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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민네 Sep 07. 2023

나의 색을 켜두는 일

빡빡한 책장 사이를 오갔다. 동네 도서관에도 이렇게 무수히 많은 책이 빽빽하게 꽂혀있는데. 이미 무수한 이야기가 차고 넘치는데 내 이야기를 하나 더 만들어 내겠다는 게 무슨 의미가 있을까 싶어 의기소침해졌다.


그날 저녁, 산책 삼아 나온 길에 눈앞의 아파트 단지를 가까이서 올려다봤다. 1층부터 25층까지 중에 내가 좋아하는 간접등 조명이 새어 나오는 집이 여럿 있었다. 그런데 눈에 띈 건 간접 조명의 색이 같은 집은 단 하나도 없었다는 점이다. 분명 비스무레한 어두운 주황 불빛인데 미세하게 어떤 집은 더 밝았고, 어떤 집은 더 어두웠으며, 또 어떤 집은 불빛의 톤이 확연히 달랐다. 같은 불빛 계열이라고 해도 들여다보면 하나도 같지 않았다. 얼핏 보이는 집안의 풍경들도 같은 집이라곤 아예 찾아볼 수가 없었다. 그렇지, 같은 아파트의 같은 규모의 공간이라고 해도 인테리어나 불빛이, 세간살이가 같은 집은 어디서도 찾을 수 없을 터였다.


무수히 많은 이야기가 차고 넘친다고 해도, 나와 같은 이야기는 이 세상 어디에도 없으니까. 모두가 각기 다른 모습으로 살듯, 그 모습 하나하나가 소중하고 달라서 귀하듯, 나의 이야기도 그저 나의 이야기이기만 하면 되는 거였다. 각자의 이야기가 3층에서, 19층에서 반짝이며 자리하듯, 나도 나의 층에서 내가 좋아하는 색을 기쁜 마음으로 켜두리라 다짐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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