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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묭롶 Jul 08. 2024

즐거운 나의 집.

8화. 빚 2.


모니터로 회의자료를 검토하던 민주는 지점장실을 두드리는 노크 소리에 고개를 들어 출입문 쪽을 바라보았다.  출입문 곁에 선 창구직원 미소씨의 얼굴에는 곤란한 표정이 담겨 있었고 그런 그녀 곁에 키가 굉장히 큰 남자가 서 있었다.  동생인 민선을 만나기로 한 날은 오늘이었지만 전혀 뜻밖의 내방객을 바라본 그녀는 의아한 표정을 지으며 직원인 미소씨에게 눈으로 용건을 물었다.  


"지점장님, 이분이 지점장님 명함을 가지고 오셨는데 창구에서 처리가 안 되는 내용이라서요....."


민주는 아직도 난감한 표정이  얼굴에 가득한 미소씨의 곁에 서있는 남자를 잠깐 사이에 자세히 살펴봤지만

아무리 기억을 더듬어봐도 처음 보는 듯한 얼굴이었다.  자리에서 일어선 그녀는 낯선 내방객에게 의자를

권했다.  그제야 엉거주춤 자리에 앉은 그를 본 민주는 지점장실 냉장고에서 음료를 한 병 꺼내와서

그의 앞에 놓아주었다.


"저를 찾아오셨다고요?  실례지만 제가 아시는 분이실까요?"


남자는 자신에게 시선을 고정하고 있는 민주를 보고는 무릎 위에 놓인 손을 만지작거리다 겨우 입을 열었다.


-"지난번에 길에서 명함 주시면서 도움이 필요하면 찾아오시라고 하셔서요."


의자에 앉아서도 앉은키가 큰 남자를 보던 그녀의 머릿속에 몇 달 전 길에서 그녀가 기둥인 줄 알고 그를 붙잡고

구토를 했던 기억이 스치듯 떠올랐다.  


"아.... 그랬었죠.  그날은 제가 실례가 많았습니다.

 그럼 무슨 도움이 필요하신 건가요?"


그녀가 '도움'이라는 단어를 언급하자 남자의 얼굴이 난처함으로 벌겋게 달아올랐다.  또 애꿎은 손만 마주 잡고 비비던 그가 고개를 들고 진지한 표정으로 자신을 바라보는 민주를 마주 보았다.


-"실은 방금 창구에서 설명은 들었습니다.

  서대문지점은 개인대출은 취급하지 않는다고요.

  그래도 지점장님이시니까 방법이 있지 않으실까 싶어서..... 죄송합니다."


많아야 서른 초반으로 보이는 남자는 평소 TV를 보지 않는 민주의 눈에도 젊은 직원들의 표현을 빌려 훈남이었다.  이 남자를 안내해 온 미소씨의 표정에서 짐작했지만 역시나 남자는 돈 문제로 자신의 도움을 구하고 있었다.  얼마 전 자신 앞에 동전크기만 한 땜통을 들이민 동생 민선이 과거의 묵은 빚이라면 이 남자는 그녀가 최근에 발생시킨 채무였다.  어떻게 오늘은 과거의 빚과 현재의 빚이 자신을 방문하는 날인가 싶은 생각이 든

민주는 저도 모르게 한숨을 내쉬었다.  

자신 때문에 한숨을 쉬는 것이라는 생각이 들었는지 남자의 얼굴이 무안함으로 붉어졌다.

그의 얼굴색을 보고 민주가 다급히 손을 내저었다.


"아니, 고객님 때문에 그런 게 아닙니다.

  어떻게 대출서류는 준비해 오신 게 있으실까요?"


그녀의 입에서 서류라는 단어가 나오기가 무섭게 그는 평소 메고 다니는 백팩 안에서 등기 권리증을 빼서 그녀 앞에 놓고는 초조하게 자신의 손을 만지작거렸다.   서류를 꺼내기 위해 그가 백팩의 지퍼를 여는 동안

가방에 시선이 꽂혀 있던 그녀는 그날 그 가방에서 꺼내어져 나왔던 물티슈와 생수를 떠올렸다.  그러다 이내 자신 앞에 놓인 상가 등기 권리증을 든 그녀는 일어선 뒤 자신의 노트북에 등기 권리증에 적힌 주소를 검색했다.


'대신동 284번지 아너팰리스 상가 104호 '


'아너팰리스'는 대신동에 세워진 지하 3층, 지상 30층의 주상복합 아파트였다.  로드뷰 정보는 현재로부터 6개월 전의 사진을 담고 있었지만 그녀는 이곳을 알고 있었다.  눈 뜨면 미국증시와 세계 주요 국가들의 경제면을 훑는 그녀는 국내 경제면에도 꽤 많은 시간을 투자했기 때문에 '아너팰리스 미분양'건도 일찍이 접한 상태였다.  모니터를 보며 어두워져 가는 그녀의 얼굴을 바라보는 남자의 얼굴도 더불어 어두워져 갔다.

다시 등기권리증을 손에 든 그녀가 회의용 테이블로 다가온 뒤 남자에게 서류를 돌려주었다.


"아마, 다른 곳에서도 어렵다는 얘길 들으셔서 제게 오신 것 같은데

  정말 죄송하게도 팩트만 말씀드리면 지금 상태로는 어느 곳에서도 대출 가능성은 낮습니다."


그녀의 말에 혹시나 싶은 일말의 희망을 가졌던 그의 얼굴이 좌절감으로 물들었다.  묵묵히 서류를 다시 백팩에 집어넣는 그의 모습에 안쓰러운 마음이 든 그녀가 평소라면 하지 않았을 말을 덧붙였다.


"은행의 기준으로 도움을 드릴 수는 없지만 다른 도움이 필요하시다면 돕고 싶습니다."


그녀 자신 스스로도 자신의 입에서 나온 그녀답지 않은 말에 '아차'싶은 표정을 짓고 있을 때 자리에서 일어서려던 남자가 급하게 그녀에게 두 손을 모아 허리를 숙였다.


-"지점장님의 도움이 꼭 필요한 일이 있습니다."





오후에 민주와 만날 약속을 한 민선은 하루 온종일 일이 손에 잡히지 않았다.  평소답지 않은 그녀의 모습을

박 씨는 곁눈질로 여러 번 쳐다보았지만 그런 그의 눈길도 알아채지 못하는 그녀였다.  한숨을 푹 내쉰 그녀가 방혈실 바닥을 솔로 박박 문지르자 그 모습을 지켜보던 박 씨가 한마디를 조용히 내뱉었다.


-"솔로 땅굴 파게?"


그의 말에 미친 듯 솔질을 하던 그녀가 그제야 솔질을 멈추고 박 씨를 쳐다보고는 머쓱한 듯 장갑 낀 손으로

작업용 모자를 쓴 자신의 머리통을 문질렀다.  겨우 방혈실 청소를 마치고 작업용 도구들을 살균기 안에 집어넣은 그녀는 작업복까지 살균실에 걸어놓은 뒤 매장 입구에 믹스 커피 두 잔을 타서 한잔은 박 씨에게 건네고 한잔은 손에 들고 의자에 걸터앉았다.  그녀가 커피 한 모금을 마시려고 종이컵을 기울였을 때 저 멀리

어디선가 환청처럼 승호의 목소리가 들려왔다.


-"어~음~~~ 마"


'엄마'소리에 마시려던 종이컵을 내려놓고 출입문 쪽을 바라본 민선은 입구를 향해 걸어 들어오는 남자애를 보고는 자리에서 벌떡 일어서서 그대로 입구달려 나갔다.  매일 새벽에 자는 모습만 보다가 해가 있는 환한 오후에 보는 승호는 유달리 환하게 빛이 났다.  날아오는 공을 받아 들 듯 자신보다 조금 작은 승호를 안아 든 민선은 아이를 트로피처럼  들고는 뱅글뱅글 돌았다.  그 모습을 지켜보는 박 씨의 얼굴에 잠시 표정이랄 것이 스쳐 지나갔다.  


'저 애가 바로 너의 빛이구나'


"어이구. 우리 강아지. 여기가 어디라고 여기까지 왔어?"


손으로 자신의 머리를 마구 쓰다듬는 그녀에게 슈렉 고양이 같은 맑고 빛나는 눈망울을 들어 올린 승호가

자랑스럽게 입을 열었다.


-"지하철 타고 왔지.  흐흐흐 엄마. 엄마.  오늘 급식 개 똥 맛... 나 배고파.. 응?"


그제야 학교 알림 어플에서 2, 3학년 기말고사로 1학년 단축수업을 한다고 했던 기억이 떠오른 그녀는

아들의 엉덩이를 대견하게 두들기고는 고개를 돌려 박 씨에게 눈을 맞췄다.

그녀와 눈 마주친 박 씨는 나가라는 표시로 문쪽으로 손짓을 했고 냉큼 가방을 챙겨든 그녀는 자리에 마시지 못한 커피만 남긴 채 승호와 어깨동무를 하고는 밖으로 빠르게 사라졌다.   그런 그녀의 뒷모습을 창밖으로 오래 지켜보던 박 씨의 눈이 그녀가 놓고 간 종이컵에 닿았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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