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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묭롶 Oct 14. 2024

즐거운 나의 집.

22화. 욕망과 음모의 태피스트리(2).

서일병원 꼭대기 층에 위치한 VIP 병실 안은 환자에게 연결된 각종 센서에 연결된 기기들에서 들리는 기계음과 호흡기 연결장치에서 나는 쉭쉭 소리로 가득했다.  그곳은 기계음 외엔 그 어떤 소음도 없었지만 여러 의료기기들의 반복적인 기계음이 만들어낸 협주는 죽음을 맞이하는 장송곡과도 같았다.

그 치열한 장송곡 사이로 긴 한숨이 더해졌다.  

평소 고지혈증과 혈압이 문제였지만 건강에 큰 문제가 없던 박지형 회장이었다.  그래서 박인재는 회장의 갑작스런 뇌출혈이 이해가 되질 않았다.  동생인 박유재가 유언장 문제로 대일건설의 회장인 아버지와 크게 싸운 뒤 집을 나가버린 뒤로도 많이 속상해했지만 아버지는 큰 건강상의 문제 없었고 쓰러지기 두달 전에 했던 종합검진에서도 전년 대비 크게 다른 소견이 없었다.  


'뭐가 문제였을까?  역시 김박사가 추천해준 알츠하이머 예방 신약탓일까?'


아버지의 주치의인 김박사는 아버지의 삼십년지기 친구와도 같았다.  대일건설의 출발부터 함께 했던 김박사는 비록 부인과 쪽 진료는 볼 수 없었지만 아버지와 함께 자신의 동생인 유재의 탄생도 함께 했었다.  

그런 김박사가 권하는 약을 아버지가 의심했을리 만무했다.  그 스스로도 김박사를 의심하는 자신에게 거부감이 들 정도였으나 아버지의 급작스런 발병의 원인을 그 나름대로 계속해서 조사했지만 이렇다 할 원인을 찾을 수 없었다.


대신 그는 아버지가 쓰러진 이후 진행되는 그 모든 의료적 처치를 의심없이 받아들일 수 없었다.  회사도 가지 못한 채 그는 아버지의 침상에 꼭 붙어서 처치된 모든 약물의 성분과 비율을 일일이 확인한 뒤에야 처치를 하게 했다.  


박인재가 병실 생활을 시작하며 제때 하지 못해 까끌하게 자란 수염 위를 손바닥으로 문지르며 피곤에 절은 얼굴을 마른 세수하고 있을 때 병실 협탁 위에 올려놓은 그의 스마트폰 진동이 울리기 시작했다.

대일건설 법무팀 장변호사임을 확인한 그가 통화버튼을 손가락으로 긋고는 스마트폰을 귀에 가져다댔다.


-"상무님, 문제가 생겼습니다."


'문제'라는 단어를 들은 그는 회사에 일이 생겼나 싶은 생각이 먼저 들었다.


"무슨 문제죠?"


-"중앙검찰청 24호 검사실에서 소환장이 왔습니다."


"소환장요?  누구를요?"


-"그게 상무님이 소환대상이셔서 오늘 오후 두시에 검사실로 출두하셔야 한다고 합니다."


"소환 사유가 뭐랍니까?"


-"그게 ...... 상무님 공금횡령으로 검찰에 투서가 들어갔다고 합니다."


통화를 먼저 끊은 인재는 혼란스러웠다.  아버지의 갑작스런 발병부터 이후의 모든 일들이 정상적이지 않았다.  지금 검찰의 소환요구도 마찬가지였다.  


'다른 것도 아닌 공금횡령이라니......'


자신을 아는 누구도 그가 공금횡령 혐의를 받았다는 말을 듣는다면 말도 되지 않는다고 생각할 정도로 그는

회사돈은 월급 외에는 손을 대본적도 대볼 생각조차 해보지 못했었다.  

자신이 잠시도 자리를 비울 수 없는 아버지의 안전이 위협받는 이 위급한 상황에 자신을 검찰로 소환하다니.

소환에 불응한다고 하면 강제 구인이 수순이라는 것을 알고 있는 그로서는 소환에 응할 수 밖에 없었다.

그는 참담한 표정으로 병상 옆에 없이 누워 있는 박지형 회장을 오래도록 내려다보다 움직임 없는 그의 손을 힘주어 쥐어 보았다.  


"인재야.  이제부터 우리 집에 가서 살자.  응..규현이 아들이면 내 아들이지. 안그렇냐?"


일곱살이던 그의 손을 잡아주었던 박지형회장의 손에서 느껴지던 온기와 단단한 마음이 지금도 느껴지는 것만 같았다.  






불고기 전골 냄비를 식탁 위에 내려놓은 선우는 집게로 불고기를 집어 그릇에 담은 뒤 국자로 국물을 떠서 그 위에 얹고는 식탁에 앉은 민주의 앞에 놓아 주었다.  그리고는 자신의 그릇에도 불고기를 담은 뒤 그녀의 맞은편에 앉았다.  


민주는 자신의 맞은 편에 앉은 선우의 눈동자를 마주보았다.  브라이언의 속을 알 수 없는 눈동자를 바라볼때미친듯이 돌아가머릿속과 다르게 생각이 모두 비치는 선우의 투명한 눈동자를 바라본 그녀는 저도 모르게 한숨을 쉬었다.  


'저런 사람에게 할 만한 이야기가 아닌데.. '


진창을 걸어가게 되면 어쩔 수 없이 바지 밑단을 더럽히거나  운이 나쁘면 진창에 엎어지기도 하니 애초에 진창은 피하는것이 상수지만 음모로 얼룩진 결과물의 재료를 그 결과물을 보이지 않고 어찌 설명한단 말인가..

눈을 한 번 질끈 감았다가 뜬 민주가 젓가락을 들어 불고기 한 점을 집어 들었다.


"일단 먹고 얘기하죠."






브라이언이 유야이건설 대표에게 전화를 걸어 주거래 은행 변경에 관한 보고를 하는 것을 직접 귀로 들은

민주는 흔쾌한 표정으로 양주잔을 들어 단숨에 들이켰다.


"그래 이제 나도 말할 준비가 된 것 같아.

 시작은 독산동 재개발 계획이었어.  엄마집이 독산동이거든.

그런데 시공사가 유아이더라. 그래서 인적관계랑 자금 흐름을 살펴봤지.

그런데 유야이대표가 대일건설 박지형 회장 차남이네.

이상하더라구.  대일건설이 시공하는게 정상적인데 왜 유아이가 이 사업을 차지했을까.

그래서 또 조사해봤지.  그랬더니 독산동 말고도 다른 알짜배기 공사는 다 유아이가 먹었더라고

그러면서 또 하자이행 보증은 대일건설이고 .

결정적으로 유야이 재무담당이 누군가 봤더니.  너더라고.  S&T에서 네가 뭘 했는지 아는데

그때 딱 감이 왔지.

유야이가 대일건설을 공중분해 시키고 한입에 털어먹을 계획이구나 ....

아너팰리스를 터뜨리고 회장이 죽으면 네 계획대로 퍼펙트였을텐데

회장이 원하는 시점에 가야 하는데 어라 큰아들이 떡허니 지키고 있지.

아너팰리스는 터지기 일보 직전이지 큰아들 처리하려면 시간이 필요한데

그 시간을 벌자니 너네 가진걸 덜어서 하긴 싫고 .. 응.

내가 그 역할을 해준 거잖아.

바로 쓰러질 젠가에 블럭 하나 꽂아서 한달 버티게 해줬으니까...."


그녀의 말이 끝나자 브라이언은 기가 찬다는 표정으로 연거푸 브라보 박수를 쳐댔다.


-"진짜 기가 막히네.  그런데 독산동은 그렇다치고 회장 일은 어떻게 안거야?"






선우의 어머니를 뵙기 위해 토요일 오후 서일병원에 들린 민주가 화장실에 들렸을 때 화장실 문이 열리며 청소기 카트를 밀고 들어오는 소리가 들려왔다.  그런데 들어온 사람은 한 명이 아니고 두 명이었는지 그 두 사람은 이내 이야기를 하기 시작했다.  은행에서도 화장실에서 청소하는 아주머니들이 잠깐씩 쉬는걸 알고 있던 그녀는 아무도 없는 줄 알고 이야기를 하는 그녀들 앞에서 인기척을 내고 화장실 문을 열기가 부담스러웠다.

그냥 조금 더 그곳에 머물면 자연스럽게 다시 나갈 것 같은 생각에 그녀는 그대로 그자리에 앉아있었다.


-"김박사가 지랄지랄했대메?"


"아니. 그 미친놈이 왜 멀쩡한 쓰레기통 차냐고.. 치우는 사람 어떡하라고?"


-"그런데 왜 그랬데?"


"언뜻 들으니 VIP 병실 박회장 지키는 큰아들이 어쩌고 저쩌고 하는 것 같더라고.

 뭔 통화를 하고 나선 냅다 쓰레기통을 발로 차네. 미친놈이"


-"야휴.. 목소리 낮춰.  어쩌겠어. 먹고 사는게 어디 쉽냐고.."


"휴... 나가자고 또 오래 자리비웠다고 소리듣지."


화장실 출입문이 다시 열리고 카트가 끌리는 소리가 난 뒤 민주는 천천히 변기물을 내린 다음 세면대에서 천천히 손을 씻으며 거울에 비친 자신의 모습을 살폈다.



'잘하면 아너팰리스에서 선우씨를 빼낼 수 있겠어.'


그녀는 핸드타월을 뽑아 손을 닦고는 스마트폰을 들어 S&T에서 브라이언과 친분이 있는 마틴에게 전화를 걸었다.

한참을 안부를 나눈 뒤 민주는 그에게서 브라이언의 연락처를 받을 수 있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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