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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브루클린 시너 Jun 25. 2023

왜 미국은 중동에서 갈팡질팡하는가

“멋진 하루” 또는 “가장 긴 하루”

2020년 6월6일(현지시간)은 누군가에겐 멋진 하루였고 누군가에겐 가장 긴 하루였다.

미국프로골프(PGA) 투어와 사우디아라비아 국부펀드(PIF)가 후원한 ‘사우디 리그’ LIV 골프가 합병을 발표했다. 말그대로 전격적이었다. 자고일어나니 모든게 끝나버렸다. 말하자면 노태우정권 시절 3당 합당급 임팩트이자 (비록 무산됐지만)하이브의 SM 인수합병급 쇼크라고 해도 무방하겠다. 1년여간 서로 으르렁 거리며 사생결단식으로 내달리던 양측은 소속 선수들까지 속이며 합병을 추진했다.   

LIV로 맨 먼저 이적해 후배들을 끌어들이는데 앞장섰던 필 미컬슨은 “멋진 하루”라며 기쁨을 표시했다. 반면 LIV에 맞서 PGA 지킴이를 자처한 로리 맥길로이는 “희생양이 된 기분”이라고 허탈해했다.

미 언론은 대체로 사우디의 승리라고 평가한다. 합병이후 넘쳐나는 오일머니가 사실상 107년 전통의 PGA를 집어삼킬 가능성이 크기 때문이다. 뉴욕타임스는 “세계 남자프로골프 패권을 둘러싼 치열한 싸움이 끝났다”며 “사우디는 이 거래로 적어도 골프에선만큼은 돈 많은 방해꾼에서 기득권 테이블에 앉는 권력자가 됐다”고 분석했다.


역사적 합병 발표가 나던 그 시간, 미국 권력서열 4위 토니 블링컨 국무장관은 사우디 수도 리야드에 있었다. 다음날 블링컨 장관은 무함마드 빈 살만(MBS) 사우디 왕세자와 마주앉는다. 자신을 만나고 싶어하는 전세계 경제인ㆍ정치인ㆍ샐럽 ㆍ유네스코ㆍ로또 구매자 기타 등등 한줄로 세우면 길이가 적어도 몇km는 될 정도로 전세계에서 가장 돈많은 MBS가 얼마전까지 자신을 살인자 취급하던 바이든 정권의 외교 실세에게 무려 1시간 40분이나 내어준다. 블링컨은 건설적인 대화가 오갔다며 만족스러운 만남이라고 밝혔다. ‘인권문제’도 테이블에 올랐다고 알려졌지만 언론엔 구체적으로 공개되지 않는다.

블링컨은 곧바로 미ㆍ걸프협력회의 장관급회의에 참석해선 “미국은 이 지역에 계속 머물 것”이라고 강조했다. “미국은 중동을 떠나지 않았다”고 강조한 셈이다.  

MBS는 LIV골프 자금줄인 국부펀드의 사실상 소유주다. 공교롭게 블링컨이 MBS를 만난 그날, 미국PGA와 사우디 LIV가 합병을 발표했다. 이때문에 양대 골프 리그 합병 이면엔 미국의 정치적 판단이 작용했단 시각이 크다. 비록 타이거 우즈와 맥길로이가 반발하고, 9ㆍ11 유가족이 반발하고, 미 정치권도 반발하자 미 국무부가 뒤늦게 독과점 여부를 따져보겠다고 했지만, 골프 리그 통합은 그대로 진행될 가능성이 크다. 중동을 떠났던 미국이 다시 돌아왔다는 ‘피벗 투 미들이스트(Pivot to Middle East)’이자 중국의 영향력 확대에 선을 긋는 시그널이기 때문이다.  


UAE 적은 이란이 아니다…역대 최대 복잡계

미국이 언제 중동에서 손을 뗀 적이 있던가? 군사적 측면에서 보면 중동에서 떠난게 맞다. 그것도 완전히. 2021년 8월 30일 자정 직전 아프가니스탄을 철수한 이후 30여년만에 중동에 대규모 군사력 투사를 중단했다.   

중동은 원래도 지정학적으로 복잡한 곳이었지만, 미국이 떠나면서 국제정치이론 교과서를 다시써야할만큼 한층 더 복잡계가 되어버렸다. 이를 잘보여주는게 바로 “UAE의 적은 이란”이란 윤석열 대통령 발언이다. 2023년 1월 UAE를 방문한 윤대통령은 파병 장병들을 만나 “우리의 적은 북한, UAE 적은 이란”이라고 말했다. 이말은 상당한 외교적 파장을 낳았다. 이란 정부가 공식적으로 우리 정부의 해명을 요구했고 주이란 한국대사를 초치했다(불러서 항의하는 외교적 행위).

평소 외교무대에서 직설적으로 ‘날리는’ 대통령의 화법에 비춰 또 말실수했다거나 우리나라가 UAE는 물론 이란과도 국교를 맺은 상황에서 굳이 하지않아도 될 말을 했다는 논란이 일었다. 이란과 UAE는 역사적으로 아주 친한 사이는 아니다. 긴장이 고조된 적도 많다. 그러나 “UAE의 적은 이란” 이라고 말하던 그때는 이미 서로 상대국에 대사관을 재설치하는 움직임이 나올 정도로 빠르게 관계를 회복한 상태였다. 중동을 방문한 한국 대통령이 최신 중동 정세에 대한 업데이트가 늦은 것도 문제지만, 그만큼 짧은 기간 국제관계가 냉탕과 온탕을 오가는게 전혀 이상하지 않은게 바로 지금의 중동이다.

올초까지 갈 필요도 없다. 지난 3월10일 전세계를 놀래킨 사진 한장이 공개됐다. 이슬람 패권을 놓고 꾸준히 대립해온 수니파 종주국 사우디와 시아파의 맹주 이란이 중국 베이징에서 전격적으로 관계 정상화에 합의한 것이다. 미국 PGA와 사우디 LIV의 합병에 버금가는 깜짝 발표였다. 그런데 이 사진이 더 주목받은건 바로 가운데 인물 때문이다. 무사드 빈 무함마드 알아이반 사우디 국가안보보좌관과 알리 샴카니 이란 최고국가안보회의 의장 사이에 서 있는 사람은 중국 외교의 1인자 왕이 공산당 중앙정치국 위원이다. 서로 으르렁대던 사우디와 이란을 베이징으로 불러 손을 맞잡게 한 중재자 역할을 표현해냈다. 미국이 떠나고 무주공산이 된 중동에 중국이 성공적으로 연착륙했다는걸 상징적으로 보여주는 구도. 사실상 사진의 주인공은 사우디와 이란이 아닌 중국인 셈이다.

<연합뉴스>

그런데 아무리 중국이 중재에 나선다한들 7년이나 외교관계를 단절하며 극단으로 치닫던-윤대통령이 “사우디의 주적은 이란”이라고 했다면 차라리 비판이 덜했을지도 모른다-두 나라가 하루아침에 관계 개선을 하는게 가능한가.

그게 가능한게 지금의 중동 정세다. 중동 역내 정세 변화는 지구 자전 속도보다 빠르다고 해도 과언이 아니다. 사우디는 아랍 전체의 숙적이자 이교도 집단인 이스라엘과도 관계 개선에 나서고 있다. 어제의 적이 오늘의 동지가 되는게 전혀 이상하지않은 게 중동의 외교 현실이다. 중동 정세가 지금처럼 유동성이 큰 적도 없는데, 결국 그동안 큰형님 역할을 하던 미국이 떠나면서 생긴 현상이다.

그러니 미국에선 조 바이든 대통령이 한방 먹었다는 비판이 나오는 것이다. 카네기국제평화재단의 애런 데이비드 밀러 선임연구원은 월스트리트저널에 “미ㆍ중 관계가 점점 냉랭해지는 때 사우디와 중국 관계는 훈훈해지고 있다. 이건 바이든의 얼굴을 한 대 때린 격”이라고 말했다. 또 뺨을 맞지않으려면, 바이든 정부가 다시 중동으로 발길을 돌릴 수밖에 없게 됐다. 그럼 애초 떠나질 않았다면 이런 일도 생기지 않았을게 아닌가.


미국에 중동이란? 이란이 팔할

중동은 2차 세계대전이후부터 미국에 중요한 지정학적 요충지였다. 냉전 초기 소련의 남하를 막는 벨트이자 석유패권을 유지하는 자원 저장고였다. 이를위해 세 나라, 즉 튀르키예와 이란, 사우디가 중요했고, 특히 이란과 사우디에 공을 들였다. 결국 미국의 중동정책은 한마디로 사우디와 이란을 어떻게 관리할 것인가가 핵심인 셈인데, 한축인 이란이 먼저 이탈하면서 삐걱거리기 시작한다.  

1979년 이란의 이슬람혁명 전까지 미국은 중동 역내 국가들의 세력균형을 맞추는 ‘역외 균형자’ 정책을 추구하며 군사력 개입을 하지 않았다. 소련 봉쇄를 위해 튀르키예만 미군이 주둔했고, 이란에서 군사시설을 운용한 정도였다. 이는 인구나 군사력, 영토 면에서 역대 최대 국가인 이란이 미국의 굳건한 동맹국이었기에 가능했다.  특히 이란은 페르시아만을 통제할 수 있는 지정학적 위치에 있다. 미국은 이란에 기대 페르시아만을 확보하고 안정적으로 사우디의 석유 수급을 관리했다.(정의길, 2020)

결국 미국이 세계적인 동맹 체제를 유지하고 자신의 안보를 유지하는 데 이란이 필수적 존재였던 셈이다. 그런데 이란에서 이슬람혁명이 발생하면서 미국의 호시절이 사실상 끝이난다. 어제의 동지 이란이 하루아침에 반미 국가로 변신한 것이다. 이때부터 이슬람주의가 중동 전체로 퍼지면서 정작 소련보다 미국의 안보 이익에 더 위협이 되기 시작한다.

당장 페르시아만이 위태로워졌다. 세계 경제질서를 유지하려면 안전하게 페르시아만 석유에 접근해야하는데, 반미정권으로 재탄생한 이란이 호르무츠해협에 대한 영향력을 행사하기 시작한다. 미국 입장에선 페르시아만 접근을 방해하는건 누구든 세계질서를 위협하는 존재로 간주했고 힘을 이용해서라도 막아야했다. 지미 카터 대통령은 1980년 연두교서에서 중동에서 미국의 이익에 필요하면 직접적인 군사 개입을 하겠다고 밝힌다. 사실상 미국의 대중동 정책이 이란 봉쇄로 바뀌게 된 셈이다.

지정학자 피터 자이한은 미국과 이란 관계에 대해 이렇게 적었다.

“미국이 세계질서 유지에 대한 확고한 자세를 견지하는 한-질서를 유지하려는 이유나 논리가 무엇이든 상관없이-이란은 적이었다. 이란이 자국을 전략적으로 옥죄는 상황에서 벗어나려고 발버둥치는 한-그 이유나 논리가 뭐든 상관없이-미국은 적이었다.” (『각자도생의 세계와 지정학』 p.265)

이후부턴 꼬리에 꼬리를 무는 이야기가 펼쳐진다. 미국은 이란을 견제하기 위해 이라크 후세인을 지원해 이란-이라크전이 발발했고, 8년 전쟁으로 피폐해진 후세인이 본전생각에 쿠웨이트를 침공하자 미국의 걸프전을 낳았으며, 걸프전은 사우디에서 오사마 빈 라덴을 탄생시켜 9ㆍ11테러를 낳았으며, 9ㆍ11은 다시 미국의 이라크전과 아프가니스탄 전쟁을 낳고, 이는 다시 이슬람국가(IS)를 낳았으며, IS는 미국의 시리아 내전 참전을 낳게 된 것이다. 그리고 이야기의 끝은 미국이 중동에서 손을 터는 걸로 끝이난다.


너무 많은 죽음과 셰일가스, 그리고 중동보다 중국

미국은 중동에서 수십 년간 무한루프를 그리며 점점 깊숙하게 빨려들어갔다. 어느 순간 정신을 차리고 문제를 해결하려 크게 움직여봤지만, 더 큰 원을 그릴뿐 제자리로 돌아오는 상황이 반복됐다. 영화 <인셉션>에서 꿈의 꿈의 꿈의 단계로 침잠하듯 미국은 중동에 빠져들수록 몸은 굼떠지고 상처는 더 깊어졌다. 멈추지 않는 팽이처럼 무한반복의 꿈속에 갇힌 신세가 됐다.

그러자 미국 여론부터 나빠지기 시작한다. 세계 구석구석 미군을 보내고 남의나라 내정에 간섭하는게 결국 미국의 안보와 이익을 위한 거라는 인식의 ‘인셉션’에서 깨어나기 시작한다. 그러자 왜 미국인들이 바그다드 카페 뒷골목이나 사막의 동굴 속에서 목숨을 잃어야하는지에 대한 이해심이 한계에 도달했다. 가장 먼저 반응한건 표심에 민감한 정치권이다. 민주당이든 공화당이든 좌우 상관없이 아메리카 밖에 있는 미군을 불러들이겠다고 공약해야 선거에서 이길 수 있었다. 공격적 현실주의자 존 미어샤이머는 이렇게 진단했다.

“이라크 정복은 실패로 돌아갔고 몇 년뒤 아프간 역시 실패작임이 판명되었다. (미국의 적들을 사전에 꺾어놓기위해 여기저기서 전쟁을 해야한다는)‘부시 독트린’은 역사의 쓰레기통에 내동댕이쳐졌고 이제 미국은 조만간 다른 나라를 침공해 사회공학을 시행해야할 계획을 전혀 고려하지 않고있다. 2011년 2월 웨스트포인트 육사에서 로버트 게이츠 국방장관은 “제 생각에 장래 어떤 국방장관이든 아시아나 중동 아프리카에 미국의 대규모 지상군을 다시 파견하도록 대통령에게 조언한다면, 맥아더 장군이 묘한 어조로 말한것처럼 그는 ‘뇌 검사를 받아야‘ 할 겁니다”( 『조지 캐넌의 미국외교 50년』 p.37)

여기엔 기술적 진보도 한몫했는데 바로 셰일가스의 상용화 기술이 그것이다. 셰일가스는 일찍부터 석유를 대체할 차세대 에너지로 각광받았지만, 채굴하는데 드는 비용과 기술적 어려움때문에 ‘그림의 떡’ 신세였다. 그런데 2000년대 들어 미국에서 채굴 기술이 개발되어 본격적인 시추가 가능해졌다. 2010년 북미 지역의 셰일가스 생산량은 2000년에 비해 15.3배나 확대됐고, 미국은 2009년 이후 러시아를 제치고 천연가스 1위 생산국에 등극하게된다.(네이버 지식백과)

셰일혁명으로 미국은 이제 페르시아만을 굳이 목숨걸고 지킬 필요성이 줄어들었다. 다시말하면, 석유 생산량 세계 1위 사우디의 전략적 중요성이 예전같지않아졌다는 것이다. 자이한은 “셰일혁명이 일어나기 전 미국과 사우디의 동맹 관계는 필요악이었다. 사우디의 석유가 없으면 세계경제가 돌아가지 않고 세계 무역도 활발히 이뤄지지 못하며, 그러면 미국은 동맹 체제를 유지하기 어려워지고, 결국 미국의 안보는 불안해진다. 그러나 셰일 덕분에 에너지 자급자족이 가능해지면서 미국이 세계에서 손을떼게 된 지금 미국은 사우디가 늘 실행하는 정책들이 얼마나 끔찍한지 그 민낯을 그대로 인식할 기회를 얻었다”고 분석했다(『각자도생의 세계와 지정학』 p.467)     

무엇보다 2010년대 들어 중동보다 더 중요한 곳이 부각됐으니, 바로 중국이다. 미국은 중동보다 중국을 더 큰 실존적 위협으로 인식하기 시작했고, 중동에 펼쳐놓은 군사및 경제 자원을 거둬들여 중국을 포위하는데 투입하게 된다. 이를 외교정책으로 세련되게 포장한게 그 유명한 오바마 정부의 ‘아시아로의 회귀(Pivot to Asia)’ 전략이다.

결국 테러와의 전쟁에 대한 피로감이 쌓이고, 석유를 대체할 신에너지인 셰일가스 상용화에 성공하고, 마침 급부상한 중국을 견제하기위한 삼박자가 맞아떨어지면서, 미국은 중동에서 손을 떼게 된 것이다.

<인터넷 커뮤니티>

전통의 친미 사우디의 홀로서기

미국은 중동을 떠날때까지 이란과 적대관계를 청산하지 못했다. 부시가 명명한대로 ‘악의축’까지는 아니더라도 지금도 여전히 미국의 골칫거리지만 어디까지나 관리 가능한 범주에 있다.

오히려 문제는 사우디. 사우디와 미국은 1974년에 ‘페트로달러(Petro dollar) 협정’을 체결하면서 본격적으로 동맹의 반열에 오른다. 미국이 사우디의 안보를 보장해주는 대신 사우디가 석유 거래 대금으로 달러만 쓰도록 하는 것이다. 이를 통해 미국은 달러의 기축통화 지위를 한층 더 강화했고, 페르시아만 석유 수급을 안정적으로 관리할 수 있었다. 1979년 이란이 미국에서 떨어져 나간뒤에도 사우디를 통해 역내 영향력을 확보할 수 있었다.

그런데  어느날 갑자기 미국이 자기만의 행복을 찾아, 그리고 더 큰 위협인 중국에 맞서기 위해 표표히 떠난다.

미국이란 완충지대가 사라지자 사우디는 가장 먼저 안보 불안을 맞닥뜨리게 된다. 다급해진 사우디는 “이렇게 무책임해도 되느냐”는듯 항의에 가까운 읍소를 하지만, 미국은 “이제 사우디도 자기 일은 알아서 할때도 됐잖아”라는듯 쿨하게 관계를 정리한다.    

그러나 양국이 결정적으로 틀어진건 2018년부터다. 자말 카슈크지 워싱턴포스트 기자가 튀르키예 사우디 대사관에서 살해된걸로 알려지면서 그 배후로 MBS가 지목된다. 카슈크지는 오랫동안 사우디 왕가의 비리를 폭로해와 MBS의 눈엣가시였기 때문이다. 바이든은 대선 당시부터 사우디 정부를 “불한당(pariah)”이라며 앞장서 맹비난했는데, 대통령이 되자 양국의 관계는 돌아올수 없는 강을 건너게 된다.      

<JTBC 차이나는 클라스>

이때 사우디에 구원의 손길을 내민건 중국이다. 중국은 이미 이란을 자기편으로 묶어두고 있었지만, 미국과 관계가 틀어진 사우디마저 같은 편으로 끌어들인다면 일대일로의 주요 통로인 중동 전체를 손에 넣는 셈이기 때문이다.

사우디 역시 미국의 빈자리를 미국의 경쟁자로 메우는건 나쁘지않은 장사다. 중국과 사우디간 각자 계산이 서자 양국은 급속도로 가까워진다. 2022년 12월8일 사우디를 방문한 시진핑 주석은 정상회담장인 사우디 왕궁으로 이동하면서 아라비아 말을 타고 중국과 사우디 국기를 든 사우디 왕실경비대의 극진한 환대를 받았다. 사우디가 ‘탈미친중’ 스탠스를 전세계에 공표한 날이라 해도 무방하다.

CNN 등은 시 주석의 사우디 방문은 수십 년간 지속해 온 사우디와 미국 간 ‘일부일처 시대’의 종식을 시사한다고 전했다. 중국은 여세를 몰아 이란과 사우디를 베이징에 불러 화해의 사진까지 연출한다.  

이제 상황이 완전히 역전됐다. 사우디와 쿨하게 헤어지는 결심을 하는 사이 난데없이 중국이 빈틈을 비집고 들어왔다. 설상가상 우크라전쟁이 터지며 에너지 위기가 찾아온다. 국제유가 상승으로 세계경제도 악소리가 난다. 그런데 중국과 손잡은 사우디는 아쉬울게 없어졌다. 바이든 대통령이 유가를 잡기위해 생산을 늘려달라고 부탁했지만 사우디는 애를 태웠다. 심지어 중국과는 석유 대금을 위안화로도 결제하기로 합의해 ‘페트로 달러’체제를 끝낼수도 있음을 넌지시 보여줬다. 다급해진 미국은 “이렇게 무책임해도 되느냐”는듯 읍소에 가까운 항의를 하지만, 사우디는 “이제 미국도 자기 일은 알아서 할때도 됐잖아”라는듯 쿨하게 홀로서기에 나선다.

2022년 10월5일 미국의 원유 증산 요구에도 불구하고 사우디 주도 산유국 협의체(OPEC+)가 보란듯이 감산을 결정하자 뉴욕타임스는 “사우디와의 원거리 외교를 택했던 바이든 행정부의 패착이 쉽게 회복할 수 있는 성질의 실수가 아니었다”며 “미국은 중동 정책 전반을 전면 재편할 시기에 봉착했다”고 평했다.     


‘피벗 투 미들이스트’ 미국의 ‘멋진 하루’ 올까

결국 위기의식을 느낀 바이든 정부는 다시 중동에 눈을 돌리고 있다. 엄밀히 말하면 사우디를 다시 같은편으로 만드는데 집중하고 있다. 중국을 견제하려고 중동을 떠났는데, 중국에 맞서기위해 다시 발길을 돌리는 수밖에 없게됐으니, 전략적 손실이 이만저만이 아닌 셈이다. 결과적으로 갈팡질팡한 댓가다.

『예정된 전쟁』의 저자 그레이엄 앨리슨은 중국이 이를 예측하고 있다고 분석했다.  “미국이 가끔 남중국해나 동중국해에서 중국과 갈등으로 벌어지는 일에 집착하더라도, 중동에서 현재 진행중인 전쟁이나 유럽에 대한 러시아의 위협으로 결국 중심축을 다시 되돌릴 것으로 중국은 판단한다”(『예정된 전쟁』 p. 238~239)

그런데, 한번 금이긴 동맹이 아무 일도 없던 것처럼 봉합될 진 미지수이다. 헤어진 연인이 다시 만나도 결국 헤어지는 것처럼. 게다가 2차 대전 이후 적대관계를 청산한 국가들은 많아도 동맹을 파기한 경우는 별로 없다.

무엇보다 미국 역시 중국을 견제하기위해 발길을 돌린 것일뿐. 그 목표가 달성되면 사막의 모래바람을 등지고 다시 쿨하게 표표히 돌아설 것이다.  

자이한은 앞으로 미국 입장에서 동맹은 세가지로 재편될 것이라고 전망했다. 제1분류 동맹은 영국 프랑스 일본 등 공동의 명분(commom-cause)과 관심사로 맺은 의지의 연합이다. 제2부류 동맹은 미국의 환심을 사기위해(friends-like-there) 경쟁하는 이웃국가그룹으로 동남아국가들, 호주, 뉴질랜드 등이다. 제3부류 동맹은 철저한 비즈니스를 기반으로 한다. 미국의 우선주의에 크게 타격받지도 미국과 동맹을 맺는데 크게 절박하지도 않은 나라들이 대상인데 바로 이란과 사우디다(『각자도생의 세계와 지정학』 p.442~466)

다시 골프얘기다. 미국은 중국 견제에 집중한 나머지 거리 욕심을 부리다 오비를 냈고, 해저드에 빠졌다. 벌타를 만회하려니 마음이 급하다. 반면 중국은 시간을 벌었다. 반면 사우디의 MBS는 날마다 ‘버디인생이다. 최소한 지금은.


[참고문헌]

그래이엄 앨리슨『예정된 전쟁』

조지 캐넌『조지 캐넌의 미국외교 50년』

피터 자이한『각자도생의 세계와 지정학』

“PGA Tour and LIV Golf Agree to Alliance, Ending Golf’s Bitter  Fight”

『NweyorkTimes』 2023.06.06

“바이든 뒤통수 때린 사우디… 11월 중간선거에 기름붓나” 『국민일보』 2022.10.07  

“사우디ㆍ이란, 중국 중재로 악수…미국선 “바이든, 뺨 맞은 격”” 『중앙일보』 2023.03.13
“[정의길 칼럼] 미국은 왜 중동에서 지는 전쟁을 계속하나” 『한겨레』 2020,01.13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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