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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묭롶 Jun 03. 2024

즐거운 나의 집.

3화. 독산동 388-8 번지.


금천구청 건설과 도시계획부에 소속된 김인철 주무관의 인터폰에 빨간 불이 들어옴과 동시에 알림음이

울리기 시작했다.  내선번호를 확인한 김 주무관은 한숨을 크게 내쉬 고는 인터폰 수화기가 무거운 짐이라도 되는 듯 무겁게 들어 올렸다.


"네.  사무관님.  알겠습니다."


수화기를 내려놓은 김 주무관은 책상 오른쪽에 놓인 결재파일을 들고 건설과 사무관실로 향했다.  사무관실

앞에서 다시 한숨을 크게 내쉰 그가 사무관실 출입문을 노크한 뒤 문을 열고 안으로 들어섰을 때 의자에 앉아

있던 안 사무관이 모니터를 보고 있다가 시선을 들어 주무관을 주시했다.

사무관의 눈빛에 심장이 덜컥 내려앉은 주무관은 저도 모르게 결재파일이 보호구라도 되는 듯 가슴에 끌어안았다.


-"거참.. 하루종일 문 앞에서 그러고 있을 건가?"


사무관의 질책에 황급히 상관에게 다가가 결재파일을 그의 앞에 내려놓은 주무관은 그 자리에 선 채 자신의 이마에 난 땀을 손으로 훔쳐냈다.  

결재 파일을 펼쳐 손으로 넘기기 시작한 사무관이 서 있는 주무관을 말없이 올려다보자 주무관은 침을 꿀꺽 삼켰다.  


-"독산동 388-8 번지는 아직도 그대론가?"


'독산동 388-8 번지'가 기어코 사무관의 입에서 말이 되어 나오자 주무관의 얼굴은 소금에 절은 오이지처럼 난감함으로 절여졌다.  


"그게.... 공동명의자인 한민주 씨 소재가 파악이 되긴 했는데......"


-"했는데... 다음은 뭐지?"


자신을 똑바로 바라보며 묻는 사무관의 시선이 바람을 호쾌하게 가르며 과녁에 꽂히는 화살처럼 자신의 얼굴에 박히는 것이 느껴지기라도 하듯 주무관이 순간 움찔했다.


"그 관련해서 자신은 관여하고 싶지 않다며 통화를 거부했고 그 뒤로 수차례 연락을 해봤지만

 전화를 끊고 있어서......."


-"그래서?"


"네.  그래서 이번에는 그 동생을 통해서 설득해보려 합니다."


다시 자신에게 꽂히는 시선을 견디다 못한 주무관이 냅다 큰소리로 답을 하고는 스스로 생각하기에도 만족스러운지 칭찬을 기다리는 강아지 같은 눈망울로 사무관을 바라보았다.


-"그나마 나은 방법이군.  이제 제발 해결하자.  이거 관급공사 입찰자가 시장님 사모님 사촌인 거

  아는 사람 다 아는데.  일 년째 공사 못하는 거 시장님께 들어가면.  알지. 말 안 해도..."


사무관의 말에 잠시 반짝였던 주무관의 눈동자에 불이 꺼졌다.  시커멓게 죽은 낯빛으로 상관에게 인사하고 돌아선 그의 머릿속은 온통 '독산동 388-8 번지'로 가득했다.






[독산동 388-8]

곳간에서 인심 난다는 말처럼 코딱지만 한 집들이 다닥다닥 붙어 있는 독산동은 평수 작은 집들의 크기에 비해 너무나 다사다난한 삶을 사는 사람들로 사건사고가 많은 곳이었다.  언제나 가족들이 모이는 저녁이면 오손도손 즐거운 말소리 대신 배경음처럼 누군가가 싸우고 울고 던지고 부수는 소리가 한집 걸러 한집에서 들려왔다.

매일같이 되풀이되던 배경음의 재생은 독산동 재개발 계획이 통과되면서 종료되었다.  쥐꼬리만 한 보상금을

쥐어든 사람들은 또 다른 살길을 향해 떠나갔고 그 돈 가지고 못 나간다고 버티던 사람들도 정부에서 진행하는 관급사업의 특성상 추가보상금 대신 영구임대 아파트 입주를 권하는 공무원들의 설득에 못 이겨 집을 비웠다.

그렇게 한집, 두 집 정리해 나간 결과 독산동 도로 건설 부지에는 딱 한집만 남게 되었다.

그곳이 바로 독산동 388-8 번지였다.


과거 주변 집들에 묻혀 움집처럼 박혀 있던 그곳은 이제 철거팀에서 그 집만 빼고 전부 밀어 버려서 사위가

뻥 뚫려 있었다.  대신 집 주변에는 각종 건설 장비들이 배치되어 있었고 오늘 당장이라도 그 코딱지만 한 집을  지우개로 지우듯 지상에서  쉽게 지울 수 있는 만반의 준비가 되어 있었다.


하지만 대한민국은 나라가 주관하면 무조건 따라야 하는 중국 공산당이 아니었기에 집 명의자의 동의라는

법적 절차가 필수적으로 필요했다.  

그 절차가 바로 김주무관을 잠 못 이루게 하고 하루에도 열두 번 팔짝 뛰게 만드는 일이었다.


사무관에게 당하고 나온 김 주무관은 자리에 앉자마자 익숙하게 전화번호를 눌렀다.  전화가 연결되는 소리와

함께 대한은행 광고 배경음이 흘러나오기 시작했다.  


"행복한 하루 보내세요.  고객님께 도움을 드리는 대한은행 서대문 지점 양미소입니다."


은행 직원의 목소리를 들은 김 주무관은 너무나 전화를 자주 해서 이제는 익숙해져 버린 목소리에 절로 나오는

한숨을 억누르며 입을 열었다.


-"금천구청 도시계획부 소속 김인철주무관입니다.  지점장님 부탁드립니다."


"네. 잠시만 기다려주시면 연결해 드리겠습니다."


그래도 전화를 아예 받지 않는 건 아니어서 다행이란 생각을 잠깐 하고 있을 때 전화를 받은 상대편의

목소리가 들려왔다.


"주무관님.  계속 같은 말씀드리는데 그 일은 저와 관계가 없고 신경 쓰고 싶지 않습니다.

  이만 전화 끊겠습니다."


일방적인 통보와 함께 전화가 끊긴 수화기를 손에 든 주무관의 표정은 허탈해 보였다.  

이제 최후의 수단을 쓸 수밖에 없다고 생각한 주무관은 보고서 파일에 적힌 한민선 이름 옆에 기입된 연락처

번호를 전화기에 누르기 시작했다.  





독산동 건설 현장은 여러 번 갔지만 겉에서 보기만 했을 뿐 문제의 그 집에 직접 가본 적은 없는 김 주무관은

이게 무슨 고생인가 싶은 생각을 하면서 자신이 손에 든 수박을 내려다보았다.  다 밀어버린 평지에 오점처럼

남아있는 그 집의 문 앞에선 그는 한숨이 절로 나오는 자신을 다시 다잡고는 현관문을 두드렸다.  

문을 두드린 지 얼마 되지 않아 안에서 두두두두 뭔가가 달려오는 소리가 나더니 중학생 정도 되어 보이는

남자아이 하나가 달려 나와서 문을 열었다.

열린 문 안쪽으로는 휠체어에 앉은 할머니 한 명과 짧은 커트머리를 한 여자 한 명이 보였다.  엉거주춤

현관문을 열고 들어간 주무관이 신발을 벗는 동안 한눈에 훑을  정도로 좁은 집이었다.


잠깐 문 앞까지 다녀온 몇 걸음도 아쉬웠던 것인지 한민선으로 추정되는 여자가 남자아이를 뒤에서 이뻐 죽겠다는 표정으로 부둥켜안았다.  그는 순간 빌어먹을 집구석이라고 욕했던 자신이 잠깐 부끄러웠지만 꼭 해결해야만 하는 자신의 본업을 떠올리고는 헛기침을 하며 목을 가다듬었다.

민선의 엄마로 보이는 할머니가 그를 보고는 딸에게 손짓을 했다.


"그만하고 손님이 오셨는데 차라도 내와야지."


민선 엄마의 권유로 그제야 자리에 앉은 그가 둘 데 없는 시선으로 좁은 집의 이곳저곳을 살필 때 그의 앞에 티백을 넣은 녹차잔이 놓였다.


"이거.. 저녁시간이라 식사를 챙겨드려야 하는데...."


말끝을 흐리는 민선엄마에게 강력한 두 손 젓기로 극구 사양을 표시한 그는 그제야 어렵게 말을 꺼냈다.


-"그간 내용 아시는 것처럼 이 집 한 곳 때문에 공사가 진행이 안되고 있습니다.

  그래서 이제 가족분들이 나서서 한민주 씨를 설득해주셔야 할 것 같습니다.

  아니. 그러셔야 합니다."


그의 입에서 '한민주'라는 이름 석자가 나오자마자 한민선과 그녀 엄마의 얼굴이 어두워졌다.  

한참 입을 다물고 있던 민선이 그 자리에서 굳은 듯 표정이 굳은 엄마를 보고는 주먹을 쥐었다.


"네.  저희도 이 집에서 더 살기는 힘들는 거 알고 있어요.

제가 어떻게든 언니... 아니 한민주 만나볼게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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