으면

잘할 수 있을 자신이 있습니다. 그러니 저를 믿어주십시오!

앞으로 열심히 더 노력하겠습니다!


지금 둘째는 놀랍게도 일본에서 겸손하지 않은 미대를 잘 다니고 있다.

코로나 시대에 비대면 수업으로 진행을 하고 있지만,

코로나 블루나 향수병에 걸리지도 않고 잘 적응하고 있는 중이다.


내가 만일 둘째의 인생 매 순간순간마다 끼어들어서

그때 당시 보편화된 누구나 다 그렇게 했었던 길을 강요하고 밀어 넣었다면 어떻게 되었을까..

다른 아이들은 몰라도, 우리 둘째에게는 맞지 않는 방법이었을 것 같다.


초등학교 때 옆집 둘째 친구는 공부를 굉장히 잘했지만, 둘째에게 죽고 싶다고

아파트 10층에서 떨어지면 몸이 어떻게 될까 등의 위험한 말을 자주 했었다.

나는 그 말을 듣고, 친구의 엄마에게 조심스레 그런 일들에 대한 말을 해주었지만,

그 엄마의 대답은 놀라웠다.


- 나는 내가 너무 힘들게 사니까, 우리 아이만은 나처럼 살지 않았으면 좋겠어. 

조금만 더 고생하면 좋은 길을 갈 수 있는데, 그걸 힘들다고 그만두면 안 되잖아.

내가 아이랑 잘 이야기하는 수밖에 없지.

나는 OO엄마처럼 그렇게 아이를 놔둘 수 없어.


지금 그 친구는 엄마의 바람대로 좋은 학교에 들어갔고, 지금은 학교 때 쪘던 

살들까지 빼서, 미모와 지성까지 겸비했다.


어떤 길이 좋은지 나는 아직도 잘 모르겠다.


확실한 건, 나는 둘째의 학업에 큰 고민도 하지 않았고,

둘째가 가는 길에 대해 무지해서 눈에 하나도 보이지도 않았지만

그냥 믿어주기만 했었다.

둘째의 긍정적인 면과 밝은 면이 반드시 둘째를 행복한 길로 이끌어 줄 것이라는 걸.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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