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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브루클린 시너 Aug 13. 2023

왜 미국은 중국과 '헤어질 결심'을 포기했을까

전례없는 좌석배치


2023년 6월19일 중국 베이징의 인민대회당.

시진핑 중국 주석이 테이블 가운데 상석에 자리했다. 오른쪽엔 중국 외교수장인 왕이 공산당 중앙정치국 위원과 얼마전 온갖 소문을 남긴뒤 소리 소문없이 해임된 친강 전 외교부장이 앉았다. 그 맞은편에서 다소 다소곳한 자세로 시진핑을 바라보는 사람은 토니 블링컨 미국 국무장관이다. 마치 시진핑이 회의를 주재하는 듯한 모습이 연출됐다.

미 국무장관이 중국을 방문한건 마이크 폼페이오 이후 5년만인데다 바이든 정부들어선 처음이다. 2023년  초 정찰 풍선 갈등으로 한차례 방문이 연기되는 우여곡절을 겪은뒤에 성사됐다. 그만큼 세계적 관심이 쏠린 미중 고위급회동이었는데, 시진핑은 작정한듯 블링컨을 하대하는 듯한 장면을 연출한 것이다.  


이 장면은 당시 국제외교가에서 큰 화제가 됐다. 일반적으로 상대국 주요 인사를 접견할 경우 나란히 배치된 의자에 앉는다. 대등한 위치에서 면담하는 모습을 연출하는게 외교 의전의 기본 프로토콜이다. 시진핑 역시 2018년 6월 폼페이오 당시 미 국무장관과 면담할땐 탁자를 사이에 두고 나란히 앉았다.(물론 더러  이 기본룰을 바꿀 수 없으니 아베 전 일본 총리처럼 의자 높이를 다르게 해 격을 높이려는 꼼수를 부리는 경우도 있다)

이때문에 시진핑이 블링컨과 회담보다 회담 자리 배치를 통해 미국에 당당하게 대응한다는 메시지를 발신한거란 해석이 많았다. 마치 시진핑은 “미중갈등 상황서 중국은 아쉬울게 없다. 정작 답답한건 미국이고, 그러니 먼저 달려온게 아닌가. 중국은 몸이 달은 미국을 그저 만나준 것이다”라고 말하는 것같다.

출처: 연합뉴스


공교롭게 최근(2013년 여름) 흐름만 보면 시진핑의 말이 맞는것같다. 블링컨 장관이 중국에 가기 한달전 윌리엄 번스 CIA 국장이 비밀리에 중국을 방문했다. 블링컨이 다녀간 직후인 7월 초엔 재닛 옐런 미 재무장관이, 그로부터 열흘 후엔 오바마 정부에서 국무장관을 지낸 존 케리 미국 기후변화 특사가 중국을 연달아 방문했다. 지나 러몬도 상무장관도 조만간 중국을 찾는다. 바이든 정부에서 한자리씩맡은 중량급 인사들이 경쟁하듯 앞다퉈 중국을 방문하는 모습인데, 이 역시 모두 미국측이 먼저 제안했다.  

대개 아쉬운 사람이 먼저 굽힌다. 인간관계도 그렇지만 국제외교관계도 마찬가지다. 아쉬운 국가가 먼저 관계개선에 나선다.(물론 더러 이 기본룰이 적용되지 않는데, 피해자인 한국측이 먼저 일제 강제동원 배상안 해법을 내놓고 일본의 성의를 바라는 경우도 있다)

이때문에 미중갈등을 멈추기위해 미국이 먼저 손을 내민 것처럼 보이는게 당연하다. 이쯤되면 미중 경쟁은 중국이 주도권을 쥔 모양새다. 정말 시진핑이 “중국은 아쉬울게 없다, 답답한건 미국이거든”이라며 웃고있다는 생각이 들 정도다. 그런데 정말 중국이 주도권을 쥔 것일까.   


헤어지는대신 4주간 조정기간을


미국 정치권도 우리나라 못지않게 정치 양극화와 팬덤 정치가 심각하다. 여야가 사사건건 대립해 툭하면 연방정부 셧다운 위기가 닥친다. 오죽하면 신용평가회사 피치가 2023년 8월1일, 12년만에 미국 신용등급을 ‘AAA’에서 ‘AA+’로 낮추면서 한마디 하길, 미국 정치권의 여야 대립이 문제라고 했을 정도다.  

이런 미국 정치권도 어렵지않게 대동단결하는 분야가 있으니 바로 중국에 대한 전략이다. 최소한 2010년대 들어 “중국을 손봐줘야한다”는 데 민주-공화 할것없이 의견일치를 본 상태다. 심지어 오바마 행정부에서 동아시아 전략을 담당했고, 바이든 정권에서 다시 국무부 아시아 정책 총괄을 맡은 커트 캠벨은 2018년 “중국은 어떻게 미국의 기대를 무시했는가”라는 논문에서 트럼프의 정책들 중에서 중국 정책만 제대로 된 방향이라고 적극적으로 옹호했을 정도다. 그럼 어떻게 중국을 손 봐줘야봐할까? 그 대답이 바로 디커플링(decoupling) 전략이다.  


디커플링은 어렵게 말해 탈동조화라고 표현하지만, 쉽게말해 커플 관계를 끊는다는 뜻이다. 이제 그만 헤어지자는 것이다. 애초 주식시장이나 환율, 무역관계 등에서 상호 의존도를 설명할때 사용되던 경제 용어였는데, 어느 순간 미중갈등을 상징하는 표현으로 확장됐다. 경제신문에서나 쓰이던 생소한 고급용어가 ‘어느 순간’ 국제면에 자주 오르내리는 대중적인 표현이 된 것이다. 그 순간은 정확하진 않지만 대체로 트럼프 정부가 중국을 경쟁자로 규정하기 시작한 2018년 전후로 보인다.  

실제 호주 싱크탱크 로위연구소의 동아시아 선임 연구원 리처드 맥그리거는 2018년 10월 ‘닛케이 아시아’에 발표한『미중-위대한 디커플링(US and China-the great decoupling)』에서 “트럼프가 당선된 이후로 세계가 휘어지기 시작했다”며 “이런 메가트렌드의 증거는 미중 사이의 “디커플링”이라는 새로운 표현이 워싱턴의 화두가 된 것만 봐도 알 수 있다”고 적었다.  

출처: CSIS

  

근래 디커플링과 짝을 이루며 사용되는 용어가 있으니 바로 디리스킹(derisking)이다. 디커플링은 배제와 분리가 목적이라면, 디리스킹은 제한적 배제와 부분적 협력이 결합된 전략으로 위험완화와 관리에 초점을 맞춘다. 

디리스킹은 디커플링에 비하면 최신 유행어에 가깝다. 이 역시 신문의 경제면에서나 주로 나오던 업계용어였지만, 국제면에 등장하기 시작한건 올해부터이기 때문이다. 2023년 1월 유럽연합(EU) 폰데어레이엔 집행위원장이 다보스포럼에서 처음 사용하면서 퍼졌는데, 6월30일 EU 집행위는 아예 대중국 정책 노선으로 디커플링이 아니라 디리스킹을 공식적으로 채택한다.  

디리스킹은 일종의 중도 전략으로 볼 수 있다. 애초 유럽은 중국과 헤어질 생각이 크지 않았다. 오히려 독일, 프랑스 등 역내 강국은 중국과 달리 전통적으로 미국과 ‘커플링’에 거부 반응을 보여왔다. 하지만 권위주의 체제로 빠르게 재편되고 있는 시진핑 체제의 중국은 유럽에도 달갑진않은 존재인건 사실. 때마침 코로나19ㆍ우크라이나 전쟁 등이 터지면서 중국에 지나치게 의존하지않고 공급망을 다변화할 필요성이 커졌다.  

그럼에도 미국의 디커플링 전략은 유럽엔 맞지않는 솔루션이다. 중국 경제의 규모와 중요성을 볼때 유럽이 중국과 관계를 끝내는건 불가능에 가깝기 때문이다. 그래서 핵심 자원의 중국 의존도를 서서히 낮추고 다변화하되, 경제 협력과 교류 관계는 유지하겠다는 현실적 방안을 내놨으니 바로 디리스킹인 셈이다. 말하자면, 당장 이혼하는건 재산분할이나 아이 양육권 등 여러 현실적 문제들이 있으니, 일단 4주간의 조정기간을 갖는 것과 비슷한 셈이다.  


마당은 좁게 담장은 높게


“미국 경제는 중국에서 디커플링을 추구하는 게 아니라 디리스킹을 추구한다.”

2013년은 미중갈등 국면에서 가장 중요한 변곡점으로 기록될 것이다. 바이든 정부의 외교안보전략을 총괄하는 제이크 설리번 미국 백악관 국가안보보좌관이 6월 4일 CNN에 출연해 이렇게 말했기 때문이다. 미국이 디커플링 전략을 사실상 철회하고 디리스킹으로 돌아섰다는 걸 공식적으로 선언한 것이다. 미국이 중국과 헤어질 결심을 사실상 철회하고 당분간 관계를 이어나가겠다고 한 셈이다.

애초 유럽선 디리스킹 표현이 나오자마자 화두가 됐지만 미국은 시큰둥했다. 그러다 4월 설리번 보좌관이 브루킹스연구소 연설에서 ‘디리스킹’을 언급하더니, 5월 G7 정상회의를 거쳐 디리스킹으로 방향을 튼 셈이다. 이는 앞서 블링컨, 옐런 등 미국 고위급 인사의 줄줄이 방중으로 나타났다. 어쨌든, 미국이 헤어질 결심 대신 일단 관계를 이어갈 결심을 했다는게 중요하다. 이는 미중간 군사력 등이 동원된 물리적 충돌 가능성이 낮아졌다는 걸 의미하기도 한다. 최소한 중국이 먼저 미국을 공격하지 않는한 말이다.

그렇다면 왜 미국은 디리스킹으로 돌아선 것일까. 미국이 방향을 튼 건 중국의 부상에 잔뜩 겁을 먹었다거나 도저히 중국을 제어할 수 없어 적당한 타협을 선택한게 아니다. 오히려 그 반대로 보는게 타당하다.  


이는 자세히보면 디리스킹에 여러 조건들이 붙어있다는 걸로 알 수 있다. 설리번은 디리스킹을 추구한다면서도 반도체 등 핵심기술의 공급망 다변화, 군사안보용 첨단기술의 중국 이전 제한, 미국 산업 육성 우선 등 3가지 조건을 달았다. 이들 조건에 해당되는 사안은 디리스킹 적용에서 제외될 수 있다는 것이다. 마치 “이런저런 조건들만 지켜지면 헤어지진 않겠다”는 이혼유예 양해각서 느낌이랄까.

앞서 설리번은 2022년부터 종종 ‘마당은 좁게, 담장은 높게(Small yard High fence)’ 원칙을 언급하며 맞춤 규제를 강조해왔다. 이 표현은 오바마 정부 시절 로버트 게이츠 국방장관이 처음 사용한걸로 알려진다. 수출 통제 체제가 지나치게 포괄적이고 복잡하자 이를 개혁하며 내놓은 원칙으로, 꼭 필요한 분야로 규제 범위를 좁히는 대신 규제는 강력하게 이행한다는 의미다.

마당을 좁게하고 담장을 높게 칠 분야는 군사안보와 직결되는 반도체, 양자 컴퓨팅, AI 같은 첨단 핵심 기술분야인데 이는 기존 디커플링의 핵심 원칙이자 위에서 열거한 디리스킹의 예외조항 3가지와 유사하다. 결국 포괄적이고 모호해서 중국이 강력 반발하고 동맹인 유럽마저 설득하기 쉽지않자 디커플링을 보다 정교하게 다듬을 필요성을 느꼈고 이는 디리스킹으로 구현된 셈이다. 이때문에 미국의 디리스킹은 디커플링을 보다 부드럽게 부르는 용어일 뿐이란 해석이 나온다. 굳이 따지면 처음과 달리 청정 에너지 분야 등을 뺀 건 그나마 중국을 배려한걸로 볼수 있겠다. '마당은 좁게, 담장은 높게'라는 다락방 상자 속에 있을법한 표현을 다시 찾아 꺼내든 설리번의 표정이 어땠을지 상상이 될것 같다.

따라서 미국이 갑자기 디커플링 대신 디리스킹을 부각한다는건 중국의 위협에 굴복했다기보다 뭔가 계산이 끝났다는 자신감때문으로 보는게 타당하다. 그리고 이 자신감은 절대 근자감이 아니다.


미국 계산 끝났다

 

중국 이전에도 미국과 맞붙은 나라는 많다. 제2차 세계대전이 끝난뒤로 좁히면 미국 패권에 도전한 나라는 딱 3곳, 소련, 독일, 일본이다. 하지만 하나같이 끝내 미국을 넘지 못하고 나가떨어졌다.  

소련은 군사경제문화 등 전방위에 걸쳐 미국과 체제경쟁을 벌이며 40년 넘게 지구를 양분했다. 하지만 결국 안에서부터 곪아터지며 허망하게 무너졌다. 이후 독일과 일본이 부상했다. 둘다 미국의 동맹인만큼 군사력이 아닌 경제력으로  맞붙었는데 특히 일본의 위력은 대단했다.   

시가총액 기준으로 1988년 글로벌 대기업 10위에 포함된 일본기업은 NTT, 스미모토은행, 후지은행, 도쿄전력 둥 8개에 달했다. 미국기업은 IBM과 엑손모빌만 이름을 올렸다. 시가총액 순위를 50개까지 확대하면 일본기업의 수는 전체의 66%에 달할 정도로 위상이 절대적이었다. “도쿄를 팔면 미국 대륙을 사고 남는다”는 말이 바로 이때 나왔다.  진주만 공습에 이어 또한번 ‘저패니즈 인베이전’이 벌어진 셈이다.  

군사적 위협은 생존과 직결되지만 당장 피부에 와닿진 않는다. 그러나 생활과 직결되는 경제적 위협은 당장 피부로 느껴진다. 소련이야 처음부터 적국이었으니 그렇다쳐도 동맹국 일본한테 위협을 느끼는건 일찍이 경험해 보지 못한 불안감이었다. 마치 친한 이웃사촌한테 묘한 살기를 느꼈을때의 불안감이랄까.  


당시 일본에 대한 미국의 경계심이 어느정도였냐면 블록버스터 할리우드 영화들도 앞다퉈 일본의 위협을 중요한 코드로 차용했을 정도다. 일본 재벌이 소유한 LA 나카토미 빌딩에서 인질극이 벌어지거나(다이하드1), 일본계 야쿠자들이 미국 사회를 뒤흔드는 거대한 음모세력으로 등장하거나(라이징선), 자동차 산업의 메카였던 디트로이트를 실질적으로 지배하는 빅브라더가 일본계 자본인 식이다(로보캅3).

하지만 할리우드마저 걱정했던 ‘재팬 포비아’는 1985년 미국 주도의 플라자합의(Plaza Agreement, 인위적으로 엔화 가치를 높여 일본산 제품의 가격 경쟁력을 떨어뜨린 것)로 서서히 줄어들기 시작했다. 한때 경제적으로 미국과 맞짱뜨던 일본은 플라자합의 한방으로 ‘잃어버린 20년’에 빠져 이제는 감히 미국을 넘볼 생각조차 하지못한다.  

영화 <라이징 선> 포스터. 국내에선 <떠오르는 태양>으로 번역 개봉됐다.

그런데 중국은 이들과 다르다고 자신한다. 진창룽 중국 인민대 국제관계학원 부원장은 2021년 KBS 다큐멘터리에 출연해 20세기들어 미국의 패권에 도전한 소련, 독일, 일본이 모두 미국 GDP의 70% 수준에 미치지 못하고 체제 경쟁에서 이탈했다고 진단했다. 하지만 중국은 이미 미국의 70% 수준을 넘어섰고 2025년엔 따라 잡는다고 전망한다. 중국은 소련, 독일, 일본과 다른 길을 걷고 있다는 자신감이다. 말하자면 중국은 소련의 군사력과 독ㆍ일의 경제력을 다 갖춘 전무후무한 경쟁자란 것이다.  

중국의 목표는 중화인민공화국 100주년인 2049년 부강한 사회주의 현대화 강국을 달성해 미국 에 맞서는 패권이 된다는 것인데, 그보다 10여년 빨리 2035년쯤이면 군사력, 경제력 등 종합적 국력에서 미국과 대등할 것이란 전망도 나왔다.  

하지만, 근래들어 이런 예측은 줄어드는 대신 중국이 소련이나 독일, 일본과 같은 전철을 밟을지도 모른다는 전망이 느는 추세다. 중국이 미중갈등 국면서 서서히 밀리는 형국이고 그래서 중국과 헤어질 결심까지 했던 미국이 굳이 그럴 필요까진 있느냐며 관리 국면에 들어간게 아니냔 분석이 나오는 것이다. 디커플링을 디리스킹이란 표현으로 완화해 중국의 면을 세워줄 정도로 말이다.  


중국 내부 이상신호들...오히려 중국의 근자감?


중국이 미중경쟁에서 중도 이탈할 것이란 신호는 곳곳에서 감지되고있다.  

당장 경제 성장률이 한풀 꺾이면서 디플레이션 위기가 거론되고있다. 코로나19 이후 경제 문을 다시 열었지만, 예상만큼 부스트가 되지 않는 실정이다. 홍콩 사우스차이나모닝포스트는 2023년 8월10일 중국 경제에 아직 디플레이션 위험은 없지만, 자칫 잘못하면 일본식 장기불황에 빠질 수 있는 중요 시점에 서있다고 진단하기도 했다. 중국도 이를 모를 리 없다.

시진핑 주석은 2023년 6월23일 중국 공산당 정치국 회의를 열었다. 이자리에서 중국 당국은 경제상황을 “기복이 있는 발전, 곡절이 있는 전진의 과정”이라고 평가했다. 시진핑 면전이라 최대한 완곡하게 표현한 것일 뿐, 사실상 중국 경제에 빨간불이 켜졌다는 걸 인정한 것이다. 중국 당국은 경제 회복이 더딘 이유로 내수 부진, 부동산 리스크, 그리고 외부 환경의 어려움을 꼽았다.  


먼저 중국 내수 부진과 부동산 침체가 길어질 거란 전망이 나오는 이유는 중국 인구가 감소한 탓이 크다. 노동인구 감소는 성장 동력 저하와 직결되기때문이다.  

인구 감소는 중국의 패권추구에도 심각한 장애물이 될수있다. 세력전이 이론을 정립한 케네스 오르겐스키는 국력 성장 속도에 따라 패권국이 바뀌고 세력균형이 깨질수 수 있다고 봤다. 오르겐스키는 국력 성장 속도를 결정하는 요인으로 군사, 경제력 등과 함께 인구수도 중요한 요소라고 분석했다. 이를 바탕으로 이미 70여년전에 세계 최대 인구수를 자랑하는 중국이 부상할 수밖에 없다고 예측했다.  

세력전이 이론대로면 지금 중국은 국력 성장 속도가 현저히 떨어지며 패권 추구에 빨간불이 들어온게 분명하다. 유엔에 따르면, 인도 인구는 2023년 4월 말 기준 14억 2577만여명으로 이때를 기점으로 중국(지난해 기준 14억 2600만명)을 앞질렀고 격차는 더 벌어지고 있다. 그동안 압도적 인구를 바탕으로 고도 성장을 구사하던 중국 입장에선 발등의 불이 떨어진 셈인데, 시진핑은 인도에 추월당한 직후인 5월 초 “인구의 질을 높이는 데 주력하고 적당한 출생률과 인구 규모를 유지하기 위해 노력해야 한다”고 주문했을 정도다. 오죽하면 중국 쓰촨성 청두에선 젊은 남녀의 연예를 독려하기위해 봄방학을 주는 대학까지 등장했다. 봄방학 캐치프레이즈는 ‘나가서 꽃구경하고, 연애하라’다.

출처: FREDERIC J. BROWN/AFP via Getty Images


중국 당국이 경기 침체의 또다른 원인으로 꼽은 ‘외부 환경의 어려움’은 미국 주도의 디커플링 전략을 가리킨다. 바이든 정부들어 몰아붙인 반도체, 첨단 기술 등에 대한 수출 제한과 공급망 분리 전략은 상당한 효과를 내며 중국 경제의 발목을 잡았다. 미국은 여기에 그치지않고 중국 첨단 기술에 대한 미국 자본의 투자까지 제한했다. 기술은 물론 돈줄까지 죄겠다는 뜻이다.  

시진핑이 2013년 야심차게 시작했던 일대일 프로젝트도 10년이 지나면서 삐걱대고 있는데, 당장 G7중 유일한 참여국인 이탈리아마저 탈퇴 여론이 커지고있다. 귀도 크로세토 이탈리아 국방장관은 2023년 7월31일 언론 인터뷰에서 “일대일로 참여 결정은 즉흥적이고 형편없는 행동이었다”고 밝히기도 했다.  


이런 추세라면, 중국이 본격적으로 미국과 맞짱뜨기전에 미중경쟁이 끝날지도 모른다. 벌써 힘이 부친다는걸 누구보다 잘 아는건 중국 자신이다. 이쯤되면 머지않아 미국 패권을 넘어설 것이란 중국의 기대야말로 근자감에 가까워 보인다.  

블링컨을 하대하는 듯한 자리 배치를 연출한건 이런 불안 심리를 반영한 것일지도 모른다. “미중갈등 상황서 중국이 힘들어지고 있는게 사실인데 자존심상 인정 못하겠다"는 게 시진핑의 진짜 심정일지도 모른다.

 

"나 너 때문에 고생 깨나 했지만 사실 너 아니었으면 내 인생 공허했다" 


영화 ‘헤어질 결심’에 나오는 대사다. 너를 만나고 되돌아보니 먼저 생각나는건 싫었던 기억이지만, 인생의 차원에서 길게보면 대체로 좋았다는 술회가 아닐까. 인간은 때로 고생보다 공허한걸 더 참기 힘들어한다. 고생은 현실과 조응한다면 공허는 실존과 직결되는 문제다. 너라는 존재가 아무리 싫어도 내가 살이있음을 느끼게 한다면, 그 싫음 자체도 고맙지 않을까.  

영화 대사를 장황하게 해석해본건, 아마도 지금 미국이 중국에 느끼는 감정도 이와 비슷하지 않을까 싶어서다. 미국 입장에서 중국은 거슬리는 이웃이자 이미 고생 깨나 시키고 있는 경쟁자이지만, 동시에 미국의 존재감을 다시 깨닫게 해준 고마운 존재일지 모른다. 미국이 마음만 먹으면 그게 소련이든, 독일이나 일본이든, 이번엔 다를거라고 자신하는 중국이든 주저앉힐 수 있는 유일한 슈퍼 파워임을 다시 확인시켜준 것이다.  

이 때문에 미국은 미중관계를 파탄시키지 않고도 얼마든지 중국의 도전을 좌절시킬 수 있다는 계산이 섰다. 그래서 한때 헤어지는걸 심각하게 고민했지만, 이제는 헤어질 결심을 거둬들이고 조금 불편해도 관계를 이어가는 쪽으로 선택한 것이다. 이런 차원에서 미국의 디리스킹은 미중갈등 국면이 새로운 단계로 넘어갔음을 의미하는 것이다.

"결국 디리스킹이라는 새로운 수사에도 불구하고 미국의 중국 견제 정책은 근본적으로 변화하였다고 보기 힘들다는 것이다. 변화가 있다면 핵심은 오히려 기존의 중국 배제 정책을 특정 분야에서는 보다 정교화한 형태로 강화하되 그에 수반할 수 있는 갈등과 위험의 관리를 제도화하려는 것으로 보아야한다. 디리스킹은 중국 견제 정책의 효과에 대한 미국의 자신감 표현이며 세련된 디커플링 정책으로 이해되어야 한다.”(정하용 2023)
 

[참고문헌]


『미국의 ‘구걸’...북한이 보는 미중관계』이성헌, 한국일보. 2023.08.01.(https://n.news.naver.com/mnews/article/469/0000752773?sid=110)

『바이든 행정부 후반기 대중 정책: 배제(decoupling)와 관리(de-risking) 』정하용, 세종연구소 <정세와 정책> 2023.08.

『영원한 것은 없다...글로벌 기업 흥망성쇠』임철영, 아시아경제, 2012.06.18.  

『바이든 시대 불붙은 미중 패권 경쟁』KBS 1TV   <시사기획 창> 2021.1 23.

『US and China - the great decoupling』Richard McGregor,  NIKKEI ASIA. 2018. 10.22.

(https://asia.nikkei.com/Opinion/US-and-China-the-great-decoupling)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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