지난달 JTBC 신년 대기획 ‘세 개의 전쟁’ 3부작이 방영됐다. 손석희 앵커가 오랜만에 TV에 나와 화제가 됐지만, 우크라이나 전쟁과 미중패권갈등, 기후위기 등을 ‘명징하게 직조해내’ 많은 관심을 받았다. 개인적으로 가장 관심있게 본 건 2편 ‘투키디데스 전쟁’이었다.
국제정치질서나 외교안보 이슈에 어느 정도 관심이 있다면 ‘투키디데스 함정(Thucydides Trap)’ 이란 표현을 한 번쯤 들어봤을 것이다. 못 들어봤어도 이해가 어렵지 않다. 무슨 함정이든 빠지면 좋을 리 없으니 가급적 피해야한다는 뜻이 내포돼있다.
투키디데스 함정은 부상하는 신흥 강대국과 기존 패권국 사이에 전쟁이 발생할 가능성이 크다는 가설이다. 미중 갈등이 심화되면서 언론이나 전문가등도 자주 인용하는 말이 됐다. 심지어 당사자인 시진핑 중국 주석도 “투키디데스 함정은 존재하지 않는다”며 그 존재를 직접 언급한 바있다.
JTBC 신년 대기힉 <세 개의 전쟁>
그런데 또다른 함정도 있다. 투키디데스 함정만 알면 미중패권 다툼을 전망할때 말그대로 함정에 빠질 수 있다. 비슷한듯 다른 또 하나의 함정이 이란성 쌍둥이처럼 존재하는데, 바로 ‘킨들버거 함정(Kindleberger Trap)’이다. 결론부터 말하면, 미중갈등의 전망은 투키디데스와 킨들버거의 대결로 압축된다. 정확히는 두 용어를 만든이들의 대결이다.
전쟁이 필연적이었던 건 아테네의 부상과 그에 따라 스파르타에 스며든 두려움 때문이다. -투키디데스 <펠로폰네소스 전쟁사>
투키디데스 함정은 역사학자 그레이엄 엘리슨이 2017년에 쓴 <예정된 전쟁(Destined for War)>에서 일반화했다. 그리스 역사가 투키디데스는 <펠로폰네소스 전쟁사>에서 아테네가 신흥 강국으로 부상하자, 기존 패권국인 스파르타가 위협을 느껴 결국 전쟁이 벌어졌다고 적는다.
투키디데스 함정 이론에 따르면 신흥 부상국은 자존심 커지고 인정과 존경 권리 요구하게 된다. 반면 기존 패권국은 신흥 강국의 공격적 자세에 불만과 두려움을 느끼게 되고 결국 무력충돌로 이어질 수밖에 없다는 것이다. 한마디로 “대우해 달라”는 요구와 “선넘지 말라”는 견제가 전쟁을 촉발시킨다는 가설이다. 전쟁의 필연성에 무게를 둔다는 점에서 조지 모델스키의 장주기이론이나 로버트 길핀의 패권전쟁이론과 유사성이 있다.
투키디데스는 이를 두고 투키디데스의 함정이라고 표현하진 않았다. 약 2400년후 하버드대 역사학자 앨리슨이 패권다툼과 세력균형을 설명하기위해 ‘투키디데스 함정’이라고 집대성한 것이다. 앨리슨은 지난 500년간 16번의 세력전이 사례를 찾아냈는데, 이중 12번은 전쟁으로 귀결됐고 겨우 4번만 전쟁을 피했다는 사실을 발견했다. 냉전 이후 원톱 미국 주도 세계 질서가 어느새 미중 G2의 양극체제로 변하는 상황에서 투키디데스 함정은 불확실한 미래를 예측해주는 신박한 이론으로 부상했다. 복잡한 국제정치질서와 다단한 파워게임 양상에 대해 마치 자판기처럼 버튼만 누르면 바로 해답이 나오는 식이다.
책은 베스트셀러가 됐다. 블록버스터 영화 <강철비2:정상회담>에서 정우성 배우가 자세하게 소개해줄 정도로 말이다.
영화 <강철비2:정상회담> 넷플릭스
지금 국제정치에서 가장 큰 관심은 미중갈등 양상이 패권다툼으로 격화되어 결국 무력 충돌로 귀결될지, 물리적 패권 다툼까지 악화되진 않더라도 날선 경쟁은 피할 수 없는 상태가 지속될지 여부다. 양국의 평화적 공존은 이미 선택지에서 지워졌다. 대만 이슈가 부쩍 많이 거론되는 것도 이를 뒷받침한다. 양측이 물리적 충돌을 피할 수 없다면, 그곳은 바로 대만일 확률이 가장 높기때문이다.
결국 미중이 전쟁이냐, 전쟁 직전이냐의 차이만 있을뿐 투키디데스 함정에 제대로 빠진 걸로 보인다.
하지만 운명론적 비관을 바꿀 순 없을까. 여기서 또하나의 함정이 필요해진다. 바로 킨들버거 함정이다.
1918년 거의 모든 나라들이 미국에 패권국 역할을 맡아달라 제안했지만 미국은 이를 거절했다. -E.H 카아 <20년의 위기>
킨들버거의 함정은 기존 패권국은 역량이 부족한 반면 급부상하는 신흥국이 패권국의 지위를 차지할 의지가 없는 경우, 오히려 국제체제가 불안정해진다는 시각이다.
미국 경제학자 찰스 킨들버거는 저서 <대공황의 세계 1929-1939>에서 1930년대 대공황의 원인을 영미의 패권교체에서 찾았다. 1차 세계대전이후 기존 패권국 영국을 대체해 신흥 부상국으로 부상한 미국이 그 역할을 제대로 하지 못한 결과라고 분석했다.
투키디데스 함정과 마찬가지로, 킨들버거 함정에도 킨들버거는 없다. 킨들버거는 자신의 책에서 대공항 시기 미국의 회피를 두고 킨들버거의 함정이라고 표현하진 않았다. 약 50년후 하버드대 정치학자 조셉 나이가 패권다툼과 세력균형을 설명하기위해, 그리고 이미 유명해진 ‘투키디데스 함정’을 비판하기위해 ‘킨들버거 함정’이라고 명명한 것이다.
투키디데스 함정이 두 국가간 필연적인 무력충돌 가능성에 초점을 맞춘다면, 킨들버거 함정은 국제 헤게모니의 책임회피에 따른 국제질서의 불안전성에 초점을 맞춘다. 한마디로 미국이 제 역할을 하지않아 문제가 생겼다는 이론이다. 미국 맞춤형 원포인트 가설인 셈이다.
미국은 1차 대전이후 패권국으로 부상했지만 아닌 척했다. 국제경제나 체제안정을 위해선 패권국으로서 책임과 의무를 다하고 때로는 손해도 기꺼이 감수해야하는데 그게 싫었던 것이다.
말하자면 미국은 어쩔수 없이 참전한 1차 대전이후 다시 기존의 먼로 독트린에 입각한 고립주의로 복귀했다. 전후 국제질서를 복구할 곳은 미국밖에 없다는걸 알면서도 안전하고 풍유로운 자신의 안락처인 아메리카 대륙에 머무는걸 선택했다. 그때만해도 ”양키 고 홈“ 보다 “렛츠 고 홈”이 어울리던 시절인데, 그결과 2차 세계대전이 발발했다는 주장이다.
투키디데스 함정이 미중 양자의 문제라면, 킨들버거 함정은 미국의 의지에 달렸다.
조셉 나이는 미국이 킨들버거 함정을 주의해야한다고 했다. 그런데 미국은 2차 대전 이후 한번도 킨들버거 함정에 빠진 적이 없다. 결국 조셉 나이의 충고는 신흥국 중국의 부상에 대한 우려보다 기존 패권국 미국에 주도적 역할을 독려한 걸로 봐야한다. 패권국으로서 미국의 책임 회피가 인류 역사상 가장 큰 전쟁인 2차 대전으로 이어졌으니 또다른 전쟁을 피하려면 그 책임을 회피하지 말라는 것이다.
지금의 미국은 2차 대전 직전의 미국이 아니다. 스스로 패권국의 지위와 역할을 포기할 생각이 단 1도 없다. 그러니 사실상 중국을 봉쇄하는 전략에 온 전력을 다하는 것이다. 따라서 미국의 이탈로 국제적 헤게모니가 진공상태에 빠질 일은 없어 인다.
<차이나는 클라스> JTBC
두 이론은 다른듯 비슷하다.
투키디데스 함정에 투키디데스가 없듯, 킨들버거의 함정에도 킨들버거가 없다. 애초 두 사람의 주장은 미중갈등과는 직접 관련이 없다. 2400년전이나 50년전 지금같은 미중갈등 양상을 정확히 예측이나 했겠냔 말이다. 앨리슨과 조셉 나이가 각각 미중대결의 미래를 진단하면서 자신의 이론을 강화하기위해 빌려온 것뿐이다.
말나온김에 엘리슨과 나이는 대표적인 현실주의자와 자유주의자란 차이가 있지만 지나온 길은 상당히 비슷하다. 클린턴 정부 시절 국방부 차관보와 하버드대 케네디스쿨 학장을 앞서거니 뒤서거니 역임했다.
그래서 투키디데스와 킨들버거의 대결은 사실, 국제정치학계 스타인 그레이엄 엘리슨과 조셉 나이의 학문적 경쟁이 부각되며 만들어진 측면도 있어 보인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