사는 일이 노동과 같이 느껴질 때가 있다. 조금 유난스럽지만, 이 몸 하나 먹이고 누이는 것이 누굴 위한 일인지 희미해지곤 한다. 모든 움직임이 고단하고 생각조차 피곤하게 느껴진다. 종종 생각하기로, 삶은 형벌을 받는 것일지도 모른다. 허약하기 짝이 없는 칠십몇 리터짜리 감옥에서. 나는 아무래도 세로토닌의 농도가 주기적으로 낮아지는 듯하다.
주어진 삶을 사랑하라고들 말하는데, 그 삶의 실체가 도대체 어떻게 생긴 것인지 보이지 않아 그러기 어렵다. 언젠가 삶의 방향을 잡겠다고 꿈꾸었던 사명이니, 비전이니 하는 말들은 일상 앞에 무력한 말이 되었다. 실체 없는 무언가가 표류까지 하는데, 잡을 도리가 있을까 싶다.
슬며시 나이를 먹어가다, 어느새 서른의 설움 앞에 혼자 서버린 나의 밤을 어찌해야 할까. 온갖 답답함에 둘러싸여 옴짝달싹 못하는 나의 호흡이 묻는다. 내가 지금 바라는 것이, 날 꺼내줄 것이 무엇이냐고.
해방, 첫소리에 바람을 불어내고 입술을 붙였다 떼며 멀리 던지는 이 말이 문득 부지런한 손발을 멈추게 한다. 해방, 이 발음 앞에 부유하는 먼지처럼 나부끼고 싶다. 나의 해지고 무거운 몸을 벗어내고 해방하고 싶다. 모든 것이 굳어져서 발걸음조차 진부한 곳을 반복해 향하는 상태에서 뚫고 빠져나가 미정의 상태에 머물고 싶다. 아무것도 정해지지 않은 그 자유로움에 눕고 싶다.
이제 삼월을 지나고, 봄의 한복판에 들어서는데 나의 마음은 여전히 웅크린다. 나의 미래와 현재에 아직 정하지 못한 것들이 두려워 몸을 펴지 못한다. 얼핏 안다. 분주하고 지치고 힘에 부치는 순간들을 태연히 견딜 만큼 내가 단단하지 못하단 것을. 그래서 이 순간을 그대로 두면 질식해 버릴 수 있다는 것을.
갇힌 나의 일상을 놓아주고 싶다. 어수선한 염려들에서 해방되어, 정선된 충만함으로 채워지고 싶다. 그렇게 나의 중심을 찾아 힘들이지 않고 편안하게 서고 싶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