brunch

You can make anything
by writing

C.S.Lewis

by 브루클린 시너 Apr 02. 2023

왜 미국은 중국이 배신 때릴 줄
몰랐을까

“넌 나에게 모욕감을 줬어” 


2005년 4월 1일 개봉한 영화 <달콤한 인생>의 명대사다. 지금은 각종 패러디나 밈처럼 쓰이면서 유명해졌지만 당시는 보스 김영철의 위압감이 느껴지는 대사였다. 모름지기 오야가 누군가에게 실수했다고 하면, 실수한 일이 없어도 실수한 사람이 나와야 하는 법. 그게 조직이고 가족인데, 그래야 오야의 ‘가오’가 사는건데, 정작 제일 기대했던 부하 이병헌이 자신의 가오에 흠집을 낸 것이다. 그래서 ‘돈도 있고 가오도 있는’ 보스 입장에선 치욕적인 배신감이 들었고, 이병헌의 손목 하나가 날아가게 된 셈이다. 

이제 부하가 정말 실수했는지 아닌지는 중요하지 않다. 이미 그 단계는 넘어갔다. 끝까지 가오를 잡으려는 보스가 분을 삭이기위해 심호흡 한번 하고 내뱉는 단어가 바로 모욕감이다. 이제 모욕감이 행동의 준거가 된다. 잘 나가던 한 친구의 인생을 뒤바꿀 정도로 모욕감은 행동의 당위가 된다.    


모욕감! 현재의 국제관계 흐름을 볼때 미국이 중국에 대해 느끼는 지금 심정과 유사하지 않을까. 믿었던 중국이 어느 순간 미국이 만들어놓은 국제질서에 계속 토를 달면서 미국의 가오에 흠집을 낸다. 중국이 이만큼 먹고 살게 전폭적으로 밀어줬던 미국 입장에선 중국의 태도에서 배신감이 들 수 밖에 없을 것이다. 

미국이 아무리 인류사 이래 ‘역대 최강 패권국’이라해도 가오에 흠집이 나면 국제 질서를 안정적으로 유지하는데 장애가 발생한다. 그래서 오야가 누군가에게 실수했다고 하면, 실수한 일이 없어도 실수한 사람이 나와야 하는 법. 중국이 정말 실수를 했는지 아닌지는 큰 변수가 되지않는다. 이미 그 단계는 넘어갔다.   

1990년대 초 소련의 붕괴로 냉전이 막을 내리자 한때 ‘역사의 종말’이 세계를 휩쓸었다. 공산주의 세력의 몰락으로 세계사는 자유와 진보의 최종 목적지에 도착했다는 선언이자 자유주의에 대한 헌사이다. ‘역사의 종말’은 ‘차이메리카’라는 신세계 모습으로 구체화된다. 역사를 접수하고 단일 패권국으로 올라선 미국이 같은 편인 중국과 손잡고 ‘종말 이후’ 역사를 새로 쓴다는 것이다. ‘차이메리카’덕에 평화롭고 찬란하며 장밋빛인 미래가 펼쳐질 것만 같았다. 중국을 포용해 자유주의 질서안으로 편입시키려는 미국의 달콤한 꿈. 영화 <달콤한 인생> 제목대로 달콤한 팍스아메리카나였던 것이다. 


그런데 2010년대 들어 ‘차이메리카’는 미중간 ‘차이’만 부각하는 방향으로 흘러가기 시작한다. 본격적으로 ‘투키디데스 함정’을 조심해야한다는 경고가 따라붙기 시작했다. 

그레이엄 앨리슨의 『예정된 전쟁』에 따르면, 고대 그리스 역사학자 투키디데스는 아테네와 스파르타가 전쟁이란 파국에 이른건 신흥 강대국의 부상과 기존 패권국의 두려움이 빚어낸 예견된 전쟁으로 분석한다. 투키디데스는 <펠로폰네소스 전쟁사>에서 전쟁으로 이끈 역학에 기름을 끼얹은 중요 변수로 이해관계, 두려움, 명예를 꼽았다. 

 “지배세력의 두려움은 종종 착시 현상을 불러일으켜 위험을 과장하게 만든다. 반면  새로 부상하는 세력의 자신감은 가능한 일에 대한 비현실적인 기대를 불러 일으키고 기꺼이 위험을 무릅쓰게 만든다”. (앨리슨, 2017)


기존 패권국의 두려움이나 명예에 대한 욕구를 다르게 표현하면, 바로 영화 <달콤한 인생>을 관통하는 키워드인 모욕감이다. 미국이 팍스아메리카나라는 달콤한 꿈을 꿀때 중국은 가열하게 미국을 따라잡는 중국몽을 꾸고 있었다.  

여기서 근본적인 물음이 생길 수 밖에 없다. 미국은 중국이 다른 꿈을 꾼다는걸 몰랐을까. 중국을 체제로 포섭하면 서구식 자유주의 DNA를 이식할 수 있다고 자신했을까. 만약 미국이 중국을 개조할 수 있다는 확신이 ‘근거없는 자신감’이란걸 빨리 깨달았다면, 지금 미국이 중국을 견제하는 각종 정치경제안보적 조치를 10여년 일찍 시작했다면, 지금 미중갈등 양상은 전혀 다른 모습으로 전개됐을지도 모른다. 말하자면, 미국은 중국을 너무 믿은 나머지 호미로 막을걸 가래로 막고있는 신세다. 영화 대사를 빌리면, 간단하게 끝날 일이었는데, 어느새 손목 하나로 끝날 일이 아닌 수준으로 커졌다. 

이는 전적으로 미국의 근자감과 오판 탓이 크다고밖에 볼 수 없다. 미국이 직면한 모욕감은 자업자득인 셈이다. 물론 중국이 자신의 중국몽을 잘 숨기고 때를 기다린 전략도 효과적이었지만.  


Nixon goes to China, 달콤한 꿈을 꾼 미국


냉전이 심화되던 1970년대 초 미국의 국제정책 입안자들에게 절체절명의 목표는 소련을 이기는 일이었다. 특히 베트남전과 1차 오일쇼크 등으로 미국이 전방위적으로 소련과 대치하는데 힘이 부치기 시작했다. 이런 상황에서 소련을 봉쇄하는 효과적인 방법으로 중국이 유력한 대안으로 떠오르게 된다. 

중국은 소련과 같은 공산주의 그룹에 속한 권위주의 국가임에도 그룹내 패권을 놓고 사이가 좋지않았다. 특히 1960년대 말에는 중소 국경분쟁으로 관계가 최악으로 치달은 데다 소련으로부터 안보 위협까지 받는 상황이었다. 이런 지정학적 위기 속에서 미중 양국은 서로의 필요성을 느끼게 됐다. 적으로 적을 제압한다는 ‘이이제이’ 전략을 미중 둘다 적극 활용한 것이고 대성공을 거둔다.    

불과 20여년전 한반도에서 총부리를 맞댄 적대국이 각자의 이해가 맞아떨어지자 급속도로 가까워진 것이다.닉슨 행정부의 국무장관 헨리 키신저가 메신저로서 막후에서 부지런히 다리를 놓기 시작했다. 공산주의자로 유명한 닉슨 대통령이 1972년 전격적으로 중국을 방문해 마오쩌둥을 만난다. ‘닉슨이 중국에 간 것’(Nixon goes to China)은 냉전 구도를 일거에 바꾼 게임체인저라고 할 수 있다.(얼마나 임팩트가 컸는지 이후 ‘Nixon goes to China’는 이념적 적대세력과 화해하거나 그에 버금가는 정치적 효과를 일으킬 때 쓰는 관용적 표현이 된다)

1972년 방중 기간 만리장성을 방문한 닉슨 <AP>


소련을 봉쇄하는데 힘을 합치려면 우선 중국의 기초체력을 키워야했다. 미국에선 중국의 경제성장을 돕는건 당연하고, 군사 및 정보 능력까지 향상해줘야 한다는 주장도 제기됐다. 실제 키신저는 소련군의 동향에 관한 민간함 정보를 중국과 공유했고 중국을 향한 공격은 미국의 사활적 이익이 걸린 공격으로 간주할 것이라고 소련측에 경고하기도 했다. 냉전의 기묘한 지정학적 상황 덕분에 중국은 세계 유일의 초강대국을 자기편에 두게 된 셈이다.(마이클 베클리, 할 브랜즈, 2023) 그리고 미중은 1979년 수교에 이른다.

그런데 냉전이 끝나자 미국을 위협하는 적이 사라졌다. 해체된 소련을 대신한 러시아는 이빨 빠진 불곰(지금은 푸틴이 다시 과거의 영화를 되찾으려고 노력하지만)신세였다. 공동의 적이 사라졌음에도 미국은 중국의 폭발적인 성장을 계속 돕는다. 안보적 파트너로서 역할은 줄었지만 경제적 동반자로서는 존재감이 오히려 커진 것이다. 심지어 중국이 국제적 현안에서 영향력을 발휘하도록 북돋기까지 했다. 


여기서부터 미국의 오판이 시작된다. 마이클 베클리, 할 브랜즈는 『중국은 어떻게 실패하는가』에서 미국이 무사안일주의에 빠졌다며 그 원인으로 탐욕과 자기확신을 꼽았다. 

다시말해 “1990년대 초만 해도 중국은 군사적 위협이 적고 돈벌이 기회는 엄청났기 때문에 미국의 포용 정책이 나름대로 논리적인 것처럼 보였다”는 분석이다. 중국이 비록 권위주의 정치 체제를 가진 나라라 하더라도 13억 인구의 엄청난 소비 시장과 저임금 생산기지로서 매력이 넘쳤다. 소련봉쇄라는 성공적 역할이 끝났어도 중국을 놓치기엔 너무 아까운 기회였던 것이다.   

이때문에 미국은 자신이 보편적 가치로 내세운 자유, 인권, 민주주의 등이 소홀하게 취급되어도 짐짓 모른척 했다. 대표적인게 1989년 텐안먼 사건이다. 덩샤오핑이 텐안먼을 무력 진압했지만 미국은 적극적 개입보다 소극적 주의 당부에 그쳤다. 

미국은 이미 냉전시기에도 자유주의 질서를 유지한다는 목적으로 자유주의를 억압하는 모순적 행태를 보였다. 1980년 전두환 정권을 비롯해 아시아나 중남미 곳곳에서 민주주의와는 거리가 먼 권위주의 정권을 대놓고 밀어줬다. 자기 진영내 민주주의나 민족주의 정권이 등장하는 걸 오히려 막은 셈이다. 소련을 봉쇄한다며 소련이 하던 것과 비슷한 억압을 자행했다. 이쯤되면 소련 봉쇄의 목적이 미국식 가치의 확산이 아니라 소련 봉쇄 자체가 목적이 되는 상황이다. 

낸시 펠로시 전 하원의장은 2022년 대만 방문을 앞두고 <폴리티코> 인터뷰에서 “만약 상업적 이익 때문에 중국 인권을 옹호할 수 없다면, 어떤 상황에서든 그것을 대변할 수 있는 모든 도덕적 권위를 잃게 된다”고 지적했다. 펠로시의 일침을 지금보다 30여년전 새겨들었다면, 미국이 지금 급부상한 중국을 상대하느라 힘을 빼지도, 중국에 모욕감을 느끼지도 않았을지 모른다. 

 

냉전 승리가 독이 된 근자감과 중국의 도광양회 


무엇보다 미국은 언젠가 중국이 자유주의 체제에 동화될 것으로 낙관했다. 미국은 지속적 관여를 통해 중국을 기존의 미국 중심 국제 질서에 편입시킬 수 있다고 본 것이다. 이에따라 미국은 2001년 세계무역기구(WTO) 체제에 중국을 편입시켰다. 미국 기업을 필두로 자유주의 진영 국가들이 앞다퉈 중국에 투자했다. 신흥부상국인 중국은 서구 자유주의 국가들을 지탱하는 든든한 생산배후기지로 자리매김했다.

“미국이 압도적으로 지배하던 시기에는 중국을 적극적으로 봉쇄할 필요가 거의 없었다. 미국이 주도하는 세계 경제가 중국을 부유하게 만들어 주고 있었다는 점을 감안하면 중국은 당연히 미국 주도의 체제를 지지할 가치가 있다고 보게 될 것이었다. 또 많은 권위주의 정권이 민주주의가 세계적으로 확산되면서 무너졌다는 점을 감안하면 당연히 중국도 결국엔 마찬가지 경로를 밟게 될 것으로 여겼다.”(마이클 베클리, 할 브랜즈, 2023) 자고로 낙관론의 시대였다.  

지금 되돌아보면 미국의 낙관론이 얼마나 근거없는 자신감이었는지 바로 드러난다. 강력한 적의 부재가 오히려 미국의 오판을 부른 셈이다. 하지만 냉전이 끝난 당시 중국의 부상을 냉철하게 전망한다는건 콜럼버스가 달걀을 세우는 것보다 더 어려운 전망이었을지도 모른다. 카터 행정부에서 국가안보담당 특별보좌관을 지냈던 즈비그뉴 브래진스키도 마찬가지다. 국제전략분야의 거장인 브래진스키 역시 1997년 펴낸 『거대한 체스판』에서 “최적의 상황을 가정한다 할지라도 2020년까지 중국이 주요한 영역들에게 경쟁력있는 세계적 국가가 될수 있을것 같지 않다”며 다만 “중국은 순조롭게 동아시아 지역에서 우세한 힘을 지닌 지역적 강국이 되고있다”고 전망했다. 지금보면, 중국이 아시아 지역 강국은 될지언정 미국과 대립하는 양강 구도는 어렵다는 전망은 보기좋게 빗나갔다.  


결국 미국이 냉전에서 승리한게 오히려 독으로 작용했다. 40여년을 버티며 체제경쟁에서 이겼다는건 미국 주도 자유주의 국제질서가 전세계 적합한 유일한 체제로 인정받은걸로 받아들여졌다. 앨리슨은  『예정된 전쟁』에서 “대부분 승리의 자축연을 열고 망각의 늪에 빠지기 바빴다”고 진단했다. “새로운 단극 시대와 역사의 종언이 선언되고, 모든 나라가 미국의 각본을따라 미국이 짜놓은 국제질서 안에서 시장에 기초한 민주주의 국가로 자리매김하고자 했다”며 이런 분위기속에서 “공산국 중국의 존재는 당장엔 그리 진지하게 따져볼 필요가 없는 문제”였던 것이다.

이제 역사는 종말을 고했고 미국은 영원한 것이다. 감히 누가 유일 패권국 미국에 도전할 수 있겠는가.. 라는 자기 확신이 팽배했던 것이다. 

그러나 시간이 흐르면 중국도 미국에 동화될 것이란건 미국의 착각이었다. 중국의 생각은 달랐다. 오랫동안 염원해 온 국제적 지위를 되찾으려는 제국의 꿈을 품고있었다. 패권을 꿈꾸는 전형적인 현상변경국가(revisionist state)이다. 싱가포르 리콴유 총리는 “급상승하는 중국은 당연히 미국의 패권에 도전할 것”이라며 “중국이 아시아에서 일등 국가 되고 결국은 세계 최강국이 되려고 열망하지 않을리가 없다”고 예견했다.(그래이엄 앨리슨, 2017)

그런데 중국의 꿈은 미국 주도 국제질서 아래서는 이루어지기 어려운 꿈이었다. 하지만 당장 미국과 맞서기엔 힘이 부족했다. 자유주의 경제질서의 혜택을 받아 급성장하고 있지만 중국으로선 갈길이 멀었다. 1980년대 덩샤오핑은 중국이 평온한 국제환경과 글로벌 결제에 접근하는 길을 간절히 필요로 하는 상황에서 세계 유일 초강대국 미국과 소원해지는건 자멸까지는 아니더라도 어리석은 일이라는걸 알았다.(마이클 베클리, 할 브랜즈, 2023)

<JTBC '차이나는 클라스'>


중국이 선택한건 속내를 숨기고 조용히 때를 기다리는 것. 즉 덩샤오핑이 천명한 도광양회(韜光養晦) 전략이다. 중국이 자신의 생각을 드러내놓고 펼쳐도 될 정도로 충분히 힘을 키울때까지 미국과 정면 대결을 피하고 기회를 노려야한다는 것이다. 2014년 시진핑이 마침내 대놓고 중국몽을 언급하기 이전까지 중국은 이 원칙을 비교적 잘 따랐다.  “시진핑 이전까지 중국 정부는 당연히 중국 주도의 세계 질서에 대해 상세한 계획을 제시하지 않았다. 몇년 전까지 중국 공산당 관리들은 신중하게 처신하며 중국이 미국을 추월하는 것은 물론 미국에 도전한다는 암시조차 피했다”(마이클 베클리, 할 브랜즈, 2023)

결과적으로 중국의 도광양회 전략은 미국이 중국의 목표에 대해 오판하거나 안심하게 만드는데 일조한 셈이다. 미국이 오판한건 속았기 때문이란 주장도 나왔다. 마이클 필스베리는 『백년의 마라톤』에서 미국이 세계지배를 추구하고 나선 중국 공산당 강경파에 속아왔다고 주장하기도 했다. 


프랑켄슈타인과 이루어질 수 없는 꿈


때때로 깨달음은 후회를 동반한다. 닉슨 전 미국 대통령은 말년에 <뉴욕타임스> 인터뷰에서 “우리가 프랑켄슈타인을 만들어냈을지도 모른다”고 후회했다. 냉전을 데탕트로 전환시키고, 중국이 죽의 장막을 걷어내고 미국과 손잡게 만든 공로자였으나 결과적으로 판도라의 상자를 열어 미국에 대적하는 중국을 꺼낸 것도 닉슨이기 때문이다.

중국의 속내를 몰랐든 중국의 의도에 속았든 미국이 오판했다는 걸 깨달은 것 자체도 늦은감이 있다. 중국의 위협에 대해 조금씩 정신을 차릴 무렵인 2000년 9ㆍ11이 터진 것이다. 소련이 사라지며 생긴 진공을 제3세계의 테러리즘이 파고들었다. 이제 세계는 지정학의 파생상품과 같은 테러 문제에 집중하게 된다. 미국은 테러와의 전면전을 선포하면서 전통적 동맹은 물론 중국의 도움도 필요하게 된다. 중국이 마음 속에 제국의 꿈을 품고 현상 변경의 때를 기다린다는 의심이 불쑥불쑥 들었음에도 당장 이라크에서 후세인을, 아프간에서 빈라덴을 잡는게 더 우선이었다. 그러다보니 중국 문제는 후순위로 밀리게 된다. 

중동에서 테러와의 전쟁이 정체기를 맞자 오바마 정부는 중국으로 눈을 돌린다. 중국의 부상이 점점 분명해지던 2010년대에 접어들자 ‘아시아로의 회귀(Pivot to Asia)’ 전략을 천명한다. 앨리슨에 따르면, 오바마 정부는 이 전략을 자신들의 주요 외교정책 성과들 중 하나로 내세웠다. 그런데 캐치프레이즈에 머물뿐 중국의 제동을 거는 실질적인 조치들은 눈에 띄지않았다. 당시 이 전략을 주도한 국무부 차관 커트 캠밸은 2016년 출간한 『중심축 이동하기:미국의 대아시아 정책 방향의 미래』에서 “중심축이 중동 지역에서 다른 곳으로 이동한 것처럼 느낀 적은 한번도 없었다. 주요 국가안보회의 모임의 약 80퍼센트는 중동 지역에 초점이 맞춰졌다”고 회고할 정도였다.(앨리슨, 2017)


아시아로 회귀한다면서도 중국은 여전히 직면한 위협 수준은 아니었던 셈이다. 미국의 한 정보 담당 관리는 이런 상황을 일컬어 “중국은 언젠가는 읽겠다고 늘 생각하는 두꺼운 책과 같았다. 그러나 언제나 다음 여름을 기약하면서 읽지 못하고 말았다”고 회고했다(마이클 베클리, 할 브랜즈, 2023)

이제 미국은 중국에 지속적으로 관여해 미국 주도의 국제질서에 편입시키려는 시도가 사실상 실패했음을 인정할 수밖에 없는 상황에 이르렀다. 트럼프와 바이든 정부의 공세적인 중국 정책이 이를 반증한다. 미국은 포섭 전략을 통해 중국이 보다 유연하고 자유로운 새로운 체제로 리모델링 하는걸 의도했으나 반대로 더욱 적대적이고 강력한 전제국가를 만들어내고 말았다. 2020년 7월 트럼프 정권의 국무장관 마이크 폼페이오 역시 닉슨기념관 연설에서 미국이 관여정책으로 중국을 변화시키려 했지만 “중국이라는 프랑켄슈타인을 낳았다”며 재차 개탄했다.  

이때문에 머지않아 미국은 누가 중국을 놓쳤는지, 왜 중국을 간과했는지를 두고 본격적인 논쟁에 들어갈 지 모른다. 훗날 소련 봉쇄를 그렇게 잘했던 미국이 정작 중국 포용에 매달려 세계 유일 초강대국 지위를 스스로 내려 놓았다는 평가를 받을지도 모른다. 뒤늦게 밀려오는 모욕감에 치를 떨며 욕실에서 유리잔을 깨본들 이미 파국은 막을 수 없다. 


영화 <달콤한 인생>은 이렇게 끝난다.

“무서운 꿈을 꾸었느냐?” “아닙니다.”

“슬픈 꿈을 꾸었느냐?” “아닙니다. 달콤한 꿈을 꾸었습니다.”

“그런데 왜 그리 슬피 우느냐?” “그 꿈은…이루어질 수 없기 때문입니다.” 

미국의 꿈은 깨졌다. 그렇다고 중국이 꾸는 중국몽 역시 언제나 달콤할 수는 없을 것이다.

   


 [참고문헌]

 그레이엄 앨리슨, 『예정된 전쟁』 2017.

 즈비그뉴 브래진스키, 『거대한 체스판』 2000.

 M 베클리, H 브랜즈, 『데인저존: 중국은 어떻게 실패하는가』 2023.

 박현영, ‘펠로시 대만행’에 왜 긴장? 中 뒤집은 31년전 ‘천안문 추격전’ 『중앙일보』 2022.08.02.


이전 10화 왜 미국은 '함정'에 자주 빠질까
brunch book
$magazine.title

현재 글은 이 브런치북에
소속되어 있습니다.

작품 선택
키워드 선택 0 / 3 0
댓글여부
afliean
브런치는 최신 브라우저에 최적화 되어있습니다. IE chrome safari