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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추억조각사 Oct 19. 2024

애매한 것을 또 다른 애매함으로

나의 예술의 방향성

첫 전시를 하고, 작품집을 만들었다. 홍보를 하기 위해 인스타 채널에도 인터뷰이 신청을 하고, 실질적 도움들 그리고 다음 작업으로의 연계를 위하여 예술활동증명도 신청했다. 데뷔년도를 적는 날이 있었는데 사진으로 수입을 벌었던 시기로 할까 하다가 그냥 전시를 한 2024년으로 적었다. 이제 나도 개인 심리적으로, 그리고 어느정도 공식적으로 예술을 하는 사람이라는 궤도에 올라갔다.


계속 할 수 있을지. 직업을 할 수 있을지는 여전히 미지수이다. 계속 하고는 싶고, 할 마음이 지금은 있지만 현실의 문제에 부딪히기 일수이다. 그럼에도 맛을 봐버렸다. 사람들과 작품으로 소통하는 맛. 그 맛의 뽕에 아직도 취해있다. 그게 몇 년은 가지 않을까? 그럼 못해도 두 번의 연작까지는 할 수 있을 것이다.


그런데 돈이 안된다. 예술을 해서 돈을 못번다. 그런 관용적인 표현의 의미에 동의하고 공감하기보다는 조금 다른 느낌을 받는다. 예술의 수익성 문제보다는 사진 예술의 시장규모가 압도적으로 작은 것이 현실이라고 생각하기 때문이다.


얼마전 작업에 필요한 자금을 모으고자 축구장 알바를 하며, 대표팀 경기를 지원했는데 그때 나의 포지션은 월담을 하는 사람들을 막는 포지션이었다. 그래서 경기 자체보다 관중석을 더 많이 구경하게 되었는데, 가끔 집 근처 종합운동장의 경기장에서도 이 좌석에 꽉 채울 정도로 내 팬을 만들어보겠다는 다짐을 했었던 터라 관중들의 응원이 뭔가 가슴에 울림이 있어서 더 열심히 보고 있었다. 그러다 한 어린이 팬이 만들어온 플랜카드가 눈에 띄었다.


'흥민이 형 나중에 제가 국대가서 만나요!'라고 적혀있었다. 우상을 보고, 꿈을 꾸고, 시장의 파이가 커진다. 또한 국제적인 시장의 가치도 무시할 수 없다. 그런 의미에서 사진이라는 영역은 누가 있는가... 적어도 내가 보고 자란 사진가는 없으며, 있더라도 사진을 상업으로 다루는데에 그친다. 미술분야로 옮겨보아도, 역사속 혹은 현재에 국내의 유명한 화가들을 한 두번씩은 들을 수 있는데, 롤모델로 삼을만한 예술적으로 유명하고, 뛰어나고, 성공한 사진작가는 월간사진을 뒤져보아도 잘 나오지가 않는다.


별개로 산업에서 돈을 많이버는 사진작가는 존재한다. 상업성은 다른 영역이니까. 그런데, 그것을 꿈꾸고 싶지는 않다. 그러니까 이 직업을 가지고, 생계를 유지하고, 끝점을 보았을 때, 현실적으로는 가망이 없는 것이다. 그러나 아주 낙관적으로 보았을 때는 내가 선구자로 롤모델이 될 수 있겠지만 그게 선구자는 사실 고생만 많이 하지 수익적인 측면을 기대하기는 또 어려움이 있다.


그래서 내가 이걸 계속 할 수 있을지에 대한 부분은 고민의 연속이고, 굴레에 빠져있고, 모순이 모순을 만드는 그런 상황이다. 애초에 답이 나지 않는 일이니, 일단은 할 수 있는 데까지는 하는 것이 현명하지 않을까 하면서 가고 있는 것이다.


이렇게 현실적인 이야기를 진솔히 적어본 이유는 현실적인 이야기를 고민할 만큼의 단계에 있는 나의 위치를 어느정도 전달해보기 위함이다. 나는 현재 예술가로 막 시작을 했고, 준비는 더 오래했지만 어쨌든 첫 발을 내딛었고, 첫 발인 만큼 성과가 손에 잡히지는 않아 앞날을 장담하지는 못하는 그 자리에 있다.


그런데 이 자리에서, 예술적으로 내가 어떤 예술을 할 지에 대한 고민과 아이디어도 계속 떠오르는데, 그것을 기록해야 나의 개성으로 자리할 수 있겠다는 생각도 들었다. 그게 바로 이 글의 제목인 '애매한 것을 또 다른 애매함으로'라는 문구이다.


내가 표현을 할 때면 나는 늘 애매한 것에 대한 이야기를 한다. 언뜻 명확한 것이 주제같아 보인다면, 그 속에서 완전히 설명하기 애매한 무언가를 보았고, 조명한 것이다. '카이로스 : 시간을 부수다' 작업에서도 마찬가지였고, '시간'이라는 주제 자체도 애매하다. 사람들이 전시를 보러 올 때 '시간'이 주제인 것을 알지만 '시간'의 어떤 부분을 이야기하려 하는지 애매했다고 많이 들었다. 그리고는 가실때는 늘 생각해보지 못한 것들이라 생각해보게 되었다고 하시면서 가셨다.


그런것이다. 내가 작품을 만들고자 하는 지점과 나의 창작혼이 나오는 지점. 그것은 '애매함'에 있고, 나는 그것을 나만의 관점으로 해석하여 작품을 내고, 해석의 여지를 남기면서 또 다른 '애매함'을 만든다. 그 '애매함'이라는 여백은 보는이들이 채운다.


또한 내가 조명하는 애매함과 만드는 애매함에 하나의 의미가 더 있는데, 나는 장르조차도 애매하게 가져간다. 이것이 인물사진인지 풍경사진인지, 혹은 조각인지, 조형작업인지, 사진작업인지. 그 장르의 애매함 속에서 결합을 만들어내고, 애매함들이 모여 상위의 또 다른 애매함을 만든다. 또 한 장이라면 전시장에 위치할 수 없는 사진도 애매함의 연속에서 의미를 더 짙게 만들어주는 그런 사진도 배치한다.


애초에 사진이라는 것을 시작할 때부터 그런 애매함에 끌려서 시작했다. 사진이라는게 예술적으로도, 산업적으로도, 그냥 어디에서나 위치가 애매하고, 애매하기에 무엇이든 다룰 수 있다. 사진작가는 무엇이든 찍을 수 있고, 무슨 이야기와도 연관시킬수 있다. 그것이 사진의 매력이고, 나는 그 애매함을 재능으로 가지고 있고, 그 애매함을 동경하며, 그 애매함을 칭송한다.


그래서 어떤 가수가 처음 세상에 자신을 소개할 때 '나는 애매한 가수다' 라고 하는 것을 보고 팬이 되었고, 아직도 그에게 열광하며, 생에 처음으로 lp도 사고, 콘서트는 못가도 콘서트 영화는 3~4번을 보고, 앨범을 좋아서 계속듣고 주변에 알리고 그러고 있다. 그 가수는 이승윤이다.


어쨌든 이런 장르적 애매함, 위치적 애매함이 참 매력적인 포인트고, 나는 어느 분야를 가도 이것을 잘하는 사람이고, 이게 나의 재능과 맞닿아 있음으로 나는 이걸 최우선 포인트로 삼고 예술을 하고자 한다.


사실 이렇게 마음먹지 않아도 전시를 보면, 사진작품만 있는 것이 아니고, 조형물이 있고, 체험형 전시가 있고, 직접쓴 비하인드 글이 있고, 그 글은 주제마다 문체가 다르고, 게임을 준비하고, 굿즈를 직접 제작하는 모습을 보면 애매함들을 이미 실천 하고 있었지만 글로 남기는 것은 또 어떠한 방점을 찍어준다고 생각하기에 몇 글자 적어보았다.


나의 예술은 이러하다. 라는 것, 당신에게도 있을까? 사실 이런글을 쓰고자 했던이유는 요근래 괴테를 읽고 있기 때문인데 괴테는 예술의 최고 과제를 '가상을 통해서 더 높은 실재에 대한 환상을 갖게 하는 것'이라고 했다. 당신의 예술에도 이러한 것이 있는가? 당신의 예술은 어떤곳을 바라보고 있는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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