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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이든 Apr 07. 2024

불안을 이길 힘은

우리말에서는 종종 거리감 있는 한자어가 오해를 부르곤 한다. ‘뭔가 엄청난 느낌’을 주는 공황장애의 영어 명칭은 ‘panic disorder’고, 한자로도 ‘두려울 공(恐)’에 ‘두려울 황(惶)’을 쓴다. 말 그대로 두려움에 대한 질환이라 할 수 있다. 그리고 그 두려움의 대상이 바로 공황발작이다. 단순한 공황발작은 매년 성인의 11%가량이 겪는 현상인데, 일반적으로는 장애까지 가지 않고 회복된다고 한다(MSD 매뉴얼).


며칠 전, 혼자 있던 카페에서 낯선 질식감을 느껴 뛰쳐나왔다. 항불안제를 처방받으며 함께 받았던 ‘비상약’을 삼키고 잠잠히 시간을 보냈다. 드라마 “정신병동에도 아침이 와요”는 공황발작의 증상을 두 눈과 귀를 막고 빨대로 숨을 들이쉬는 것으로 표현했다. 아마 내게 벌어진 일과 비상약의 정체도 이것이었을 것이다.


   돌이켜 떠올리면, 나의 숨통을 조인 것은 나의 삶에 대한 불안이었다. 서른을 넘긴 나의 사회적 가치에 대한 의심이었다. 적당한 월급을 받으며 적당한 소속을 써내며 적당한 대출도 받을 수 있었던 날들을 포기한 나는, 지금 제대로 가고 있는 것인지 하는 막연함이었다. 내가 직접 굴리지 않으면 나아가지 않는 일상의 무거움이었다.


   평소엔 발치를 적시던 얕은 불안도 문득 앞날을 의식하고 갈 길을 계획하려 치면 넘실대며 수위를 높인다. 가슴 뛰는 일을 하겠다며 월급을 받지 않고 살아온 지 한 해가 지났다. 장학금이나 연구비, 원고료 따위의 기타 소득으로 나를 먹이고 재우며 잘 살아왔건만, 다가올 시간과 그 뒤의 시간은 내 손을 아득히 벗어난 것이었다. 그렇게 턱 끝에 차오른 불안은 한 번은 토해져야 하는 것이었다.


   공황장애의 핵심은 예기불안으로, 반복되는 공황발작에 대한 두려움이다. 또다시 찾아올 두려움을 두려워하는 셈이다. 한동안 내게 예정된 생활은 안정과 거리가 먼, 불안의 삶이다. 그러니 내게 필요한 것은 막막함을 두려워하지 않고 받아들일 수 있는 넉넉한 마음일 것이다.


   코로나19가 퍼지며 모든 발치에 흔적을 남기던 시기, 첫 직장을 그만두고 내 안의 불안을 알아챘다. 무엇을 하고 싶은지, 할 수 있는지 아무것도 모르는 시기에 피어난 첫 불안은 의사의 도움과 글 쓰는 일을 통해 다스려졌다. “나아질 거라는 말 대신, 주어진 하루를 가꾸는 작은 손짓들로” 일상을 잠재웠다.


   지금의 불안을 이기는 법도 그때와 다르지 않을 것이다. 인정하고, 할 수 있는 작은 일들에 몰두하고, 글을 쓰며 넘실대는 마음을 잠재우고, 그렇게 숨을 트이고, 보이는 것을 바로 보는 것이다. 나침반 없는 여정을 이어갈 힘은 모든 걸음에 담긴 확신일 테니.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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