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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묭롶 Jun 10. 2024

즐거운 나의 집.

4화. 마장동.

'우우웅.  우우웅.'  새벽 세시 삼십 분에 맞춰 놓은 스마트폰의 알람음이 울리기 무섭게 민선은 머리맡에

놓인 스마트폰의 알람음을 재빠르게 해제한 뒤 고개를 들어 침대 위에서 자고 있는 승호의 얼굴을 바라보았다.  혹여 알람음에 아이가 잠에서 깰까 봐 매번 진동음이 울리기 무섭게 알람을 끄는 그녀는 매일 아침마다 눈을 뜨면 가장 먼저 아이부터 찾곤 했다.  안한 얼굴로 잠든 아이의 얼굴을 확인한 그녀는 그제야

기지개를 쭉 켰다.   혹시라도 출근 준비하는 사이에 아이가 깨기라도 할까 봐 그녀는 한 겨울에도 감은 머리를 드라이어로 말려본 적이 없었다.  오늘도 물기가 그대로 젖은 짧은 커트머리를 손으로 대충 털어낸 민선은

주방 식탁 위에 놓인 오토바이 키를 들고는 현관문을 열고 나섰다.  


마장동 축산물 시장의 하루는 새벽 다섯 시부터 시작되었다.  독산동에서 마장동까지의 거리도 거리지만 새벽 출근을 해야 하는 그녀는 남들보다 일찍 서둘러야 했다.  그렇게 오늘도 취객들도 귀가해 짙은 어둠에 잠긴

거리를 한줄기 오토바이 전조등이 어둠을 가르듯 마장동을 향해 나아갔다.  아직 새벽이라는 시간이 무색하게 마장동 축산물 시장 인근은 어둠 속에 불 켜진 메인 스타디움 경기장처럼 눈부시게 밝았다.  익숙하게 주차장에 오토바이를 세운 민선은 오토바이 보관 박스에 안전모를 넣고는 제일축산이라는 간판이 붙은 큰 건물로

뛰어들어갔다.  그녀가 들어선 대형 작업장 내부의 상단에 걸린 전자시계의 시간은 AM 4:40 분이었다.

통유리로 된 출입문 옆 데스크에 앉아서 종이컵에 담긴 믹스 커피를 마시던 박 씨가 그녀를 보자 그녀는 그에게 고개를 까딱하고는 기울였다.  너무 가벼운 인사에도 표정변화 없이 심드렁한 박 씨가 자리에서 일어서자 그녀는 그의 뒤를 따라 걸었다.  


민선이 마장동 제일축산에서 일하게 되었을 때 처음 들었던 말은 "돼지는 엄청 깨끗한 동물이여.  긍께 여서는 위생이 젤 중한겨."라는 박 씨의 당부였다.  오늘도 탈의실에서 작업복으로 갈아입은 박 씨와 민선은 멸균실의 살균 가스에 몸을 맡긴 뒤 방혈실로 향했다.  돼지 도축은 여러가지 과정을 거쳐야 하고 자동화가 많이

이뤄졌지만 아직도 전기 충격으로 죽은 돼지의 몸에서 피를 빼내는 작업은 수작업으로 이뤄졌다.  빠른 시간 내에 주변에 피가 스며들지 않도록 돼지 피를 빼내는 작업은 전문성을 필요로 했고 방혈 작업이 곧 돼지고기의 품질에 큰 영향을 미치기에 마장동 축산물 시장 내에 있 여러 업체들은 모두 방혈실에 대장숙수가 사용하는 요리칼과도 같은 기술자들을 보유하고 있었다.  


제일축산에서는 방혈실의 박 씨가 그 대장숙수의 칼과도 같은 존재였고 민선은 그의 수제자였다.  

오늘도 전산실을 거친 쇠꼬챙이에 걸린 돼지들이 방혈실 작업장으로 들어오기 시작했다.  평소처럼 익숙하게 돼지 경부에 직각으로 칼을 꽂아 넣어 경동맥을 순식간에 절단해서 방혈 작업을 하는 민선의 옆모습을 설핏 살핀 박 씨는 자신 앞에 있는 돼지에 집중한 뒤 칼을 꽂아 넣었다.  너무 깊이 찌르면 심장, 식도, 기관지가 손상되어 방혈이 불량해지고 이는 악취와 근육부패로 이어지기 때문에 집중력이 필요한 작업이었다.  

또한 방혈 과정에서 혈액의 오염으로 인한 세균 감염 가능성 때문에 살균된 작업용 칼을 삼십 분 단위로 교체해야 했다.  한 시간의 작업이 끝나고 작업용 칼을 들고 살균실로 들어가는 민선의 뒷모습을 바라보던 박 씨는 그녀를 처음 보았던 그날이 떠올랐다.


그녀를 처음 본 십 년 전쯤의 그날도 박 씨는 출입문 옆 데스크에 앉아 종이컵에 담긴 믹스커피를 홀짝이고 있었다.  새벽 다섯 시부터 시작되는 축산 시장의 하루가 저물어 가던 오후 제일 축산의 통유리  너머로 오토바

이의 고정받침을 발로 차서 세워둔 채 제일축산으로 걸어 들어오는 한 여자의 모습이 그의 눈에 띄었다.  

평소처럼 심드렁한 표정의 그가 나른하게 기지개를 켜고 있을 때 자동문을 통과한 여자가 작업장 내부를 두리번거리다가 데스크에 있는 그를 발견하고는 입을 열었다.


"혹시 여기 사람 안 뽑으시나요?"


다짜고짜 들어와서는 처음 보는 자신에게 일자리를 묻는 존재를 그제야 의식한 듯 박 씨는 심심해 보이는

표정으로 자신의 앞에 서 있는 여자를 위아래로 스캔하듯 훑어보았다.  

스물을 조금 넘겨 보이는 중키에 마른 몸매 짧은 커트머리 그리고 유난히 밝게 빛나는 눈동자가 박 씨의 눈에 담겼다.  그 눈빛에 호기심이 생긴 박 씨가 무심한 표정으로 그녀에게 공을 던지듯 물었다.


-"긍께,   일을  수 있는?"


그의 말에 멋쩍게 자신의 짧은 머리를 긁적인 그녀가 웃으며 답했다.


"제가 뭐든 잘할 수 있는데요.  또 배우는 것도 잘합니다."


가진 건 아무것도 없어 보이는 나이 어린 여자애, 어른도 아니고 청소년도 아닌 어중간한 닭도 병아리도 아닌 그야말로 어정쩡한 그녀를 보며 박 씨는 고개를 갸웃하고는 고갯짓으로 안쪽에 있는 사무실 쪽을 가리켰다.

마침 사무실 안에 있던 총무가 무슨 일인가 싶은 표정으로 문을 열고 걸어 나오고 있었다.


총무가 박 씨에게 눈으로 무슨 일인지를 묻고 있을 때 민선은 자신에게 다가오는 총무를 향해 허리를 굽혀

인사를 하고는 점퍼 안주머니에서 봉투를 꺼내서는 총무에게 건넸다.

총무는 다짜고짜 내미는 봉투를 엉겁결에 받아 들고는 그 자리에 선 채 봉투 안에 든 종이를 펼쳐보았다.

그 종이의 윗면에는 [이력서]라는 제목의 큰 글씨가 인쇄되어 있었고 그 아래에는 참으로 간결한 그녀의 이력이 적혀 있었다.


-"음... 그러니까.  고등학교는 중퇴.

   검정고시...

   오토바이 수리업....."


총무의 입을 통해 불려지는 자신의 이력에 민선은 얼굴이 달아올랐지만 마음을 다잡고는 힘주어 말했다.


"뭐든 시켜만 주시면 열심히 할 자신 있습니다.  제가 또 힘이 좋아서 못하는 일이 없고 기계도 잘 다룹니다."


눈에 힘을 잔뜩 줘서 자신의 자신감으로 부족한 이력을 채워보기라도 하려는 그녀의 노력을 옆에서 지켜보는

박 씨의 무심한 표정에 잠시 호기심이 깃들었다.  

자신 앞에 서 있는 여자애가 난감했던 총무는 그녀를 대충 서둘러 내보낼 요량으로 검토해 보고 연락을 주겠다며 그녀를 출입문 앞으로 앞세워나갔다.  끝내 출입문까지 밀려나서도 문 안쪽으로 허리를 숙여 인사를 한 민선은 오토바이에 올라앉아 안전모를 착용한 뒤 오토바이를 몰고 도로로 나아갔다.

총무가 고개를 절레절레 흔들며 사무실로 다시 들어가는 동안 박 씨는 도로 쪽으로 사라져 가는 그녀의 뒷모습을 오랫동안 지켜보았다.  


그녀의 모습이 저 멀리 교차로에서 우회전을 하며 사라지고서야 창너머에서 시선을 돌린 박씨가 큰소리로 사무실에 있는 총무를 불렀다.


" 방금 제 방혈실로."


그의 말에 총무의 얼굴에 뜨아한 표정이 떠올랐지만 그는 이내 박씨를 향해 수긍의 표시로 고개를 끄덕였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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