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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보헤미안 Lyn May 03. 2020

헬스장을 혼자 사용합니다

소소한 행복은 늘 가까이에 

  휴직 후 거의 매일 아침 거르지 않고 했던 것 중의 하나가 운동이었다. 첫 한 달간 자고 싶을 때 자고 일어나고 싶을 때 일어나는 생활을 하다 보니 오히려 생체리듬이 불규칙해져 더 피곤한 느낌이 들었다. 게다가 여기저기 고장난 신체 기능을 회복하기 위해서라도 잘 챙겨 먹는 것만큼이나 운동은 필수였기에 가까운 아파트 헬스장에 당장 등록을 했다.


매일 오전 10시에 찾은 헬스장은 갈 때마다 아무도 없었다. 직장을 다니거나 사업을 하는 사람들은 이미 출근을 했을 시간이고 자녀를 키우는 엄마들은 아이들의 어린이집 등원이나 학교 등교를 시킨 후 아침 식사를 하거나 집안일을 하고 있을 시간일 것이다. 


그렇게 대부분이 일상을 살아가느라 분주한 시간인 오전 10시에 나는 헬스장을 오롯이 혼자 이용했다.






헬스장 내 음악 선곡은 관리자인 부녀회 회장님의 플레이리스트로 운영되고 있었는데 3040세대가 주 이용자이기 때문인지 90년대와 2000년대를 풍미했던 추억의 노래들이 주로 나왔다. 요즘도 멤버들이 예능프로그램에 자주 나와 얼굴이 익숙한 HOT, 젝스키스, 핑클, 터보, 지누션의 노래부터 이제는 그 얼굴을 보기 힘든 영턱스클럽, 마로니에, 투투, R.ef, 양파까지 다양한 곡들이 흘러나왔다. 또한 매번 플레이리스트가 조금씩 달라 듣는 재미가 있었는데 부녀회장님의 센스를 엿볼 수 있는 부분이었다. 


그렇게 집보다 훨씬 넓은 헬스장에서 혼자 노래를 흥얼거리며 하는 운동은 꽤 좋았다. 직장에 다닐 때에는 늘 가장 헬스장이 붐비는 저녁 7시~9시에 이용했는데 그때와는 완전히 느낌이 달랐다. 당시에 다니던 헬스장은 번화가에 있어 사람들이 꽤 많은 편이었는데 나는 입구에 들어서면서부터 쿵쾅대는 노랫소리와 붐비는 인파, 땀 흘리는 모습들에 압도당했다. 나도 빨리 옷을 갈아 입고 같이 땀을 흘려야 할 것 같았다. 때문에 바로 옆 러닝 머신에서 한참을 뛰는 또래를 보며 나도 숨이 찰 때까지 러닝 시간을 늘리기도 했고 팔과 다리를 부들부들 떨어가며 무게를 높이기도 했다.


그렇게 퇴근 후 가기 싫은 욕구를 겨우 누르고 도착한 헬스장은 일단 운동을 시작하고부터는 한 번도 헬스장에 온 것을 후회하지 않았다. 오히려 오늘도 유혹에 흔들리지 않고 잘 왔다는 생각을 했다. 우선 운동하며 흘리는 땀이 좋았고 운동하는 부위에 자극이 제대로 오는지 집중하느라 다른 생각을 하지 못하는 점이 좋았다. 그렇게 운동하는 동안 아무 생각 없이 내 몸에 집중하다 보면 낮동안 직장에서 받았던 스트레스도, 기타 갖가지 잡념들도 많이 사라졌다. 덕분에 신체뿐만 아니라 정신까지도 건강해졌다. 


비록 피크타임이라 러닝머신이나 인기 많은 운동기구에는 자리가 없어 차례를 기다려야 했고 대부분의 운동기구에는 땀자국이 있었으며 풀가동되는 공기청정기와 에어컨에도 불구하고 시큼한 땀냄새에 공기가 답답하기도 했지만 수많은 운동인들과 함께 시간과 공간을 공유하며 각자의 운동에 집중하는 것이 한편 재미있었다. 그리고 그 군중 속 일인으로 가끔씩은 나 혼자 묘한 전우애(?)도 느꼈다. 


반면 오롯이 혼자 사용하는 헬스장은 그것대로 참 좋았다. 우선 부자가 된 느낌이었다. 분명 아파트 주민들을 위한 공용 헬스장이었지만 그 시간 동안 내가 전세내고 단독으로 사용하는 기분이었다. 덕분에 비어있는 운동기구가 어디 있는지를 살피거나 요가 매트를 어느 구석에서 펴야 할지 고민하지 않아도 되었다. 게다가 아침시간에 운동기구를 사용한 이들이 거의 없어 땀자국도 없었고 헬스장 내 공기도 신선했다. 그리고 무엇보다도 흘러나오는 노래를 따라 마음껏 흥얼거릴 수 있었다. 


 "니가 가져간 나의 반쪽 때문인가~" 

투투의 '일과 이분의 일'의 노래가 나올 때는'반쪽' 부분에서 나도 같이 러닝머신 위에서 제스처를 취했고 이정현의 '와'에서는 나도 모르게 새끼손가락을 입에 갖다 대었다.


그렇게 아무도 없는 헬스장은 나의 부족한 노래와 율동도 자신 있게 즐길 수 있는 공간과 시간을 제공했다.






하지만 코로나 여파로 아파트 헬스장 역시 지난 2월부터 폐쇄되었다. 때문에 한동안 운동을 쉬다 얼마 전부터는 아침마다 집 뒤편에 있는 작은 공원으로 같은 시간에 운동을 하러 간다. 공원을 걸으며 어느새 만개한 봄꽃을, 기분 좋은 새소리를, 적당히 시원한 바람을, 따뜻한 아침햇살을 가득 느낀다. 다채로운 볼거리에 헬스장과는 또 다른 즐거움을 느낀다. 농구하는 학생들, 산책 나온 댕댕이와 냥이들, 게다가 처음 보는 게이트볼 경기까지 다양한 모습을 보는 재미가 있었다.


그리고 그중 무엇보다도 운동하는 어르신들의 다양한 모습을 보는 것이 꽤 흥미롭다. 나는 이제까지 공원에 설치된 운동기구는 간혹 지루해하는 이들을 위해 마련된 쉬엄쉬엄하는 운동기구인 줄 알았는데 할머니, 할아버지들의 역동적인 움직임에 깜짝깜짝 놀라는 중이다. 나 역시 어르신들처럼 그렇게 빠르고 넓은 각도로 운동할 수 있을지 의문이 들었다. 역시 구력은 무시할 수 없었다.  


코로나로 일상이 붕괴되고 피로감이 축적된 우리에게 공원은 여전히 언제든 편안히 찾을 수 있고 일상을 유지할 힘을 충전하도록 도와주었다.   


그렇게 다채로운 풍경과 이어폰 속 말랑말랑한 음악과 함께 공원을 한참 걷고 나면 행복은 큰 게 아니라는 생각을 매일 하게 된다. [파이낸셜 프리덤]의 저자이자 파이어 운동을 설파 중인 그랜트 사바티에 역시 사람들이 좋아하는 일에는 생각보다 돈이 크게 들지 않는 일들이 대부분이라고 했다. 그 역시 이미 본인이 평생 필요한 돈을 다 모으고 하기 싫은 Job으로부터는 은퇴를 했지만 사실 자기가 좋아하는 일들은 강아지와 산책하기, 친구들과 기타 치기와 같이 큰돈이 들지 않는 일들이라고 했다. 나 역시 매일 공원을 산책하며 새삼 행복은 그렇게 가까이에 소소하게 있음을 느낀다. 그리고 휴직했던 지난 일 년을 돌이켜보아도 일상 속 소소한 즐거움과 행복은 향긋한 차 한잔, 화창한 날의 공원 산책, 좋은 사람들과의 대화였다. 


휴직기간이 거의 끝나가는 지금, 아침 운동 시간이 더더욱 소중하게 느껴진다. 일터로 돌아간 후에도 소소한 행복을 누렸던 경험을 잊지 않고 생활 속에서 조금씩 실천하며 행복감을 유지하는 생활을 해나가고 싶다.



*사진출처: Pixabay-mohamed_hassan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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