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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추억조각사 Dec 22. 2023

날 이렇게 대한 여자는 처음이야

처음이라는 건 뭘까?

제목은 재벌 남주인공이 나오는 드라마에서 꽤 들어봤을 법한 클리셰한 문구이다. 이 문구 하나에 담긴 여러 이야기를 할 수 있지만 지금은 '처음'에 대한 이야기를 늘어놓아 보려 한다.


저런 말을 하는 장면으로 돌아가보면, 남자주인공의 인간관계내에서 만날 수 없던 여자주인공을 처음 만나 성향이나 성격을 처음 경험했을 때라고 볼 수 있다. 여자 주인공은 남자주인공을 막대하며 도망가고, 남자주인공은 거기서 반박하려다가 강경한 여자 주인공의 태도에 반해버리는 그런 전개가 이어진다. 예전 드라마들에는 실제로 비슷한 대사가 있었고, 요즘드라마는 표정이나 간접행동으로 표현한다. 


묘사와 분석을 조금 덧붙여보았다. 어쨌든 저 장면에서 이번엔 남자주인공의 심리로 한 번 더 들어가 보겠다. 남자주인공은 그동안 자신이 거대기업의 재벌이니 여러 예쁜 여자들이 먼저 대시하고, 꼭 그렇지 않더라도 기본적으로는 공손한 태도가 익숙했던 거다. 그러다 처음 막 대하는 기분을 당했을 때 신기했던 거다.


그렇다. 우리는 처음 뭔가를 하거나 당하면, 묘한 기분이 든다. (후.. 여기로 오려고 억지로 서문을 끼워 맞췄다. 고쳐쓰기를 할 때는 더 좋은 앞부분을 떠올려봐야겠다.)


처음 하는 여행, 처음 하는 해외여행, 처음 하는 요리, 처음 가보는 곳, 처음 본 것, 처음 먹는 것, 처음 하는 알바, 처음 만난 사람, 첫인상, 첫사랑, 첫 고백, 첫 연애, 첫 경험 등등.


처음이 붙은 수많은 경험들이 있다. 처음을 조금 지나면 초기, 기초도 있다. 삶으로 치면 어린 시절이고, 무언가 배울 때면 기본기를 배우는 시간이다. 


이런 것들을 보면 처음의 다음, 초기의 다음보다 처음과 초기가 훨씬 중요하게 느껴진다. 그리고, 처음은 기억해도, 두 번째 세 번째는 덜 강렬하달까?


확증편향이라는 것도 있다. 우리가 한 주제에 대한 어떤 의견을 처음 듣고 옳다고 받아들이면 그다음 것을 만났을 때 그것이 더 나은 선택지라도, 첫 의견을 선택하게 되는 인지 편향의 한 종류다.


약간 확실하진 않지만 과학적 상상을 해보자면 유전자에 새겨지지 않은 혹은 그렇더라도 내 삶에서 처음 하는 것들은 거기에 대한 뉴런 자체가 전무할 수 있다. 그러면 뇌는 그 분야에 대한 새로운 뉴런을 생성하게 되고, 그 관련 정보들의 코어이자 구심점이 되는 뉴런이 아닐까 싶다. 마치 이 그래프에서 처음 저 원이 생겨나고, 자잘한 정보들이 큰 원으로 모이는 느낌처럼 뉴런도 그러하지 않을까? 그저 상상이지만 아마 처음이 유독 더 강하게 느껴지는 것은 그 기저에 심리학/과학적인 원리도 들어있을 것만 같다.


이렇게 처음이라는 것의 현상을 파악하고, 원리를 유추해 보았는데 여기서 끝이 아니다. 처음이 중간보다 조금 더 중요하다면 그걸 이용할 방법을 찾아보아야 한다. 사실 그래서 이 글의 서문에 쓸데도 없지만 확 상상할 수 있어서, 이글에 집중하게 만드는 그런 장치를 넣어보았던 것이다.


그리고 이렇게 책을 쓰면서, 그동안 봐왔던 책들도 분석하고, 지금 보고 있는 책들도 분석하고, 간간히 등장하는 작법들도 더 주의해서 듣게 되었는데, 그러다가 책에서 가장 중요한 것은 독자와 만나는 제목이고, 그리고 그다음이 표지고, 프롤로그(서문)이고, 목차고, 첫 챕터고, 첫 챕터의 첫 문장이라는 것을 알게 되었다.


내 모습을 돌아봐도 그렇다. 보통 책을 고르다 보면 앞쪽을 적당히 펼쳐보다가 맘에 들면 조금 더 보고, 조금 더 보다가 아 이 책을 봐야겠다 하고 결정한다. 그러니까 이건 두 가지 방법으로 쓰일 수도 있다. 처음에 흥미를 느낄만한 확 몰입을 가져오는 글을 배치해서 책을 읽게 할 건지, 아니면 아예 책의 본질적인 내용을 처음에 빡 줘버려서 먹어보고 판단해!라고 해버릴 건지. 둘 중에 선택인 것 같다.


사진에서는 어떨까? 눈에 가장 먼저 보이는 밝은 부분에 흥미를 유발할 만한 포인트를 넣어서 적당히 어두운 부분들까지 보게 만들지. 아님 그냥 한눈에 보게 만들지. 이것도 선택인 것 같다. 중요한 건, 여기에서 도망가게 만들거나, 너무 적당한 걸 넣어도 안된다는 것이다.


분명 책에서도 우리가 알고 있는 이야기를 쓸 수도 있겠지만 그것은 필히 숨겨두어야 한다. 그리고 대중의 선호와 너무 먼 것 또한 조금 숨겨두어야 한다.


그런 방식으로 우리는 '처음'이라는 것을 대할 때 조금 더 전략적이고, 신중하게 다가가야 한다.


그런데 두 번째, 세 번째를 넘어 중기를 넘어가면 사실 처음이 오히려 의미가 사라질 수도 있다. 확증편향도 충분한 시간과 납득가능할 근거를 만나면 사라지고, 5년을 연애하면 처음보단 지금, 그리고 앞으로가 더 중요해진다. 또 이런 마인드도 있을 수 있다. 모든 순간이 처음이고, 이 나이, 이 시간, 이 시대는 처음이지 않냐고.


사실 그런 걸 보면 처음은 중요하다가도 어쩌면 중요하지 않다. 다만 설명하긴 어렵지만 어떠한 기저 원리 같은 것이 있고, 그걸 넘어서는 방법도 있다는 것을 알고, 나의 시간대와 목적에 맞게 활용해 가면 된다. 어떠한 책은 시작부터 끝까지 계속 좋은 걸 때려 넣고, 시작부터 끝까지 대중들이 싫어하는 주제만 다루는 책도 있으며, 어떤 사람을 내가 만났을 땐 첫인상이 별로였는데, 내 친구가 만났을 때는 첫인상이 좋을 수도 있다. 그 친구가 나랑은 친해지고 싶지 않아서 일부러 첫인상을 안 좋게 갈 수도 있고, 내 친구와는 친해지고 싶어서 좋게 했을 수도 있는 것이다. 그런데 거기에는 어떤 선과 악이 없다. 그저 그의 선택일 뿐이다.


우리는 이런 처음을 그저 이용하며 살아가면 될 뿐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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