푸드트럭 마쿤키친카페
하나님, 오랫동안 기다리고 준비한 일이에요. 추첨에서 제가 뽑혔으면 좋겠어요. 그런데 함께 추첨을 하게 되는 분은 취약계층 자격으로 지원을 했다고 하네요. 그분이 당첨돼도 좋은 일이겠죠? 누가 당첨이 되던 하나님께서 허락하시는 사람에게 기회가 가겠죠. 제가 된다면 정말 정말 좋겠지만 그렇지 않더라도 거기에 하나님의 뜻이 있다고 믿습니다. 이 기회가 제게 올 기회가 아니라면 더 좋은 길을 준비해 주실 줄 믿어요. 그렇지만 저는 정말 당첨되고 싶기는 해요.
내가 바라는 것은 추첨에 당첨돼서 계획하고 예정된 일들을 무사히 진행하는 거다. 그래서 추첨하러 가는 길에 마지막으로 꼭 당첨되게 해 달라고 기도할 참이었다. 하지만 기도를 시작하는 순간 생각했던 것과는 다른 기도를 하고 말았다.
나는 청년 자격으로 지원을 했지만 다른 한 분은 취약계층 자격으로 지원을 했다고 했지? 그분의 삶이 나보다 더 고되고 힘들다면 이 기회가 그분에게 가는 것이 옳은 일이지 않을까. 남 걱정할 만큼 여유가 있지는 않지만 나는 하나님을 믿는 사람이니 막다른 길에 서게 됐을 때 다른 길이 있을 거야, 라는 믿음으로 추첨을 준비하는 마지막 기도를 했다.
추첨에서 탈락할 것을 미리 염두하며 정신승리를 하기 위한 기도는 아니었다. 당첨이 되던 탈락이 되던 모든 결과는 내가 손 쓸 수 있는 영역이니 아니기 때문에 어떤 결과가 나오든지 승복하고 감사를 잃지 않기 위한 기도였다. 중요한 순간을 맞이함에 있어서 신앙인으로서 내가 할 수 있는 최선은 결과를 내가 믿는 하나님께 맡기는 일뿐이었다. 자, 이제 어떤 일이 벌어질까? 의연하게 결과를 마주하는 일만 남았다.
비장한 마음으로 공원관리과 사무실이 있는 자연생태 박물관에 도착했다. 결과를 하나님께 맡겼지만 떨리는 마음은 어쩔 수 없었다. 심호흡을 하고 추첨을 진행하게 될 세미나실로 들어갔다. 잠시 후 50대 중후반의 아주머니와 30대 후반의 아들이 들어왔다. 이분들이 내 경쟁상대였구나 생각하며 무표정한 얼굴로 가볍게 목례를 했다. 기도로 마음을 내려놓긴 했지만 미소를 띠고 인사할 만큼 마음이 넓지는 않았다.
자리에 앉은 아주머니는 날 보며 대뜸 푸드트럭에서 떡볶이와 순대 등의 분식을 팔고 싶다는 본인의 희망사항에 대한 얘기를 하셨다. 아직 구체적인 계획도 없이 일단 지원을 해 보신 모양이었다. 내가 푸드트럭을 갖고 있다는 얘기를 들으셨는지 본인이 당첨되면 푸드트럭을 준비하고 개조하는 방법 등을 좀 알려달라고 말을 이으셨다. 아무것도 모르니 많이 도와달라며.
‘내가 대체 왜?’라는 생각을 했지만 입으로는 “네? 네. 도와드릴 수 있으면 도와드릴게요.” 하고 마음에도 없는 대답을 했다. 어서 추첨이나 진행했으면 좋겠다는 생각만 간절했다. 한시라도 빨리 이 추첨이라는 관문을 넘고 다음 단계로 넘어가고 싶었다. 새로운 길을 모색하던지, 공원 영업을 준비하던지 말이다.
내 초조한 마음을 읽었는지 공무원 중 한 분이 추첨을 진행할 담당 과장에게 어서 추첨을 시작하라고 재촉했다. 그제야 담당 과장 아저씨가 추첨 박스를 들고 와서 진행 방식을 설명하기 시작했다.
“지원한 순서에 따라서 추첨 순서를 정하는 뽑기를 할 거예요. 그리고 추첨 순서에 따라서 본 추첨을 하겠습니다. 아! 그리고 본 추첨을 할 때 결과를 미리 확인하지는 마세요. 동시에 결과를 확인해 봅시다. 허허허.”
나는 떨려 죽겠구만 뭐가 그리 재미있으신 건지, 참. 일주일 먼저 지원한 내가 순서를 정하는 뽑기를 했다. 두 번째 순서가 나왔다. 다음으로 아주머니가 먼저 본 추첨의 추첨권을 뽑으시고 자리에 앉았다.
다시 내 차례가 되었다. 잔뜩 긴장한 손을 박스 안으로 넣어 추첨권을 집고 자리에 앉았다. 담당 과장 아저씨가 엷은 미소를 띠고 나와 아주머니를 번 갈아 쳐다보고 계셨다. 아마도 마음속으로 ‘두구 두구 두구’하는 북을 치고 있는 것 같았다.
“긴장되시죠?
추첨이란 게 이런 긴장감도 있는 거니까요.
허허허.
자, 이제 개봉해 보시죠”
너무 실망한 표정을 짓지 않으려고 노력했던 것 같은데. 아주머니에게 축하드린다고 마음에도 없는 말을 건네려 했던 것 같은데. 어떤 표정을 하고 있었는지 어떤 말을 했는지 기억이 나지 않는다. 슬픈 마음을 들키지 않으려고 애쓰던 마음의 생채기만 또렷이 기억난다. 자리에서 일어나 나가는 내게 “장사할 때 궁금한 것들 물어볼게요” 하는 아주머니의 목소리는 어쩜 그리도 얄미웠던지. 기도하며 마음을 내려놓은 줄 알았는데. 막상 부딪히게 되는 패배의 현실은 너무 아팠다.
하아, 하나님 이제 어떡하죠?
사실 기도는 그렇게 했지만
당첨되게 해 주실 줄 알았어요.
플랜 B는 어떻게 하면 좋을까요!?
추첨 이틀 뒤, 서울시한강사업본부를 통해 신청한 <한강 꽃 축제>에 참여하게 됐다. 14-20일은 반포 한강공원에서 유채꽃 축제가, 21-22일은 이촌한강공원에서 청보리 축제가 진행됐다. 축제라고는 하지만 거창한 이벤트가 마련되어 있지는 않는, 여느 때보다 풍경이 조금 더 아름다운 한강, 그리고 봄에 진행되는 축제였다. 그래서 그런지 이전 축제나 행사들 만큼의 높은 매출이 나오진 않았다. 한강에서는 꽤 바쁠 걸 예상하고 알바도 두 명이나 불렀는데... 어쩔 수 없지 뭐.
매출이 조금 아쉽긴 했지만 축제에 함께 참여한 네 분의 사장님들과 급속도로 친해지면서 어울리다 보니 일하는 내내 웃음이 떠나지 않아서 그나마 다행이었다. 다들 나와 세네 살 정도 차이나는 비슷한 또래의 젊은 분들이었고 푸드트럭을 시작한지 오래되지 않은 분들이었다. 그래서 그런지 더 유대감이 생겼던 것 같다.
<마피아 츄러스>는 마피아라는 이름과 어울리지 않게 푸근한 성품과 위트 있는 입담의 형님과 아리따운 아내 분이 함께 하는 푸드트럭이었다. 그동안 먹어본 츄러스 중에선 마피아 츄러스가 최고였는데 지금은 푸드트럭을 그만두고 다른 일을 하시는 것 같다. <한입 두입>은 결혼을 준비하는 커플이 운영하는 푸드트럭인데 내가 지원하려고 했던 소사국민체육센터에 입점했다고 했다. 세상에 이런 인연이! 선한 인상에 성격도 좋아서 분명 체육센터에서도 인기가 많았을 거다. 역시 두분도 푸드트럭은 그만 두신 것 같고 지금은 행복한 결혼 생활 중이시다.
<키친 박스>는 콧수염이 인상적인 사장님이 0.5톤 트럭에서 닭다리살 볶음 요리를 판매했는데 인기가 정말 좋았다. 아니나 다를까 푸드트럭을 그만두셨지만 지금은 <퐄pork 식당>이라는 가게를 내서 장사를 하고 계신다. 마지막으로 <꼬닐스 핫도그>는 가장 유쾌하고 성격 좋은 사장님이 운영하는 푸드트럭이었는데 항상 마피아 형님과 함께 분위기 메이커 역할을 담당했다. 나중에 방송을 타면서 안 좋은 이미지로 사람들에게 알려졌는데 너무 안타깝다. 정말 사람 좋은 분이었는데.
아무튼 이분들과 함께 장사하며 정말 즐겁기도 하고 외롭지 않다는 사실 하나만으로도 참 힘이 됐었다. 그리고 군 입대 전에 교회에서 가르치던 학생들이 나를 잊지 않고 빗속을 뚫고 찾아와 응원해준 덕분에도 힘이 났다.
또, 장사하는 동안 문득문득 느끼게 되는 따듯한 햇살의 봄기운 물씬 풍기는 공원의 모습도, 투둑 투둑 쏴-아 하며 내리는 봄비 내리는 날도, 발밤발밤 찾은 땅거미에 수놓은 한강의 불빛도, 봄을 담은 사람들의 미소와 재잘거림도, 일기장에 고스란히 담아두고 싶을 만큼 아름다운 그 풍경들이 매출 부진과 추첨 탈락의 아픔을 잠시나마 잊게 해 주었으니. 매출과 상관없이 괜찮은 장사였다.
이제 다시 힘을 내서
살 길을 찾아보자!
대통령 직속 청년위원회의 제안으로 식약처가 푸드트럭 허용 장소에 대학을 추가하게 됐다. 이미 몇 군데 캠퍼스에선 시범 운영도 하고 있었다. 공원 추첨도 탈락하고, 별다른 모집 공고 소식은 없고, 이제 한 달 뒤면 만 30세가 되어 청년 자격도 상실하는 상황에서 캠퍼스 푸드트럭은 내가 붙잡을 수 있는 마지막 기회였다.
그래서 학부 시절 친분이 있었던 학과 교수님께 오랜만에 연락을 드렸다. 안부를 여쭈고 근황을 말씀드리며 캠퍼스 푸드트럭을 준비해 보고 싶다고 했다. 교수님은 본인이 도와줄 수 있는 일이라면 무엇이든지 도움을 주고 싶지만 학교 안에서 입김을 낼 만한 힘이 없다고 솔직히 말씀해 주셨다. 대신 사업 계획서를 준비해 오면 실무자들과의 미팅을 주선해 주시겠다고 하셨다.
사실 교수님은 학교 정치와 거리가 먼 분이시라 어떤 입김을 기대하지는 않았다. 다만 학부 시절의 나를 잘 아셨고 그런 내 상황을 이해해 주시고 기도해주실 수 있는 분이라는 믿음이 있었다.
교수님께 감사의 인사를 드리고 사업 계획서 준비에 들어갔다. 먼저 사업개요, 비전, 연혁, 창업 동기, 푸드트럭 현황과 관련 법령, 캠퍼스 푸드트럭 운영 실태에 대한 얘기로 포문을 열었다. 그리고 학교 측에서 솔깃할만한 조건들을 제안했다.
제안
1. 장학금 제공 : 매 학기 초 장학기금으로 100만 원 전달
2. 학교 행사에 무료 케이터링 제공 : 연 2회, 200인분 커피 및 음료
3. 재학생 파트타임 근로자 고용
4. 재학생 및 졸업생 대상 창업 교육 및 실습 기회 제공
5. 학교 홍보에 푸드트럭 활용 : 캠퍼스 푸드트럭 유치, 취업 & 창업 실적 등의 홍보 효과 기대.
운영안
1. 영업시간 : 주 5일 혹은 주 3회 / 08:00 ~ 20:00
2. 메 뉴 : 음료, 컵밥, 핫도그, 추로스 등의 식사 및 간식
1) 학내 입점 업체(카페, 매점)와의 메뉴 중복으로 인한 피해 최소화
2) 저렴한 가격과 이색 푸드로 학생들의 식문화 기여
3. 위생 ・ 환경 ・ 안전 대책
1) 위생 : 전문 업체 통한 정기 위생점검 실시
2) 환경 : 쓰레기통 비치 / 상시 주변 환경 미화
3) 안전 : 소화기 비치 / 차량 정기 점검
요청
1. 영업이 가능한 평탄한 장소 : 광장, 본관 옆 주차 공간
2. 3kw 전력(릴선 구비)
사업계획서 작성을 마치고 교수님께 연락을 드려 실무자들과 미팅을 잡았다. 실무자라고 해도 학부시절 4년 간 학생회를 하면서 자주 마주쳤던 교직원분들이었다. 대학원을 다니는 동안에도 종종 뵀던 분들이니 얘기가 잘 풀리지 않을까 내심 기대했다.
미팅에 들어가기 전 학교 복사실에서 사업계획서를 출력했다. A+ 학점을 기대하며 정성스럽게 리포트를 제출하던 것처럼 열 부의 사업계획서를 투명 파일철에 담아 총무처를 찾았다. 데스크를 담당하고 있는 근로학생에게 약속이 있어서 왔다고 말하고 자리를 안내받았다. 잠시 후에 다섯 분의 교직원이 오셔서 자리에 앉았다. 오랜만에 보는 교직원도 있었고 처음 보는 분도 있었다. 반가운 마음으로 인사를 건네고 준비해 온 사업계획서를 교직원들이 앉은 테이블 앞에 하나씩 내려놓았다.
자기소개와 함께 프레젠테이션을 시작하려는데 나이가 많은 교직원 한 분이 의자를 뒤로 젖히며 거만하고 신경질적인 말투로 말했다. “이런 일로 찾아오는 사람이 한 둘이 아니에요. 이런 거 갖고 온다고 우리가 다 들어줄 수 없어요. 학교가 장사하는 곳도 아니고. 참”
잡상인을 대하는듯한 말에 순간 얼굴이 화끈해졌고 화가 욱하고 치밀어 올랐다. 모교에 와서 이런 대우를 받게 되리라고는 상상도 못 했다. 을의 입장이긴 하지만 적어도 이야기를 나눌 약속을 잡고 온 사람에게 건넬 첫마디는 아니었다. 교수님의 주선으로 마련된 자리였기 때문에 모교 출신 학생이라는 것도 전달되었을 텐데. 어차피 최종 결정은 윗선으로 올라가 결정될 일일 텐데! 마음 같아선 교직원의 태도에 대해 불 같이 화를 내며 지적을 하고 아는 교수님들과 학생들을 동원해서라도 그분의 태도에 대해 사과를 받아내고 싶었다.
하지만 마지막 기회를 그렇게 놓칠 수는 없는 일이었다. 당장이라도 터질 것 같은 화를 가까스로 참아냈다. 그리고 차분하고 단호한 어조로 입을 열었다. “저는 본교 출신인 기독교육과 05학번입니다. 학부시절 내내 학생회도 하고 08년도에는 동아리연합회 회장도 하면서 자주 뵜었는데 오래돼서 기억이 안 나시나 보네요. 잘 지내셨죠?”
그러자 젖힌 의자를 바로 세우고 기억이 난다며 표정을 바꾸곤 악수를 청하는 손을 내밀어 안부를 물었다. 표정을 관리하며 그분이 내민 악수를 받고 자리에 앉아서 사업계획서 얘기를 시작했다.
준비해 온 계획서의 제안들을 어필하면서 영업시간이 일주일에 하루여도 상관이 없고, 이른 아침이나 저녁 늦은 시간에 운영해도 상관이 없다고 말했다. 나로선 생일 전까지 계약을 체결하는 게 급선무였다. 실질적으로 학교에서 영업을 하지 않아도 전혀 상관이 없었다. 어떻게든 계약만 이루어지길 바라며 학교 측에서의 이점을 구구절절이 말했다.
이야기를 주욱 듣던 교직원이 학교 내 입점한 카페와 매점에서 항의가 예상되어 어려울 거라고 말했다. 얘기를 제대로 듣기는 했는지 의아했다. 나는 일단 이 자리에서 바로 결정하는 건 아닐 테니 검토도 해 보시고 대화도 해 보시고 윗선으로 보고도 하고 논의한 후에 연락을 달라고 말했다. 이럴 거면 미팅은 잡지나 말 것이지.
불쾌한 미팅이 있고 며칠 뒤 학교에서 연락이 왔다. 계약을 진행할 수 없다는 얘기였다. 정말로 검토나 보고는 했는지도 모르겠는 거절 얘기에 더 말할 힘도 없어 담담하게 알겠다고 하고 통화를 종료했다. 이제 더 이상 어떻게 할 방법이 없다. 직장을 다니는 엄마와 동생이 내 결혼을 위해 대출을 받아줘야 하고 여자 친구가 결혼 비용의 대부분을 부담하게 됐다.
공원 사업자 추첨을 진행할 때도 모집 공고가 뜨기를 기다릴 때에도 여자 친구는 추첨이나 공고를 너무 기대하지 말라고 했다. 자신이 결혼 비용을 다 마련할 테니 장사하면서 천천히 돈을 마련해 가자고. 결혼을 몇 달 안 남겨두고 모집 공고만 기다리며 창업 자금 대출로 결혼 준비를 하려는 내 모습이 퍽 실망스러웠을 거다.
여자 친구에게 부담을 주고 싶지 않아서
시작한 일이었는데...
다 틀어졌다.
내가 너무 한심하고.
짜증 난다.
유튜브 푸드트럭 창업수업
0교시 https://youtu.be/usNIaGcWBIs
1교시 https://youtu.be/oVhexa8Agh8
2교시 https://youtu.be/1Sts9SYiUyQ
3교시 https://youtu.be/Mpb97gPV03w