brunch

You can make anything
by writing

C.S.Lewis

by 묭롶 Oct 21. 2024

즐거운 나의 집.

23화. 죄와 벌.

'어디서부터 잘못된 걸까?'


대일건설 파산 뉴스를 호텔 스위트룸에서 눈 뜨자마자 맞뜨린 후부터 주리아는 폭풍에 휘말린 것처럼 정신이 없었다.  불과 한 달 전만 해도 주리아의 아너팰리스 50억 투자 관련 기사가 연예 기사 TOP10에 실릴 정도였고 투자로 소문이 나 있던 그녀를 뒤따라 그녀의 지인들도 발 빠르게 아너팰리스에 투자를 했다고 했다.

아너팰리스 투자는 자신의 자산관리를 맡고 있는 김실장도 대일건설 관계자와의 수차례 미팅을 통해 진행이 된 상황이었고 결정적으로 그녀가 투자를 결정짓게 된 것은 서울 시의회 의원 세 명과 대일건설 관계자가 동석한 자리에서였다.  그날 자리에 참석했던 서대문구 국회의원과 시의원 두명은 투자처인 아너팰리스 관할 의원이자 현 시장의 복심이라 불리는 인물이었고 나머지 두 사람도 집권당인 여당에서 차기 인물로 키우는 사람들이었다.


-"사실 아너팰리스 평가절하는 작전주와 같다고 보시면 됩니다.

  주여사님도 작전주 여러 번 해보셨죠.

  결국 시점을 아는 사람은 먹고 나머지는 개미핥기에게 빨리는 거죠."


서대문구 국회의원 김응두가 맞은편에 앉은 주리아를 보며 느릿하게 말을 꺼냈을 때 그전까지 투자를 망설이던 그녀는 혹하는 마음이 들었다.  다른 사람 몇 천명 몇백만 명이 물을 먹더라도 소수의 몇 명만 먹튀 하는 작전주로 재미를 여러 번 봤던 그녀였기에 하이 리스크, 하이 리턴으로 보이는 아너팰리스에 구미가 당기면서도 쉽사리 결정을 지을 수가 없었다.  

그녀는 지금 이 방에 모여 있는 사람들이 보통 인물들이 아님을 알고 있었다.  지금까지 그녀의 인맥은 기껏해야 경영계의 중진에 해당했지만 정계 쪽으로 인맥이 없던 그녀에게 서울시장의 복심과 집권여당의 차세대 인물들은 놓치기에 아까운 기회였다.  

이미 그 방에 들어온 순간부터 그녀는 승기를 잃은 것과 같았지만 그녀는 투자자로서의 강점을 내 세우겠다는 생각으로 정신을 붙들었다.  

그녀는 여유로워 보이기 위해 마음을 가라앉히고 편안한 자세로 다리를 바꿔 꼬며 김응두 의원을 주시했다.


"의원님 말씀만 가지고 투자를 하기에는 현재 상황이 그리 좋아 보이지는 않는데요."


앞에 놓인 생선 값을 후려치기 위해 신선도를 따지는 아줌마를 보는 도도한 상인처럼 김의원은 들고 있던 술잔을 테이블 위에 내려놓으며 그녀의 말에 무심하게 답했다.


-"그럼.  안 하시면 되겠네."


금방이라도 자리를 털고 일어날 듯한 김의원과 그를 따라 일어나려는 것처럼 그의 눈치를 살피는 다른 두 의원을 본 주리아가 자리에서 다급히 일어나 엉거주춤 소파에서 일어서는 김의원의 팔뚝을 부여잡았다.

애교 섞인 웃음을 흘린 주리아가 김의원을 자리에 앉히고는 그의 앞에 놓인 술잔에 술을 채워서 그에게 권했.


"아휴. 우리 의원님 성격 화끈하시네.... 그게 아니라 소스를 조금 주시라는 거죠.

  정보가 너무 없잖아요."


그녀가 건네준 술잔을 마지못해 받아 든 김의원이 술을 한 모금 입에 가져다 대고는 곤란하다는 표정으로 동석한 대일건설 관계자들에게 눈짓을 했다.  그러그의 두 자리 곁에 앉은 대일건설 송이사가 작게 고개를 끄덕였다.  그제야 김의원은 오프 더 레코드를 그녀에게 공개를 해야 할지 고민스럽다는 신중한 표정으로 한참 동안 주리아를 응시했다.  마침내 마음의 결정을 내린 듯 그가 입을 열었다.


-"금액이 적은 금액이 아니니 이것까진 오픈해야겠지. "


'오픈'이라는 말을 들은 주리아는 그를 향해 상체를 들어 눈을 크게 뜨고 귀를 기울였다.


-"사실 아너팰리스 앞을 지나는 수변공원 조성 계획이 시의회 상정을 앞두고 있소.

  이건 극비라서 일부러 가격을 다운시키고 분양 후 투자 대비 최대수익을 얻기 위해 정말 극 소수에게만

  오픈된 자료요."


김의원의 말을 들은 주리아의 머릿속으로 최근 신문 기사 스쳐 지나갔다.

자신에 비해 정말 아무것도 아닌 사극에서 상궁이나 하던 김보배가 용산에 거지 같은 건물 하나 싸게 사서 일층에 대형 프랜차이즈 커피숍으로 리모델링하고는 그 건물을 열 배로 튀겨서 팔았다는 기사를 보며 분통을 터뜨린 게 불과 몇 달 전의 일이었다.  그 뒤로 그녀는 투자 담당 김실장을 달달 볶았다.  작전주 말고 이런 대어를 낚아 오라며 볶던 그녀에게 김실장이 물어온 것이 아너팰리스였다.


그녀는 주상복합 아너팰리스 앞으로 수변공원이 조성된 앞으로의 모습을 상상해 보았다.  인근의 유동인구와 건물의 임대 수익을 어림짐작 해보더라도 현재의 미분양이 계획된 것이라는 김의원의 말은 신빙성이 있어 보였다.  결국 사전에 정보를 아는 놈만 먹는 게임이었다.  

그렇게 생각하니 그동안 투자를 받으려는 입장이면서도 그녀에게 뜨뜻미지근했던 대일건설 관계자들의 반응이 납득이 가기도 했다.

당장 오늘만 해도 이 자리에서 대일건설 관계자들이 한 일이라고는 송이사가 마지못해 고개 한번 끄덕인 게 전부지 않은가.  

생각이 거기까지 미치자 주리아는 마음이 급해졌다.

렇게 그녀가 대일건설과 투자계약을 맺기 무섭게 대일건설 홍보팀에서 작성한 기사가 연예 기사 메인에 걸리기 시작했다.  

기사를 본 그녀의 지인들의 전화가 그녀에게 빗발쳤다.  기사를 본 그녀는 조금 불안해졌다.  이거 다른 사람이 많이 알면 안 되는 거 아닌가 싶은 생각에 걱정도 됐지만 그녀는 크게 걱정하지 않았고 그녀가 시키지 않아도 그녀 주변 사람들이 아너팰리스에 추가로 분양권을 구매하기 시작했다.




동작구 부동산 중개인 협의회 회장을 역임했던 오은영은 더 높은 수입을 얻고 싶은 마음에 대일건설이 분양하는 주상복합 건물 아너팰리스 일층으로 사무실을 옮겼다.  그런데 그녀의 예상과 다르게 분양 가뭄에 콩 나듯 이뤄졌고 그녀는 마음이 조급해졌다.  독산동에서 만나 술자리에서 그녀와 좋지 않았던 그 초짜를 또다시 이 건물에서 만나서 재수가 없는 건가 싶은 생각이 들었던 그녀는 어떻게든 상황을 만회해 보려 노력했지만 쉽지 않았다.  그나마 그녀는 기존에 해왔던 건들이 있어서 임대료는 근근이 내고 있었지만 그녀의 사무실 모서리 왼편에 위치한 그 초짜는 임대료도 밀리고 있다는 말이 들려왔다.  


그런데 주리아가 아너팰리스에 50억을 투자했다는 기사가 뜨자마자 갑자기 분위기가 바뀌었다.

연일 빗발치기 시작한 분양 문의에 오은영은 물 들어올 때 노를 저어야 한다며 미친 듯이 일을 진행하다 문득 그 초짜가 얻어만 놓고 비어있는 사무실이 떠올랐다.  지금 상태면 분양권 중개를 할 때가 아니라 이 상가를 선점해야 하는 것이 아닌가라는 생각이 든 그녀는 초짜에게 전화를 걸었다.  어차피 임대료도 못 내고

비어있는 사무실이었다.  그녀의 예상대로 그 초짜는 매매를 원했고 그녀는 그가 현재 시세를 알아보기라도 할까 봐 조바심을 치며 그와 당장 계약을 하고 잔금까지 마무리를 했다.


그와 상가 계약을 마무리하고 이십여 일이 지났을 때 그녀는 자신의 사무실에서 대일건설 파산을 뉴스로 접했다.  뉴스가 흘러나오는 동안 그녀의 머릿속은 채널이 나간 TV 화면처럼 지지직거렸다.  그냥 가만있었어도 자신의 사무실도 날아갈 판이었는데 그 초짜의 똥 바가지까지 스스로 둘러쓴 꼴이 되었단 생각이 든 그녀는 그대로 바닥에 주저앉았다.  




불고기 전골을 먹고 설거지까지 마친 선우는 머그컵에 우린 허브차를 들고 식탁으로 다가와 민주의 앞에 놓아주었다.   그녀의 앞에 놓인 허브차에서 산뜻한 허브의 향기와 함께 뜨거운 김이 올라오는 것을 지켜본 민주는 이내 어쩔 수 없다는 듯 한숨을 내쉬었다.  그런 그녀를 말없이 응시하는 선우의 맑은 눈동자를 보며 그녀가 입을 열었다.


"선우 씨,  저는 인과응보를 믿지 않아요.  언제나 결과에는 원인이 있고 결과는 사람이 만들어내는 거라고

저는 믿어요.  결론적으로 저는 착한 사람이 아니에요.  결과를 위해 어떠한 수단도 쓸 수 있죠.

제가 선우 씨에게 물었죠.  누구에게 폭탄을 돌리고 싶냐고요."


그녀의 말을 조용히 듣던 그가 생각하기도 싫다는 듯이 진저리를 치며 주먹을 쥐었다.


-"네.. 제 인생에 악인들은 많았지만 저는 그 둘을 용서할 수 없어요."


그의 말에 그녀는 조용히 고개를 끄덕였다.


"맞아요.  하지만 하늘의 천벌을 기다릴 수는 없잖아요.  그럼 사람이 그들에게 벌을 내려야죠.

  그렇게 했어요.  제가요."


그들에게 그를 대신해 벌을 내렸다는 그녀의 말에 그의 눈동자가 커졌다.


"저도, 기사를 봤어요.  그런데 어떻게요?  저는 짐작도 안돼서요"


민주는 앞에 앉아 있는 착한 남자가 답답하기도 하고 안쓰럽기도 했다.  때려도 받아칠 줄 모르고 되갚아줄 방법도 궁리할 줄 모르는 남자가 그녀 앞에 시선을 마주친 채 그녀의 대답을 기다리고 있었다.


"저한테 선우 씨가 처음 대출 부탁하러 왔을 때 제가 아너팰리스는 안된다고 했죠.  저는 그 이전부터 이곳을 조사하고 있었어요.  언제 파산을 해도 이상하지 않을 상태였죠.  그런데 그 곧 가라앉을 배에 그 두 사람을

제가 태웠어요.  물론 제 계획대로 둘 다 앞으로 정상적인 경제활동은 할 수 없을 거예요.

그래서 선우 씨 마음은 좀 어떤가요.  사실 제가 쓴 방법이 중요한 게 아니잖아요.

선우 씨 마음속 응어리가 풀렸으면 좋겠어요.  제겐 그게 중요해요."


민주의 답을 들은 그는 갑자기 머리가 멍해졌다.  자신의 앞에 앉은 여자가 자신의 수호천사처럼 보였다.

거기에 자신을 중하게 여기고 애를 써주다니 그동안 받아보지 못했던 타인의 호의에 그는 이제 그녀가 자신이 지목한 두 사람을 벌하기 위해 무슨 수단을 썼는지는 더 이상 중요하지 않다는 생각이 들었다.

그저 세상에서 엄마를 제외하고 자신을 중요하게 생각하는 사람이 생겼다는 그 사실이 그를 가슴 벅차게 했다.
























이전 22화 즐거운 나의 집.
브런치는 최신 브라우저에 최적화 되어있습니다. IE chrome safari