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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묭롶 Sep 09. 2024

즐거운 나의 집.

17화. 펑!

한강이 내려다보이는 워커힐 호텔 스위트룸 통창으로 비춰 들어온 햇살이 여기저기 내팽개쳐진 베개들로 가득한 침실을 환하게 비췄다.  한입 베어 물면 바삭 소리가 날 것 같은 토스트처럼 침대로 내리쪼이는 햇살이 침대 시트를 돌돌 감은 주리아의 얼굴에 닿자 그녀는 팔을 쭉 뻗어 기지개를 켰다.  눈을 뜬 그녀가 침대 옆 협탁에 놓인 크리스털 잔에 담긴 생수를 한 모금 들이키고는 자신의 옆자리에 잠들어 있는 앳된 얼굴의 남자를 보고는 흡족한 미소를 지었다.


'나이 먹지 않는 비결이 뭐냐고?  흥. 젊은 피가 답이지 뭐겠어.

 자꾸 뭘 해달라고 하니 귀찮긴 하지만 지들이 뭘 어쩌겠어.'


대한민국에서 중견 여배우로 자리 잡은 주리아는 연예계에서도 큰 목소리를 내고 있었지만 그보다 더 많은

재력을 가진 것으로 알려졌다.  특히 투자에 일가견이 있다는 입소문이 돌면서 그녀의 곁에는 떨어지는 콩고물을 주워 먹으려는 사람들로 가득했다.  물론 그녀는 자신 곁에 몰려드는 사람들을 알차게 이용해 먹는 능력도 그 누구보다 탁월했고 힘 있고 돈 있는 그녀에게 잘 보이려는 사람들만 가득할 뿐 그녀가 내미는 손을 밀어내는 용는 찾아보기 힘들었다.   그녀는 자신을 밀어내는 그 소수에게 끈질기고 가혹했기 때문이었다.

그런 이유로 선우는 그녀의 초이스를 거부한 이후로 연예계에 발을 붙일 수 없었다.  


느긋하게 침대에서 일어난 주리아는 욕실에서 새로운 샤워 가운을 꺼내 입은 뒤 침실을 빠져나와 너른 거실 소파에 걸터앉아서 입에 문 담배에 불을 붙이려고 했다.  그때 거실 테이블에 놓인 그녀의 스마트폰 진동이 울리기 시작했다.  스마트폰 화면에 표시된 '김실장'이라는 글씨를 확인한 그녀는 피려던 담배를 신경질 적으로 테이블 위에 던지며 짜증을 냈다.


"아니.. 오늘 오전 스케줄도 없고 방해하지 말라고까지 했는데. 이 새끼가 진짜."


신경질적으로 스마트폰을 집어든 그녀가 냅다 소리를 질렀다.


"왜?  왜냐고?"


스마트폰 너머로 김실장의 떨리는 목소리가 들려왔다.


-"선생님. 지금 TV 뉴스 채널 봐보세요."


김실장의 말에 아직은 잠이 덜 깨서 얼떨떨한 주리아는 테이블에 놓인 TV 리모컨을 들어 그가 시키는 대로 TV 전원을 켰다.  

TV 화면에는 검은 양복을 입은 중년의 남자가 준비된 연설문을 읽고 있었고 그 아래 자막에는 큰 글씨로

'대일건설 파산 선고, 후계자 상속 포기'라고 쓰여 있었다.


그때까지도 스마트폰을 귀에 대고 있던 주리아는 '대일건설 파산'이라는 자막을 보는 순간 눈앞이 캄캄해지면서 그대로 소파에 주저앉았다.  그렇게 멍하게 TV 화면을 향한 그녀의 귀로 이제는 고인이 된 박 회장 아들의 사과문이 들려왔다.



[국민 여러분과 대일건설 관계자 분들께 사과드립니다.

 대일건설은 오늘 고인이 되신 박지형 회장님의 지병 악화와 더불어 경영상의 어려움에 처했고 이를 해결하기 위해 각고의 노력을 기울였지만 더 이상의 회복이 불가능하다는 판단하게 오늘 파산을 선고합니다.  

대일건설의 파산과 더불어 후계자이자 차남인 저 박유재는 상속과 모든 경영권을 포기합니다.

다시 한번 모든 분들께 사과 말씀 드립니다.]


말을 마치고 고개를 숙인 TV 속 남자가 허리를 펴다 휘청이자 옆에서 대기 중이던 남자들이 그를 준비된 휠체어에 앉히고 퇴장하는 것으로 모니터는 다시 뉴스룸의 앵커로 전환되었다.

이 모든 과정을 바라보던 주리아의 입에서 신음이 터져 나왔다.

몸을 벌벌 떨던 주리아는 테이블 위의 모든 것을 손으로 내리치고 괴성을 지르며 물건을 던지기 시작했다.





"오랜만이야.  브라이언.  우리 S&T에서 보고 이 년 만이지."


청담동에 위치한 고급 술집 룸에 앉아 있던 민주가 문을 열고 들어서는 남성을  보고 팔을 벌려 남자를 안고는 어깨를 두들겼다.


-"아.. 이거 영광인걸. 네가 먼저 연락을 다하고."


그녀의 맞은편에 앉은 남자는 편안하게 자리에 앉은 뒤 테이블 위에 놓인 양주의 코르크를 따기 시작했다.


-"너 스트레이트지? 그런데 웬일이야?"


남자가 건넨 스트레이트 잔을 받아 든 민주가 남자를 보고 의미심장한 웃음을 흘렸다.  그녀의 웃음을 본 남자는 그녀에게 잔을 건배의 의미로 들어 올린 뒤 단숨에 들이켰다.  


"그럼 본론부터 얘기할까?"


-"넌. 여전하구나.  그래 오늘 날 부른 이유는?"


"너 유아이 건설 재무이사로 있지?  그 조직이 아마 학벌 중심이라 넌 한계가 있을 거고......"


민주의 말을 듣는 남자의 인상이 찌푸려졌다.  이제 얼굴에 반감이 가득한 남자가 마신 술잔을 손에 힘주어 잡은 채 그녀를 노려봤다.


-"정보력도 여전하네.  그래서?"


"그래서는 무슨 내가 너 자리 잡게 해 주려는 거지."


그녀의 말에 남자의 표정은 반감에 이어 의문으로 가득 찼다.  잠시 의아한 표정을 지은 남자의 얼굴 가까이 민주가 얼굴을 들이밀어 남자의 눈을 마주 보았다.


"난 항상 네 예상보다 더 많이 알고 있어.  대일건설이 드러내놓고 버리는 패라면 유아이가 숨겨진 진짜라는 거라든가.  아니면 차남이 상속세를 안 내면서 알곡을 털어먹을 계획에 네가 앞장서고 있는 거라든가...."


민주의 말에 남자의 안색이 하얗게 변했다.  그는 연신 주변을 두리번거렸다.  그런 그를 본 그녀가 그를 안심시켰다.


"걱정 마.  여기 녹음이나 CCTV 녹화 없는 안전한 곳이야.

  더불어 지금 너의 고민도 나는 알고 있어."


그녀의 말을 들은 남자는 목이 타는지 생수를 터서 벌컥벌컥 들이켠 뒤 그녀를 노려봤다.


-"너 지금 네가 하는 말이 얼마나 위험한지는 알고 말하는 거야?"


그가 하는 경고에도 여유롭게 비어있는 자신의 스트레이트 잔에 양주를 따른 민주는 잔을 그에게 들어 보인 뒤 술을 단숨에 들이켜고는 잔을 테이블 위에 올려놓은 뒤 잔뜩 날이 서 있는 그를 무덤덤한 표정으로 바라봤다.


"내가 처음부터 말했잖아.  너 도와주러 왔다고."


아직도 의심으로 가득한 남자가 그녀에게 되물었다.


-"어떻게 도와줄 건데."


남자가 자신에게 바짝 얼굴을 들이밀며 물어오자 민주는 환하게 웃으며 답했다.


"시간이 필요한 거 아니었어?  어떻게 하면 명분이 있게 대일건설을 정리하면서

 잘 빠져나갈지.... 그런데 지금 터치기에는 시간이 얘매한데 주변 상황이 곧 시끄러워질 것 같고.

 응.. 아냐?  내 말이 맞지?"


그녀의 말에 남자는 기가 막히다는 표정으로 고개를 가로젓다가 다시 테이블에 두 손을 올리고는 그녀에게 답을 구하는 학생처럼 상체를 기울여 다가갔다.


-"내가 뭘 하면 되겠어?"


그녀가 기다렸던 말이 그의 입에서 나오자 민주는 몸에 힘을 빼고 기대있던 소파에서 상체를 들어 올려 팔짱을 낀 뒤 잠시 그를 바라보다 입을 열었다.


"주리아라고 알지?  이번에 투자할 곳을 찾는다던데 그 여자를 이 판에 끌어들여봐."


-"그것뿐이야?"


그것 정도는 쉽다는 표정으로 안도하는 그를 보며 그녀가 빙긋이 미소를 지었다.


"하나 더 있어.  대일건설에 물린 업체 중 사람 숲이라고 있어.  거기 대금 해결해 줘."


-"거긴 왜?"


의아한 표정으로 되묻는 그를 본 민주가 다시 미소를 지었다.


"우리 은행에 물린 돈이 있어.  내가 대출 승인한 건 대손 뜨면 안 되니까."


살짝 윙크를 짓는 민주를 보던 남자가 두 손 들었다는 표정으로 다시 고개를 가로저었다.

그 모습을 본 민주는 두 손을 들어 올려 '웂스'라고 말한 뒤 다시 웃으며 술잔을 남자에게 권한 뒤  마음속으로 외쳤다.


'그래. 이제 폭탄은 넘겨진 거야.'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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