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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한재민 Jul 07. 2020

주어진 22일

현시국에 나는 농담처럼 말한다.



마스크를 깜빡할 순 있어도 집에서 멀어지기 전에 다시 들어가 챙겨 나온다. 집에서 꽤 멀리까지 나와 깨닫는 경우에는 편의점이나 약국으로 곧장 달려가 구매한다. 마스크를 하지 않고 다닐 수 없는 지금의 시대가 어쩌면 가장 건강하게 살고 있는 모습일지도 모르겠다. 보이지도 않는 미세먼지를 신경 쓰며 창문을 열어야 하고, 노후 차량에서 나오는 나쁜 가스를 신고해야 하고, 코로나를 비롯한 여러 바이러스로부터 보호하기 위해 생활 속에서 거리를 두는 지금이 우리 모두의 건강 전성기 이진 않을까. 나는 농담처럼 말한다. 손을 이렇게 자주 씻다간 손이 웬만한 균에는 항체를 못 만들게 되는 거 아니냐고. 우리 세대가 먼지로 인해 긴 속눈썹을 가지고 태어난 것처럼 앞으로의 세대는 마스크가 불편하지 않게 진화하는 게 아니냐고. 하늘을 올려다보면 구름이나 별보다 해와 달만 볼 수 있게 되는 거 아니냐고. 상호 간의 적당한 스킨십 속에서 피어나던 작은 정 따위는 이제 없겠다고. 눈과 눈썹이 첫인상을 좌우하게 될 것이고 마스크의 변화가 스마트폰의 변화만큼 무궁무진해질 것이라고.


코로나도 코로나지만 내가 가장 억울하고 속상한 건 미세먼지부터였다. 산책을 나서면서도 오늘의 미세먼지 상태는 어떤지 걱정하게 되고, 집의 환기를 위해 창문을 활짝 열어두고 싶은데 망설이다 결국 꽁꽁 닫아두고 에어컨 청정 필터를 사용하게 될 때 마음이 문드러진다. 외출할 땐 마스크를 착용하고 정작 집에서는 과감하게 환기하면서 집 안 곳곳에 먼지를 저장해둘 순 없으니까 정말 방법이 없다. 모든 잘못은 우리에게 있다. 인정하는 바이다. 물론 잘못한 우리도 있지만 노력하는 우리도 있으니까 공기도 먼지도 조금만 우리에게 양보해주는 차례가 오길 바랄 뿐이다. 오늘처럼 푸른 하늘 가운데 하얗게 모인 구름을 보고 있노라면, 공기가 기회를 주고 있는 게 아닐까 생각한다.


마스크 생활에 아주 완벽하게 적응한 상태가 아니라 그런지 가끔 마주하는 온전한 얼굴을 낯설게 느끼진 않는다. 그렇지만 머지않아 당황스럽고 어색해지겠지. 사람 얼굴을 오랜만에 본다며 반갑게 인사하고, 얼른 착용해서 조심하라고 덕담을 건네진 않을까. 언젠가는 사람의 눈을 보면 진심이 보인다던 말이 사람의 코와 입을 봐야 진심이 보인다는 말로 대체되진 않을까. 쓸데없는 생각이긴 하지만 이걸 틀렸다고 말할 수도 없다. 요즘 같은 시국에 쓸데없는 생각은 많이 하되 잘못된 생각은 하지 않는 것이 어쩌면 다행이라 위로해본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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