걱정하지 마시라 그리고 당신도 해보시라 할 수 있을실지?
같이 근무하는 남자동료들이, 그들 와이프의 내조를 받아 가정일이나 아이들 교육, 집안 일등에 크게 신경 쓰지 않아도 되는 자연스러운 환경 속에서, 오로지 회사일과 인간관계에 전념해 조금씩 더 나를 앞서갈 때마다,
나는 내가 워킹맘이라서 그들만큼 일을 쳐내지 못 해리라는 사람들의 선입견에도 맞서야 했고,
그리고 힘들어하는 내 몸과 마음과도 전쟁을 벌여야 했다.
속칭 직장인들은 항상 사회에서 전쟁을 한다고 하지만, 나는 직장과 가정 특히 육아 그리고 그 속에서 균형을 잡아야 하는 나 자신과의 전쟁 속에서 하루하루를 살았고, 이 전쟁은 어느 한쪽도 승자가 되면 안 되는, 마치 칼로 살짝 대기만 해도 탁 하고 끊길 것 같이 팽팽하게 당긴 줄 위에서 하는 기분이었다.
이런 직장에서의 내 개인적인 성취욕과 가정에서의 퍼펙트한 엄마라는 타이틀의 줄다리기에서 씨름하던 나는 어느 날 결국 한 부분을 포기해버리고 말았는데, 그건 바로 아이들의 공부였다.
내 주관대로 아이들의 학습 목표를 만들어 놓고 그대로 밀어붙였던 호랑이 엄마를 포기해버리고,
대신에 아이들이 원하는 방향으로, 그냥 편하게 나아가게 하고 싶었다.
물론 이런 결정이 쉽지는 않았다. 그때 당시의 아이 친구들은 모두 학원으로 뺑뺑이를 돌면서, 굉장한 많은 양의 공부를 하고, 잠을 줄이면서 책을 읽고 게다가 뭔가 취미생활까지 가져야 했었다. 내 아이들을 그런 곳에서 빼낸다는 것은 곧 친구가 없어지고, 자기들만의 세계에서 뭔가 아웃사이더가 될 수도 있는 것이었다.
게다가 덤으로 아이들 교육에 관심이 없다는 친구 엄마들의 은밀한 비난까지도 나는 감수해야 했다.
하지만 내가 스스로 원하진 않았지만, 그렇게 될 수밖에 없던 결정적인 일이 있었다.
아이큐 검사에서 꽤 높은 점수를 받았던 큰 딸이 중학교에 들어가자마자, 나는 기대감으로 인해 딸의 학원을
학습 강도가 더 센 곳으로 옮겼고, 자정이 되어서야 파김치가 되어 돌아오는 아이는 씻자마자 학교 숙제며
학원 숙제로 인해 새벽 2시가 넘어서까지도 책상에 앉아 있는 날이 2학년 때까지 이어졌다.
딸의 내면이 점점 피폐해져 간다는 것을 알고는 있었지만, 딸의 친구들도 그런 비슷한 생활을 했고
그 당시 우리가 살던 아파트 거의 대부분의 학생들이 그렇게 살고 있었기에,
나는 내 딸도 다른 아이들처럼 견뎌낼 수 있을 거라고 생각했다.
나는 앞이 제대로 보이지 않는 빗속을 울면서 이리저리 딸을 찾아다녔고, 집에 돌아왔을 때에는
온몸과 머리카락까지 흠뻑 젖어있어, 가족 중 아무도 내가 울며 다닌 것을 눈치채지 못했다.
그전에 이런 일이 있으리라는 여러 가지 징조는 있었지만, 난 설마 하며 애써 외면했었던 것 같다.
아이가 학원 숙제를 제대로 하지 않아 학원에서 여러 번 경고 전화가 왔었고, 내가 그 일로 아이를 혼내 자,
아이는 가방을 챙겨 집을 나가려고 했었다. 특히 얼마나 알차게 바리바리 챙겨 넣었는지
빵빵해진 가방을 내가 허탈하게 보았었다.
저녁 늦게서야 통화가 된 딸을 간신히 달래서 집으로 데려와 내 옆에 재우고 난 뒤,
나는 그다음 날부터 딸하고 같이 공부를 하리라 마음을 먹었다.
늘 영어학원의 듣고 받아쓰기 숙제가 버거웠던 아이에게, 학원 숙제 대신에 학교 숙제를 하게 하고는
나는 딸의 영어학원 숙제를 대신해줬다. 이제 중학교 2학년인 아이의 영어학원 숙제는,
어느 정도 영어를 안다고 생각했던 나한테도 굉장히 어려웠다.
나는 삼십 분이면 끝난다고 큰소리쳤지만 늘 1시간이 넘게 걸렸고, 직장생활의 고단함이 끝나면
매일 밤 저녁 늦은 시간에 영어 숙제가 나를 기다리고 있었다!
이런 고단한 생활이 2주가 넘어가던 어느 날, 나는 회사에서 멍하니 정신을 놓아버렸다.
졸렸지만 잠을 잘 수 없으니, 눈은 뜬 채로 정신줄을 놓은 멍한 상태가 되어 버린 것이다.
내 뇌는 제 기능을 발휘할 수 없었다.
그 날 저녁, 나는 아이에게 선택권을 줬다.
- 엄마는 솔직히 이제 영어 숙제 포기다. 이렇게 사는 건 아닌 거 같아.
그냥 학원을 줄여보자.
네가 원한다면 다 끊어도 좋고, 아니면 네가 원하는 학원만 다녀도 좋아.
하지만 학원을 끊는다고 해서 성적이 바닥으로 떨어지면 안 돼. 네가 잘 생각해서 엄마에게 대답해 주렴
내 속마음은 아직도 아이가 견뎌보겠다 그냥 이대로 버텨보겠다는 대답을 간절히 원하고 있었고,
다른 아이들도 모두 이런 길을 가는데, 내가 괜한 짓을 하는 게 아닌가라는 갈등 속에서 안절부절못하고 있었다.
이런 내 속마음과는 달리 딸은 한 개도 아닌 모든 학원을 끊겠다고 말을 했고,
난 내가 아이에게 선택권을 주었음에도 아이가 그런 결정을 하자 아이에게 화가 난 건지
아니면 나 자신에게 화가 난 건지, 아이를 쏘아보며 네 인생 네가 알아서 해라며 화를 내고 말았다.
하지만 딸은 고집을 부렸고, 결국 학원을 모두 끊는 대신에 집에서 하는 학습지로 대체했다.
역시 우려했던 대로, 상위권에 있던 아이의 성적은 학원을 그만둔 다음부터 바닥을 치기 시작했다.
고등학교 3년을 지나면서 딸의 성적은 늘 중위권이었지만, 그래도 우리는 약속했던 대로
학원은 딸이 필요에 의해 선택한 학원만 다녔다.
학교 성적에서는 두각을 나타내진 못했지만, 딸은 이과계통에서 자신의 장점을 살려
자신에게 맞는 분야를 찾았고, 지금은 겸손하지 않은 대학에서 석사과정 중이고, 해외 박사를 꿈꾸고 있다.
나와 아직도 친분을 나누고 있는 딸 친구 엄마들은
어떻게 딸이 그런 길을 갈 수 있었는지, 나에게 가끔 질문을 하곤 한다.
다만 나는 딸의 가출의 고통을 겪고 딸과 고통분담을 하겠다는 차원에서
매일 밤마다 딸의 영어 숙제를 해주다가
결국은 회사에서 멍 때리게 되었고, 그때 내린 찰나의 결론에 의해, 결과가 달라져 버렸을 뿐이다.
내가 만일 그때 딸에게 다른 친구들과 똑같은 길을 가라고 강압적으로 우겼다면,
어쩌면 딸은 아직도 자신이 무엇을 하고 싶은지 잘 모르고 방황하고 있지 않았을까...
일곱 번째 공주님 이란 엘리너 파전의 이야기가 있다.
어느 나라에 일곱 명의 공주가 있었고, 그중 가장 머리카락이 긴 공주에게
나라를 물려주겠다는 임금인 아버지의 명이 있어, 여섯 명의 공주는 매일 머리카락을 다듬고
머리카락 기르기에 공을 들이고 있었다.
하지만 일곱 번째 공주는 머리에 빨간 두건을 두르고 있어서
머리카락이 얼마나 긴지 아무도 몰랐는데,
얼마 뒤 세계의 왕자가 가장 머리카락이 긴 공주에게 청혼을 하러 왔고
이로 인해 드디어 공주들의 머리카락 길이를 확인하게 되었다.
여섯 명의 공주는 모두 머리카락의 길이가 같았지만
일곱 번째 공주가 두건을 풀자 머리카락이 사내아이처럼 짧았다.
왕이 누가 너의 머리카락을 이리 짧게 잘랐느냐 라고 묻자
공주는 대답하길, 어머니께서 머리카락이 조금이라도 길어지면 항상 머리를 짧게 잘라주셨습니다
라고 했다. 결국 여섯 공주의 머리카락은 지금까지도 우위를 겨룰 수 없어서 아직도 다듬는
중이고, 세계의 왕자는 그들의 겨루기가 끝나지 않아 아직까지도 그 공주들 중에서
머리카락이 가장 긴 공주를 아내로 맞고자 기다리고 있지만,
일곱 번째 공주는 자유롭게 여기저기 세계를 여행하고 있다고 한다.
시간이 흐르고 나서 보니까, 그 당시 내 선택이 다행히도 맞았다는 것을 더 확실히 알 수 있게 되었다.
우리는 우리가 다른 사람과 다르다는 걸, 아니 다른 길을 선택하는 걸 두려워하는 것일지도 모르겠다.
나는 이미 겪어봤지만, 나처럼 자녀들의 이런 일로 고민하는 사람들이 있다면,
진짜로 걱정 말라고 말해주고 싶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