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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묭롶 Jul 29. 2024

즐거운 나의 집.

11화.  쓰임새.

오늘도 잠들지 못한 민주의 의식은 어딘가로 자꾸 부유하는 것만 같았다.  부유하는 쓰레기로 가득한 해변가처럼 잠이라는 수면 아래로 가라앉지 못한 의식은 밀물 속에 해안가로 밀려드는 부유물처럼  민주의 발목을 감아왔다.  끈적하게 들러붙는 의식에 얽매인 피곤한 육체가 진저리를 칠 때쯤 오늘도 아침을 가장 먼저 알리는 새들의 지저귐 소리가 들려오기 시작했다.  


'다섯 시가 조금 못되었겠군.'


굳이 침대 옆 협탁에 놓인 스마트폰을 들지 않아도 지저귀는 새들의 소리만 듣고도 민주는 시간을 짐작할 수 있었다.  


'그땐 새소리가 아니라 CNN 방송에 눈을 떴었지.'


감은 눈앞으로 독산동 집을 떠나 김원장의 아파트로 옮겨 왔던 시절의 풍경이 눈앞에 펼쳐졌다.






독산동에 살 때도 잠을 많이 자진 않았지만 김원장의 집에 온 후로는 김원장이 짜준 일정표대로 시간을 보내야 했다.  처음에는 쾌적하고 위생적인 환경에 기꺼운 마음이 들었지만 자신을 선택한 김원장의 목표에 부합해야 한다는 부담감이 민주를 억눌러왔다.  독산동 집을 고쳐주는 대가로 집을 공동명의로 해 놓은 것도 그녀의 부채였지만 그녀의 숙식과 학업에 들어가는 모든 비용이 순수한 호의에서 비롯된 것이 아님을 그녀는 매 순간 인식하고 있었다.  원래부터 해왔던 것처럼 수학이나 암기과목은 문제가 되지 않았지만 영어 특히 회화는 단시간의 노력으로 해결할 수 있는 일이 아니었다.  


김원장은 당장 가사도우미를 필리핀 국적자로 바꾸었고 해야 할 말은 전부 영어로 하기 시작했다.   거실에 있는 대형 TV에서는 새벽 다섯 시부터 미국 CNN 방송 뉴스가 흘러나왔다.  새벽 한 시가 넘어서야 끝나는 일상은 다시 새벽 다섯 시 즈음부터 시작되는 나날이 반복되었다.   한강뷰 아파트 창 너머로 펼쳐지는 아름다운 풍경과는 상반되는 지구 반대편에서 일어나는 각종 총기사건과 기준금리 인하, 그리고 공화당 대변인의 담화 따위를 민주는 매일 아침 들어야 했다.  김원장의 기사가 새로 전학한 중학교로 아침에 태워다 주면 학교가 끝나기 무섭게 다시 학교정문에서 그 차로 아파트로 돌아와 그때부터 김원장이 붙여준 과외 선생들을 시간별로 만나야 했고 선생들이 내준 숙제까지 마치고 나면 새벽 한 시가 훌쩍 넘어있을 때가 많았다.

언제쯤이면 마음 편하게 잠을 자고 다른 아이들처럼 편하게 쉬고 웃을 수 있을까라는 생각이 불현듯 들 때면

몸에서 힘이 빠져나갔지만 이 모든 것을 선택한 것이 바로 자신이라는 사실 때문에 그녀는 누구도 원망할 수가 없었다.  엄마가 보고 싶고 힘들 때는 다 버리고 독산동으로 돌아가버릴까 고민도 됐지만 이 순간에 주저앉으면 다시 기회가 없을 거란 생각에 민주는 열이 나고 코피가 터져도 참아냈다.  






-"진행 관계는 어때?"


김원장의 형이자 나지왕 검찰총장의 비서인 김비서가 전화를 걸어왔다.


"잘 되고 있어.  현 상태면 설화외고 입학은 문제가 없어 보여.

 면접이 문젠데 지금 그쪽 관련 전문 과외를 하나 더 붙였어."


-"그래.  잘 됐네.  도련님 관련 일이라 문제가 생기면 절대 안 돼.  

  다른 쪽도 진행하고 있지만 내가 오죽하면 너한테까지 부탁을 했겠어?"


형의 말을 듣던 김원장의 미간이 찌푸려졌다.   나직이 한숨을 내쉰 그는 손을 들어 이마를 문질렀다.


"형 부탁만 아니면..... 내 상황 알잖아.  아영 엄마도 그렇고....."


-"그 부분은 미안해... 너도 알잖아.  우리 집안이 누구 덕에 이만큼 사는지......

  다시 통화하자.  이만 끊을게."


전화가 끊긴 뒤에 김원장은 창 밖을 멍하게 바라보다 책상 위에 놓인 액자 속 사진을 가만히 들여다보았다.  

자신과 아내와 그리고 그 가운데에서 밝게 웃고 있는 딸아이를 바라보던 그가 손을 들어 올려 시큰거리는 눈두덩이를 마구 문질렀다.  매일 아침 힘겹게 일어나 소파에 앉아 CNN 방송을 보는 자신에게 인사를 건네고 옆 자리에 앉아서 방송을 보는 민주의 모습에서 딸아이의 모습이 겹쳐 보여서 그는 민주에게 다정할 수가 없었다.  그가 자신의 곁을 내어주는 순간 자신이 무너질 거란 사실을 스스로도 너무 잘 알고 있었기에 형의 부탁 받아들인 자신의 결정을 그는 매 순간 후회하고 또 후회했다.  이제 어떻게든 그 아이를 형의 부탁대로 하루라도 빨리 미국으로 보내는 방법밖에 없다고 생각한 그는 그 목표를 향해 민주를 독촉할 수밖에 없었다.  

그나마 다행인 건 민주는 애초에 사람에 대한 기대가 없어 보였다.  채권자와 채무관계 그 이상도 그 이하도 아니라는 듯한 그 아이의 표정이 아니었다면 아무리 형의 부탁이어도 일을 진행할 수 없었겠지만 그래도 이제 조금만 더 버티면 설화외고는 기숙학교였기에 그는 안간힘을 써서 버텨냈다.  





공원을 끼고 있는 아파트 주변에는 여러 종류의 새들이 사는 것 같았다.  이쪽에서 한 종류의 새가 지저귀기 시작하면 다른 쪽에서 다른 종류의 새 울음소리가 들려왔다.  서로 경쟁적으로 자신의 영역을 주장하기라도 하듯 여기저기서 지저귀기 시작하는 새들의 합창을 듣고 있던 민주는 갑자기 설화외고 면접 때 자신이 했던 말이 불현듯 떠올라서 헛웃음이 나왔다.  


'결론적으로는 그때 면접관들한테 거짓말을 한 게 되었네.'


그녀는 설화외고 면접 때 전문 과외 선생님이 써준 대본대로 답하지 않았다.  왠지 김원장에게 그의 지도가 아니라 자신의 실력으로 붙었다고 말할 수는 없겠지만 스스로 그렇게 하고 싶었다.  자신을 쓰임새에 맞게 쓰기 위해서 프로크루스테스의 침대처럼 자신을 늘리고 자르고 돌려 깎기까지 했지만 그 과정에서 스스로 선택해서 만들어낸 성과도 있다는 점을 자신 스스로에게 입증하고 싶었기 때문이었다.

어차피 전국 상위 1%의 순위가 아니면 지원 자체가 불가능한 설화외고였고 면접의 비율이 100%였기에 설화외고 대비 면접 과외는 서울대 면접 대비반 보다 훨씬 고액이었다.  그렇게 돈으로 만들어낸 모범 답안 대신

그녀는 자신에게 할애된 오분의 시간 동안 아인슈타인의 상대성 이론이 세상에 미친 영향력을 수학적, 과학적 관점에서 설명해 내었고 그녀 자신이 함수라고 가정했을 때 그 함수에 설화외고가 대입됐을 때의 가능성을

면접관들에게 어필했다.   천편일률적인 답변에 지겨웠던 면접관들은 민주의 답변을 듣고 학생부에 고정되어 있던 시선을 들어 자신들 앞에서 말을 하고 있는 민주에 집중했다.  


"그럼 학생 자신의 가능성을 사회적인 가치로 표현했을 때 어디까지로 보고 있나요?"


면접관 중 한 명이 그녀를 바라보며 물었다.  


"설화외고가 자랑스러워할 만한 인재가 되겠습니다."


'자랑스러워할 만한 인재라...... 세상에 그런 거짓말을 호언장담하다니..... 그때까지만 해도 참 순진했네.'


스스로를 비웃는 자신의 모습에 혐오가 치밀어 오른 민주는 그나마 오늘이 출근을 하지 않아도 되는 토요일이라는 사실이 위안이 되었다.  하지만 이내 지난번 은행으로 찾아왔던 남자와의 약속을 떠올리고는 다시 몸을 반대쪽으로 뒤집으며 이불을  몸에 둘둘 감았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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