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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이든 Apr 07. 2024

행복에 대한 생각. 몰입과 사랑

나는 생김새와 달리 반골 기질이 있어서, 상투적인 표현을 마주하면 반사적으로 몸서리가 난다. 방금 쓴 이 문장에서도 ‘상투적인’, ‘반사적’, ‘몸서리’ 같은 단어를 내쫓고 다른 말을 들이고 싶은 충동을 이겨냈다. 굴복했다면 이틀 동안 첫 문장만 만지작거리다 글을 마치지 못했을 것이다. 대충 그런 사람이다.


   모두가 선망하는 좋은 단어는 상투어가 될 운명을 지닌다. 많은 이들에게 지나치게 많이 쓰이며 선명했던 뜻이 닳아 뭉툭해져 버리기 때문이다. 그렇게 각을 잃어 개성이 없어진 개념어들은 우회해서 표현하는 것이 문학적 미덕이다.


   하여간 이런 단어 중 하나가 ‘행복’이다. 인스타그램 피드에서 풍경 사진 위에 손글씨로 쓰인 ‘좋은 글귀 모음’이나, 교보문고 에세이 코너의 파스텔톤 표지와 함께 보일 때면 얼른 시선을 피하는 단어다.


   현실 너머 형이상학적 대화를 즐기는 편이지만 유독 ‘행복’을 논하자고 하면 간지러워, 대개 유물론적인 원론으로 주제를 넘긴다. 행복은 기분 좋음의 빈도이고, 기분을 좋게 하는 생리적 조건, 좋은 관계와 좋은 오감의 경험이면 충분하다고.


   이런 사정 탓에 늘 미끄러져 나가기만 했던 질문이 이것이다. 나는 언제 행복한가? 나를 행복하게 하는 것이 무엇인가?


   나는 불안이 많은 사람이다. 내 생각들을 꺼내 달아본다면 팔 할은 후회와 염려일 것이다. 좀처럼 현재에 머물지 못하고 과거와 미래를 오가며 위태로운 균형을 잡아 살고 있다. 문득 부끄럽고, 문득 한심하고, 문득 두렵고, 문득 초조하고, 또 문득문득 소란하고 답답하다.


   맛있는 음식, 황홀한 풍경, 낯선 경험들은 잠깐의 즐거움을 주지만, 감각이 자극되는 그 순간을 넘어 주도권을 갖지 못한다. 이들은 오히려 불안이 최고조에 달했을 때, 방어기제와 같이 게걸스럽게 찾다가 지쳐 잠들 뿐이다. 젊은 시절의 낭만이라 할 수 있는 여행과 미식에 큰 흥미가 생기지 않는 것이 이 때문인듯하다.


   내게 행복이라고 한다면, 어떤 높은 지경의 쾌락보다는 이 모든 파괴적 사고의 전원이 꺼진 순간이 가장 가까울듯하다. 그 방법은 깊이 잠들거나, 현재에 강하게 붙잡히는 것이다. 무언가 몰입하여 보고 읽고 쓰는 일이 그렇다. 순간에 빠져 깊게 잠겨있다 보면 시간이 흘러있고, 불안은 멀어져 있곤 한다. 나는 이 순간 행복에 가장 다가간다.


   몰입하기 가장 좋은 것은 아무래도 사랑이다. 모든 관심이 나의 생각 속을 벗어나 타자를 향하는 그 일이다. 내가 아닌 다른 이의 즐거움을 채워주는 일에 몰입하다 보면, 날 둘러싼 불안이 희미해짐을 자주 느낀다. 별것 아닌 나의 쾌락보다, 그 몰입이 더 큰 충만함을 주곤 한다.


   이렇게 생각하면, 행복은 나를 먹이고 채우는 일보다 다른 것들에 관심을 주는 일에서 피어나는듯하다. 전문가들이 행복의 수준은 타고난 외향성에서 온다 하여 한 때 나의 성질을 원망했으나, 이젠 상관하지 않는다. 사랑을 기울일 하나의 일, 한 사람이면 내게 충분함을 알았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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