자동차 유리창으로 비치는 오후 햇살은 따사로웠지만 아직 나뭇잎을 피워 올리지 못한 나뭇가지를 흔드는 바람은 매서웠다. 민주는 경기도 가평에 있는 제조업체를 직접 실사하고 은행으로 돌아오는 길이었다.
아직은 국내 도로 운전은 낯설어서 위험하니 동행하겠다는 박대리를 만류하며 오전에 길을 나섰을 때는 살짝 걱정도 되었지만 종일 지점장실에서 서류와 모니터만 보던 그녀로서는 서울을 벗어난 근교의 풍경에 모처럼 마음 한 구석이 간질거렸다. 그렇게 차 안에서 흘러나오는 라디오 소리를 들으며 근무지인 대한은행 서대문 지점까지 팔 분 거리에 있는 교차로에 진입했을 때 도로 위에 있는 한 물체가 그녀의 시선을 사로잡았다.
도로 위에 납작하게 흡착되어 있는 물체는 중앙선 바로 옆 일차선에 위치했다. 개였는지 고양이였는지 아니면 다른 무엇이었는지 알 수 없는 그 무엇은 수많은 통행량 속에서 치워지지 못한 채 그 자리에서 무수히 많은 차량들의 바퀴에 의해 압착되어 있었다. 이제 남은 수분 없이 도로 위에 흡착된 털 뭉치로 변한 그것은
털이 달린 동물이었음을 알릴 뿐 다른 정보는 그 무엇도 보여주지 못했다.
애초에 도로를 건너려고 했었는지 아니면 도로로 밀려난 것인지 알 수 없는 그 동물은 결국 그 도로를 건너지 못한 채 무지개다리를 건너고 말았다.
불과 몇 초 전까지 자신에게 이질적인 간질거리는 감정을 느끼고 있던 민주는 도로 위에 풍장(風葬)된 사체를
본 순간 천정의 모퉁이에서 끝도 없이 쏟아져 내리던 구더기를 봤던 그날처럼 극심한 구토를 느꼈다.
눈앞이 하얘지면서 치받기 시작한 구토로 인해 그녀는 겨우 비상깜빡이를 누른 뒤 뒷 차들의 경적소리도 의식하지
못한 채 오른쪽 마지막 차선에 차를 댄 후 운전석 문을 열고 뛰쳐나왔다.
우회전을 하기 위해 마지막 차선을 탔던 덤프트럭 한 대가 갑자기 차선 변경을 한 뒤 급히 앞으로 끼어들고는
문을 열고 튀어나오는 그녀를 스치듯 지나치며 엄청난 경적소리와 함께 욕을 내뱉었다.
차를 빠져나온 민주는 무의식적으로 인도로 올라선 뒤 단단하고 긴 무언가를 부여잡고 구토를 했다.
그녀가 먹은 것이라야 물과 커피뿐이었지만 노란색을 띤 위액까지 토해낸 뒤에야 구토는 진정이 되었다.
진저리를 치며 바닥에 주저앉으려는 순간 두 팔이 그녀의 어깨를 붙잡았다.
겨우 입가를 손으로 훔쳐 낸 그녀가 어리둥절한 표정으로 고개를 들었을 때 그녀의 콧잔등까지 흘러내린
안경 너머로 걱정스러운 눈빛으로 자신의 어깨를 붙잡은 한 남자의 얼굴이 보였다.
순간 그녀의 표정에 '낭패'라는 두 글자가 떠올랐다.
전봇대나 기둥을 붙잡았다고 생각했는데 길쭉하고 단단한 기둥이 키가 큰 남자일 거라고는 생각하지 못했던 그녀는 당황해서 어찌할 바를 몰랐다. 남자의 바지와 운동화에 튀어 있는 자신의 토사물의 흔적을 본 그녀는
말을 잇지 못했지만 막상 남자는 안색이 하얗게 질린 그녀에게 메고 있던 가방에서 물티슈를 한 장 꺼내서 건넸다.
-"괜찮으세요?"
엉겁결에 그가 건넨 물티슈를 건네어받은 그녀가 손에 든 물티슈로 그의 바지를 닦으려고 하자 그가 괜찮다는 듯 만류했다.
-"저는 제가 처리하면 되는데 그나저나 병원 가셔야 하는 거 아닌가요?
쓰러지실 것 같아서요."
민주는 남자의 말에 평소의 자신으로 스스로를 추슬렀다.
"너무 죄송해요. 제가 큰 실수를 저질렀네요. 연락 주시면 제가 배상해 드릴게요."
그녀는 재킷 안주머니에 있는 명함 지갑에서 명함 한 장을 빼내어 그에게 건넸다.
-"뭘 배상까지요. 진짜 병원 안 가셔도 되겠어요?"
명함을 바지주머니에 집어넣은 그는 아직도 그녀가 걱정스러운지 그녀의 안색을 살폈다.
"그럼. 저는 이만 가볼게요. 오늘 감사했고요. 꼭 연락 주세요."
더 이상의 배려를 거부하는 그녀의 말에 남자는 그녀에게 살짝 고개를 끄덕이고는 뒤돌아서서 걷기 시작했다. 걸어가는 그의 뒷모습을 지켜본 그녀는 차에 있던 생수를 들고 와서 자신의 토사물의 흔적을 배수로로
흘려보냈다. 흘려 붓는 생수와 함께 배수로로 빨려 들어가는 토사물을 보던 그녀가 한숨을 내쉬었다.
'이렇게 흔적도 없이 지워버릴 수 있다면.........
아직은 죽는 것 외에는 방법을 모르겠지만.........'
매일 밤마다 천정에서 울어대던 고양이 소리가 멈춘 지 보름째 되던 날이었다. 금방이라도 밑으로 쏟아질 듯 위태롭게 부풀어 있던 천정의 한쪽 끝에 뚫린 구멍에서 구더기가 폭포처럼 쏟아져내렸다.
제발 죽었더라도 천정 안에서는 아니었기를 그렇게도 빌었건만 이번에도 그녀의 바람은 언제나처럼 처참히 부서졌다. 순간 극심한 현기증과 함께 구토가 몰려왔다. 수도가 달린 조그만 수도가에 주저앉은 민주는 지금까지의 삶 전부를 토해낼 것처럼 웩웩거렸다. 위액까지 다 토해낸 뒤에도 구토는 가라앉지 않았다. 멈추지 않는 딸꾹질 같은 구토로 민주는 자신이라는 존재 자체도 토해서 내뱉고 싶다는 생각이 들었다.
뒤늦게 봉제공장에서 돌아온 엄마의 눈에 어두운 수도가에 넋을 잃은 채 주저앉은 민주의 모습이 보였다.
휠체어를 서둘러 밀고 그녀에게 다가온 엄마는 딸을 다급히 붙잡고 흔들었다.
텅 빈 눈동자에 엄마의 모습이 담겨오자 민주는 그제야 눈물이 터졌다.
선택할 수 없는 불행은 피부색과 같아서 그녀가 숨을 들이쉬고 내 쉴 때마다 세포 하나하나에 깊숙이
각인되었다.
엄마와 민주는 진저리를 쳐가며 쏟아져 내려온 방안을 기어 다니는 구더기들을 쓸어 담아 바깥에 내버렸다.
하지만 구더기는 끝이 아니었다. 여름 방학 기간이었던 팔월 한 달 내내 엄지손톱보다 큰 쇠파리가 천정에서 쏟아져 나오기 시작했다. 자신의 불행한 과거와 불행한 현재처럼 끝도 없이 밀려드는 쇠파리들을 보며 민주는 조용히 집을 나섰다.
집을 나선 민주가 향한 곳은 대치동에서도 유명하다는 원티어 학원이었다. 원장실 앞에 선 채 망설이던
민주가 똑똑똑 문을 두들겼다. 안에서 '들어오세요.'라는 남자의 음성이 들려오자 문을 열고 들어선 민주는
아무 말 없이 그 자리에 서 있었다. 민주를 확인한 원장은 자리에서 일어나 응접의자로 그녀를 안내했다.
그녀가 자리에 앉고 난 뒤 원장은 가만히 그녀를 주시한 뒤 입을 열었다.
-"어떻게 생각은 해 봤어?"
한참을 고개를 숙이고 있던 민주가 자신의 앞에 앉은 원장과 눈을 마주쳤다.
"네.. 할게요."
-"어머니 동의서는 받아올 수 있겠어?"
"네."
짧고 단호한 그녀의 대답이 흡족한 듯 미소를 지은 원장이 자신의 책상으로 돌아가 서랍 속에서 봉투를 꺼낸 뒤 그녀에게 건넸다.
-"어머니 인감 날인하고 인감 증명서 한 통도 필요해. 알겠지?"
"네."
봉투를 받아 든 민주는 그 자리에서 일어섰다.
'어차피 내 모든 것이 불행이라면 난 네가 원하는 대로 되지 않을 거야. 더 불행해져 봤자 그것 또한 불행일 뿐이니까.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