brunch

You can make anything
by writing

C.S.Lewis

by 묭롶 Jul 22. 2024

즐거운 나의 집.

10화. 계약.

"할머니~~~!"


현관에 신발을 벗어던진 승호가 가방을 멘 채로 주방에 있는 할머니에게 날듯이 달려들었다.


"나.. 엄마가 오늘 햄버거도 사주고 올 때 쭈쭈바도 사줬다."


승호가 할머니에게 앵겨붙어서 조 대고 있을 때 뒤늦게 오토바이를 세워두고 들어온 민선이 그 모습을

보고는 피식 웃은 뒤 신발을 벗고 거실 겸 주방 겸 방으로 들어섰다.


"이놈아.  엄마가 뭐랬어.  집에 오면 손부터 씻으랬지.  이게 뭐야 가방도 안 내려놓고..."


민선이 한소리를 하고 난 뒤에야 승호는 헤헤 웃으며 방 안으로 들어갔다.  방으로 들어가는 승호의

뒷모습을 본 할머니 봉애의 눈이 민선에게 닿아 있었다.

그 눈빛이 무엇을 말하는지 짐작을 하면서도 속에서 울화가 치민 민선은 말없이 식탁 위에 서류봉투를 내려놓고는 화장실로 들어갔다.  손을 씻고 나온 자신을 끈질기게 따라붙는 봉애의 눈빛에 한숨을 내쉰 민선이 그녀를 바라봤다.


"저녁은 드셨어?"


-"응... 대충......."


대충 먹었다는 말인지 대충 안 먹었다는 말인지 알 수 없이 말꼬리를 흐리는 그녀의 모습에 갈증이 난 민선은 냉장고를 열어 캔맥주 한 캔을 꺼내들고선  봉애가 앉은 식탁 의자 옆에 자리를 잡았다.  


-"새벽에 어떻게 나가려고?"


걱정스러운 눈길로 캔맥주를 따는 민선을 바라보는 봉애의 말에 맥주를 한 모금 마시던 민선이 멈칫했다.


"아무래도 오늘 잠이 안 올 것 같아서...."


하지만 잠이 안 올 것 같다는 자신보다 더 심하게 심란해 보이는 엄마 봉애의 얼굴을 본 민선은 승호가 먼저 씻고 들어 닫힌 방문을 보고는 조심스레 주변을 살폈다.  승호가 있는 방에서 유튜브를 보는지 음악소리가 들리기 시작하자 봉애가 입을 열었다.


-"어떻든?"


"뭘 어째.  잘 살든만.  대한은행 지점장이래.  아주 많이 배운 티가 줄줄 흐르데."


막상 민주가 미워서 엄마에게 말은 그렇게 했지만 승호랑 인근에서 저녁을 먹고 나온 뒤에도 아직까지 카페에 맥을 놓고 앉아 있는 꼴이 이상해서 다시 들어갔을 때 그 파리했던 안색이며 정신을 못 차리는 모습이 정상은

아닌 것 같았다.   하지만 그런 말을 해봤자 엄마 맘만 심란해질 뿐이란 생각에 그녀는 애써 그 모습을 지워버리려고 했다.

심통 맞은 민선의 대답에 엄마가 이상하다는 듯이 고개를 갸웃했다


-"거 참.  이상타.  그때 김원장 말로는 분명히 미국 하버드 법대를 보낸다고 해서 나는 그쪽에 있을 줄 알았는데.......

어떻게 얼굴은... 몸은... 응... 건강해 보이고?"


방언 터지듯 쏟아지기 시작하는 엄마의 질문에 민선은 그만하라는 듯 손을 내저었다.


"엄마.  내 그동안 엄마 힘들까 봐 말을 못 했는데... 이 집.  엄마 교통사고 보상금으로 엄마명의로 산거 아니었어?  왜 민주랑 공동명의야?"


민선의 말에 엄마의 표정이 어두워졌다.






-"누추한 곳에 직접 오시게 해서 죄송합니다.  보시다시피 제가......"


자신의 눈앞에 서 있는 김원장을 휠체어에 앉아 올려다보던 봉애의 시선이 양말처럼 신고 있는 자신의 의족에 고정되었다.  잠시 그녀의 의족에 시선이 향했던 김원장은 실례했다는 표정을 지으며 옹삭 하게 방바닥에 앉았다.


-"드실게 마땅찮은데 차라도 한잔....."


휠체어를 돌려 주방 쪽으로 향하는 봉애를 본 김원장이 앉은자리에서 벌떡 일어서서 그녀를 만류했다.


"아... 아닙니다.  차는 괜찮습니다."


이번에는 자리에 앉은 김원장을 봉애가 탐색하듯 눈으로 살폈다.  그녀의 시선에 양복 재킷 안쪽 명함지갑에서 명함을 한 장 꺼낸 김원장이 그녀에게 명함을 건넸다.


"대치동에서 학원운영하고 있습니다.  물론 지금 상황이 이해가 안 되고 당황스러우신 점 이해합니다.

 그래서 직접 뵙고 설명해드려야 한다고 생각했습니다.  저라도 제 자식을 아무한테나 함부로는 못 맡길 테니까요."


-"네..솔직히 이해가 되지 않네요.  양육권만 포기하면 애를 데려가서 공부시키고 미국 하버드 법대까지 보내준다는데..... 그래서 당신들이 얻는 건 뭐죠?"


봉애의 단도직입적인 질문에 김원장은 잠시 고민했다.  친형인 김비서가 부탁한 일이었고 보안이 무엇보다 중요한 일이었지만 당사자에게까지 비밀로 하고서 민주의 엄마를 설득할 자신이 없었다.  

굉장히 난감한 표정을 짓고 있는 김원장을 주시하고 있는 봉애의 시선이 따가울 때쯤 그가 힘겹 입을

열었다.


"당사자인 민주는 학비와 생활비 외에 이 집의 수리까지 요구했습니다."


지금 딸아이의 학비 지원만 놓고 봐도 사기꾼이 분명하다고 생각한 봉애는 이건 장기밀매 아니면 인신매매며 경찰에 신고할 시점만 노리고 있다가 딸인 민주가 집 수리비까지 요구했다는 말에 기겁해서 저도 모르게 '헉'하는 소리를 내고 말았다.  


"지금 믿기 힘드시겠지만 대치동에 있는 원티어 학원 검색해 보시면 거기 제 자료와 사진이 다 나와 있습니다.

  절대 따님을 위험하게 하는 일은 없을 겁니다."


-"그걸 어떻게 믿죠?"


"저도 딸이 있었습니다.  제 딸을 걸고 약속드립니다."


'딸이 있다.'도 아니고 '딸이 있었다.'는 김원장의 말에 봉애는 되묻지 못한 채 한참을 머뭇거렸다.

애써 참담했던 표정을 수습한 김원장이 자신의 진심이 전해지길 바라는 눈빛으로 봉애의 눈을 마주 보았다.


"아주 귀하고 높으신 분의 자제가 하버드 법대를 준비 중입니다.  선행학습은 들어보셨죠?

  그런데 지금 그 자제분을 위해 설계된 과정이 일반 선행으로 입학이 어려운 곳이라 직접 그 과정을

  먼저 배우고 정보를 전해줄 학생이 필요한 상황입니다.

  저희는 민주 학생이 그 역할을 잘해줄 것으로 기대하고 있습니다.

  물론 저희도 이 모든 것을 그냥 해드릴 수는 없습니다.

  집은 고쳐드리는 대신 민주 학생과 공동명의로 하고 만약에 민주 학생이 기대에 못 미치는 경우

  이 집을 회수할 계획입니다.

  이해되시죠?"




"엄마. 듣고 있어? 왜 공동명의냐고?"


말 없이 생각에 잠겨있는 엄마가 답답했던 민선이 엄마의 어깨를 흔들며 재차 물었다.

딸의 독촉에 딸의 얼굴을 물끄러미 바라본 엄마가 희미하게 웃었다.


-" 다 엄마 잘못이야. 너가 승호한테 하는거 보고 뒤늦게

알았어.  그때 그러면 안됐다는걸.  그러니까 늬 언니 너무 미워하지마. "


"난 도대체 뭔 뚱딴지 같은 소린지 모르겠네. 아 몰라

나 잘래."


마시던 캔맥주를 식탁 위에 두고 씻지도 않은 채 방으로 들어가는 민선을 바라보는 봉애의 표정에는 씁쓸한 회한으로 가득했다.














이전 09화 즐거운 나의 집.
브런치는 최신 브라우저에 최적화 되어있습니다. IE chrome safari