그다음은 '누구'에게
사진에 대해 생각한다. 처음엔 그저 찍다가도, 더 잘 찍고 싶어지면 그때부터 생각이 시작된다. 우선 뭘 찍어야 할 까에서 모든 질문이 시작하며 또는 종결된다. 시작했다고 가정하면 다음은 방법에 대한 질문이 이어진다. 어떤 구도로? 어떤 빛 아래에서? 어떤 조명으로? 등등의 질문들. 그리고 나면 더 할 질문이 없어 보이기도 하지만 자연스럽게 그다음은 왜 찍는가? 이 행위의 목적에 대한 질문으로 이어진다.
여러 목적이 존재한다. 그리고, 이번 글의 주제만이 정답은 아닐 것이라고 확신하기도 한다. 그러나 대부분의 사진을 찍는 목적에는 '누군가에게 보여주기 위함'과 아주 살짝이라도 연결되지 않는 경우를 찾기 어렵다. 그렇다. 우리는 보여주기 위해 찍는다.
회사에서 만든 제품을 찍는 것은 고객에게 보여주기 위해, 조금 세부적으로 보면 패션 브랜드에서 모델을 구해 옷을 입히고 사진을 찍어서 잡지로 만드는 것은 고객에게 보여주기 위해, 혹은 협력사들에게 보여주기 위해서다.
현재 시대상처럼 온라인에서 긴밀하게 연결되었을 시기에는 주변인에게 내가 이런 곳을 다녀갔다는 것을 알리고, 보여주기 위함이다. 누군가는 no를 외치며 고개를 저으며 나는 아니다. 다른 사람에게 보여주기 위함이 아니다.라고 할 수도 있는데, 그럼 그 사람에게 남은 이유는 아마 '스스로 간직하기 위해서?' 혹은 다른 무언가 일 텐데 딱히 생각이 나지는 않는다.
그럼 '스스로 간직한다.'라는 표현은 또 뭘까? 오직 소유가 목적인가? 그것도 좋다만 재해석하면 나중에 다시 보기 위함이다. 즉, 미래의 나에게 보여주기 위함인 것이다. 간직이라는 표현도, 미래시점에 보여주는 것을 기대한다는 의미로 해석이 된다.
즉 모든 사진은 보여주기 위해 찍는 것이다. 안 보여줄 거면 사진을 뭐 하러 찍나.
*하지만 다른 이유가 있을 수도 있다. 그런데 오늘은 보여준다는 것에만 집중해 보겠다.
모든 사진은 보여주기 위함이다. 그래서 현재 소셜네트워크서비스, SNS로 사진을 공유하는 행위를 나는 좋게 본다. 사람들은 그만큼 사진을 많이 찍는다. 또한 '보여준다'라는 것을 염두하고 찍기에, 언제나 올릴 수 있는, 혹은 나중에 보아도 미적으로 아름답다고 느낄 사진들을 찍는다. 이것은 참 좋다. 다만, 소셜네트워크서비스에는 딱 하나 아쉬운 점이 있다. 우리가 보여줄 것들의 속성을 한정한다. 그들은 더 긴 체류시간을 목표로 하며, 그중에 가장 쉬운 방법을 골랐다. 순간적이고, 자극적인 것들로 사람들을 묶어 뇌를 고장내고 나가지 못하게 하는 방법을 말이다. 따라서 우리가 SNS에 올리기 위해 사진을 찍는다면 순간적이고, 자극적인 사진만 찍게 된다. 이것은 꽤나 안타깝다.
아니 그 수준을 넘어서, 사진이라는 분야의 생태계가 위협받고 있는지도 모른다. 우리는 순간적이고, 자극적인 사진을 찍고, 올리고, 다시 보지 않는다. 마지막 단계가 되어 다지 보지 않을 때 그 사진의 존재 가치는 없어진다.
그러면 안 된다는 것이다. 사진을 찍었다면 보여줘야 한다는 것이다. 더 자주 사진첩을 열어보고, 사람들에게 보여주며 이야기를 나눠야 한다는 것이다. 그리고, 순간적인 것보다 더 긴 이야기가 사진에도 스며들 수 있기에 그런 사진들은 더 길게 머무를 수 있는 공간에서, 더 큰 규격으로 보여줘야 한다는 것이다.
아무튼 쓰고 싶은 말을 거의 쓰긴 했는데, 사실 원래 하고 싶은 말은 사진을 간직하지만 말고, 보여주라는 것이고, 보여주면서 연결되는 그 과정 속에서 사진이 새롭게 태어나고, 숨을 쉬게 된다는 것이다.
이를 필자는 첫 전시를 통해서 느끼게 되었으며, 사진을 하는 모두가 사진을 간직할 것이 아니라, 사진을 보여줘야 한다는 이야기를 하고 싶었던 것이다. 따라서 쓰다 보니까 sns이야기를 하게 되었는데, 사진을 보여준다는 측면에서 sns는 긍정적인 부분도 확실히 존재했다는 것. 그 흐름이 글에 전부 담겨있다. 오늘은 여기까지.